<우리들의 블루스>가 종영했다. 처음엔 낯설어 '자막'이 필요하기 까지 했던 제주도 사투리가 나도 모르게 우물거릴 정도로 친숙해 졌다. '어멍, 아방, 했시니? 했져?', 친숙해진 제주도 말만큼 20부작을 함께 했던 인물들도 정이 들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여전히 그곳 푸릉리에서 얼크렁설크렁 어우러져 살아갈 듯하다. 단 한 사람만을 빼고. 

위암 말기였던 옥동은 결국 눈을 감았다. 첫 회부터 징글징글하게 애증의 역사를 써내려갔던 옥동과 그의 아들 동석, 다행히도 두 사람은 '화해'했다. 끝내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남기지 않은 옥동인데, 어떻게 두 사람은 '작은 어멍'과 '동석'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면 '어멍과  그 아들로 만나 살자는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을까?

 

 

옥동은 자신을 '미친년'이라 했다. 
옥동은 끝내 한글을 깨우치지 못했다. 글자도 모르는 여인, 겨우 물질만 하던 그녀가 딸이 바다에서 죽자, 물질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아들 동석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동석이 어멍 옥동이 말기암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안하무인으로 굴자, 은희 등 푸릉리 친구들이 모였다. 동석의 누나 친구였던 은희가 말한다. 그 누구보다 동석의 맘을 안다고. 자기도 그때 어멍이 용납이 안되었다고. 그 누구보다 이해심이 많은 은희조차 그랬다. 하지만 그런 말도 동석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외려 그의 부아를 돋울 뿐이다. '나를 이해한다고!', 버럭거리던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 회차가 끝난 후 애기 엄마인 지인에게서 톡이 왔다. 자기는 그냥 이해가 되는데 왜 드라마 속 사람들은 옥동을 이해못하는 지 이해가 안된다고. 아이를 낳아 키워본 '엄마'의 입장이라면 옥동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다고. 

제주의 여성들은 왜 '물질'을 하게 되었을까? 화산섬인 제주는 밭농사만이 가능한 지리적 환경이다. 그 조차도 '척박'하다. 그런 곳에서 식구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바다 밭'으로 뛰어든 건 '생존'의 모색이다. 그런 '생존'을 더는 할 수 없을 때, 글조차 모르는 옥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옥동의 선택은 두고두고 그녀의 멍에가 되었다. 스스로 '미친년'이라 하듯, 옥동 자신도 자신의 결정을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새끼는 먹여살려야 했다. 

짐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다 아들에게 이제부터 자신을 '작은 어멍'이라 부르라며, 그걸 따르지 않는 아들의 따귀를 때렸을 때 옥동은 기꺼이 그 멍에를 짊어지겠다 결심했을 것이다. 아들을 먹여살리고 학교를 보낼 수만 있다면. 하지만 먹고 입히고 학교도 보냈지만, 옥동의 처지에서 미처 염두에 둘 수 없었던 것이 평생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아들 동석은 '작은 어멍'이라 부르라던 그때부터 내내 '옥동'에 반항했다. 부러 의붓 형제들에게 맞고 돌아와 그 상처를 옥동에게 보이며 옥동의 가슴을 후벼팠다. 그렇게 스스로 '생채기'를 내는 동석의 행동은 마흔이 넘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작은 어멍이라 부르는게 싫다며 울던 그때 그대로였다. 

 

 

동석이 컸다. 
그렇게 평생 옥동을 용서할 수 없을 거 같던 동석이 달라졌다. 옥동이 말기암이라서? 그것만은 아니다. 푸릉리 사람들의 성화에 못이겨 옥동을 모시고 의붓아버지 제사에 갔을 때만해도 동석은 그저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하면서도, 그 '소원'을 다 들어주면 자기 한풀이를 하겠다고 별렀다. 

의붓 아버지 제사에 가서도 동석은 하던대로 했다. 결국 자신의 상처, 의붓 형제들에게 맞았던 그 상흔을 끄집어 내고, 의붓 형의 아픈 데를 들쑤셔 밥상을 뒤집어 엎었다. 그런데도 어멍 옥동은 참았다. 그저 자기 할 도리만 하면 된다던 어멍 옥동, 그런 옥동이, 의붓 형의 한 마디, '거지같은 것들'이란 그 한 마디에 '포효'를 내뿜는다. 국물도 삼키지 못해 토해낼 정도로 위중한 옥동이, 도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저 밑바닥에서 긁어내는 듯한 한서린 목소리로, 자신이 이 집안에 들어와서 했던 병자 뒤치닥거리를 보상하라 손을 내민다. 그러면서 말한다. 동석이 칼을 들지 않은 것만해도 어디냐고. 외레 동석이 말려야 하는 기세다. 

