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의 채널이라 평가받던 tvn이 2016년을 들어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니 변화는 그 이전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kbs 주말 드라마 <내 딸 서영이>를 썼던 소현경 작가의 <두번 째 스무살(2015, 10월 종영)>의 주인공은 마흔 살에 대학 새내기가 된 하노라(최지우 분)였다. <시그널>의 김혜수, 그리고 전도연, 고현정 등 중년 여배우들의 작품이 차례로 작품화될 예정이다. <시그널>의 후속작 <기억>은 중년 가장의 이야기를 다룰 참이다. <응답하라 1988>에 가장 열광했던 세대는 바로 1988년을 살아낸 이제는 중년에 접어든 세대이다. 드라마 만이 아니다. <<어쩌다 어른>처럼 중년을 위로하는 토크쇼도 있다. 그래서일까? 막장 드라마를 선호하지 않는 중년층이 이젠 아예 채널을 tvn에 고정시켜 놓는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하지만 중년층으로 시청층을 넓힌 tvn의 야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6년 들어 선보인 두 편의 예능, <예림이네 만물 트럽>과 <우리 할매>는 100세 시대의 노년층까지 끌어안으려는 포석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조손의 가족적 공감대를 살려낸 <우리 할매>
2월 19일 종영한 2부작 <우리 할매>는 손주, 손녀 세대와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함께 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었다. 연예인인 3명의 손녀, 손주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 그분들의 '버킷 리스트'를 해결해 드리는 이 프로그램은, 이제는 소원해져 가는 가족의 의미를 확인시켜주는 시간이 되었다.
조손이 함께 하는 뻔한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었던 <우리 할매>는 제작진이 선정한 연예인 3명의 가족 관계로 인해 특별한 의미를 지닌 프로그램이 되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박나래는 늘 박나래와 그녀의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부모님, 친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 끈끈한 가족의 유대를 확인한다, 그저 무대에 서서 갖은 수를 다해서 웃겨야 하는 개그맨이지만,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보듬어 주는 가족의 존재가, 웃긴 박나래를 다시보게 되는 계기를 만든다. 이이경도 마찬가지다. 그저 조금 눈에 띄는 배우였던 그지만, 그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만나 지내는 시간, 나누는 대화를 통해, 그저 흘러가는 한 사람의 연예인이 아니라, 가족의 반대를 무릎쓰고 자신의 길을 가고자 애쓰는, 하지만 여전히 한 가족의 소중한 일원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우리 할매>의 수혜자는 이태임이다. 작년 한 해 구설수로 인해 활동을 하지 못했던 이태임은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한 일본 여행을 통해, 구설수의 여자 연예인의 고충을 이해받을 수 있었고, 그저 소모되지 않아야 할 한 가족의 소중한 큰딸이자 손녀임을 확인받게 되었다.
연예인인 손녀, 손주는 그들대로,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그 세대대로 의미를 부여하는 내공은 <우리 할매>의 강점이었다. 그리고 이런 노인 세대를 아우르는 tvn 예능의 내공은 그저 하루 아침에 이루언 진 것은 아니다. <우리 할매>의 뒤를 이어, <예림이네 만물 트럭>이 정규 편성됐지만, 그 이전에도 노인 세대를 겨낭한 예능은 꾸준히 만들어 졌었다. 생뚱맞게 로봇 손주를 들이댔던 <할매네 로봇>이나, 회춘 느와르 <꽃할배 수사대>, 그리고 무엇보다, 꽃할배란 말의 원조가 된 <꽃보다 할배>등 노년 층이 프로그램의 주역으로 활동하거나 대상이 된 프로그램들이 꾸준히 시도되었다.
외로운 오지 노인들을 위로하는 <예림이네 만물 트럭>
그리고 2016년, 또 한 편의 노인 예능이 등장한다. 바로 이경규와, 그의 딸 예림이를 내세운 <예림이네 만물 트럭>이다. <아빠를 부탁해>를 통해 이미 대중들에게 선보인 바 있는 이경규와 그의 딸 예림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아빠와 딸들이 이후 다른 작품들을 통해 '금수저' 논란을 불러 일으킨 바 있지만, <예림이네 만물 트럭>은 역시나 연예인인 아버지와 함께 한 딸의 프로그램임에도 그 논란을 비껴선다. 그 이유는 첫 회 이경규가 말하다시피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 밖에 모르는 예림이가 아버지와 함께 전국 오지의 마을을 돌며 노인들에게 물건을 팔러 다닌다는 취지가 그 논란을 비껴서게 만든다,
논란이 무색하게 프로그램이 없어 딸과 함께 만물 트럭이라도 몰아야 겠다는 예능 대부 이경규의 엄살에, 없는 물건 없이 온갖 물건을 주렁주렁 매달아 백미러 조차 보이지 않는 '만물 트럭'의 웃픈 존재와, 그 트럭이 종횡무진해야 할 오지의 마을들은 재미를 떠나, '리얼리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거기에 예능으로서의 존재감을 부여하기 시작하는 건 역시 예능 대부 이경규다. 첫 회 낯선 만물 트럭을 직접 몰며 솔선수범하던 이경규는 이제 회를 거듭하며, 예능 초짜 유재환을 때로는 신참으로 부려 먹으며, 때로는 딸의 가상 연인감으로 견제하며 어느 틈에 그를 이경규와 예림이 사이에 떠억하니 앉혀준다. <무한도전>을 통해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지만, 그 이후 <방시팝>이나, <위키드> 등에서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유재환은 예능 대부 이경규 앞에서 한없이 '죄송합니다'를 연발해야 하고, 견제 당하는 존재로 <예림이네 만물 트럭>에서 호의적 이미지로 거듭난다.
그건 예림이도 마찬가지다. <아빠를 부탁해>에서 그저 아빠와 서먹서먹하기만 했던 딸 예림이는 <만물 트럭>을 통해 여전히 아빠만큼 무뚝뚝하지만, 어설픈 운전 실력도 자신감을 앞세우듯이, 당차고 의연한 면모로 '만물 트럭'의 일원으로 손색없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예림이네 만물트럭>이 전국 방방곡곡 오지를 도는 예능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예능 대부 이경규의 존재감이다. 그저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 어떤 곳을 가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를 반기는 존재감과,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세배'에서 '시멘트 미장'까지 마다하지 않는 솔선수범이, '만물트럭'을 '만물트럭'답게 만든다.
물론 여기서 이 만물 트럭 예능의 가장 기본적인 슬픈 전제는, 물건은 둘째치고 하루 종일 있어봐야 외부인은 찾아보기 힘든 오지 마을에 누군가 찾아와서 반갑다는 그 외로움이다. 그리고 3월 2일 방영분에서 보여지듯, 어느 곳 어디에서든 그분들의 입을 통해 조우하게 되는 우리의 현대사의 여정도 만만치 않다. 방방곡곡 구비구비에서 기다리는 그분들의 쓸쓸함과, 반가움, 그리고 삶의 역사가 진짜 <예림이네 만물 트럭>의 자산이다.
tv라는 매체를 통해 늘 우리와 함께 울고 웃었던 노인 배우들이 쉽사리 해볼 수 없었던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여행을 도모하는가 하는 것에서부터, 오지 마을 노인들을 찾아가 함께 하며 그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잠깐이나마 그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예림이네 만물 트럭>은 100 세시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잡아낸 예능이다. 이미 이경규네 만물 트럭을 알아보는 노인들이 있듯이, tvn의 발빠른 포석이 이제 중년층을 사로잡은 그들의 성공 사례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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