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2015년 새해 벽두부터, 공중파 3사의 월화 드라마는, 비리와 권력으로 더렵혀진 세상을 향해 전쟁중이다. 물론, 3사  드라마 각자가 싸우는 대상도 다르고, 싸움의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드라마가 굳굳하게 밀고 나가고자 하는 것만은 같다. 포기하지 말고 싸우자!


sbs <펀치>의 등장인물들은 피터지께 싸우는 중이다. 처음에 검찰총장 자리를 놓고 싸우더니, 이제 그 형의 비리를 들고 싸우고, 그리고 그 형이 원죄를 뒤집어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자, 그 형의 복수와, 거기에 얽힌 관계를 놓고 대결한다. 그런 싸움 속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법'과 '정의'도 있지만, 아들의 병역 비리, 입지전적 성공에의 갈망과, 사업하는 형의 정경유착 비리, 그리고, 구속된 아내를 풀려내기 위한 타협과 협박 등 각자의 사연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등장인물 각자가 자신의 숨길 수 없는 욕망으로 인해 '법'으로 굴러가야 할 사법 체계를 일그러뜨리는 동안, 여주인공인 신하경(김아중 분)만이 줄곧 우직하게 '법' 을 위해 자신을 던진다. 

서울경제

아이를 사고로 몰아넣은 진짜 범인, 이태준(조재현 분)의 형 이태섭을 잡으려 하다가, 검사로서 직을 던지고 스스로 청문회장에 서기도 하고, 결국 감옥까지 가는 신세가 된다. 남편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이태섭 회장의 자술서로 타협을 한 줄 알게 된 신하경은, 자신을 구하기위해서라는 걸 알면서도, 애초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아가, 더 큰 그림인 오션 캐피탈 김회장과 이태준의 밀착 관계를 밝히기 위해 뛰어든다. 심지어 그토록 믿고 따르던 윤지숙(최명길 분) 장관의 수사 종료 지시에도 따르기 힘들다. 

우직한 검사들은 또 있다. <오만과 편견>의 구동치(최진혁 분)와 한열무(백진희 분)가 그들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놓쳐버린 유괴범 때문에, 그리고 유괴로 인해 죽임을 당한 동생 때문에 검사가 된 두 사람은,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못해 용의자까지 되고 마는 민생 안정팀의 팀장 문희만의 회유와, 드러내놓고 위협을 마다하지 않는 실체, 그리고 그 하수인인 검찰국장등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15년전 사건의 실체를 밝힌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속해있는 민생 안정팀이 해체되는 위기에 빠져도, 그 자신들이 신체적 위해 등의 위협을 당해도, 그리고 검사로서의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일관되게 우직하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법'을 향해 '정의'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구동치 자신은, 15년전 그날, 자신이 백곰의 살인범일 지도 모른다는 혐의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15년전 사건 현장으로 다시 한번 뛰어든다. 

이렇게 <펀치>의 신하경이, 그리고 <오만과 편견>의 구동치와 한열무가 우직하게 '정의'를 향한 자신의 신념을 굽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 그 '법'적인 정의를 실천할 도구를 가진 검사들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검사들이, 그저 자신들의 일을 제대로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법적'인 정의가 바로 세워질 수 있음을 밝힌다. 물론, 그 과정은 갖은 협박과 위협과, 회유가 반복되는 과정이지만, '법'이라는 수단을 구현하는 그들이, 제대로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정의'는 달라질 수 있음을 어렵게 밝혀가는 중이다. 

