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썰전>에서 전화로 인터뷰한 이재명 시장의 말처럼 전국민이 수치심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무능과 부패로 점철된 시간까지는 참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 무능과 부패의 주체가 국민들이 권력을 이양한 대통령이 아니라, 그 배후의 듯도보도 못한 정체불명의 한 개인과 어처구니없는 개인적 친분의 측근들이라니, 연일 그들의 정체와 그 정체를 둘러싼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연의 실마리들이 터져 나올 때마다 보도를 접한 시청자들은 '어이를 상실'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나비 효과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의 근원은 깊다. 범서방파가 구속이 되고 그 수사 과정에서 정운호 '네이처 리퍼블릭' 정운호 대표의 100억대 도박 사건이 터졌다. 한 개인의 도박 사건은 다시 그의 롯데 면세점 선정 로비 의혹을 통해 롯데 그룹으로 확대되고, 롯데 비자금 수사의 불을 당긴다. 또한 동업자 김모씨의 폭로로 홍만표 변호사가 전관 예우로 막대한 이익을 취득한 것이 드러나고 거기서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연결 고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거기에 조선일보는 넥슨의 뇌물을 받은 진경준 게이트에 더해 우병우 부동산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우병우 게이트는 윤곽이 커져간다. 우병우가 문제의 중심이었던 사건, 하지만 우병우를 비호하기 위해 청와대가 이의 문제 제기를 한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 세력'으로 비난하고, 이에 조선일보는 k스포츠와 미르 재단에 청와대가 압력을 넣어 기업들로부터 상납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다시 대우조선 해양 접대로 송희영 주필이 사퇴하는 등 청와대와 <조선일보>가 일진일퇴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겨레가 조선일보가 제기한 k스포츠와 미르 재단의 중심에 최순실이 있다는 것을 폭로하며 드디어 최순실이 사건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와 맞물려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대 부정 입학 및 학사 처리 과정에서의 부당한 대우 등을 기사화시키고 이에 이대 학생 및 교수들의 반발로 이어지며 이른바 이 정권의 실세 최순실이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마치 나비의 날개짓이 토네이도를 일으키듯 한 기업인의 도박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국정을 농단한 배후 인물의 실체를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검찰의 수사와 그에 맞물리는 언론의 보도 사이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사건과 사실, 그리고 가쉽이 뒤엉킨 형태를 지닌다. '도박'이라는 파렴치한 사건은 집권 세력의 도덕적 불감증내지는 부도덕으로 이어졌고, 한 여학생의 부정 입학과 더 부정한 학사 행위라는 개인적 파행은 결국 k스포츠와 미르 재단이라는 국정 농단의 사태와 동전의 앞뒤면처럼 밀착된다. 사람들은 가쉽처럼 사건을 들여다 보다, 결국 정권의 실체를 발견하게 되고, 언론의 가쉽성 폭로 기사는 결국 정권의 목줄을 죄는 단죄성 결과로 치닫게 된다.
그리고 이제 손석희라는 인물을 전국민적 영웅이라 해도 반발심이 들지 않게끔 지난 월요일 이후 <jtbc 뉴스룸>을 통해 그간 구름잡듯이 그려져 왔던 최순실이란 인물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까발려 지고 있다. 이에 그간 눈감고 귀막으며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던 방송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앞다투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사안들을 너도 나도 폭로하기에 나선다.
폭로와 가쉽의 프레임 속에서
그도 그럴 것이 최순실의 가장 최측근이라 하여 각종 실권을 행사했던 고영태의 전직은 의심스러우며, 그와 최순실, 그리고 '황태자'라는 전근대적 별칭으로 불리는 차순택이라는 인물이 만나게 된 과정은 너무도 '사적'이니 화수분처럼 파도파도 폭로할 꺼리가 넘치니 말이다. 독일로 달려가 최순실의 행적을 쫓는 jtbc의 특종을 뒤따라가는 종편 등의 보도 프로그램은 그런 빼앗긴 특종 대신 가장 손쉬운 '신상 털기'식의 가쉽성 보도로 앞다투어 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그래서 이제 그간 입을 꾹 다물었던 kbs가 정유라와 관련된 사안들을 보도하기 시작했으며 종편들은 고영태와 관련된 과거 사실과 그에 관련된 연예인들을 입에 올리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사람들은 고영태의 과거 사진 속 연예인의 실명을 들먹이고, 고영태가 관여한 연예인 야구단에 함께한 연예인들을 손가락질 한다. 또한 또 다른 실세로 등장하는 최순실 언니의 딸 장시호(장유진)이 과거 친분이 있다는 연예인들의 이니셜로 퍼즐 게임을 하도록 유도한다.
