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 오프 야구의 마지막 경기, 하지만 야구를 즐기지 않는 누군가라면 드라마로 리모컨의 향방이 향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kbs2의 <미래의 선택>과 sbs의 <수상한 가정부>중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사극 매니아들의 <불의 여신 정이>가 야구로 인해 결방하고, 아직은 낯설은 그리고 대놓고 cg로 만화 캐릭터까지 들이밀며 로맨틱 코미디임을 표방하는 <미래의 선택>이 낯설다면, 결국 선택은 <수상한 가정부>의 몫이다. 그 덕분인지, <수상한 가정부>의 전주에 비해 상당히 높은 향상을 보였다. (닐슨 전국10.6%, 서울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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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7회,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스스로 죽을 용기가 없으니 자신을 죽여달라며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고 절규하는 맏딸 한결이의 해프닝은 이목을 끌 만큼 충분히 충격적이다. 더구나, 그에 이은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해 보라며, 자신이 죽은 후 자신을 위해 슬퍼해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죽어도 된다는 가정부 박복녀의 해법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실제 부모의 이혼이나, 부모 사이의 불화를 두고, 자녀들의 경우, 생각 외로 그 탓을 자기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다는 조사 결과로 보았을 때, 자신을 임신하는 바람에 아버지와 결혼하게 된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던 아버지로 이루어진 가정의 원죄를 한결이가 자신에게 돌리는 이유는 충분히 공감이 갔다. 어머니의 죽음이후, 뻥튀기처럼 뿜어져 나온, 하지만 그저 수상하고 낯설기만 하던 한결이네 가족 이야기들이, 조금씩 조금씩 우리네 가족의 고민거리 속으로 들이밀어 진다. 
물론, 한결이네 가족이 뿜어내는 각양각색의 사건들은 가장 현대 가족의 시금석이 될 문제꺼리들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자살에 이어, 아버지의 불륜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실제 많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가족 지상주의' 대한민국에선 선뜻 인정하기 힘든 사실들이다. 더구나 여전히 가부장적인 잔재가 흠씬 남아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다고 아버지를 내쫓거나, 남자 친구를 사귀자마자, 그 아이랑 자느니 마느니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청소년은 대놓고 공감할 수 없는 '사실'들이다. 

그러던 <수상한 가정부>가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그 방법을 가정부 박복녀에게 묻고, 부모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자식이 망가지는 것이라는 대답에 그 말을 실행하기 위해 남자 친구와 밤을 보내고, 가출을 감행하는 한결이의 반항에 들어서면서 공감의 밀도는 한결 짙어져 간다. 뿐만 아니라, 한결이네 가족 문제와 맞물려 조금씩 풀려나가는 박복녀의 비밀들이 다음을 기약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상한 가정부>가 일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듯이, 현대 가족이 지니는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그 해결 역시 감동적으로 끌고나가는 전체적인 틀이라는 점에서는 동의는 하지만, 과연 지금 여기서 그것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여전한 의문을 남길 수 밖에 없다. <사랑과 전쟁>의 에피소드 들을 실감나게 보면서, 그것들이 다른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면 '막장'이라고 규정하는 묘한 이중 잣대가 여전한 것이다. 


게다가 <수상한 가정부>의 박복녀 식 해법은 결코 에돌아 가지 않는 직문직답이다.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하면, 망가지는 것이라 답해주는 식이다. 이런 방식의 해법은 드라마에서 보듯이, 꼭 한결이의 가출, 외박, 심지어 자살시도처럼 극단적인 수순을 밟아, 가족의 화해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런 식의 문제 해결 방식은 <여왕의 교실>에서 마여진 선생의 방식과 동일하다. 자율성있는 아이들로 키우기 위해, 가장 타율적인, 그리고 죽자고 공부에만 매달리게 했던 역설적 해법이다.
그런데, <여왕의 교실>이 상대적으로 낮은 시청률 추이를 보았을 때, 그런 충격 요법이 우리


나라 현실을 제대로 그려냄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이 공감의 정도에서는 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비슷한 양식의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 하면서, <수상한 가정부>는 그런 <

여왕의 교실>의 여러 결과물들을 전혀 반면교사로 삼지 못한 채 진행시키고 있다. 


심지어, 한 술 더떠, 2013년 동안 리메이크 되었던 일본 드라마 중 가장 원작의 색채를 그대


로 드러낸다. 각 에피소드 별 해법이 빈번하게 폭력과 죽음으로 치닫는 방식도 극단적이다. 