하지만 그래도 옥동은 여전히 동석에게 '미안하지 않다'고 말한다. 뉘집 개인 줄 모르는 개한테도 미소짓는 옥동인데, 여전히 자기에게는 한겨울 얼음장같은 그 냉랭함이 동석은 서럽다. 

그래도 동석은 '죽을 사람 소원'이라 옥동이 가자는 대로 향한다. 이제는 '수몰'된 옥동의 고향, 그곳에서 비로소 동석은 안다. 어멍 옥동이 '타지' 사람이었음을. 그리고 자기 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도, 어머니도, 오빠도 잃었음을. 그런 옥동이었으니 그 어린 '동석'을 지키기에 얼마나 '오매불망'했을까. 

하지만 옥동은 힘이 없었다.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던 구산리, 그곳에서 동석은 또 알게 된다. 열 서너 살 무렵부터 옥동이 '식당 일'을 했었다는 것을. '무슨 팔자가', 동석의 입에서 자리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옥동에게 따지듯 이런 저런 말을 하지만 어쩐지 동석의 기세가 점점 누구러진다. 마흔 줄의 동석, 의붓 아버지네 집에서 돈과 패물을 들고 튀어 서울로, 다시 제주로, 나름이 인생 고비를 넘겨본 동석에게 비로소 '옥동'이라는 한 사람의 '팔자'가, 아니 '인생'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몰된 골짜기에서 태어나, 가족을 잃고, 어린 나이에 식당에서 잡일을 하다, 자장면을 사줘서 좋았다는, 그래서 말기 위암에도 먹고픈 게 자장면인 어머니 옥동의 삶, 사랑하는 이 따라 제주에 왔지만 그 이는 아이들 둘만을 남기고 먼저 떠나고, 딸마저 자신을 따라 물질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아들을 먹여 살리려고 한 선택에 아들은 평생 '어멍'을 원망만 한다. 

'어멍'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동석의 눈에 옥동이란 한 사람이 보인다. '내 어멍'이 아니라, 죽을 힘을 다한 여정에도 '어멍'이란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아들과의 여정이 제일 행복한 시간이라는 옥동의 '가여운 삶'이. 제주에 살면서 한라산도 가보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같은 옥동의 인생이. 비로소 동석은 옥동의 철부지 아들에서 이동석이란 한 사람의 '어른'으로 자라나고 있다. 그래도 동석은 더 늦기 전에 옥동과 '화해'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 아닐까.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피를 나눈 귀한 것이지만, 그만큼 세대만큼의 '해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자신이 살아온 '경험'의 울타리를 넘지 못해 끝내 '이해'와 '화해'의 손을 내밀지 못한다. 자식이, 부모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는 무엇일까? 노희경 작가는 자식의 어른됨을 말한다. '부모'를 부모의 자리에서 내려, 한 사람으로 풍파의 시간을 겪어낸 불완전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부모'를 온전히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는 거라 말한다. 그리고 그럴 때 비로소, '아이'였던 자식도, '어른'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드라마의 일관된 주제는 '살아있는 자 모두 행복하라'였다. 옥동의 삶을 돌아보니 그녀의 선택을 묻고 따지기가 무색했다. 그저 그 삶을 헤아리고 나면 다시 한번 '어멍'과 아들의 인연으로 만나고 싶어지는 것을. 사랑은 이유를 댈 수 없는 거라던가. 가장 행복한 일이 '아들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이던 옥동은 기쁘게 아들을 위해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세상을 떠난다. 장사도 지내지 말라던 옥동의 유언이 무색하게 그녀의 부고에 모두 울며 달려온다. 사랑하는 이만을 믿고 제주에 온 산골짜기 마을의 옥동, 그 인생은 그저 외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by meditator 2022. 6. 13. 15:22

언제나 그래왔지만, 특히 이번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 묻어두었던  삶의 질문들이 툭툭 던져진다. 바다 건너 제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인데, 그들의 이야기 속에 내가 있고, 나와 얽힌 인연들이 있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들'의 블루스인가 보다. 

이정은과 엄정화가 친구라니, 극중 정은희와 고미란 말이다. 그런데 극중 인물에 집중하기 전에, 일찌기 젊은 시절부터 대표적 엔터테이너로 당대를 풍미했던 엄정화란 존재와, 우리에게 그 이름을 알리기 까지 대학로 연출에서 부터 마트 직원에 이르기까지 숱한 인생 역정을 겪으며 뒤늦게 그 이름을 알린 이정은이란 배우가 '친구'로 등장하는 '조합'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이정은 배우가 메인 주연을 하는 드라마에 엄정화란 배우가 친구로 잠시 들렀다 가는 시절이 오는 날도 있구나. 


