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종영한 야왕과 관려된 우스개가 있다. 남편 유노윤호를 죽음으로 내몬 수애의 자동차 폭파 장면을 보면서, 수애를 <아이리스2>로 보내 그 능력을 대아이리스 첩보 활동에 쓰이게 해야 한다던가, 남자 주인공 하류의 복수가 늘 수애의 악행에 한끝 차이로 뒤지자, 하류는 <돈의 화신> 이차돈에게 좀 배우고 와야 한다던가 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답답했던 내용을 다른 드라마의 능력자를 통해 풀어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의 발현이랄까? 하류보고 한 수 배우라는 대상이 되었듯이, <돈의 화신> 이차돈(강지환 분) 변호사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당한 이래 탁월한 두뇌회전력으로 복수의 상대방 지세광(박상민 분) 일당을 코너에 몰아넣고 은배령을 감옥으로 보내버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종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돈의 화신>이차돈은 급기야 교도소살이까지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복수는 하류였지만, 신분만으로 보면, 교도소 출신임에도 변호사로 승승장구한 하류가 나은 편 아닐까?

 

사진출처; tv리포트

 

최후에 웃는 자가 진짜 웃는 것이다?

다시 <야왕>으로 돌아가서, 종영을 앞둔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이병훈 감독이 심혈을 기울인 50부작 대하사극 <마의>를 앞질러 버렸다. 사람들은 하류의 복수가 시시하다 하면서도 주다해의 '업그레이드'되는 악행을 보는 재미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대부분 시시한 드라마도 막방이 되면은 시청률이 오르기 마련인데, 천민의 신분에서 어의에 오르는 그것도 휴머니즘의 극강을 보인 백광현(조승우 분)의 성공스토리를 악행 하나로 퍼스트레이디에 오르는 주다해의 또 다른 성공 스토리가 눌러버렸다. 이병훈 감독이 말하고자 한 진솔한 한 인간의 미담식 성공보다는, 무슨 짓을 하던 성공만 하면 돼! 라는 주다해의 악행이 더 사람들에겐 익숙하고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왜 욕을 하면서 <야왕>을 보느냐고 하면, 사람들은 악녀 주다해가 어떻게 망하는지 봐야 하겠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런데, 망하는 걸 보기에, <야왕> 뿐만이 아니라, <돈의 화신>도 그렇고 대부분의 복수극들은 악행을 저지르는 대상이 망하는 시기는 극이 끝날 때쯤이요, 그때까지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거나 심지어 승화되는 악행의 잔치판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야왕>의 하류는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딸과 형을 잃었고, 그로인해 주다해의 두번째 남편까지 목숨을 잃었다. <돈의 화신>도 이차돈이 제법 복수를 하는 것같은데, 들여다 보면 잃는 건 늘 이차돈 뿐이다. 지세광은 서울시장에 나갈 정도로 승승장구하는데, 이차돈은 횡령에 살인범으로 몰리다, 복수를 위해 스스로 선택했다지만 교도소 행이요, 그가 사랑했던 복재인 일가는 처참하게 무너져버렸다. 마치 복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하류나, 이차돈처럼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각오가 되어있어야 하는 게 복수다 라고 오히려 두 드라마는 역설적 교훈을 주기라도하는 것처럼.

물론 퍼스트 레이디가 된 주다해가 결국은 몰락하고 말듯이, 지세광도 성공의 정점에 올라갔을 때 처절하게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몰락과 함께 드라마도 끝나고. 이른바 복수극의 딜레마, 혹은 클리셰가 바로 이것이다. 내거는 것은 복수극이라고 하지만, 복수를 하기 위한 악행에 드라마가 기대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시청자들이 보아야 하는 것은 오르락내리락하는 악행의 롤러코스터이다. 복수는 짧고 악행은 주구장창이랄까.

 

▲ 야왕 스포일러 사진 공개 /베르디미디어 제공

 

그럼에도 복수극이 보고싶은 것은?

