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개의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일본 영화는 굵직굵직한 현재사의 궤적을 다루거나, 사회 문제를 직접적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우리 나라 영화에 비하면 '미시적'이다. 대부분 단막극 정도의 소재로 한 개인사의 문제에 천착해 들어간다. 그래서 '심심하다(?)'. 그런데 그 '심심한 영화 속에 빠져들다 보면 묘하게도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진다. 두 시간 여의 상영 시간이 종료되고 나면, 괜시리 '사는 게 뭘까?'란 자문을 하게 된다.
아쿠타가와 상에 5번이나 노미네이트되었던 소설가 사토 야스시는 전업작가로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고향인 홋카이도의 하코다테로 돌아갔다. 그 곳에서 새로운 모색을 하기 위해 직업 훈련 학교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전직은 실패했다. 그가 새 직업을 구하는 대신, 당시의 경험을 소설 <황금의 옷>으로 써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토 야스시는 <카이탄 시의 풍경>, <그곳에만 빛난다>에 이어 <황금의 옷>으로 하코다테 3부작을 완성했다. 그리고 전작들이 영화화된 것처럼 <황금의 옷>도 영화화되었다. 현재 개봉중인 <오버 더 펜스>가 그것이다.
이 3부작은 그저 하코다테가 배경이라는 이유만이라면 아쉽다. 카이탄 조선소가 축소되면서 일상의 변화를 겪게 되는 사람들을 그린 <카이탄 시의 풍경>, 자신에게 닥친 뜻하지 않은 뜻하지 않은 운명으로 헤매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곳에서만 빛난다>처럼, 모두 어떤 이유로 인해 '자신'을 놓쳐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상실'과 '치유'의 3부작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정의다 싶다.
무심한 남자와 이상한 여자의 만남
그렇듯 <오버 더 펜스>도 가족과도 인연을 끊은 채 도시에서 돌아와 직업 훈련 학교를 다니는 한 남자 시라이와(오다기리 죠 분)로 시작된다. 직업 훈련 학교에 다니지만 그가 딱히 정말 직업 훈련에 열의를 가지고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그렇다고 딱히 대놓고 훈련 과정을 방기하지도 않는다. 마치 공기처럼 학교를 흘러다니다, 학교가 마치고 동료들의 한 잔도 마다하고 도시락과 맥주를 사서, 느릿하게 자전거로 짐도 풀지 않은 그의 집에 돌아와 검은 바다를 보며 밤을 보낸다.
그렇게 그 어느 것에도 무심하던 그가 웃었다. 도시락을 사들고 나오다 마주친 남녀, 여자는 남자에게 '애정'을 운운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타조의 모습을 흉내낸다. 대로에서 마치 전위 예술같은 동작으로 실감나는 새의 소리까지 구현하며. 동행한 남자는 그런 그녀의 행동에 질겁하지만, 시라이와는 자기도 모르게 그런 그녀에게 미소를 보낸다. 그리고 그의 미소를 그녀가 보았다.
무심한 남자 시라이와와 이상한 여자 사토시(아오이 유우 분)의 인연은 뜻밖의 곳에서 이어진다. 그리고 뜻밖의 인연은 더 뜻밖의 하룻밤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관심과 끌림으로 시작된 하룻밤은 뜻밖의 봉변과 당혹스러움으로 마무리된다. 세상에 가장 무심한 남자 시라이와가 만난 여자는 남들이 쉬운 여자란 평판과 달리 여리디 여린 유리같은 여자였던 것이다.
'다중'이 아니라 홀로 고립되어 스스로와 싸우고 스스로를 착취하는 경영자의 고독이 오늘날의 생산 양식을 특징짓는다. (중략) 신자유주의 성과 사회에서는 실패하는 사람은 사회나 시스템의 의문을 제기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실패의 책임을 돌리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풀꽃같은 사람들
시라이와는 돜쿄에서 대기업까지 다니던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 아내와 아이도 있었다. 단지 그에게 부족한 것이라면 '시간'뿐. 일에 너무 바빴던 그는 미처 가정을 돌볼 새가 없었다. 그 부족한 '시간'이 그와 그의 가족에게 뜻밖의 '사건'을 안겼고, 그 '사건'은 그로 하여금 도시에서 일군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마치 세상과 창을 하나 사이에 둔 것처럼 그렇게 직업 훈련 학교를 핑계로 '시간'을 흘러 떠다니고 있었다.
차마 가족조차도 조심스러워 하는 그에게 다짜고짜 욕을 하며 니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그녀, 하지만 그녀는 한 술 더 뜬다. 그가 잘못했는데 자기가 더 펄펄 날뛰질 않나, 달려간 그의 앞에서 동물원을 한바탕 뒤집으며 소란을 피우질않나. 가장 정신없이, 가장 자신을 놓고 살아가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녀는 '삶의 과민증' 환자였다. 마치 햇빛만 비춰도 벌개지는 햇빛 알레르기처럼 그녀는 삶의 사소한 자극조차도 버거워하며 자신을 '가학'한다. 영화는 시라이와와 달리 사토시가 남자 이름을 가지고 낮에는 유원지 알바에 밤엔 술집 여종원업원으로 일하는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쉽게 자신을 못견뎌하는 그녀의 행동만으로도 지나온 그녀의 삶이 순탄치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세상에 벽을 친 남자와 세상을 과민하게 받아들이는 여자가 '남자'와 '여자'로 만나게 되며, 두 사람은 지금까지 자신을 두르고 있던 '펜스'를 넘을 용기를 얻고 결국 자신을 두른 그것을 넘는다. 남자는 상처받았다며 웅크리고 있던 자신의 삶을 직시하게 되고, 여자는 그런 남자로부터 '최악이 아니라'는 위로를 얻는다. '사랑'이다.
<오버 더 펜스>에는 시라이와만이 아니라, 그가 거리를 두었던 직업 훈련 학교 동료들의 삶도 등장한다. 그저 교관의 잔소리 대상이었던 그들, 하지만 시라이와와 사토시의 사랑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가듯, 그저 멀뚱멀뚱 서로를 '관전'하던 이들이 '소프트볼' 시합 준비를 하며 '돈독'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관계'를 형성해 가며, 아니 그 관계에서 튕겨져나간 인물마저, 무채색의 배경이었던 그들 역시 '시라이와'와 '사토시'처럼 저마다의 '색채'가 있는 '존중받아야 할' 삶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영화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떠올리게 한다. 시라이와도 사토시도, 그리고 새로운 직업을 핑계로 직업 훈련 학교에 모인 모두는 어쩌면 '성공'과 '경쟁'이 된 사회에서는 밀려났다 치부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이들을 결국 사랑스런 풀꽃으로 그려내며, 존재와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마치 나태주 시인의 또 다른 <풀꽃>처럼.
풀꽃 2
이름을 알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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