대통령의 뒤에서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을 비롯한 그 측근들에 대한 이렇게 흘러넘치는 가쉽성 기사는 국민들을 '수치'스럽게 하지만, 동시에 쉽게 그들을 '조롱'하게 된다. '무당'이나, '호빠'라는 단어로 폄하하며 비웃는 것으로 '분노'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심지어 그러다 보니, 김주하 앵커처럼 그런 사람들에게 당한 대통령이 불쌍하다는 식의 동정론으로 유도되기도 한다. '미친 년'에게 당한 '정신 나간 사람' 수준으로 사건의 프레임이 변화된다. '조롱'은 쉽지만, '분노'에는 '실천'이 따른다. 그들을 비웃고 조롱하며 또 다른 가쉽이 없나 찾아 헤매는 사이 분노의 열기는 어느새 연예인 가쉽 뒤지던 그 습관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난 여름 우병우 사건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사건이 무엇이었나를 최신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배우들보다 미디어 영향력이 컸던 연예인은 술집 여성의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한 남성 연예인이었다. 검찰 수사도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연예인과 달리, 검찰 조사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여러 언론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했던 성폭행 당사자라는 여성과 그의 친척이라던 사실상 조폭 집단의 확인 되지 않은 사실을 쏟아부었던 것이 바로 지금 최순실과 그 측근들의 가쉽을 '정의로운' 양 쏟아내고 있는 언론들이라는 것이다.
아니 좀 더 앞서 기억해야 사실도 있다.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대통령의 7시간을 비롯하여, 해경의 수상한 행동, 그리고 사건을 덮고 무마하려는 시도 대신, 엉뚱하게도 유병언으로 시선을 돌리며 그의 이상한 종교와 행태, 그리고 그의 추적으로 시선을 돌렸던 것도 바로 지금의 최순실과 그 측근들의 '사실'들을 쏟아부었던 언론이라는 것이다.
지난 여름과 2014년 세월호 사건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그 하나는 사건을 가쉽화하고, 그것을 대중들이 가장 만만한 먹잇감으로 여기는 연예인으로 귀결시킨다는 것이다. 최순실이라는 실체가 드러나기 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얼마나 '고소'를 당했다는 이유만으로 남성 연예인들이 대중들의 도덕 재판에 끌려나왔는가. 그리고 사람들이 손쉽게 호기심에 그걸 클릭하고 욕을 하는 동안 얼마나 중요한 사건들이 묻혀졌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그중 기혼의 한 연예인은 실제 가정사의 아픔까지 겪게 되었는데, 과연 그게 그 개인의 부도덕한 행위 책임만일까? 그저 한 개인의 사적 문제, 혹은 최근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유명인의 억울한 무고 사건, 그게 아니라도 검찰 재판 결과까지 기다려도 될 사건을 앞서가며 여론 재판으로 끌어들이며 신물이 나오도록 씹도록 만들었듯, 이제 또 다시 최순실과 관련되어 연예인 이름이 오르내리는 프레임의 변화를 그래서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유병언 사건과 최순실 사건의 공통점은 똑같이 대중들이 이질적으로 여기는 '종교'를 들먹이고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 등을 믿는 국민이 다수인 현실에서 '사이비'라는 말은 곧 '적대감'을 자연스레 발산시키고, 동시에 우리 밖의 적이라는 감정을 부추긴다. 또한 이는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그저 미워하고 밀어내야 할 대상으로 상대방을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사이비 교주, 혹은 무당이란 프레임은 사실 그가 진짜 해치워 버린 정권 차원의 비리를 뒤덮어 버리고, 그저 '나쁜 사람'이란 대상으로 단순화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좀 더 그들의 실체를 파악하는 대신, 돌 몇 개 던지는 것으로 침 뱉어 버리는 것으로 분노를 단순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몇 달동안 질리고 질리게 유병언을 떠들던 그 시절의 종편은 실컷 떠들고 나더니, '지겹다'라는 프레임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의 입을 막았다. 그러기에 가쉽에 혹해 쉬이 지겨워 지지 말고 사건의 본질에 불을 켜고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형광등이 백개 켠 아우라'라며 떠들었던 조선일보가 이제 가장 우국의 선봉대가 되어있는 상황, 엊그제만 해도 용비어천가 부르짖던 여타 종편과 공중파가 앞다투어 '사건'을 '가쉽성'으로 끌고가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여당이 한 통속이듯, 그들도 한 통속이었다는 것을 뻔히 알았으면서도 또 다시 그들이 제시하는 프레임에 시선을 빼앗긴 채 이 정국의 주도권을 넘겨, 그들이 원하는 다음에 끌려들어가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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