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맞지만 금비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애완동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려고 한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키우는 건 귀여워서 키운다치지만, 만약에 아프면 어떻게 하냐고? 그러다 죽기라도 하면? 그래서 아플까봐, 먼저 죽을까봐 키우지 못한다도 지레 방어막을 치는 사람들이 있다. 애완동물과 사람을 견주는 건 그렇지만, 이런 질문의 근저에 깔린 의문은 바로 '생명에의 책임'이다. 그 답을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담백하게 말한다. '가족'이라고. 물론 그 책임이 버거워 한 해 버려지는 수많은 애완동물들이 있다. 그리고, 피를 나눈 가족이지만, 버겁다고 학대하고, 아프다고 외면하는 인간과 인간들의 관계도 있다. 아니다. 요즘은 한층 간결하다. 산전 검사를 통해 상당수의 장애아들이 중절이란 과정을 통해 제거된다고도 전해진다. 그러니, 피를 나눈 가족 운운이라는 게 사실은 얼마나 '빛 좋은 개살구'인가를 증명하는 셈이다. 나이가 든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고, 한 집에 산다고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한 집에 살면서 기꺼이 그 어떤 생명을 '책임'지려 한다면, 그게 바로 진짜 '어른됨'의 시작이 아닐까? 그리고 8회를 경과한 <오마이 금비>는 바로 이 '어른됨'의 과정을 다룬다.




-니만피크 병에 걸린 금비(허정은 분), 죽었다는 엄마, 유일한 보호자였던 이모라는 사람조차 병에 걸린 금비를 감당하지 못한 채 '아빠'라는 사람의 주소만을 쥐어준 채 떠났다. 그리고 만난 아빠라는 사람 모휘철(오지호 분)

-그렇게 금비와 휘철은 휘철의 법정에서 만났다. 거추장스러워 어떻게 해서든 떼어버리려 했더 ㄴ껌딱지같던 아이, 하지만 휘철은 금비를 만나고, 그리고 강희(박진희 분)를 만나며 변화하기 시작한다. 강희 말대로 가끔은 빛이 나는 사람이 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피 한 방울 나누지 않는 가족
이렇게 어른같은 아이 금비와, 아이같은 어른 휘철이 만나서 벌이는 눈물겨운 가족 만들기가 <오마이 금비>의 주된 내용이다. 껌딱지떼듯 금비를 떼어버리려 했던 휘철은 금비를 자신의 딸로 받아들이고, 이제 아픈 금비를 위해 사기 대신 다리를 다쳐가며 일을 해서 약값을 번다. 한 세상 대~충 한 몫이나 잡아보려 했던 그가 어떻게 해서든 제대로 살아보려 애쓴다. 

왜? 금비가 딸이라서? 8회 드디어 나타난 생모 유주영(오윤아 분), 휘철을 평생의 원수로 여긴 차치수(이지훈 분)으로 인해 금비의 보험 신탁금을 알게 된 주영은 휘철을 찾아가 딸을 내놓으라 요구한다. 휘철이 간절히 자신과 금비를 놔둘 것을 요구하자 돈때문이라 생각한 주영은 휘철과 금비의 유전자 검사서를 들이밀며 다그친다. 어라, 그런데 휘철이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금비에게 시간이 없다며 자신과 금비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한다. 

<오마이 금비>는 어른스런 딸내미로 인해 철이 들어 가는 아빠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사실 이 드라마의 역설적 반전은 그 아빠가 그 딸내미의 진짜 아빠가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8회 엄마인 주영이 의기양양하게 유전자 감식 결과를 들이민 것과 달리, 아빠인 휘철에게 이미 금비가 친딸인가 아닌가는 문제가 아니다. 처음 금비를 떼어놓으려고 유전자 감식 의뢰를 했던 휘철은 금비가 마음에 들어온 순간, 자신 앞으로 배달된 그 결과를 태워버리려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순간 휘철은 이미 금비가 자신의 친딸이든 아니든 자신 앞에 나타난 이 껌딱지를, 잔소리많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처음으로 자신에게 징글징글하게 잔소리를 해대는 이 꼬마를 자신의 딸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니까. 