하지만,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 늘 만만한 건 아니다. <힐러>의 김문호 기자는 그가 진행하던 뉴스에서, 방송국 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돌직구를 하고, 결국 자신이 진행하던 데스크를 박차고 나오기에 이른다. 상위 1%의 기자이지만, 이제 그가 세상을 향해 소리치던 '마이크'를 잃었다. 하지만, 김문호는 포기하지 않는다. 늘 '언론'의 정의를 실현하려던 자신을 회유하고 방해하던 거대 언론대신, 비록 '찌라시'의 수준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올곧이 전할 수 있는 언론사를 꾸려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서울 시장 후보자 언론 인터뷰 현장에서 허락된 기자들만이 출입이 허용되는 상황에서, 김문호 기자가 몸담고 있는 '썸데이' 는 입장조차 할 수 없다. 김문호는 포기하지 않는다. '정공법'이 안된다면, '게릴라'식으로 허를 찌르는 방식을 택한다. 바로 옆 약혼식장의 측근으로 위장한 서정후(지창욱 분)와 채영신(박민영 분) 커플이 화려한 복장으로 봉쇄 라인을 뚫고 들어가고, 채영신이 도발적 의상으로 인터뷰 장 한 가운데로 뛰어나가 서울 시장 후보자에게 그와 관련된 섹스 스캔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리고, 이어, '썸데이' 뉴스의 김문호 앵커의 그와 관련된 멘트가 이어진다. 세상에서 주어진 방식이 진실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나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캐가겠다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이들이 비리를 밝히고자 하는 하며 싸우는 대상, 혹은 그런 그들과 부딪치는 대상들과, 이들의 차이점은 사실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쩌면, '한 발자국' 바로 거기에서, 지금의 현격한 차이가 만들어 진다. 
이른바 '어르신'의 집안으로 들어가다, 김문호의 형이자, 메이저 언론사 사주이며, 권력의 '개'로 살아왔던, 김문식(박상원 분)은 자신의 그 첫 '한 발자국'을 회상한다. 한때 자유 언론의 수호자로 개조된 트럭을 몰고, 서울 하늘 곳곳에 진실을 알리기에 용기를 냈었던 김문식은, 그 자신과 사랑하는 여인의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 '정의'를 외면한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오만과 편견>의 끊임없이 정의와 타협의 길을 오고가는 문희만 부장검사(최민수 분) 역시, 수사를 하던 과정에 저지른 뺑소니 사고, 그것을 덮기 위한 한 걸음이, 그를 '화영'의 개로 만들었다. 
<펀치>에서, 우직하게 '정의'의 편에 섰던 윤지숙 장관의 한 걸음은 바로 병역 비리를 저리른 아들이었다.
기성 세대가, 일신상의 이유로, '정의'의 편에서 물러서서, 세상과 타협하는 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그들이 추구했던 '정의'가 무너져 내렸던 것을 알기에, 아니, 그 실체를 모르더라도, 본능적으로 감지했기에, 젊은 그들은 우직하게, 자신들의 정의를 고수하고자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럴 수록, 그들의 정의가 위태위태하고, 때론 안타깝게도 느껴지는 것이다. 
<펀치>에서 유일하게 강직한 인물을 여주인공 신하경이지만, 보는 시청자는 그런 그녀에게 감정이 이입되기 보다는, 때론 그 고지식한 정의가 안타까울 정도로 '융통성 없어 보일'뿐이다. 
그런 그녀보다는, 때론 아내를 구해내기 위해, 때론 입신 양명을 위해, 때론 모시는 분을 위해, 타협도 마다하지 않는 박정환(김래원 분)에게서 인간적 향기를 맡는다. 
<오만과 편견>도 마찬가지다.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우직한 구동치와 원론적 질문을 던지는 한열무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무엇인가를 저울질하면서, 그래도 차악을 선택하려 애쓰는 문희만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잡기 위해, 그녀의 아이를 외면하고, 평생 그것을 덮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김문식의 사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젊은 그들의 정의는 어쩐지 불안하고 어설픈데, 노회한, 그래서 '타협'이 익숙한 저들의 편의는 익숙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화법'이 거기에 가깝기 때문이리라. 

오만과편견
tv데일리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할 것들은, <펀치>에서도, <오만과 편견>에서도, 그리고 <힐러>에서도 밝혀지는 권력층의 비리, 섹스 스캔들을 비롯한, 온갖 협잡과 권력형 비리들이, 결국, 누군가의 개인적 이해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들이다. 인간적이어 보이는, 그들의 '한 발자국'이 결국, 이렇게 갈짓자, 흐트러진, 썩은내 나는 권력형 비리와 스캔들로 이어진게 된다는 것을, 각종 사건들로 드라마는 상징적으로 설명해 낸다. 

그래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정의'가 주는 울림은 강하고 깊다. 어렵게 다시 마련된 앵커의 자리, 좁은 스튜디오, 단 한 대의 카메라, 그것을 앞에 두고, 김문호는 말한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마련된 '썸데이'의 뉴스가 계속될지, 이번 한번이 될지, 혹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썸데이'는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말을 맺는다. 그저 한 마디 말에 불과한데, 여운이 오래 간다. 이 희박하고도, 어려운 '진실'을 말하기 위해, <힐러>, <펀치>, <오만과 편견>은 고군분투 중이다. '희망'으로 시작되는 한 해다. 


by meditator 2015. 1. 7. 12:37

잠에서 깬 한열무(백진희 분)는 옆에서 억지로 잠을 청하는 엄마에게 말한다. 동생 한별이를 죽게 만든 범인을 잡았노라고, 동생이 죽음에 이르게 된 건, 누가 동생을 미워해서가 아니고, 그저 운나쁘게 동생이 사건에 휩쓸려서 그렇게 된 거라고. 그러니 이제, 두 다리를 뻗고 잘 순 없어도, 한 다리라도 뻗고 주무시라고. 

<오만과 편견> 17회는, 드라마 전체의 흐름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동생 한별이를 납치해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검사가 된 한열무, 그리고 자신이 구하려고 했지만 구할 수 없었던 아이 때문에 검사가 된 구동치(최진혁 분)가, 그들의 15년 묵은 포원을 단방의 일격으로 풀어버리는 회차였기 때문이다. 
동생 한별이를 납치해 죽이도록 사주한 범인이 과연 문희만 부장검사(최민수 분)일까? 이종곤 검찰 국장(노주현 분)일까? 미로 속을 헤매던 이야기가, 이종곤 국장으로 가닥을 잡아갔지만, 검찰의 수뇌부가 된 이종곤 국장의 뒤를 파면 팔 수록, 문희만이 범인이라는 증거는 명확해지고, 수사를 하는 민생안정팀의 생사는 기로에 몰리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17회, 문희만의 자신감에 찬 설득과 지시로, 그리고 이제는 노회하기까지 한 구동치의 팀플레이와, 15년의 원한으로 국장실의 문턱을 넘은 한열무의 담판으로, 반전, 결국, 이종곤 국장의 손에 수갑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스포츠 월드