 

얽힌 인연, 우정 
실존의 배우가 주는 감상과 함께, 극중 고미란과 정은희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시절, 정은희는 도시락도 못싸오는 가난한 집 아이였다.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은희를 미란이는 자기 집 승용차를 타고 지나며 구출해 줬다. 게다가 매일 은희를 위해 도시락을 두 개 씩이나 싸왔다. 둘도 없는 친구라며 '의리'를 외치는 은희와 미란, 하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제주를 찾는 미란을 맞이하는 친구들은 미란과 은희를 '공주님'과 '무수리'라 농을 건넨다. 

보는 이들만이 아니다. 인연의 속내도 그리 간단치 않다. 제주에 도착한 미란은 생업에 분주한 은희에게 '그깟 생선'이라며 자신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음을 야속타한다. 그런데 그 말이 은희의 마음을 후벼판다. 아니, 그저 지금 미란이 던진 말 때문만이 아니다. 오랫동안 켜켜히 쌓아왔던 미란에 대한 은희의 감정들이 자꾸 은희의 마음 위로 솟구쳐오르기 때문이다. 

'친구'란 우리가 살면서 맺는 대표적인 '인연'의 형태이다. 가족이 가족이라서 들여다 보면 가장 많이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이기가 십상이듯이, 친구 역시 친구이기에 서로에게 불평등한 관계의 상흔을 내재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저마다 우정의 이름으로 관계맺은 존재들을 되돌이켜 보면 그 시간만큼 그 안에 부유하는 복잡한 감정들이 느껴질 것이다. 


 

가진 것이 없어 늘 '자존감'에 상처를 입기 쉬웠던 은희에게 미란 역시 그런 존재였다. 미란은 은희의 어려운 처지를 배려했지만 그 상처받기 쉬운 마음까지 배려해주진 못했다. 엔터테이너 엄정화처럼 어릴 적부터 이쁘고 사람들의 주목을 쉬이 받던 미란은 도시락을 두 개 싸오듯 착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생사를 걱정해 달려온 미란의 마음을 사람들과 내기 꺼리로 삼을 만큼 자기 중심적이기도 했다. 은희는 그런 미란이 한없이 고마웠지만 동시에, 그런 미란이기에 늘 상처받았다. 내 맘같지 않은 '친구', 그 친구의 '다름'이 나에게 '내상'을 입힌다. 

거기에 우정의 길을 엇갈리게 하는 건 무엇보다 '존재의 양식'이 아닐까. 은희가 폐경에 이르도록 가족들 뒤치닥거리하느라 여전히 '미혼'인 것과 달리, 미란은 결혼을 세 번이나 했다. 그런 미란이 딸과의 졸업 여행을 뒷전으로 하고 제주에 왔다고 하자,  미란은 '자기 밖에 모르는 년'이라며 자기에게 했듯이 그렇게 딸에게도 했으리라 지레 짐작한다.

은희가 전하지 못한 맘을 대신한 일기장으로 결국 터질 게 터지고야 만 두 사람, 미란이 떠나고 옥동이 말한다. 결혼을 세 번이나 한 그 의지가지 없는 심정을 어찌 알겠느냐고. '세 번이나'인 처지의 속내를 은희 역시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깟 생선'이라는 말도, 은희를 무시한 게 아니라 너무 일만하는 은희가 안타까워 던진 말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은희가 먹던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던진 미란의 속내도 들어보면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상처'받기 바빴던 은희는 그런 사정을 들여다 볼 '여유'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시절인연'이란 말이 있다. 그저 한 시절 함께 한다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불교의 업과 인과응보에 기인하여 시기가 되어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깊은 뜻을 지니고 있었다.  '인연'의 때가 있음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미란과 은희의 '시절인연'은 그렇다면 언제일까? 이미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친구란 이름이었지만 그 속내는 빚갚음이라 여겨졌던 관계는 '우정'일까? 

친구들이 '무수리'라 할 때마다 '내 무슨 무수리냐'는 그런데 은희  자신이 미란과의 관계를 그렇게 '규정'하며 지내왔던 건 아닐까. 어린 시절 가난한 자신을 보아준 그 '고마움'에 미란을 친구란 이름의 빚쟁이로 여기며 지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 달음에 달려간 은희를 '만만한 친구'라 할 때 그런 미란에게 따지는 대신 입술을 꾹 다물고 돌아선 은희의 마음이 정작 '친구'가 아니라, 채무자의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우리 역시 '우정'을 빌어 '채무'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지는 않을까? 