<야왕>과 <돈의 화신>을 보면 재밌는 공통점이 드러난다. 악의 축이 되는 세력들은 경제적 부의 축적을 결코 간과하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 혹은 그것을 기반으로 퍼스트레이디라던가, 서울시장같은 정치적 권력을 부여잡는다는 것이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 대한민국의 권력 지형에 있어 누가 더 힘이 센가를 논하는데 있어서는 이론의 여지가 충분히 있지만, 드라마를 통해,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무리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면을 봤을 때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지도층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드라마는 물론 유독 대한민국에서, 정치 혐오증이 심하고, 정치 엘리트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는 건, 드라마 속에서도 형상화 되었듯이, 해방 이래 제대로 된 자정 노력없이 그놈이 그놈임을 실감하게끔 정치 엘리트 층이 형성되었고, 개발 독재 시절에 공공연하게 정경 유착이 이루어졌음을 역사를 통해 충분히 학습된 결과라 하겠다.

그러기에 몇 십년의 세월을 통해 공공히 쌓아올려진 그 권력들의 척결은, 드라마 내내 당하기만 하는 절치부심의 그리고 그것조차도 사실은 환타지인 복수를 통해서만이라는 지점에 사람들은 공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13일 횡령에 살인의 혐의를 받은 이차돈이 검사 지세광에게, '영혼없는 정의, 정의없는 힘'이라며 일갈하듯, 사적 복수로 시작한 주인공의 행로는, 악이 축에 대한 실체를 자각하며 '공적 복수'로써의 정당성을 얻어가고 강력한 추동엔진의 성능을 장착하게 된다. 복수는 복수이되, 정의가 되는 순간이다. 덕분에 시청자들도, 주인공의 미운 놈이, 시청자들에게도 미운 놈이 되면서, 복수를 즐기는 정당성을 얻어가고.

복수극은 애잔하다. 주인공은 모든 것을 잃고 만신창이가 된 마지막에 가서야 웃게 된다. 그리고 그런 복수이나마,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정경 유착의 권력형 비리의 끝을 보려고 기다리는 시청자들은 더 애잔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드라마 속 나쁜 놈은 착한 놈이 만신창이가 되서라도 물고 늘어지면, 결국은 망한다. 그게 어디인가. 아마도 기다리면 언젠가 망하는 그 나쁜 놈을 보려고, 시청자들은 한 송이 국화 꽃을 기다리듯 복수극을 지켜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by meditator 2013. 4. 15. 09:45

이상하게 sbs월화 드라마 야왕은 언제부터인가 하류의 복수를 보게 되는게 아니라 오늘은 또 주다해가 어떤 걸로 한 껀(?)을 하게 될까? 그녀의 악행을 기대하며 보는 드라마가 되었다. 분명 하류는 주다해의 악행을 저지하게 위해 전력투구하지만 언제나 주다해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처럼 하류의 복수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업그레이드 된 욕망을 위해 악행을 업그레이드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의 악행은 대통령후보 조차 그럴듯 하게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한낱 백학 그룹의 비리 뒷처리나 하던 석태일 변호사는 미래 창조당의 대통령 후보로써, 그것도 후보를 단일화하여 대선에 나서게 되었다.

3월 19일,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모색하려 했으나 벽에 부딪치게 되자, 석태일은 주다해를 닥달하고 주다해는 자신을 믿어달라는 말로 석태일을 진정시키고, 그 길로 백학을 찾아간다. 그리곤 용돈을 받으러 왔다며 백도경이 자신을 찔렀던 사실과, 백창학이 그의 매제를 살해해 자살로 위장했단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으로 50억을 뜯어낸다. 50억은 골프 가방에 나누어 담긴 채 미래 창조당에 전달됐고, 석태일이 당의 후광을 업고 단일화하여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데 밑거름이 된다.

그런 뒷거래를 알게 된 석태일의 딸 석수정은 아버지를 찾아가 절규한다. 이런 분이 아니지 않냐고, 자신의 이름을 '수정'이라 지은 것처럼 당당하고 깨끗한 분 아니셨냐고? 하지만 그런 우문에 석태일은 정치란 것이 그런 것이라고 현답을 내린다.