그런데, 이렇게 드라마틱한 회차였음에도 막상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그 긴박감이 실감나지 않는다. 핑퐁 게임처럼 누가 진범일까 라며 범인을 추적하는 구동치 휘하 민생 안정팀의 팀플레이는, 절박한데, 문희만이 취조실에 앉아있는 이후 구동치 역을 맡은 최진혁의 느긋한 말투처럼 느슨하다. 
무엇보다, 수석인 구동치의 지시를 어기고, 한별이의 수사를 계속하기 위해 성접대 동영상을 넘겨주면서까지 민생 안정팀을 지키려고 했지만, 그런 그녀의 마지막 승부수마저 무시당한 상태에서, 이른바 '검사의 고소'를 무기로 여론화라도 시키겠다는 명목으로 이종곤 국장과의 담판을 한 한열무의 독대씬은, 전율이 느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오글거린다. 

<오만과 편견>이 지금 다루고 있는 이종곤 국장 사건은, 드러나기는 한별이 납치 살해 사건이지만, 문희만의 정리처럼, 특검의 독직 사건이다. 법치를 실행해야 할 검찰 권력이, 자신의 법치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애꿏은 서민을 희생자로 삼은 사건이다. 자신의 한 순간의 실수로 윗사람의 실수를 덮어주어야 하는 문희만과, 그 사건의 직, 간접적 희생자이자, 엄한 혐의자인 구동치, 한열무를 민생안정팀이란 한 팀에 모아놓고,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고, 다시 한번 조작 은폐하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거기엔 또 다른 재벌을 뒷배로 삼고, 이른바 '나랏일'이라는 사명감을 앞세워 자신의 입신양명을 추구하는 검찰권력이 있다. 

한열무의 다그침에도 당당한 이종곤 국장, 그런 그에겐 대의를 위해 한 아이의 목숨 정도야 별 거 아닐 수 있다는, '나랏일을 하는 자의 사명감'이 있었다. 그러기에, 검사의 고소라는 극단의 조치에도 눈도 끔쩍하지 않던 그가, '쓰레기'라는 외마디에 자백에 가까운 감정적 반응을 보인 것이다. 
드라마는 이렇게 사슬처럼 이어진 검찰 권력의 구조적인 '갑질'을 설명하기 위해, 정의감넘치는 젊은 검사들을 등장시킨다. 민생 안정팀에 모인 구동치, 한열무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젊다고 정의감이 넘치지 않는다는 것이 이제는 상식이 된 세상에 어쩐지, 그들의 '정의감'은 서걱거린다. 사실, <오만과 편견>에서 가장 현실감넘치며 살아 움직이는 젊은 검사의 캐릭터는 안타깝게도 조연인 이장원(최우식 분)의 캐릭터다. 그가 연기하면 진짜 검사인 듯하다가, 구동치랑 한열무가 등장하면, 어쩐지 그저 극중 캐릭터만 같다. 그런 이질감을 방지하기 위해, 작가가 마련한 장치는 15년 전 의협심에 납치된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다 실패한 구동치와, 동생을 납치범에게 잃은 한열무라는 개인적 원한을 가진 주인공 캐릭터를 만든다. 그들이 검사로서 정의감을 갖게 된 이유는, 바로 그들이, 사건의 목격자이자, 희생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15년이 지나, 수석 검사와, 수습 검사가 된 그들은, 15년 전 자신들이 희생자가 된 사건을 직접 수임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선다. 하지만, 그들이 해결하려 들면 들수록 사건은 미로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증거를 발견해도, 그 증거를 가지고 어찌 해볼 도리가 없이 그들의 수사망은 옥죄어진다. 누가 범인인가를 넘어, 눈 앞에서 범인을 보고도 놓쳐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이른바, 여론을 불러 일으키는 '검사의 고소'를 빌미로 한 담판이요, 결국 그 역시, 15년 전 범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범죄를 시인하게 만드는, '자백'인 것이다. 
그토록 누가 범인일까를 두고, 두뇌 싸움을 벌이던 드라마는, 결국 이종곤 국장이 범인인 것을 밝히기가 무섭게, 민생안정팀의 해체라는, 두 손, 두 발을 묶어 버리는 극단의 장치를 쓰는가 싶더니, '자백'이라는  가장 손쉬운 길을 택한다. 
동생의 범인을 눈 앞에 두고도 놓치는 막막한 상황, 성접대 동영상까지 넘겨주는 무리수를 쓰면서도 수사를 계속 해보려던 상황이 막혀버린 절막감을 심어주면서, '자백'의 장치를 극적으로 몰고가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수사극에서 손쉬운 해결 방법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드라마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재계와 밀착하여 권력을 이어가는 법치의 세계, 눈 앞에 범인을 두고도 권력의 의중에 따라, 춤 출 수 밖에 없는 재판, 그리고 거기에 희생된 애꿏은 서민들의 구도는 명확하지만, 그것을 극적으로 풀어내는 회심의 일격으로, 한열무와, 이종곤 국장의 독대씬은 도무지, '크레센도'의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화영'이라는 뒷배와의 딜을 통해 해결을 했다는 문희만의 복선과 무관한 극적 감흥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뜬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긴 절박감도, 마지막 말로 묵은 포원이라도 풀어 보겠다는 듯이, '검사의 고소'라는 카드를 들고 국장실을 찾은 좌절감도 어쩐지 실감나게 풀어내지 못한 여주인공의 연기이다. 안그래도 남자 주인공의 연기도 건들건들 설렁설렁이라는 캐릭터 설정을 넘어, 설렁설렁 해보이는데, 여주인공의 연기는, 15년 묵은 포원이라기엔, 너무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이종곤 국장의 '사명감 넘치는 자신감'마저 덤덛하게 만들 정도로. 그녀의 앳되고 해맑은 얼굴과 덤덤한 말투는 야무지고 당돌하고 밝긴 하지만, 그 이상, 15년전 동생을 잃고 공부만 했던 한열무라는 인물을 느끼기엔 역부족이다.  