미란과 은희의 이야기는 은희의 묵은 상처를 깨닫게 되는 미란의 이야기인 듯 보인다. 하지만 그 미란의 이야기를 통해 정작 작가가 하고자 하는 건 상처로 겹겹이자신을 감싼 은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나이가 이만큼이 되어도 여전히 은희에게는 어린 시절 자신이 받았던 상처가 아리다. 극중 종종 은희는 미란을 처음 만났던 시절의 아이로 등장한다. 단지 '추억'일 뿐일까. 아니 어쩌면 '은희'도 그렇고, 우리도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그 시절의 '상처받기쉬운 아이'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첫사랑 앞에서도 거침없던, 제주도 수산 시장을 휘젓던 은희가 정작 미란 앞에서는 자꾸 위축된다. 관계를 왜곡하는 건 '그 시절에 멈춘 나'다. 

일기장 사건으로 인해 미란과 은희는 비로소 가난한 어린 시절의 채무 관계를 청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채무' 관계 속에는 이제는 '별로가 된' 미란에 대한 은희의 감정적 우월함도 숨겨져 있다. 변변찮고 자기 중심적이라며 낮잡아 보던 미란의 진심을 서늘하게 깨닫게 된 은희, 늘 한 수 접어주던 은희가 입술을 꾹 다물고 뒷걸음치는 대신 따지러 간다. 비로손 은희는 '무수리'의 마음에서 한 발 나와 미란의 친구가 된다. 무덤으로 들어갈 뻔한 인연을 '재생'시킨 것이다. 





by meditator 2022. 5. 28. 10:20

인생은 고해(苦海)다. 일찌기 붓다의 설법이다. 이제 9회차를 경과하고 있는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네 인생사 고해의 바다에 밀려오는 제 각각의 파고를 경험하게 된다. 9회 차에 들어 전면에 등장한 동석(이병헌 분)과 선아(신민아 분)를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인생의 파도는 무엇일까? 

 

 

십대 청소년 시절 서울에서 전학온 선아와 만난 이래, 이제 마흔 줄이 될 때까지 동석은 선아와 만날 때마다 인생이 꼬였다. 그렇게 얼핏 이야기는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의 이야기같았다. 트럭 하나를 몰고 제주 인근 섬을 돌며 장사를 하는 동석, 그런 동석이 사는 제주에 그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 장본인 선아가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보란듯이 그를 농락한 채(?) 떠나고, 다시 그를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잘 살 것 같던 선아가 피죽 한 그릇도 못얻어먹은 얼굴로 돌아왔다. 본인 말로는 발을 헛디뎌서라는데 해녀들이 구하지 않았으면 물고기 밥이 될 뻔했다. 그런 선아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동석의 신경을 거스른다. 죽지 않았으면 됐다고 하면서도 돌아오지 않는 선아를 찾아 온제주를 헤맨다. 

동석과 선아의 상흔 
해묵은 연인처럼 실랑이를 벌이던 두 사람, 선아에게 따지듯 그때 왜 자신을 버렸냐던 동석, 그로부터 그저 오랜 연인만이 아닌 의지가지없던 두 '어른 아이'의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아버지가 죽고, 물질을 하던 누나가 죽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친구네 집으로 들어갔다. 말이 두번 째 부인이지, 병석에 누운 본처의 병수발을 하는 것이었고, 두 의붓 아들을 키우는 것이었다. 그런 어머니를 용납할 수 없었던 동석은 매일매일 두 의붓아들에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보란듯이 그 상처를 들춘다. 

그렇게 얼굴이고, 몸이고 시퍼렇게, 검붉게 멀쩡한 곳이 없는 시절을 살아가던 동석에게 기대어 온 아이가 선아였다. 서울에게 전학왔다는 중학생 아이가 집에는 안가고 매일 동석이 가는 피씨방에서 게임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업을 하다 망한 선아의 아버지가 의탁한 큰아버지네, 하지만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하루가 멀다하고 주먹다짐을 하며 싸웠다. 그렇게 돌아갈 곳이 없는 선아를 동석은 품어줬다. 

하지만 첫사랑이자, 첫정이던 선아는 동석의 친구에게 몸을 허락했고, 그걸 안 동석이 폭주하자 동석이 보는 앞에서 깡패라며 신고를 했다. 그리고 떠나버렸다. 제주 돌담 사이 삐져나온 잡초같은 동석이 유일하게 마음을 줬는데, 그런 동석을 선아가 짓밟아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자신을 버렸냐는 동석의 질문에 선아는 동문서답처럼 말한다. 사랑하는 오빠에게 자신을 망가뜨려 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냐고. 

자신이 맞은 상처를 보여줘 엄마를 고통스럽게 하려던 것처럼, 선아도 그런 식으로 아빠의 관심을 끌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아의 시도는 아빠의 사랑을 갈구하는 딸을 놔둔 채 바다로 차를 몰아버린 아빠의 이른 죽음으로 무산된다. 그리고 자신의 눈 앞에서 바다로 빠져들어가는 아버지를 목격한 선아는 오랜 지병, 우울증을 얻는다. 