어디 휘철뿐인가. 자신의 집에 들어온 사기꾼 부녀 휘철과 금비를 거둔 강희는 한 술 더 뜬다. 뻔히 사기꾼인 듯한 휘철을 그가 가끔 빛날 때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금비가 어린 시절 자신때문에(?) 죽은 동생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거둔다. 금비의 '언니'가 되었지만 강희는 사실 길바닥에 나앉은 이 부녀의 실질적인 보호자다. 

자신의 자식도 버리는 세상에, 아니 당장 자신의 친딸임을 알고도 주저하더니, 변호사가 유산이 있다고 하자 다짜고짜 찾아가 딸을 내놓으라며 차부터 보고 다니는 주영과 달리,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 세 사람은 세상 그 어느 가족보다 진한 가족애를 드러낸다. 친엄마 주영을 상대로, 아픈 금비를 보살피기 위해 밤일을 마다하지 않고, 심지어 집을 담보로 돈까지 꾸려하며. 

상처를 마주보기, 어른되기 
그렇다면 이 말도 안되는 금비로 인해 급조된 가족애의 반대 급부는 무엇일까? 이 석연찮은 가족애의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오마이 금비>가 준비한 것은 바로 휘철과 강희의 어른되기이다. 그리고 그 장면은 8회 후반부 '진실 게임'에서 드러난다. 휘철과 금비가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며 모처럼 사람사는 집 같다고 했던 강희, 진실 게임에서 비로소 그토록 쉽사리 입을 열수 없었던 자신의 상처를 담담히 말한다. 

어린 동생이 귀찮아서 놀아주지 않았던 강희, 혼자 놀러 나갔던 동생은 후진하던 차에 치어 세상을 뜨고, 그 사건을 두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강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망도 하지 않았고, 괜찮다고도 하지 않았고. 강희는 말한다. 아마도 강희를 용서할 수 없었던 거 같다고. 그렇게 어른스럽지 못했던 어머니와 아버지 덕에 강희는 어린 나이부터 동생의 죽음을 내내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 집의 미술품을 탐내던 오빠가 그걸 넘겨주자 그때서야 니 잘못이 아니라고 그저 너도 어렸을 뿐이라고 말할 때까지. 아니 오빠가 말해서가 아니다. 동생이 죽은 그 순간에 머물러 있던 강희는 휘철과 금비 부녀를 돌보며 '비로소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들여다 보며 이제야 자신의 아픔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어른이 된 것이다.



휘철도 마찬가지다. 그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잔소리해주는 어른없는 아이처럼 막 살았던 휘철도 금비를 만나, 금비의 보호자가 되면서 이제야 쉽사리 입밖에 꺼낼 수 없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다. 진실 게임 속 휘철과 강희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그저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 속에 감정으로 뭉뚱그려져 있던 아픔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내는 '객관화'의 과정이자, '마주보기'이다. 그렇게 마주보고 끄집어 내자 아픔은 이제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견딜만한 말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딱지가 떨어진 오래된 흉터일 뿐이다. 흉터는 조금 보기 흉하지만, 이젠 아픈건 아니니까. 

<오마이 금비>는 이렇게 어른됨을 정의내린다. 몸이 크다고, 아이를 낳았다고 어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피를 나누었다고 가족이 아니다. 어른은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야 하고, 타인의 아픔조차 감쌀 아량을 가져야 한다 말한다. 그리고 가족은 아프든 아프지 않든 서로를 기꺼이 책임지는 어른과 아이의 공동체라고 말한다. 피를 나누는 따위의 혈연주의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드라마는 도발적으로 선언한다. 

by meditator 2016. 12. 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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