언제나 그래왔다. 문희만이 등장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다가도, 그가 사라지고 나면, 그 어떤 극적인 행동을 해도 느슨해져 버리는 것, 그게, <오만과 편견>의 딜레마다. 제 아무리 문희만이 분위기를 잡고 긴장감을 부여해도, 결국, 중반부를 넘어서는, 기성 세대의 비리를 척결하는 젊은이들이 앞장서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주저 앉아 버리니, 여러모로 아쉽다. 

물론, 여전히 '화영'이라는 재벌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과 손을 잡은 문희만의 행보, 과연 그가 구동치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 그리고 범인을 죽인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임을 깨달은 구동치의 행보 역시 남은 <오만과 편견>의 관전 포인트이다. 하지만, 17회처럼 드라마를 풀어낸다면, 애초의 주제 의식을 제대로 살려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설익은 젊은 배우들의 연기와 쉬운 해결이 드라마를 용두사미로 만들 지 않기를. 


by meditator 2014. 12. 24. 15:09

윤지숙 법무부 장관(최명길 분)이 커피에 프림을 탄다. 탁해지는 커피, 그리고 그렇게 탁해지는 커피를 빗대 공안판사를 하던 이태준(조재현 분)이 검찰총장이 되면, 검찰의 물이 흐려질 것이라 자신의 반대 의사를 밝힌다. 하지만, 그런 법무장관의 반대에, 이태준은 설탕을 한 숟가락 퍼서 그걸 라이타로 달군다. 검게 변한 설탕, 그걸 먹으며 '아이고 달다'며, 검으나, 희나 설탕이기는 마찬가지라 당당하게 주장한다. 검찰총장의 자격에 '공안 검사' 출신이 무슨 문제냐 는 것이다. 이렇게, <힐러>의 주인공 검찰총장 내정자가 된 이태준은 검은 설탕으로 비유된 자신의 삶에 한 점 부끄럼이 없다. 


펀치 김래원 조재현

텐아시아


아니 오히려, 당당하다. 자동차 회사 오너인 그의 형이 경비를 착복하기 위해 불량 부품을 써서 급발진 사고가 일어나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검찰에 소환당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걸 자신의 심복인 박정환(김래원 분)에게 뒤집어 씌우려 할때 그를 수몰당한 자기 부모 무덤이 있는 강가로 부른다. 그러면서 돈이 없어 이장하라고 준 정부의 보조금으로 자신과 형이 대학 등록금을 냈었다며 과거를 회고한다. 그렇게 부모를 물에 잠기게 하고 달려온 자신의 길이, 결국 이렇게 멈추게 되었다며, '악어의 눈물'을 흘린다. 

입지전적 자수성가의 이태준,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제 검찰 총장을 바라본다. 검찰총장이 되기 위해, 상대 후보자 아들의 뒤를 캐는 정도는 약과이고, 후보자 청문회에서 드러날 온갖 잡음들, 이제 그것조차 불리해 지자, 도마뱀 꼬리 자르듯 왼팔 격인 박정환에게 떠밀고 검찰총장으로 금의환양하고자 한다. '법'의 수장으로 가기위해, 그가 택한 수단들은 지극히 '탈법'적이지만, 어렵게 자수성가 해온 그에게, 검찰총장도 하고, 법무부 장관까지 하고 싶었던 그에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태준 정도의 거물은 아니지만, 자신의 성공 때문에 '비리'를 눈감은 '법조인'은 또 한 사람있다. <오만과 편견>의 문희만(최민수 분), 그의 부하 직원인 구동치(최진혁 분), 한열무(백진희 분), 강수(이태환 분)의 뒤얽힌 인연은 결국 문희만이 저지른 교통사고로 부터 비롯된 것이다. 