 

 

선아의 우울증은 동석의 맞은 상처와도 같다. 의붓아들에게 매일매일 맞고, 그걸 엉마에게 보여주듯이, 하지만 그런 마음의 아픔을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선아는 자신의 안에 그 상흔을 차곡차곡 쌓아 자신을 갉아먹어간다. 그리고 그 상흔이 이제 선아의 가정을 무너뜨렸고, 아이마저 잃을 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동석이라고 다를까, 선아가 그렇게 떠나고 의붓아버지네 집을 털어 다시는 제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떠난 동석, 하지만 뭍에서도 그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다시 제주로 돌아온 동석, 하지만 여전히 그는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도 않고 트럭 하나를 몰며 제주 이곳저곳을 전전한다. 

김훈 작가는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인생은 고해라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종교적 교리에 의하면 인간사 희노애락의 욕망에서 '해탈'하면 되지만 사람 사는 일이 어디 그런가, 그런 '고해'의 삶, 그런데 김훈 작가는 그저 인생이 그런 거라고 받아들이라 말한다. 

인간의 삶은 다 저마다의 욕망과 욕구를 가지고 맞물린다. 내 맘이 네 맘같지 않은 그런 모든 일들이 서로가 서로에 대해 '고해'의 풀을 만든다. 그저 인간사가 다 저마다의 이해 관계에 얽혀 이루어지는 것임을 '수용'한다면 될 일이라고 김훈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나와 다른 타인의 삶이 저마다 이루어져 가는 것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동석과 선아는 여전히 그 '어린 시절의 상흔'에 사로잡혀 있다. 에이 설마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느냐는 선아의 농반 질문에 동석은 말끝을 얼버무린다. 동석은 늘 자신의 인생이 선아 때문에 꼬였다고 말한다. 마흔 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동석의 인생은 선아 때문에, 엄마 때문에 라는 그 '트라우마'로 부터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동석의 떠돌이 삶이 드러내는 외상, 그리고 선아의 의지가지 없는 우울증의 내상은 모두 여전히 그들이 어른이 되었음에도 '어른 아이'의 그 시절에서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그들이 겪은 '상실의 시간'은 과거가 되었고, 그들은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동석도 선아도 그 상실을 겪은 그 시절에 멈춰있다.

그런 '어른 아이'인 상태인데도 선아는 자신이 '엄마'로서의 주장을 펼친다. '아이만 있다면, 자기 삶에 유일한 의미인 아이만 있다면', 다시 행복해 질 수 있을 거라며 예전 아빠와 함께 살던 곳을 꾸미고 있다. 

그런 선아에게 동석은 말을 건넨다. 재판에서 져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없게 되더라도 너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어쩌면 동석은 인정하고 싶지만 그의 내면은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자신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했던 어머니의 삶을. 그래서 동석에게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동석에게 선아의 등장은 해묵은 인연의 결자해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동석이 오랫동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내면의 아이를 들여다 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지않을까.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서로에 대한 '감정'을 놓지 않은 두 사람, 그 '온기'는 아직도 두 사람이 허우적거리는 '고해'의 파고를 넘어서는 힘이 되지 않을까. 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헤집고 보면 다들 내 안에 '아이'를 놓지 못하고 있다. 노희경 작가는 동석과 선아를 빌어 말하고 있다. 그제 그만 그 아이를 놓아주라고.그 시절의 엄마도, 아빠도 그저 각자 자신의 삶을 버겁게 짊어지고 살아갔던 한 사람들일 뿐이었다고. 타인들의 삶으로 인한 고해의 바다에서 그만 허우적거리고 넘어서라고.  진정한 어른됨의 삶을 살아가라고. 



by meditator 2022. 5. 8. 16:23

5월이다. 부모님도 계시고, 자식들도 있는 연배의 사람들이 5월에는 외식은 꿈도 못꾸겠다는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들을 한단다. 어버이날도 있고, 어린이 날도 있는 5월, 그래서일까? <우리들의 블루스> 호식과 인권의 이야기가 쓰리게 다가온다. 

호식(최영준 분)과 인권(박지환 분)의 딸 영주(노윤서 분)와 아들 현(배현성 분)이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지역 균형 선발로 서울대 의대 갈 날만 바라고 공부에 매진해 왔던 영주는 임신임을 알고나서 자신의 미래에 걸림돌이 될 거라는 이유로 아이를 지우려 했다. 하지만 임신 주수가 이미 6개월을 넘어 중절조차 쉽지 않은 상태, 산부인과에서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은 두 사람은 결국 '부모'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당하게 아이를 가지고서도 학교를 다니게 해달라고, 지역균형 선발로 대학에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던 영주, 그리고 학교를 그만두고서라도 아이 아빠 노릇을 하겠다던 현도 막상 아버지들 앞에서는 말문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아버지가 그냥 아버지들인가. 