 

이전에도 석태일-백학의 커넥션을 통해 정치란 것이 돈, 이른바 정치 자금이 없으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정치인과 기업인의 커넥션이란 게 불가피한 것이다라는 <야왕>의 설정은 시청자들이 이미 수많은 실제 사례를 통해 확인했던 사실이니 새삼 덧붙일 이유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드라마 상에서 이면에 보여지는 모습과 달리, 석태일이라는 후보는 변호사 출신의 딸 조차도 오해를 할 정도로 청렴결백한 야당의 정치인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데 있다. 심지어 그는 대선 과정에서 '단일화'를 통해 야당의 유일한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

그런데 그 과정이 보여지는 것과 달리, 오로지 '돈' 에 의한 것이라는 게 드라마 <야왕>의 결론이다. 정치인의 색깔, 그가 내건 슬로건, 그가 하는 정치적 행위, 이딴 공적 행위는 쇼고, 결국 이면에 흐르는 돈이 핵심이며, 그런 돈의 커넥션을 위해서는 협박 정도 일삼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사과 상자로 배달되는 돈은 순수한 '협찬(?)' 정도로 딸 앞에서도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건 주다해가 자기가 죽인 전남편의 집을 찾아가 돈을 요구할 정도의 악행을 눈깜짝 하지 않고 저지른다는 것이지만, 시청자들이 그 과정을 통해 암묵적으로 학습하게 되는 것은 정치 = 돈이라는 교리이다.

 

 

 

더구나 얼마 전 선거 과정에서 야당은 대선 후보 단일화라 과정을 겪었다. 지난한 과정을 통해 어렵게 대통령 후보를 단일화 시켰지만 결과적으로 대통령 후보가 된 사람에게도, 후보를 넘겨준 사람에게도 좋은 평가만을 남기지는 않은 채 대통령을 여당의 후보에게로 넘겨 주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겪은 지가 얼마되지도 않아서, 이제 드라마에서, 야당의 대통령 선거 과정을 들먹이며, 마치 돈만 있으면 대통령 후보 단일화쯤이야 하는 식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하필 하고 많은 사안을 놔두고, 돈을 가지고 단일화라니! 드라마의 내용상 굳이 '단일화'라는 걸 내걸지 않아도 됐는데.

 

드라마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설정을 통해 주다해의 악행을 설명하고자 했지만, 마치 얼마전 구설수에 올랐던 조선시대의 명장 이순신을 주말 드라마 여주인공 이름으로 써서, 노이즈 마케팅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굳이 가져다 쓰지 않아도 될 정치적 사안을 들먹임으로써, 실제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고통을 담보해 냈던 과정을 지극히 '세속적인 딜'의 과정으로 폄하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건 흔히 술자리에서나, 택시를 타면 만날 수 있는 정치에 대한 세속적인 편견, 까짓 결국 돈이야 라던가, 누가 돈을 덜 써서 그랬대라던가, 스폰까지 들먹이는 구설들의 연장 선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정작, 이번 선거를 결정지었던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어설픈 피해의식이 불러온 섣부른 결론에 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주다해의 악행의 도구로 쓰인 '석태일 대통령 후보 단일화'가 씁쓸하다.

by meditator 2013. 3. 20. 11:29

sbs의 드라마 <야왕>이 연일 상승세다. 물론 회에 따른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방영하기만 하면 1등은 '따논 당상'이라는 <마의>와 백중지세에 있는 드라마는 아마도 <야왕>이 처음일 것이다. '대물 야왕전'이라는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야왕은 2012년 오랜만에 복귀해 <옥탑방 왕세자>로서 작가의 저력을 확인시켜준 이희명 작가에 의해 새롭게 각색된 드라마로,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중심에 '악녀' 주다해가 있다.