재건 그룹을 잡기 위해, 자신이 저질렀던 교통사고를 덮었던 그, 하지만, 구동치에게 그가 밝힌 진실은, 재건 그룹을 잡으려고 했던, 그래서 뺑소니를 쳤던 자신이, 재건 그룹을 무너뜨리려 했던 화영 그룹의 '장기판의 말'같은 존재였다고 토로한다. 그가 저지른 '뺑소니' 사건은 재건 그룹 붕괴 커넥션의 일부였던 셈. 하지만 문희만은 살아남기 위해, 그런 '비리'를 눈감는다. 그리고 이제, 후배 검사에게 말한다. '진짜 센 놈을 잡기 위해선, 다른 힘센 놈의 허락이 필요하다'며, 그것이 '이곳의 역사'라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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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이렇게, <펀치>의 이태준과, <오만과 편견>의 문희만이 법조계 비리에 일조하고 있는 가운데, <힐러>의 악의 축으로 등장한 김문식(김문식 분)은 메이저 언론 제일신문의 회장이다. 정권을 비호하기 위해, 사람 목숨쯤이야 파리 한 마리 죽이는 거랑 별반 다를 게 없다. 물론 그 역시 한때는 해적 방송의 일원으로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권력의 시녀로써, 아니 적극적으로 권력을 창출하는 일원이 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펀치> 이태준 역의 조재현, <힐러> 김문식 역의 박상원, 그리고 <오만과 편견> 문희만 역의 최민수는, 당대 내노라하던 청춘의 꿈과 열정을 연기하던 청춘 연기자들이었다. 조재현이란 이름을 처음 알린 건,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의 선장에 반항하던 젊은 어부였다. 박상원과 최민수, 그들은 더 거들 것도 없이, 80년대를 상징하는 드라마, <모래 시계>의 두 주인공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제 중후한 나이가 되어, 아버지 세대의 역할을 한다. 그들이 연기하던 세상과 타협하지 않던 젊은이들도,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때를 묻혀간다. 모래 시계의 세상과 타협하지 않던 젊은 검사는 이제, '언론'이라는 수단을 통해 권력을 뒷배로 삼아 세상을 주무르려는 언론사 회장이 되었다. 박상원이 연기했던 모래 시계 원 주인공의 모델이었다던 홍준표 검사가, 이제, 젊은이들 앞에서 비웃음을 사는 기성 세대가 되었듯이. 그리고 그 과정은, 부모님의 이장비로 등록금을 내던 이태준이, 비리 기업을 법의 심판대로 세우고자 예각을 세웠던 문희만이, 해적 방송을 통해 진실을 알리고자 애썼던 김문식이, 자신의 야망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고, 나아가 권력에 편승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런 자신의 삶을, 검으나 희나 설탕이라 합리화하거나, 더 큰 세력의 농간에 휩쓸리는 것이 역사라 자조한다. 심지어,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자부하거나. 

한경 와우스타

그들이 편승한 권력의 수단이 주목할 만 하다. 법과 언론, 권력의 반대편에 서서, '정의'를 실현하고, '진실'을 밝혀주어야 하는 잣대와 등대들이, 스스로 자신의 야망을 위해, 권력과 한 배를 탄다. 그리고, 야망을 위해, '법'과 '권력'을 수단으로 삼아, 스스로 '권력'이 되고자 하는 기성 세대가 된, 한때는 소나무같은 젊은이였던 이들이 월화 드라마의 악의 축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우리 시대, '권력'이 된 한때 젊은이들, 그리고 그들의 야망의 수단이 된, 이제 그저 '권력'의 한 편인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애꿏은 모자의 운명을 가르고, 7000여 노동자의 목숨줄 정도는 즈려 밟고, 그런 진실들이 은폐되게 만드는 '법'과 '언론'의 수호자가 된다. 그래서, <펀치>, <힐러>, <오만과 편견>에서 처럼, 이 시대의 법과 언론은, '정의'와 '진실'의 수호자대신, 권력의 시녀, 정권의 나팔수 역을 자임한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기꺼이 맡은, 야망의 세대는, 추한 기성세대가 되어, 다시 한때 그처럼 열정에 불타오르는 젊은이들과 일전을 앞두고 있다.


by meditator 2014. 12. 16. 14:57

11월 17일 방영된 <오만과 편견> 7회, 모든 정황은 자살을 드러내고 있지만, 자살같지 않았던 차윤희 사건의 실체가 밝혀졌다. 그리고 그 실체는 검사가 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초보 검사 한열무(백진희 분)에게, 검사란 직위에 대한 첫 번 째 좌절을 안겨 주었다.

 

성형외과의 비정규직 간호조무사였던 차윤희, 그녀는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겠다는 원장의 유혹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무능력한 아버지, 병든 어머니, 그리고 아직 어린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장이 그녀의 몸을 더듬을 때마다, 죽을 만큼의 수치심을 느꼈지만, '한번만 참자'며 2년을 버텨왔다. 그 기간 동안 원장은 2,3개월씩 계약을 연장해 가며 그녀를 성추행해 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런 그녀의 행동는 오히려 더 큰 올가미가 되었고, 거기서 빠져 나오려 몸부림쳤지만, 오히려 소문을 내겠다며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그런 그녀가 선택한 것은, 남겨진 부모님에게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살인같은 자살이었다.

 

의욕이 충만한 초보 검사 한열무는 직감적으로 차윤희의 사건 뒤에 흑막이 있음을 감지하고, 그것을 파헤치기 위해 달려든다. 그리고 구동치(최진혁 분) 역시 부장 검사의 눈을 피해가며 그런 그녀를 돕는다.