아버지로 살다; 인권과 호식
한때는 주먹으로 날리던 현의 아버지 인권은 시장에서 순대국밥을 만다. 말끝마다 아직은 이새끼 저새끼 하지만, 아직은 '내 꺼'라며 현을 애지중지한다. 그의 불만이라면 그저 현이 호식의 딸내미 영주에게 늘 전교 1등을 내주고, 전교부회장인 거다. 그래도 자기보다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아들내미가 그의 '자랑'이다.

호식이라고 다를까, 은희가 가난해서 버렸다던 호식이, 그런 호식이가 시장에서 얼음을 나른다. 그런 와중에서 생선까지 굽고, 제철 과일까지 챙겨 딸내미 영주의 아침상을 마련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구멍난 양말에 늘어진 티쪼가리다. 둘 다 아내가 떠나고, 그저 아들내미, 딸내미만 보고 여기까지 왔다. 말끝마다 호식이는 영주가 대학만 가면 저 바다에 배 띄워 낚시나 하며 살겠단다. 

그렇게 아이들 대학보낼 날만 바라며 정신없이 달려온 두 사람 앞에, 아이들이 사랑한다며 아이를 낳겠다고 한다. 심지어 현은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겠다고 둘이 살 집만 마련해 달란다. 청천벽력이다. 두 아버지는 자신들답게 반응한다. 인권은 차마 현을 때리지 못하고 집안을 다 때려부순다. 호식은 자신의 따귀를 때리며 하염없이 운다. 

 

 

처음 현이 영주의 이야기를 했을 때 인권은 늘 자기 아들 앞에 한 자리를 차지하던 영주라는 걸림돌이 사라진 걸 안심했다. 호식은 영주의 이야기를 듣자 믿을 수 없다며 함께 병원에 가서 확인하자 했고, 그 다음엔 아이를 지우자고 한다. 

영주와 현의 이야기를 듣고 난 두 사람의 다음날, 일을 하는 인권과 호식, 두 사람에게 지나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동네에서 피붙이처럼 친했던 두 사람, 그래서 호식을 겁박하면 인권이 무릎을 끓던 시절, 이 담에 아이들이 크면 사돈을 맺자며 그러니까 죽지 말라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내가 떠나고 밥통에 밥알도 말라버린 채 영주가 배가 고프다고 한 날, 호식은 그래서 가장 친한 인권을 찾아 돈을 구했다. 하지만 그게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번에도 그렇게 호식은 인권으로부터 돈을 가져갔고, 그 돈은 도박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이번에 인권의 태도가 달랐다. 인권은 영주에게 다가가 '돈주세요'하라고 하고, 그런 영주에게 돈을 주었다. 그리고 호식에게 말했다. 딸 앵벌이 시켜 돈얻으니 좋냐고. 그 말 한 마디가 호식을 변하게 했다. 아내가 떠나도 끊지 못하던 도박을 인권의 그 한 마디가, 딸의 손에 얹힌 돈다발이 호식을 변하게 했다. 대신 인권과 호식은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부모라는 자리 
피붙이같던 인연을 끊고 자식키우는 목표 하나로 달려온 두 사람이다. 이제 아이들이 번듯한 대학만 가면, 고지가 저긴데, 그 고지 앞에서 두 아이들이 다른 선택을 했다. 

첫 회부터 만나기만 하면 아웅다웅하던 인권과 호식, 두 아버지들의 둘도 없는 자식 현과 영주의 러브스토리, 그 애틋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통해 노희경 작가는 역설적으로 '부모'를 묻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장 헌신적인 아버지들을 통해 '이타적'이기만 할 것같은 '부모' 자리의 '이기적인 내면'을 들여다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삶이란 없이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달려온 듯한 인권과 호식, 심지어 두 사람은 아버지이지만, 엄마가 없는 아이들에게 두 사람은 완전체로서의 부모다. 아이들의 대학 입학을 위해 가속을 붙여 달려온 자기 희생적인 삶, 그 삶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작가는 묻는다. 당신이 원했던 부모의 자리는 어떤 것이었냐고. 당신은 당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냐고, 아니면 당신의 아이가 이룬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냐고. 