 

 

대한민국 드라마의 성공 요소 제 1번, 확실한 악녀의 존재

kbs2 의 주말 드라마를 제외하고 인기를 좀 끌었다싶은 드라마치고 '악인 본색'을 확실하게 드러내지 않은 드라마가 거의 없다. 그나마 mbc의 낯을 살려주는 드라마 <백년의 유산>이 무엇인가? 여러 그럴싸한 장치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고부갈등이요, 거기서 '트러블 메이커'는 바로 지극히 비상식적이고 무지막지한 시어머니의 존재요, 그녀의 자기 아들 사랑아닌가 말이다. 작년 최고의 시청률 <해를 품은 달>은 물론, 하반기에 꽤 반응이 좋았던 <착한 남자>, 그리고 심지어 케이블 일일 드라마임에도 인기를 끌었던 <노란 복수초> 조차 말도 안되는 악행으로 치달린 악녀가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에서 인기 좀 끌고 싶다 그러면 가장 손쉽게 쓸 수 있는 도구가 바로 '절대 악녀'이다. 오히려 인기가 좀 있었다 싶은 드라마 중에 그렇지 않은 드라마를 찾는 게 더 쉬울 만큼.

그 옛날 이야기 속 팥쥐 엄마나, 장화 새엄마처럼 드라마 속 여자들은 자신의 욕망에 도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마치 남성은 상식적이며 이성적인데 비해, 여성은 감정적이며 충동적이라는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선입견에 충실히 따라, 드라마 속 여성들은 마치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하면 그곳이 어디든 뒹굴고 절규하는 아이처럼, 씩씩거리며 자신의 것을 향해 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드라마 속 남성들의 욕망이 소외받은 존재의 신분 상승을 통하 자기 실현이라든가, 가족의 원한을 갚기 위한 복수라는 이성적 수단인 반면에, 여성들의 욕망은 대부분 빼앗긴 사랑, 빼앗긴 가족 속의 존재 라는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판단에 근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야왕>의 주다해는 꽤 신선한 캐릭터이다. 주다해는 자신을 위해 헌신한 남자 하류를 버리고 성공을 위해 백산이라는 엘리베이터를 거침없이 올라타고, 외려 버려진 남자 '하류'가 그녀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버둥거리니, 이전 드라마의 남녀 관계가 역전이라도 된 듯하다. 하지만 18회까지 온 <야왕>의 주다해가 제법 그럴 듯한 욕망의 화신인가라고 질문을 던져 보면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질 않는다. 그저 그녀는 욕망의 에스컬레이션을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범죄를 저지르는 '싸이코패스'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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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명 작가의 장기, 악녀 홀릭

그간 이희명 작가의 작품들을 훑어보면,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에는 대부분 '내로라하는' 악녀들이 있었다. 천사의 가면을 쓴 채 엄청난 질투심과 야심을 분출했던 토마토의 디자이너 '윤세라(김지영 분)', 악녀로 인기를 끌어 주연급으로까지 성장한 계기가 되었던 <미스터 Q>의 황주리(송윤아 분), 그리고 최근작으로는 <옥탑방 왕세자>의 홍세나(정유미 분)가 있다. 이들 악녀들은 주인공 못지 않은 '포스'를 내뿜으며 드라마를 지배해 간다. 오죽하면 <옥탑방 왕세자> 당시 '세나의 난'이라고 드라마 시청자들을 뿔나게 할 만큼 <옥탑방 왕세자>를 이끌었던 것이 바로 홍세나의 악행이었다.

악녀의 악행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건 매력적이다. 조금이라도 지루해 지는가 싶으면 바로 리모컨으로 손이 가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악행만한 볼거리가 없으니까. 게다가 대부분의 악인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덮기 위해 또 악행을 저지를 수 밖에 없으니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다 보니 정작 주인공들이 이야기의 외곽으로 밀려나가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된다.

그래서 마치 이번에는 그간 조연으로 밀려나 속시원하게 펼쳐보지 못한 악녀 이야기를 맘껏 해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이희명 작가가 이번에 택한 것은 악녀가 주인공인 <야왕>이다.

그런데 그간 악녀가 이야기를 지배했던 모든 한국 드라마가 그러하듯이 악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야왕>에서 조차 속시원한 악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려지는 것은 그저 수없이 되풀이되는 악행뿐이다. 아이가 죽어도, 그래도 한때 같이 살았던 남자가 죽어도 잠시 눈물을 흘리고 다시 또 사건을 벌이는 주다해를 보며, 그녀가 또 무슨 일을 어떻게 벌일까 궁금해지기는 해도, 굳이 대통령 영부인까지 넘보는 그녀의 욕망을 이해하게 되지는 않는다. 사건은 있되, 그 속에 사람은 없달까.