차윤희의 소지품을 다시 검사해서 보관함의 쪽지를 발견한 한열무는 범인으로 몰린 친구 송아름(곽지민 분)을 찾아가 설득, 보관함을 열고 차윤희가 남긴 다이어리를 찾아낸다.

 

(뉴스엔)

 

다이어리에 적혀진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리고, 아버지로 하여금 고소를 진행하고자 하고, 성형외과 의사를 불러 추궁하려고 하지만, 구동치는 한열무를 말린다. 현행 법으로, 한열무가 하고자 하는 일련의 법률적 행위들이, 차윤희를 구제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차윤희가 쓴 다이어리는 적절한 증거가 되지 않으며, 그렇게 불충분한 증거로 인한 재판은 오히려 원장의 무죄 방면과 파렴치한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추인해 주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차윤희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동료들의 협조를 구하지만, 돌아오는 건 냉랭한 거부와 오히려 차윤희에 대한 험담뿐이다. 그 누구하나, 비정규직 간호 조무사라는 처지의 동료 의식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적반하장으로, 성형외과 의사는 스스로 법원을 찾아와, 차윤희와의 관계를 '연애'로 포장한다. 더구나, 딸을 죽음으로 몰아간 원장에 대해 분노하며 고소를 하겠다는 아버지는 돈을 받고 고소를 포기하겠단다. 딸의 죽음값이, 자기들에게는 절박한 생존의 수단이라며.

 

결국, 분명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그리고 증언할 동료들을 찾아내지 못한, 한열무와 구동치는 차윤희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더는 어쩌지 못한다. 정황은 분명히 차윤희의 성폭행으로 인한 자살을 가르키지만, 법의 그물망은 성겨,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를 옭아매지 못한다.

 

의욕을 가지고 덤볐지만, 고소를 하지 않겠다는 아버지 앞에서 무기력한 한열무는 '검사가 별거 아니'라며 의욕만 가지고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낀다.

 

이렇게, <오만과 편견>은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의 불리한 대우, 하지만, 법률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그들의 처지를 차윤희 사건을 통해 단적으로 그려낸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정규직들이, 법률과 조직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원자화된 개인으로,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중압감과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죽기 전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건 전화 통화에서 차윤희는 말한다.

'그까짓 정규직이 뭐라고 정직원이 꿈이었을까. 대통령도 아니고, 가수도 아닌 정직원이. 그거 돼봤자,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티켓도 마음놓고 살 수 없는 정직원이. 고작 그거 되려고 죽기보다 싫은 짓을 참아왔는데(중략),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 멀다'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을 꿈꾸는 차윤희의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통화,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청춘들의 소박한 희망이다.

 

한 젊은 여성의 좌절과 죽음을 다룬 <오만과 편견>은 거창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적인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려낸다. 법률의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오히려 법률로서는 어찌 해볼 수 없는 한계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7회에 이르른 <오만과 편견>은 그래서 조금씩 탑을 쌓아가듯이, 의욕적인 한열무가 부딪치는 사건들 속에서, 그녀가 느끼는 사회의 벽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사회의 한계를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덜그럭거리는 건 있다. 어렵게 공부해서 법학 전문 대학원을 나온 한열무,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 법학전문 대학원을 가는 사람들은 한열무같은 사람들일까? 한 해 수업료만 일반 가정의 자녀에게 버거운 엄청난 금액인 법학 전문 대학원이, 가진 사람들의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제도적 장치라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일이다. 더구나, 최근 조사에서도 나왔듯이, 좋은 동네에 살며, 외고를 나와, 좋은 대학을 가고, 법학 전문 대학원을 나온, 계층적 고착화가 정착되고 있는 시점에, 차윤희의 사건에 의협심을 가지고 덤비는 초보 열혈 검사 한열무, 그리고 그런 열무와 뜻을 같이 하는 구동치는 드라마니까 하면서도 어쩐지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개과천선>의 현실감과는 궤를 달리하는 낯섬이다. 우리가 사건, 사고를 통해 만나는 법과 법률, 그리고 그 법을 실행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리라. 당장 13일 대법원은 153명 해고 노동자들이 낸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의 대량 정리 해고가 정당하다며, 회사 측의 손을 들어 주었다.

by meditator 2014. 11. 18. 10:02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차용한 mbc월화 드라마는 원작의 모티브에 충실하게, 남자 주인공의 '오만'과 여주인고의 '편견'을 설득해 내기에 고심한다. 특히, 지난주 방영되었던 4회와 5회에 걸쳐, 남자 주인공 구동치(최진혁 분)를 유괴되어 살해당한 자신의 동생 살인범으로 몰아간 한열무(백진희 분)의 편견은 정점에 이른다.

