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sbs는 지난 해 신년 특집으로 <엄마의 전쟁 3부작>을 내보낸 데 이어 2017년 신년 특집으로 <아빠의 전쟁 3부작>을 마련했다. 전개 방식은 유사하다. 이상한 나라의 나쁜 엄마들이 되어버린 이 시대의 엄마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모색해보던 그 방식을 <아빠의 전쟁>에서도 동일하게 차용한다. 1부에서 문제 아빠들의 사례를 모아보고, 2부에서 그 해법을 마련하고, 3부에서 대안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구성이다.
지난 해 <엄마의 전쟁>에서도 다큐의 사례 중 등장한 이른바 '나쁜 엄마'의 사례를 놓고 인터넷 게시판은 갑론을박으로 뜨거워졌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특히나 2부에서 등장한 이벤트성 아빠와의 저녁 식사 해법이 방영되자, 방송인 조영구 씨네의 방영분을 놓고, '차라리 혼자 사는게 낫다'는 난상토론이 이어졌다. '가족'의 일부이기도 어색한 아빠, 차라리 혼자 사는게 편하다는 아빠, 그럼에도 부득불 가장의 짐을 짊어지고 가는 아빠, 이 시대의 아빠, sbs스페셜이 지켜본 아빠가 도대체 어땠길래?
아름다운 야경을 가진 나라, 대한민국,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요인이 야근을 하느라 건물마다 밝혀진 불빛이라면? 다큐의 시작은 OECD 36개국 중 두번 째로 긴 노동시간, 일과 삶의 균형 지수 끝에서 3번째인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있는 가장들, 아빠의 삶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평균 하루 6분, 저녁이 사라진 시대, 아빠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냥 없어졌으면 좋겠는 아빠
다큐가 들여다 본 아빠, 그 첫 번 째,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한다는 국제 중학교에 입학한 딸, 하지만 그 딸은 핸드폰에서 아빠의 번호를 지워버렸다. 아빠와 눈이 마주치기는 커녕 벌레보듯 피한다. 딸은 지난 5월의 사건을 원망스레 말하지만 아빠의 기억엔 그 날이 없다. 다른 아빠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방송인 조영구씨도 바쁜 스케줄에 가정을 돌볼 새가 없다. 어느새 아들과 엄마만의 라이프 사이클과 아빠 조영구씨의 라이프 사이클은 엇물린 지 오래다.
젊은 아빠라고 나을까? 어린 아들을 둔 인천 공항 직원 부부, 삼교대 근무인 이들 부부의 만남은 아이 돌보기 육아 근무 교대식이다. 혹여 늦을까 아기띠를 둘러매고 공항에서 종종거리다 겨우 시간에 맞춰 아이를 근무가 끝난 상대에게 맡기고 다시 종종거리며 가는 일상, 연가와 휴가, 근무 그 모두는 아이 육아를 위한 돌려막기이다. 밤을 새고 돌아온 아빠는 밀린 잠 대신 아이를 돌봐야 한다.
1부에서 보여진 이 시대의 아빠들, 좀 젊어서 아이를 함께 키운다 싶으면 그 육아에 치이거나, 그도 아니면 아이를 볼 시간도 없이 직장 업무에 쫓기거나, 아이가 철 들기 시작하면 아이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제대로 아빠 노릇을 하지 못하거나, 할 시간이 없다.
2부에서 한 달간 아빠와의 저녁 식사라는 이벤트를 통해 풀어보려 하지만 쉽게 풀리기는 커녕 오히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관계를 악화시키기조차 할 정도로 쉬이 해소되지 않은 가족 문제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아빠들은 바쁘다. 2부에서 한 직장의 두 직장인을 실험 삼아 정시 퇴근을 하도록 만들었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음 날 더 일찍 출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 직장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3부 스웨덴의 아빠들과의 비교 사례에서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하루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6분이라는 사실에 믿기 힘들어 하는 모습에 대비되듯, 대한민국 아빠들은 '일'에 대한 강박으로 젊은 시절을 보낸다.
돈을 벌어야 하기에 자신이 좋다는 아이를 밀어냈던 아빠. 당연히 그 상처의 댓가는 철든 아이의 외면이나, 냉랭한 대응이다. 아빠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항변하지만,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아이의 트라우마는 좀처럼 해소되기 힘들다.