<야왕>이란 드라마가 끝나고 주다해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욕망의 화신으로 오래 자리 잡을까?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하루의 피로를 피튀기는 게임 한 판으로 날리듯, 주다해의 악행을 보며 던진 욕의 배설로 그저 끝나는 드라마이기가 쉽지 않을까. <해를 품은 달>이나 <착한 남자>를 이제 좋은 드라마로 기억하지 않듯이. 문제는 이런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면 끌수록 되풀이 되는 악행처럼,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문 악행에 의존한 드라마들만 양산된다는 사실이다.

by meditator 2013. 3. 13. 11:31

한때는 아이돌을 드라마에 넣는 것이 큰 화젯거리였던 적도 있었지만 이젠 드라마에 아이돌 한 둘쯤 들어가는 건 예사인 시대가 되었다. 오히려 아이돌이 투입되지 않은 드라마가 그걸 가지고 기사화시킬 정도로 연기란 아이돌이 해야 할 수많은 선택 중 가장 용이한 선택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대세인 흐름과 달리 드라마 속 그들은 여전히 툭 불거진 채 드라마의 흐름을 깨는 경우가 빈번하다. 끼워넣기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대세는 되었지만 아이돌의 명망을 뛰어넘는 연기자는 막상 쉽게 조우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리스2의 시청률이 자꾸 떨어지는 이유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였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 <아이리스2>가 안타깝게도 이번 주 드디어 시청률 한 자리대로 떨어졌다. kbs측은 떨어지는 <아이리스2>에게 꺽인 날개가 홍보라고 생각한 듯 지난 주 일요일 <다큐3일> 시간에 창사 특집이라며 <아이리스2>의 제작 과정을 보여 주었다.

다큐는 진실했으며 고생하는 배우들의 면면을 보자니 굳이 이범수의 시청률이 아니라 전 스태프들의 노력의 결과로 인정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그 말이 아니라도 <아이리스2>를 보고 싶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럼 뭐하겠는가? 그 다큐를 보고 마음이 울려 <아이리스2>로 채널을 돌린 시청자 중 과연 몇 명이나 30분을 넘길 수 있었겠는가?

 

 

이번 주 수요일에 방영된 <아이리스2>는 시작과 동시에 비스트의 멤버, 그리고 <아이리스2>에서 서현우 요원 역을 맡은 윤두준의 사랑 놀이가 한동안 방영되었다. ppl이 분명해 보이는 제과점에 레스토랑에 심지어 놀이공원까지, 주인공인 정유건 역의 장혁도 해보지 못한 온갖 낭만적인 상황의 주인공이 바로 윤두준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윤두준 차례가 끝나자, 이번엔 엠블랙의 이준 차례였다. 뜬금없이 신입 요원들이랑 도복을 입고 힘겨루기를 했다. 뻔히 이준을 배려한 분량 챙기기였다.

그걸 보자니, 저절로 한탄이 새어 나왔다. 지금 <아이리스2>가 그렇게 여유있게 아이돌 챙겨줄 처지인가? 라고. <풀 하우스>에서 젊은 남자 가수를 데려다가 좋은 호응을 얻었던 표민수 피디에겐 여전히 아이돌 가수에 대한 환타지가 남아있기라도 하는 건지.

정유건이 기억을 잃은 채 켄이라는 아이리스의 킬러로 활동하는 상황임에도 여전히 극의 주도적 흐름은 nss요원들이 중심이 되어 끌고 간다. 이범수 쪽이나, 레이 쪽의 비중이나 파급력이 결정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이렇게 남자 주인공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놓은 상황에서 nss를 이끄는 것이 바로 아이돌 출신의 배우들이요, 그 중에서도 정유건을 대신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윤두준이다.