 

작가 이현주는 <학교 2013>에서 그랬던 것처럼, 남자 주인공에게, 천형처럼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을 준다. 구동치 역시 마찬가지다. 의대에 너끈히 갈 수 있는 수능 시험 성적표를 받아든 그는 그것을 자랑하기 위해 아버지가 일하는 폐공장을 찾아든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를 맞이한 것은 유괴범과 유괴된 아이였다. 구동치의 찢겨진 수능 성적표 뒤에 씌여진 아이의 ''살려줘'라는 글씨를 보고 구동치는 아이를 구하고자 했고, 하지만, 아이를 안고 도망치는 과정에서,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정신을 잃어 아이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 경험은 의대에 지망하려던 구동치를 검사 구동치가 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구동치의 사연에 아랑곳없이, 단지 구동치의 수능 성적표라는 이유만으로, 여주인공 한열무는 다짜고짜 구동치를 유괴범으로 몰아간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해를 하는 단선적 캐릭터의 전형이다. 드라마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유괴범으로 모는 여주인공을 안쓰러워하는 남자 주인공과, 그 남자 주인공의 배려로 어설프게 복수심에 마음만 앞서다, 제대로 검사로 성장하게 되는 여주인공의 성장담을 그려내고자 한다. 하지만, 성장담이라지만, 말끝마다, 법학 전문 대학원을 나와서 제대로 검사가 되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면서도, 1차원적 편견에 사로잡힌 여주인공의 단선적 캐릭터는, 생각 외로 흥미진진하게 수사극으로서의 묘미를 가져 가고 있는 <오만과 편견>에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 더구나, 연달아 드라마에 출연해서 일까, 법학 전문 대학원을 나와 검사 초보라는 캐릭터보다는, 성마른 고등학생에나 어울릴법한 여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은 더더욱 몰입에 방해 요소가 된다.

 

‘오만과편견’ 시청률, 자체 최고 기록 경신 ‘거침없는 상승세’

 

오히려 회를 거듭할 수록, 시선을 끄는 것은, 어설픈 남여주인공의 '오만과 편견' 코스프레보다는, 쉽게 파악하기 힘든 캐릭터 부장검사 문희만과 그가 이끄는 수사팀의 수사극이다.

말끝마다 한열무에게 법학 전문 대학원을 운운하는 그는 딱 속물 부장 검사 그 자체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미끼가 되어 들어온 범인을 눈빛 한번으로 제압하고 쥐락펴락 하는 순간, <오만과 편견>은 집중력이 배가된다. 어거지같던 구동치의 오만도,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추기 시작하며 그래도 검사같아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도 어색한 이장원(최우식 분)이나, 유광민(정혜성 분)도 그와 함께 합을 맞추면, 그럴듯한 캐릭터로 살아난다.

선한 사람은 아닌데도, 범인을 잡고, 범죄 수사에 있어서는, 노회하기가 뱀같은 그의 진두 지휘아래, 수사가 시작되면, 늘어졌던 극이 중심을 잡고, 활기가 넘치기 시작한다. 이쯤되면, 어거지로 사연많은 검사 남녀의 '오만과 편견' 보다, 문희만의 '수사반장'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 예전 '수사반장'에서의 수사반장 아저씨는 낡은 버버리 코트를 입고 한량없이 사람 좋은 미소와, 그러면서도 범죄 앞에서는 단호한 강직한 선인이었다. 하지만, <수사반장>이 인기를 끌던 시대로 부터 몇 십년이 흐르고, 이제 더는 사람들은, 경찰이나, 검찰에 대해서, 마음씨 좋은 최불암 아저씨를 연상치 않는다. 가장 속물적이면서도, 자신의 일에 철저한, 문희만이야말로, 요즘 세상에, 설득력을 지닌 새로운 수사반장의 캐릭터가 아니까 싶다.

더구나, 뭔가 어거지로 사연을 만들어 가는 듯한 남여 주인공의 사연과 달리, 회를 거듭하면서, 마약 운반책 장공철의 죽음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사건과, 그 사건들이 매듭처럼 이어져 가며 그려가는 큰 그림은, 어설픈 주인공들의 연기를 차치하고도 <오만과 편견>을 보고싶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이공들의 러브라인보다, 차라리 문희만을 중심으로 한, 2014 수사반장 시리즈로 '오만과 편견'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 싶은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1. 11. 11:30

영국 bbc가 행한 '지난 1000년간 최고의 문학가'라는 앙케이트 조사에서, 제인 오스틴은 셰익스피어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하였다. 결국 여성 작가로는 세계 최고라는 의미이다. 또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셰익스피어와 달리, 젊은 감성이 고스란히 담긴 연애담이 주된 내용인 그녀의 작품이기에, 20세기 이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제인 오스틴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이 바로 '오만과 편견이다.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으로 회를 거듭하여 영화화되는 이 작품을 책은 아니더라도, 영화로라도 접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0월 27일 새로이 시작된 mbc월화 드라마는 바로 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오만과 편견'을 자신의 제목으로 내세운다.

 

책 '오만과 편견'의 이야기는 제목만 봐도 훤히 드러난다. 귀족적 편견에 사로잡힌 다아시와, 그런 다아시를 자기 나름의 척도로 예단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엘리자베스 베넷이, 그들의 눈을 가린 선입견을 넘어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이다.