극단적 선택이나 죽음을 통해 정반대의 결과에 도달하는 방식은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최고'라는 현실적이고 낙천적인 한국인의 정서랑 어긋난다. 


그래서 아쉽다. 조금 더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는 각색을 했었더라면 하는.

박복녀의 복색이나, 말투를 그대로 따라한 것은 이제와 새삼 또 지적하는 것조차 입 아픈 일

이다. 하지만, 최지우라는 배우에 맞는 박복녀로 재탄생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매번 드라마를 볼때마다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제 아무리 최지우가 노력을 한다 해도, 대중들에게 각인된 최지우는 여전히 멜로드라마의 

가련한 여주인공이다. 선덕여왕에서 이미 신라를 쥐락펴락하던 카리스마를 발산했던 미실

의 고현정도, 그 등장만으로도 스크린을 꽉 채우는 김혜수가 아닌 것이다. 최지우의 매력은 

그녀의 가녀린 몸매와, 우수에 젖은 얼굴에서 품어져 나오는 비련의 아우라인 것이다. 그저 

일본 여배우가 했듯이 딱딱한 대사를 흉내내는 듯한 말투가 아니라, 최지우스러운 사연있는 

대사였다면 <수상한 가정부>는 훨씬 더 보고싶은 비밀을 간직한 드라마가 되었을 듯 싶다. 



이미 중반에 들어선 <수상한 가정부>가 궤도를 수정하기엔 늦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 더 섬세하게, 우리의 정서와, 우리의 상황, 그리고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를 배려한 대

본과 연출이 된다면, <수상한 가정부>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유종지미'를 거둘 수 있

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그 유종지미를 거둘 수 있는 가장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

다. 


by meditator 2013. 10. 15. 10:18

'가정부 박복녀입니다',

라는 대사를 듣는 순간, <직장의 신>의 '미스 김입니다'란 대사가 떠올랐다.
'명령이십니까' 란 대사를 듣는 순간, '이게 너희가 원하는 거니?'라는 <여왕의 교실> 마여진 선생님의 반문이 떠올랐다. 
제 아무리 좋은 거라도 한번이 두번이 될 때까지는 끄덕끄덕 하더라도, 세 번 째가 되면 고개가 좀 갸웃해지듯이, <수상한 가정부>를 처음 맞닦뜨리는 감상이 딱 그렇다. 
무표정한 얼굴에, 인간미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보기 힘들어 보이는, 시키는 일이면 '살인'까지도 해줄 지도 모른다는 박복녀가 이젠 낯설지도 않다. <직장의 신> 미스 김도 처음엔 그랬고, <여왕의 교실> 마여진 선생님도 처음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듯이 그랬으니까. 심지어 대사만 다를 뿐, 대사치는 방식까지도 비슷할 뿐더러, 처음 등장할 때 무시무시하게 분위기를 잡으며 발걸음부터 등장하는 장면조차 비슷하다. 
그래서 그녀가 누구인지 궁금해지는게 아니라, <수상한 가정부>의 박복녀도 미스 김처럼, 마여진 선생님처럼, 역설적인 캐릭터려니 하게 된다. 이러다 아예, 이상하고 기세게 등장해서, 그 누구보다도 휴머니틱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장르가 생겨나는 거 아냐? 란 생각까지 들게 되는 것이다. 

(노컷 연예 뉴스)

<직장의 신>, <여왕의 교실>, 그리고 <수상한 가정부>는 굳이 원작을 거론할 필요조차 없이,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작들이다. 소재는 '직장'과, '교육 현장', '가정'으로 다르지만, 모두, 소재가 되는 그 직장과, 교육 현장과 가정의 지니고 있는 모순된 현실을 역설적 캐릭터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하지만, 각각의 드라마는 그 드라마가 채택하고 있는 모순이 처하고 있는 사회적 지점에 따라, 공감도와 폭발력에 차이를 가져왔고, 가져올 것이다.

<직장의 신>은 그 드라마가 방영되는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던, '갑과 을'이라는 사회적 모순이 드라마의 내적 갈등과 맞물려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분명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리메이크 한 것이지만, <직장의 신>은 그 중에서도 '갑과 을'이라는 우리나라의 모순에 좀 더 촛점을 맞춰 드라마를 새롭게 각색하여 성공을 이끌어 냈다. 분명 일본 역시 버블 경제 뒤에 많은 '파견직'들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의 신분제도가 되어버리다시피한 '갑과 을'과는 감정적 고통이나, 일의 스트레스가 차이가 나는데, 드라마는 한국의 '그것'을 제대로 잘 살려 냄으로써 공감을 얻어낸 것이다.