아내도 못끊게 했던 도박을 끊게 만들고, 잘 나가던 주먹질을 접게 만들었던 맹목적인 부모의 자리, 하지만 그 '맹목성'은 동시에 잘 나가는 자식이라는 '보상'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라고 드라마는 묻는다. 그래서 영주의 임신 소식에 인권은 자기 아들이 1등을 하게 됐다며 좋아했고, 호식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딸의 앞길을 막는 아이를 지우자고 단호하게 결정한다. 물론 거기에는 아내가 떠나버린 상실감과 홀로 아이를 키우며 감내했던 시간이 준 트라우마가 있다. 

어느 부모가 전교 1, 2등을 다투던 내 아이가 대학 입시를 앞두고 아이를 낳고, 학교를 그만두고 가장 노릇을 하겠다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또 물론, 아이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인권과 호식이기에 결국은 현과 영주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부모 노릇을 통해 작가는 묻는다. '내 새끼'만을 향했던 그 마음의 향배를. 

또한 그 '맹목성'이 놓치고 있던 내 삶의 자리는 어떤 것이었냐고 묻는다. 가끔 인권의 순대국밤 노점에는 한때 그와 함께 '주먹' 좀 쓰던  친구들이 온다. 그리고 인권을 신기해하는지, 비웃는지 묘한 뉘앙스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인권도 현에게 늘 말한다. '돼지 냄새' 맡아가며 너를 키운다고. 늘 어디 동호회 무료 티셔츠 나부랭이나 입으며 얼음을 나르는 호식의 마음이라고 다를까. 서로를 향한 적대적인 감정 안에는 어쩌면 많은 것을 놓치고 사는 듯한 자기 삶에 대한 서러움이 묻혀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새끼 좋은 대학 갈 날만을 향해 달려왔던 삶, 과연 그건 내 새끼의 좋은 대학 입학만으로 '보상'받아야 할 삶일까? 주먹질을 하던 인권이, 도박판을 전전하던 호식이 아이들로 인해 '보상'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미래의 꽃길 대신 현재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아이를 선택한 현과 영주의  행복말이다. 우리는 늘 먼 훗날의 여유와, 행복을 그리지만, 사실 어쩌면 고단한 지금 여기의 삶이 현생을 사는 나의 '황금기'일 지도 모른다. 



by meditator 2022. 5. 1. 23:51

옵니버스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우리들의 블루스>, 3회로 한수(차승원 분)와 은희(이정은 분)의 이야기가 마무리됐다.  시청자들의 예상대로 한수는 어떻게든 은희에게 돈을 빌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고, 그런 줄로 모르고 은희는 몇 십 년만에 한수와 둘이 온 목포 여행에 설레기만 한다. 

아내와 별거를 한다며 은희에게 둘만의 여행을 떠나자고 하는 한수, 함께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은희의 입가에 묻은 과자를 떼어주고, 그 시절의 솜사탕을 함께 먹고, 없어진 자리에 생긴 호텔에 함께 머문다. 은희의 마음은 드라마 속 OST로 등장하는 Quando, Quando, Quando, 언제 내 사람이 될 지 말해 주세요. 제발 말해주세요, 언제일지, 언제일지, 언제일지."라는 듯 간질간질하다. 하지만 그 시간 미국을 떠난다는 아내와 딸에게, 특히 골프가 더는 재미없다는 데도 골프가 없이 니가 어떻게 사냐며 절규하듯 전화를 끊은 한수는 거울을 보며 연습한다. '은희야, 나 2억만 빌려줄래?'

 

 

은희, 첫사랑을 잃다
하지만 은희의 설레임은 오래가지 못한다. 명보를 만나 한수의 처지를 알게 된 인권과 호식이 은희에게 그 사실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은희는 친구들의 말을 믿지 않으려 하지만 사실 '별거'도 하지 않는다는 친구들의 증거 사진 앞에 황망하다. 안그래도 소개를 받으려 해도 다들 자기 돈만 본다며 한수에게 토로했던 은희, 오랜만에 찾아온 첫사랑 한수마저 그러니 마음이 찢어진다. 


오늘 나랑 놀고, 이제 같이 잘 거냐고 . 아님 돈을 빌려주냐고 직진하는 은희, 그런 은희 앞에 한수는 무너진다. 한수를 쿠션으로 마구 치며 은희는 울부짖는다. '네가 나를 친구로 생각했으면 (중략) 이런 데 끌고 오지 말고, 잘 사는 마누라랑 별거네 이혼이네 말하는 순간 너는 나를 친구가 아닌 너한테 껄덕대는 푼수로 안거지'. 그렇게 은희는 친구도 잃고, 첫사랑도 잃었다. 

여기까지가 <우리들의 블루스>의 예상 가능한 스토리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역시 노희경 드라마인 이유는 여기부터이다. 한수와 함께 호텔에 와서 호텔 방에 누워 본 은희는 울컥한다. 몇 개의 가게와 엄청난 현금 동원력을 가진 '부자'가 될 때까지, 그동안 돈 버느라 이런 좋은 데 한번 와보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 눈물이 나오는 거다. 그런데 이 무슨 호사인가, 몇 십년만에 돌아온 첫사랑과 함께 이 좋은 곳에. 하지만 환타지는 금세 끝났다. 