이 제목을 이어받은 드라마 <오만과 편견> 역시, 첫 회부터, '오만한' 남자와 '편견'에 사로잡힌 여자를 그려내기 위해 고심한다. 19세기 영국의 계급적 편견은 21세기, 대한민국으로 와, 검사라는 직업적 계급으로 재탄생된다. 고졸 출신의 수재 검사, 구동치(최진혁 분)는 원작의 거만하고 예의없는 다아시가 울고갈 만큼 얼굴을 마주친 한열무(백진희 분)가 그를 오해하기에 충분할 만큼, 오만한 태도로 일관한다.

그런 오만한 구동치의 맞은 편에는, 과거의 악연으로 인해, 구동치에게 복수하기 위해 검사가 되었다는 한열무가 있다. 당연히 그녀 눈에 비친 구동치는 '거만하고 예의없으며', 엘리자베스 베넷이 처음 느꼈던 감정처럼, 구동치가 속해있는 검찰팀 역시, 구동치의 팀처럼 '속물'답다.

드라마는 시작과 동시에, 수석 검사와 신입 검사라는 '신분적 차이(?)'에는 아랑곳않고, 과거의 인연에 발목잡혀 '으르렁'거리는 두 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원작의 '오만과 편견'의 의미를 고스란히 살려내려고자 한다.

 


                    4종 포스터 공개! <오만과 편견> '공소시효 3개월 전, 검사가 됐다' 이미지-1

 

그리고 그렇게 편견에 사로잡힌 한열무의 태도는, 단지 수석 검사 구동치에 대한 태도를 넘어 그의 팀에게로 향한다. 뱀같은 눈매를 하고서는, 찬밥 신세라며 대놓고 처지를 드러내는 문희만(최민수 분) 부장검사, 시선도 마주치지 않는 강수(이태환 분) 수사관에, 여자 검사는 더 싫다며 대놓고 감정을 표현하는 유광미(장혜성 분)수사관까지, 그녀가 새로 만난 팀들은 모두 구동치와, 또 다른 구동치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견습 처지인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첫 사건부터 대놓고 수석 검사인 구동치에게 자신에게도 사건을 달라 요구하고, 피의자를 풀어주는 팀에게 대놓고 불만을 표시한다.

 

물론, 첫 회가 가기 전에, 그런 한열무의 편견이, 오직 그녀 자신의 편견이었음을 <오만과 편견>은 마치 '속았지'?하며 놀래키는 식으로, 문희만 부장 검사 휘하 '민생 안정 '팀의 능력을 보여준다. 오만하게만 보였던 구동치가 사실은 매의 눈으로, 그 어떤 피의자도, 지나쳐갈 뻔한 증거 하나도 쉬이 놓치지 않는 능력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속물처럼, 피의자편을 들었던 부장 검사의 언변과, 팀의 결정이, 사실은 거짓말에 능한 피의자를 유인하기 위한 '페이크'였음을 '반전'으로 제시한다.

 

이렇게, 오만에 사로잡힌 수석 검사와, 그런 검사에 대해 편견으로 사사건건 튕겨 오르는 신입 검사의 해프닝과, 그런 편견을 뒤집는 반전을 보인, <오만과 편견>의 첫 회는, 무난했다.

제 아무리 제인 오스틴의 고전으로부터 비롯된 캐릭터라지만, 왜 드라마 속 전문직 여주인공은 항상 그리도 위, 아래 없이 당돌한 것인지, 응급남녀의 오창민인지, 오만과 편견의 구동치인지 그저 의사 까운을 검사 양복으로 갈아입은 것처럼, 일관되게 잘 생기고 잘 나가면 오만한 것인지 '클리셰'에 가까운 설정들, 한 눈에 보기에도, 서로에 대한 오해인 게 뻔한 상황들에, 반전이라기엔, 일찌기 <수사반장>이래 익숙한 '페이크'의 설정들이, <오만과 편견>을 새로운데 새롭지 않게 느끼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고전이 되었듯이, 거만한 남자와, 그런 남자을 향해 냉소를 퍼붓는 여자의 이야기는 여전히 그럼에도 진부하지만, 매력을 잃지 않았고, 사회적으로 문제시 되고 있는 '성'문제를 첫 회의 화두로 꺼낸, 성추행범과, 성 노출증 범죄자의 물고 물리는 증인 설정은, 결과가 예측되면서도 결말이 궁금한 이야기였다.

 

물론 이미 케이블에서 화려한 성취를 보이고 있는 수사물의 장르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오만과 편견>은 재료가 조금씩 부족한 심심한 맛을 보이지만, 매력적으로 시선을 사로잡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발연기라 할 수는 없는, 캐릭터다운 주인공들의 연기에, 뻔한 듯하면서도 무리없는 복선까리 깔린 수사극은 딱히 채널을 돌릴 이유를 찾기 힘들게 만든다.

아니, 무엇보다, <오만과 편견>을 돕고 있는 것은, 딱히 트집잡을 것 없는 주인공들과 무난한 이야기가 아니라, 공감하기 힘든 음악 성장극 속에서 고전하고 있는 <내일은 칸타빌레>와, 사극임에도 대중적 공감을 잃은 <비문>이다. 이 두 드라마의 고전이, 무난한 <오만과 편견>의 승기를 뻔히 예측하게 만든다.

by meditator 2014. 10. 2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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