지수연 역의 이다해는 사실상 nss 팀장이라고 하더라도 '오로지 정유건'에 대한 상실감과 그를 되찾기 위한 열정으로 인해 nss의 활동과 흐름을 달리 한다.

그러고 보니 상사와의 지휘 체계도 윤두준을 통해서요, 정유건이 없는 틈을 타서 '꿩 대신 닭이 되어보려는' 사랑 이야기도 윤두준이다. 즉, 엄밀하게 지금의 nss의 실질적 리더는 윤두준이어야 하는 건데, 아쉽게도 배우 윤두준에게 그런 존재감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이범수의 반전'이라며 화제를 만들려 해도 이야기는 뻔해 보이는데, 그걸 끌고가는 배우의 연기 조차도 설득력이 없으니 그걸 참아낼 진득한 시청자가 몇 명이나 있겠는가 말이다.

 

 

 

장미인애 사용 설명서

얼마 전 인터뷰를 한 <옥탑방 왕세자>의 신윤섭 피디는 '연기는 타고나는'면이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탑스타라고 하는 배우들도 여전히 '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데 '아이돌'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이 공정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오랜 훈련도 없이 그 자리에서 그 배역을 하게 된 것은 그들이 '아이돌 출신'이기에 가능한 일이므로 연기를 하는 한에서 불가피하게 따라다닐 수 밖에 없는 이름표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그런 흐름이 대세가 되어간다면, 하지만 극중에 투입된 아이돌들이 함량 미달이라면 시청자들의 인내를 시험할 것이 아니라 제작진의 운영의 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2012년 말에 방영된 <보고싶다>는 그런 의미에서 모범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드라마에서 문제가 된 인물은 '아이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남자 주인공 박유천이 아이돌이었고, 그의 에이전시가 그와 함께 '끼워넣어' 팬들의 반대 서명 해프닝까지 불러 온 인물을 배우 장미인애 였다.

장미인애가 맡은 역할은 애초의 시놉시스 상 죽은 김형사의 딸로 한정우와 같은 집에서 지내며 한정우를 짝사랑하는 꽤나 비중있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장미인애는 그전에 출연했던 아침 드라마에서 연기력 부족으로 주인공이었지만 결국 비중까지 조연 이하로 줄어든 검증되지 않은 연기력의 배우였다.

그런데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막상 <보고싶다>가 방영되었을 때 장미인애의 연기력으로 인한 논란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설정상 비중있는 조연이었던 '김은주'는 마치 황금율이라도 되는 듯이, 한 회에 한 씬 이상을 등장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절대 그 씬을 이끄는 적이 없이. 장미인애 개인으로 보면 안타까웠을 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드라마도 살고 배우도 크게 욕먹지 않고 끝낸 현명한 처사였다고 본다.

 

 

<야왕>의 백도훈 역의 유노윤호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주다해와 결혼을 한 '백학' 그룹의 왕세자 백도훈은 <야왕>이란 드라마에서 꽤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에서 백도훈은 언제나 극의 언저리에서 빙빙 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주 화요일 <야왕>에서 주다해의 비밀을 알게 된 백도훈이 절규를 하는데, 가장 비극적이어야 할 순간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삼켜야 했듯이, 백도훈 역의 유노윤호는 꽤 나아졌다고 하지만 이 사람을 아이돌 이상의 '배우'라 칭해주기에는 여전히 함량 미달인 것이다. 하지만 <야왕>이란 드라마에서 그의 존재감이 거의 없다보니, 이 드라마의 시청률에 해가 되지는 않고 있다.

물론, <보고싶다>의 김은주가, 그리고 <야왕>의 백도훈이 원래 시놉대로 잘 연기할 수 있는 배우들에게 돌아갔다면 우리는 더 좋은 드라마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수출 산업'이 되고, '제작 환경'이 핑계가 되는 세상에서 이제는 '하지마라'가 아니라 그나마 '운영의 묘'라도 살려보라고 말하는 것이 '최선'이 되었다. <아이리스2>의 제작진 역시 '운영의 묘'를 더 늦기 전에, '운영의 묘'를 살리기 바란다.

by meditator 2013. 3. 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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