과연 이럴 때 어떻게 할까? 아마도 대부분 그 호텔 방에서 은희처럼 한 것처럼 한바탕 퍼붓고 '똥 밟았다'하면서 두번 다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지 않을까? 친구들에게 조식을 먹고 가겠다고 말했듯이 다음날 아침 홀로 앉아 조식을 끄적이는 은희, 생전 처음으로 온 호텔에 눈물짓던 때가 언젠가 싶게 처량맞다. 그때 호식에게 온 전화, 은희는 친구들에게 퍼붓는다. 니들이 친구냐고. 집도 절도 없다는 한수, 그런 한수에게 돈이 여유가 있으면서도 꿔주지 않은 형식이, 빌려주고 이자놀이하듯 하는 또 다른 친구, 그리고 신나서 뒷담화하는 너희들', 이라며 은희는 말한다. '돈많은 나를 챙기듯, 돈없는 한수도 챙겼어야지.' 

'역지사지', 그 하룻밤 사이에 은희는 많은 생각을 한 것이다. 다 거짓말은 아니었다고 말하던 한수, 자신의 꿈이 가수라던 은희에게 농구가 꿈이라던 한수, 아이는 자신처럼 돈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그랬다던 한수, 그리고 평생 돈을 벌어 남 좋은 일만 하던 은희에게 차마 그 소중한 추억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서 말못했다던 한수의 마지막 말, 그리고 친구들이 전한 한수의 처지, 그 모든 것을 은희는 짚어본 것이다. 

제주로 돌아와 희망퇴직을 친구에게 부탁하고 떠나던 한수에게 온 문자, 은희는 한수에게 2억을 보냈다. 그 돈은 돈이 있어서 보낸 돈이 아니다. 그래도 한수를 이해하려고 애쓴 은희는 지난한 노력의 결과이다. 한수와 함께 바닷가에 간 은희는 한수에게 말했다.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이제 은희는 잘 자라주지 못한, 자신의 꿈조차 이루지 못해, 그 꿈을 자식을 통해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바둥대는 한수를 그래도 '친구'로 접어준 것이다. 호식 등의 친구들에게 은희는 말했다. 니들은 어려울 때 나한테 돈을 잘도 꾸면서, 왜 한수는 나한테 돈 빌리면 안되냐고. 

사람의 참모습은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드러나게 된다. 고등학교를 함께 졸업하지 못했음에도 동창회의 주역이 된 은희, 그리고 은희 주변의 사람들, 그건 그저 은희가 돈이 많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을 꼬셔 돈이라도 빌려보려던 첫사랑, 어른들 말대로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은희는 돈을 빌려준다. 첫사랑은 잃어도 친구는 잃고 싶지 않은 은희의 '휴머니즘'이다. 

 

 

그렇게 노희경 작가는 은희를 통해 사람살이를 이야기한다. 이십년도 더된 첫사랑, 그 첫사랑도 '집도 절도 없는 현실'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가장으로 바둥거리는 한수의 고단함을 은희는 헤아려준다. 그리고 힘들 때는 스스럼없이 자신에게 손을 벌리는 친구들의 자리에 앉혀준다. 그저 '밑진 장사'한 셈치고. 돈은 잃어도 사람은 잃지 않겠다는 은희는 큰 그림이다. 우리는 어떨까? 과연 그럼에도 '사람'을 잃지 않으려 했을까? 나의 설움, 나의 아쉬움, 그리고 나의 손해에 주판알을 튕기느라 연연하다 사람도 놓치지 않았던가. 

참 멋진 여자다. <우리들의 블루스> 3회를 본 소감이다. 그 멋진 여자를 이정은 배우만큼 멋지게 표현할 배우가 있을까. 참 멋진 여자 은희 씨는 일기장에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첫 사랑을 보내고, 노래를 부른다. 멋지게 나이드는 거 쉽지 않다. 딱 그녀의 노래다. 

그날은 생일이었어 지나고 보니/ 나이를 먹는다는것/ 나쁜 것만은 아니야
세월의 멋은 흉내낼 수 없잖아/ 멋있게 늙는 건 더욱 더 어려워
(중략)그렇게 세월은 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모두다 욕심일 뿐/ 다만 혼자서 살아가는 게/ 두려워서 하는 얘기
얼음에 채워진 꿈들이/ 서서히 녹아 가고 있네
(중략)내 맘 나도 모르게/ 차가운 얼음으로 식혀야 했다
 



by meditator 2022. 4. 1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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