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밀입국 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얼어붙은 땅>으로 63회 칸 영화제 시네마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바다, 최연소 칸 영화제 진출의 영예를 안고, 이어 2014년 <거인>으로 36회 청룡영화제, 35회 한국 영화평론가 협의회 신인 감독상을 받았던 김태용 감독이 2017년 새해 첫 영화로 <여교사>를 들고 왔다.
김하늘이라는 당대 최고 여배우를 타이틀롤로 내세운 <여교사>는 하지만 김태용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라는, 그리고 배우 김하늘의 모처럼 영화 출연이라는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107,685명(영진위 추산)의 미진한 흥행 성적과 작품성에 있어서도 물음표를 남기며 사라져가는 중이다.
욕망과 윤리의 경계, 그 연장선
김태용 감독의 신작 <여교사>는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전작들과 동일한 주제의 연장 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생존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밀입국 소년들'(얼어붙은 땅)에서 '이삭의 집 영재'(거인)으로 그리고 이제 다시 계약직 교사 효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도 속일 것같았던 이들은 결국 끝내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것조차도 동일하다.
비굴할 정도로 이삭의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부까지 되겠다며 착한 아이인 양 했던 영재는 하지만 결국 아버지가 데리고 온 동생으로 인해 자신이 썼던 생존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만다. 효주도 다르지 않다. 계약직 교사로 임신 포기 각서까지 썼던 효주이지만, 자신의 자리라 생각했던 과학 정교사 자리를 치고 들어온 이사장 딸에 대한 감정을 결국은 숨겨내지 못한다.
하지만 무엇이 다를까? <거인>이 김태용 감독에게 올해의 신인 감독이라는 상찬을 안긴 것과 달리 똑같은 주제를 다룬 <여교사>에 대한 평이 엇갈리는 것은.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라 해야 할까? <여교사>를 보는 내내 어쩌면 애초의 시나리오는 어쩌면 화면상에 옮겨진 평범하고 둔탁해진 이야기보다 훨씬 더 섬세한 '감정'과 '욕망'의 부딪침이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배려(?)' 혹은 이른바 궁예(?)는 보는 이의 생각일 뿐, 어쨋든 감독은 화면에 펼쳐놓은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계약직 여교사로서의 효주(김하늘 분)가 겪어야 하는 부당한 갖가지 대우를 나열하며 영화는 여주인공의 곤란한 처지를 사회적으로 풀어낸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랫동안 동거해 왔던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아슬아슬하다. 그렇게 사회적, 개인적 위기로 <여교사>는 주인공 효주를 벼랑 끝으로 밀고 간다.
그렇게 위기의 상황에서 도화선으로 등장한 것은 이사장 딸 혜영(유인영 분),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다짜고짜 처음 찾아온 효주에게 술 김에 입을 맞춘 재하(이원근 분)다. 그 이후의 상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예측가능하다. 단지 그 폭발력과 방식의 차이일 뿐.
사회적 존재의 파열을 욕망을 통해 펼쳐내는 것은 <B사감과 러브레터> 이래 이젠 고전이 된 방식이다. 초반의 계약직 여교사의 부당한 존재를 잔뜩 나열하며 주인공의 사회적 존재를 부각하던 영화는 혜영과 재하의 등장 이후 그 문제 의식을 갑자기 지극히 사적으로 끌어내린다. 분명 효주의 존재론적 문제는 사회적이지만, 혜영과 재하의 등장 이후 효주 자신의 문제 의식과 그 분출은 혜영과 재하라는 삼각 관계에 갖혀 지극히 사적이고, 그래서 감정적이고 충동적으로 이어진다.
물론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지만, 그 사회적 존재가 살아가는 공간은 지극히 사적이며, 거기서 분출되는 감정들은 개인적이다. 하지만, <여교사>에서는 마치 사회적 존재가 이후 개인적 폭발의 물적 토대라기보다는 도구처럼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 임신 포기 각서에 말 한 마디 못하고 도장을 찍는 계약직 교사가 과연 이사장 딸에게 그리도 도발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이건 <거인>의 영재와 범태의 관계가 아니다. 비록 그녀가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었다 할지라도 이사장 딸인데 과연 그렇게 용감할 수 있는 계약직 여교사가 현실에 가능할까?
