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부터 jtbcf를 통해 방영된 <적과의 동침>은 '국민들에게는 통쾌함을 정치인에게는 맷집을'을 표방하며 여야 의원들의 버라이어티 예능을 하고자 하였다. 집권 여당의 김무성, 원유철 의원에서 부터 야당의 박지원, 김재윤 의원까지 내노라하는 국회의원들이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 해를 넘기지도 못하고 11월 종영되고 말았다. 처음 '정치인에게는 맷집을'이라며 호기롭게 시작한 프로그램은 하지만 회를 거듭하며 맷집보다는, 정치인 홍보용 프로그램이 되어 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제작진이 마련한 종횡무진 각종 예민한 사안들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던 정치인들이, '연성화'된 방송 내용으로 연예인들과 깔깔거리느라 얼굴이 붉게 물들고, 이쁜 연예인도 마다않고 자당 대표와 짝짓기를 하느라 골몰하는 모습들만이 화면을 채우고 말았다. 맷집은 맷집이되, 국민들의 따끔한 회초리로 인한 맷집이 아니라, 이른바 '예능감'으로서의 맷집만 키우고만 셈이 된 것이다. 결국, 애초의 건강한 여야 소통, 혹은 국민 소통을 유도하고자 했던 프로그램은 노골적인 국회의원들의 자기 홍보와, 낯뜨거운 편먹기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아마도 '셀프 홍보'로 치자면 그 어떤 연예인도 따라가기 힘든 국회의원들의 방송은, 언제나 이렇듯 국회의원의 '홍보'라는 늪에서 쉬이 헤어나오기가 힘들다. <어셈블리>에서 추상같은 여당의 사무총장인 듯하던 백도현(장현성 분)이 차기 선거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해 부당 해고 노동자까지 이용하고자 하는, 스스로 정치꾼임을 자임하는 상황은 비단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의 범주가 되었다. 그렇기엔 지난 토, 일요일 밤 10시 30분 2부작으로 야심차게 시도된 <여야 택시> 역시, 내건 의도와 달리, 이런 의심의 눈길을 피해갈 수 없다.
민심을 듣겠다며 택시 운전기사가 된 국회의원
<여야 택시>는 말 그대로 여당과 야당의 국회의원 혹은 전직 의원들이 택시 운전기사가 되어 서울과, 상대 당 텃밭인 광주, 대구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민심을 취합하겠다는 취지를 내건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이번에 여당 원내 대표가 된 원유철 의원과, 새정치 연합 강기정 정책위의장은 서울에서, 김문수 새누리당 전 보수 혁신 위원장은 광주에서, 그리고 원혜영 새정치 연합 공천 혁신 추진위원장은 대구에서 택시를 몰고 1일 기사로 나선다.
그런데 말이 택시 기사지, 이들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이 국회의원임을 숨기지 않는다. 심지어 택시에는 떠억하니 이 차에는 정치인이 타고 있습니다 라고 붙어있다. 가장 서민적인(?) 교통 수단을 통해 민심을 듣겠다며 말만 택시이지 정치인이 운전하는 공짜 택시를 탄 서민들이, 과연 얼마나 민심을 가감없이 전달할 수 있었을까? 방송에서 보여지듯이, '이거 말 잘못했다가 잡혀가는 거 아냐?"라는 반응이 여전히 나오는 대한민국에서, 결국 대놓고 국회의원이 운전하는 택시에서 전달된 민심이란 일단 '필터링'이 거쳐진 민심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감안한듯 제작진은 2부에서는 아예 sns등을 통해 정치인에게 하고픈 말이 있는 사람들을 모집한 듯하지만, 다둥이 가족이나 정치에 관심많은 여고생들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방송 분량이 없는 듯 보였다.
흔히 상식적 차원에서 생각하듯이, 아니 그 옛날 임금님이 살던 시절부터 민심을 알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하던 '변복'을 하고, 신분을 숨긴 채 '민심' 속으로 들어가는 일을 왜 <여야 택시>는 하지 않았을까? 그 답은 택시에 승객들이 타기만 하면 네 명의 국회의원들이 빠짐없이 돌리곤 하던 그들의 명함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꼬박꼬박 자신이 누군지 아냐고 확인하고, 그 답에 따라 일희일비하던 표정에서도 답은 확인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군지 숨길 수 없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말이 민심을 알기 위해서라지만, 2회 방영되는 내내 '민심'의 내용보다, 택시를 운전하는 국회의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비추기에 급급하다 못해, 나중에는 꼴랑 하루 택시 운전에 '라디오 방송 노래방 출연'이벤트까지 하는 프로그램 내용을 보면서, 과연 이들의 하루 운전으로 '민심'이 전달되었겠다고 공감하는 시청자가 얼마나 있을까? 오히려 저런 택시 운전 코스프레를 통해 이번에 여당 원내 대표가 된 원유철 의원의 얼굴을 알게 되고, 내년 대구에서 총선에 출마할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나, '듣보잡' 국회의원이었던 (?) 강기정, 원혜영 의원을 알게 된 것이 진짜 성과가 아닐까? 제 아무리 아니다 한들, 대구의 새로운 다크 호스로 떠오른 유승민 의원에대해 고군분투하던 김문수 전 지사가, 그리고 박수로 추대되어 입장이 난처했던 원유철 원내 대표에게 유리한 홍보의 장이 되었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택시 운전 코스프레를 하지만 역시 '나으리들'
아니 민심 파악 택시 운전 코스프레를 통해 분명히 알게 된 것이 있긴 하다. 국민들의 대표라 지칭되는, 그리고 언제나 '선거'를 통해 자신들이 민심을 국회에 전달하겠다고 큰 소리치는, 심지어 여당 원내 대표까지 된 이 사람들이, 서민들의 실정에 대해, 혹은 서민들이 정치인들에 대해 생각하는 바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국회라는 곳이 대한민국 밖 어디 다른 곳에라도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곳에서 하는 일들은 서민들의 삶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것처럼, 택시 운전사가 된 국회의원들이 택시를 탄 서민들의 말에 보이는 반응은 완전 딴세상을 보는 듯했다. 다둥이 문제도, 동네 빵집 문제도, 청년 실업 문제도, 지역 감정 문제도, 그리고 정치인들에 대한 냉정한 반응에도 매우 새삼스럽다는 국회의원들의 리액션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국회에서 다루는 이른바 '민생'이란 것이 저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를 <여야 택시>를 통해 역설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기껏 젊은 세대와의 공감을 위해 아이돌 멤버 이름 맞추기나 국회의원 이름 알아맞추기나 내세우는 제작진의 한심한 공감 코드가 문제가 아니다. 그래도 정치인이 운전대를 잡았다고 성의있게 정치에 대해 자신의 간곡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민심을 주마간산 식으로 정말 스쳐가는 승객의 그것들로 열거해 버린 채 운전대를 잡은 정치인에 골몰한 프로그램의 모양새가 그 진정성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이다.
tvn에 동명의 예능 프로그램 <택시>가 있다. 거기에는 택시를 타는 승객이 그날의 주인공이다. 운전대를 잡은 mc는 그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한 보조 장치일 뿐이다. 하지만 <여야 택시>처럼 민심 대신 운전대를 잡은 국회의원이 돋보이는 민심 파악 예능이라면, 그저 인사치례같은 '덕담'을 넘어 민심은 언제나 주인공 대접을 받게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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