하지만 과연 열심히 일했다는 것만이 유일한 호소가 될까? 아빠를 벌레보듯 피하는 딸, 그리고 아빠의 말끝마다 톡톡 쏘아대는 딸의 버릇없음을 따지고 들어가니, 거기엔 '가장'이란 이름의 '독재자'가 등장한다. 하루 종일 돈을 버느라 힘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집에 돌아와 '감정을 고스란히 배설'했던 기억은 이제 아이들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아니 아빠들도 억울할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아빠들이 보고 자라온 아빠들이 그랬으니깐. 아빠들의 아버지들은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면 집안에서 독재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 그렇게 하면 되려니 했지만, 이제 아빠들은 밖에나가 돈을 버는 것도, 가정에서 아빠로 대접받는 것도 그 어느 것도 호락호락하지 않는 시대에 힘들어 한다.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건 아빠가 아니다.
그 해법을 찾기 위해 다큐가 선택한 건 뜻밖에도 외국행이다. 복지 천국이라는 스웨덴으로 젊은 아빠 윤상현이 떠난다. 그곳에서 만난 라떼 파파들, 육아 휴직 중에 커피 한 잔을 들고 유모차를 끌고 여유를 즐기는 아빠, 라떼 파파를 만난 윤상현은 묻는다. 당신들은 어떻게 그리 살 수 있냐고.
뜻밖에도 돌아온 대답은 그저 부러운 외국 사례가 아니다. 스웨덴도 아이를 돌보며 행복한 여유를 즐기는 라떼 파파가 등장한 것이 불과 20여년 내외에 불과하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거리에서 만난 라떼 파파의 아버지들은 우리나라의 아버지들처럼 살았다고 한다. 그 일벌레 아빠들의 악순환을 깬 것은 아빠들이 아니라, 정부와 제도였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분명 아빠들의 육아 휴직이 존재한다. 하지만 육아 휴직의 급여는 40%, 그 정도를 가지고는 아이를 돌보며 생활하는 건 불가능하다. 더구나, 아빠 외벌이 가정이라면 더더욱.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육아 휴직을 했을 경우 당하는 불이익이다. 대부분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육아 휴직 이후 직장 내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심하면 권고 사직을 당하는 현실에서 가정을 책임지는 아빠의 육아 휴직이라니!
스웨덴은 국가가 나서서 이런 부조리한 제도를 척결했다. 육아 휴직 수당의 부족분을 국가가 충당하여, 아빠들은 육아 휴직 기간에도 경제적 곤란함을 겪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육아 휴직을 했다고 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그것이 지켜진다. 거기에 육아를 하는 부모를 위한 오픈 어린이집에서 극장까지 다양한 문화적 배려가 마련된다. 이런 제도적 뒷받침 위에 비로소 아이의 성장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아빠들의 선택이 뒤따른다. 그리고 그런 아빠들의 다른 삶이 아빠만 생각하면 술, 담배, TV 대신 하트 뿅뿅이 난무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끌어내는 것이다.
여성들이 가장 살기 좋다는 스웨덴보다 한 술 더 뜨는 건 가장 적은 노동 시간을 자랑하는 독일이다. 최고의 컨디션에서 최상의 노동이 나온다는 생각을 가진 독일의 회사는 아픈 직원이 출근하면 오히려 힐난을 듣는 분위기다. 불경기를 맞이하면 직원을 자르는 대신, 노동 시간을 줄여 모두가 조금씩 그 부담을 나눠지고 가는 것이 관례가 되고, 제도가 된 나라. 그곳의 아빠들은 장기간 노동 대신, 너무 긴 휴가 계획이 고민이다.
결국 스웨덴과 독일의 사례를 통해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 전쟁의 책임이 '아빠'들 개인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와 제도가 달라져야 아빠들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강변한다. 야근과 특근을 해야만 수당으로 적정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사회에선 아빠 노릇은 용기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정시 퇴근에 적정 임금이 된다면? 다큐는 회의적으로 답한다. 아마도 아빠들은 정시 퇴근 후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설지도 모른다고. 아이 한 명을 대학까지 보내기 위해 갖가지 과외 활동비까지 3억을 훨씬 웃도는 돈이 필요한 대한민국에서 정시 퇴근이 법적으로 정해진다면 아마도 아빠들은 또 돈을 벌러 거리로 나서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2016 <엄마의 전쟁>이 가족 간의 관계 해소를 위한 노력에 방점을 두었다면, 2017 <아빠의 전쟁>은 그 방점이 사회와 제도에 찍힌 만큼, 그 해소는 난망이다. 이미 IMF 등을 겪으며 경제적 공포가 내재화된 우리 사회의 아빠들, 그 아빠들은 가족들의 원망을 들으면서도 '돈'에 대한 강박을 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사회는 그런 아빠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경쟁과 불안을 고도화시키고 있다. 거기에 변화되는 가족 관계, 고착화된 가부장 의식이 가정을 위기로 내몬다. 쉬이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아빠의 전쟁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2017년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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