혜영의 응석같은 친절에 대항한 효주의 냉담 혹은 무시는 그래서 효주의 절박함을 드러내기 보다, 그조차도 효주란 사회적 존재의 비현실성을 강화시킨다. <거인>의 영재는 아니라도, 효주같은 강심장의 계약직 교사가 가능할까? 아니 효주의 냉랭함은 <여교사>라는 영화를 따라가는데 내내 그녀의 감정을 소통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된다. 처음엔 그것이 의도된 감독의 새로운 캐릭터인가 싶다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리 뻣뻣한 그 캐릭터에 배우의 해석 부재인가 하며 의문 부호를 남긴다.
현실에서 생존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여자,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희생이 강요된 여자, 그 여자가 삶의 위기에서 붙잡은 뜻밖의 열정, 하지만 그것조차도 부도수표라는 그 '클리셰'와 같은 이야기를 설득해 내기에 <여교사>는 내내 무덤덤하고, 그래서 클라이막스만 도발적이란 생각이 든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내내 냉담했던 그녀라면 마지막까지 '사랑'에 목숨을 걸 것이 아니라, 철저히 혜영과 재하를 가지고 놀 만큼 일관되게 '냉혈한'이었음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교사>는 치명적인 척 하지만 상투적이고, 편의적이었단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여성 영화,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의 한계
바로 그 지점이다. 왜? 저토록 사회적, 개인적으로 절망에 빠진 효주가 마지막 건 희망이 '사랑'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 만약에 이 영화의 주인공이 여선생인 효주가 아니라, 남자인 선생이었다면 똑같이 사랑으로 스스로 자멸하는 설정으로 가져갔을까? 왜 여교사는, 시작은 어떤 의도에서였건 그 남자 아이의 바람같은 '사랑'이라는 한 마디에 낚여서 스스로를 파멸에 빠지는 존재로 그려져야 할까?
영화는 효주의 사적 복수로 마감하지만, 그 자해에 가까운 복수극은 마치 온 기숙사생들이 다 듣는 가운데 애절하게 러브레터를 낭송하는 B 사감의 애절한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 분명 영화는 효주라는 계약직 여교사가 처한 사회적 문제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것으로 사회적 의식을 고양시키며 시작하지만, 그 끝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복수로 마감한다. 물론 이것이 고립된 사회적 존재 거개가 맞게될 파국의 양상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왜,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의 여성은 하고많은 해결책 중에 하필 '사랑'에 발에 걸려 자멸하고 마는가에 대해 아쉬움을 남긴다.
그토록 냉정했던 효주라면, 혜영에게 조차 앙칼질 수 있었던 효주라면, 재하라는 존재, 사랑에 걸려 넘어지는 대신 좀 더 냉정한 복수를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효주란 사회적 존재를 지극히 사적이고 감정적인 존재로 치환해 버린 영화는, 마찬가지로 남성 영화에서 여성을 성적 존재로 소모하듯 재하란 대상을 성적 존재로 소모해 버린다. 결국 재하의 속내가 드러나지만 그건 그의 대사를 통해서지, 효주와의 만남 과정에서 재하는 그저 효주의 사랑바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효주의 감정선이 불친절하듯, 재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불친절한 것이다. 과연 이것이 마지막 폭주를 위한 감정의 숨김인지, 아니면, 애초에 의도된 구도로 끌고나가기 위한 편의적 장치였는지, 의문에 의문만이 꼬리를 잇는다.
사실 <여교사>의 문제만은 아니다. 2016년에서 2017년까지 여배우들이 타이틀 롤을 맡은 영화들은 모조리 부진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을 두고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의 부진이라 말할 수 있을 지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히려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의 부진이라기 보다는, 여성을 내세운 영화들의 주제 의식의 문제가 아닌지. 즉 대부분 박스 오피스에서 높은 순위의 영화들이 사회 구조적 문제와 환타지적이나마 그 해결에 주제를 천착하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의 여배우들을 타이틀롤로 삼은 영화들은 오히려 그 반대로 사회적 문제의 개인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지점에 대해서는 한번쯤 짚어봐야 할 것이다. 이런 영화도 있어야 하겠지만, 굳이 왜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들이 이런 문제 의식에 천착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또 다른 편견의 여지가 잠재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지점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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