반면 <여왕의 교실>을 초반부터 발목을 잡은 것은  <직장의 신>이 해낸 바로 그 지점이다. <여왕의 교실>이 지니는 문제 의식이 한국 교육 현실과 결코 어긋나지 않는 정당한 문제 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왕의 교실>의 문제 제기 방식과 해결 방식들이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공감의 감정으로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여왕의 교실>의 교실이 한국 상황의 초등학교 교실에 어울리는 설정인 것인가가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제기가 되었다. 물론 이미 우리나라도 '국제중' 등이 들어서며 총등학교부터 스펙 쌓기와 입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그런 것인가에는 의문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수상한 가정부>의 세째 아들 역시 똑같이 국제중 입시를 들먹인다) 오히려 <여왕의 교실> 정도의 센 문제 제기 수준이라면, 한국에서는 초등학생보다는 중학생에 어울리지 않겠냐는 지적이 줄곧 나왔던 것이다. 
또 하나, <여왕의 교실>에서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바로 콕 찝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딘가 우리의 감정적 정서와는 비끄러지는 집단적 분위기였다. 교실에서 누구 하나가 일어서서 뭐라고 하면 다른 아이들이 하나씩 나서서 말을 보태고, 결국은 다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식의, 집단적 정서가 늘 보는 사람들을 어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일본 드라마다운 클리셰이다. 일본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은 늘 어떤 결론에 도달할라치면 삥 둘러가며 나도 사실은 이렇게 생각했다는 식으로 한 마디씩 보태고 결국 다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교훈적 결론에 도달해 간다. 

그리고 이제 <수상한 가정부>는 아직 한 회에 불과해 섣부를 수도 있겠지만, 앞서 두 작품 중 굳이 비교하자면, <여왕의 교실>의 스타일을 따라가는 듯하다. 
박복녀는 가족들이 무엇을 해달라고 하면, 늘 반문한다. '명령입니까?' 라고, 명령, 그것은 군대나, 관공서에서 쓰이는 용어다. 가족 내에서 어떤 일을 하라고 할 때 명령이란 말을 쓰지는 않는다. 드라마는 '살인'도 불사할 수 있는 박복녀라는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명령입니까?'에는 일본어 통번역의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렇듯 이 드라마는 단 1회지만, 일본 드라마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일본 드라마 <가정부 미타>의 복장은 당연하다. 집안에서 일하는 복장이야 그렇다 치고, 그녀가 밖으로 돌아다닐 때 입는 '파카'까지 똑같을 필요가 있었을까? 심지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한옥의 창호지 창살 배경조차, 일본식 가옥의 그것을 그대로 흉내내기 위해 가져다 놓은 것 같다. 
그보다 더 어색했던 것은, 1회의 마지막 부분, 엄마의 물건을 버리느냐 마느냐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 다같이 돌아가며 난 지금 이렇게 힘들다며 자신의 감정을 토해놓는 씬이다.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럴까? 지금 엄마의 옷이 불붙어 타고 있는데, 그걸 앞에 놔두고 제각기 돌아가며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고 있을까?  <수상한 가정부>의 많은 장면들이 굳이 일본 드라마를 찾아보지 않아도, 아, 일본 원작에서는 어땠을 것이라는 게 너무도 연상이 된다. 



직장 내의 계약직과 '갑과 을'의 문제는 시기적절하기도 했지만 신선했기에 <직장의 신>은 그만큼의 관심을 얻었다. <여왕의 교실>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날이 서있고 직설적이었지만, 한편에서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기에, 그저 좋은 문제 의식을 가진 드라마로 남게 되었다. <수상한 가정부>는 어떨까? 아침 드라마에서부터, 주말 드라마까지 온통 가정 문제로 넘쳐나는 상황에서, 미스 김같은, 마여진 선생님같은, 능력자가 과연 시청자들의 마음을 또 얻어 갈 수 있을 지는 장담하기 어려울 듯하다. 
늘 멜로만 하던 최지우라는 배우의 연기 변신은 의욕적이지만, 과연, '가정부'라는 이질적 존재의 해결사를 사람들이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일 지 역시 미지수이다. 
그보다는 벌써 세 번 째에 도달한 리메이크라기에도 낯 부끄러운 아예 통째로 베껴대는 방식의 리메이크가 다시 또 먹힐 지가 가장 궁금하다. 마치 파닭이 유행하면 너도 나도 파닭집을 열어 다같이 망해버리는 우리나라 특유의 상술을 드라마 판에서도 보는 듯하여 씁쓸하다. 
 



by meditator 2013. 9. 2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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