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새로이 시작한 sbs수목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의 첫 회를 장식한 것은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를 찜쪄 먹을 만한 망나니 일호 그룹의 후계자 남규만의 범죄로 시작된다. 시작은 회사에 출근하는 그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직원들 중 그 수그리는 각도가 맘에 들지 않았던, 자기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 직원에게 다가가 강제로 머리를 조아리게 만드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그 막돼먹은 행동 뒤로 흐르는 박동호(박성웅 분)의 그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는 망나니 재벌 아들 남규만에 대한 나레이션. 그리고 그 나레이션에 걸맞게 친구 안수범(이시언 분)을 들었다놨다 하며 막대하더니, 유럽에서 묵었던 체증을 풀기 위해 고위층 자제들을 모아 환락의 파티를 연다. 그리고 그저 아르바이트 삼아 그곳에서 노래 몇 곡을 부르기 위해 찾아간 오정아(한보배 분)에게 추파를 던지는데.......


다음 장면은 얼굴과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싸늘하게 식어가는 오정아의 시체이다. 시청자들은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이 살해 사건이 남규만의 짓이거나, 그가 연관되어 있음을 감지한다. 그리고 억울하게 오정아를 발견했지만 기억을 잃었다는 이유로 서진우(유승호 분)의 아버지 서재혁(전광렬 분)이 전국민적 관심이 쏟아진 이 사건의 다급한 종료를 위한 희생양이 된다. 



클리셰가 되어가는 부도덕한 재벌과 권력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사건의 시작은 <베테랑>의 부도덕한 재벌 아들 조태오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배기사 투신 사건과 흡사하다. 평범한 시민, 물론 <베테랑>에서는 화물연대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부당해고를 당해 1인 시위를 한 트럭 기사라는 '노동 쟁위' 행위가 있지만, 그를 대하는 조태오의 태도는,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프랑스어를 하도 들어 신물이 난다며 트로트를 부르라며 패악을 떠는 남규만의 태도와 그리 다르지 않다. 그저 이 둘은 자신이 가는 길에 자신의 발에 걸린 돌멩이를 치우듯, 배기사를 그리고 오정아를 치워버린다. 

그리고 이후 오정아의 살인 사건을 서재혁의 범죄로 만들어 가는 과정은 여전히 그 열기가 식을 줄 모르는 <내부자들>의 법 커넥션을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자신의 입신양명만을 목적으로 하는 검사 홍무석(엄효섭 분)은 형사들을 윽박지르고 협박하고, 형사들은 <내부자들>의 조상무(조우진 분)처럼 해결사 역할을 자처한다. 공정해야 할 법은 누군가 성공의 발판을 위해, 혹은 대중들의 마음을 현혹시키는 도구가 되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법을 예단한다. 법전의 법은 공정할 지모르나 대한민국 권력 커넥션에 종속된 체계 검찰은 부도덕하다. 

그렇게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들의 '악'을 모사하다시피한다. 남규만의 망나니짓이나, 패악을 보면 영화 <베테랑>을 본 사람이면 자연스레 조태오를 떠오리게 하고, 역을 맡은 남궁민은 혹시나 조태오에 못미칠까 얼굴 한번 바꾸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재벌가의 망나니 역을 열연한다. 아니 남궁민만이 아니다. 최근 tv와 영화 속 등장하는 재벌들은 그들이 로코 속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면 하나같이 조태오 부류이다. 인기리에 방송되는 주말과 아침 드라마 속 악의 근원들은 대부분 '부도덕한' 그들이다. 그들에게는 애초에 인간적 지각이라는 것이 없는 듯,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란 말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온갖 패악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들의 패악은 <내부자들>의 섹스 파티에서 재벌이 나누어 주는 성과 환락에 기꺼이 감읍하는 정치인들과 언론, 검찰들에 의해 덮어지고, 누군가 억울한 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오히려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속 끝까지 정의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던 경찰들이 어색할 정도로. 





나쁜 재벌이어서 나쁜 게 아니라, -사는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듯
그런데 여기서 문득 누가 더 나쁜 놈일까? 경쟁이라도 하듯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향연을 벌이는 나쁜 재벌과 권력들을 보면서 하나의 질문이 떠오르게 된다. 과연 그들이 재벌이어서 나쁜 것일까? 나쁜 재벌이라서 나쁜 것일까? 라는.

그도 그럴 것이 똑같은 재벌인데, 로코 속 재벌들은 사랑의 화신이며, 가난하고 보잘 것없는 여주인공을 구원해주는 백마탄 왕자이다. 그런 그들이 막장 드라마나, 사회 비판적 시선을 가진 드라마나 영화 속으로 가면 세상에 둘도 없는 나쁜 놈이 된다. 그리고 시청자나 관객들은 똑같은 재벌인데 이 사람에게는 절대 호응을 보내다가, 저 사람에게는 손가락질을 하고 욕을 한다. 결국, 나쁜 놈이라서 나쁜 것일까? 조태오가 광란의 섹스 파티를 벌이는 대신, 뚱뚱한 여주인공에게 순애보라도 펼치면 연민을 가질 것인가? 

최근 tv와 영화 속 부도덕하게 등장하는 재벌이나 권력들은 부의 극단적 집중과, 그 집중을 통제하지 못한 채 거기에 무장해제되어버리거나, 예속화된 한국 사회의 실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심지어, 한국 사회의 재벌이란 일찌기 해방 이래 원시적 축적의 과정에서부터, 독재 정권을 건너, 이제 신자유주의의 정점에 이르기까지, 따지고 보면 정의롭거나 도덕적으로 작동한 적이 없기에, 작품 속 그들의 패악이 해를 거듭할 수록 극심해 지는 건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최근 범람하고 있는 도덕의 아노미, 그 상징체로 등장하는 재벌과 권력들을 보며, 그리고 그들의 부도덕을 욕받이로 쉽게 차용하는 서사 콘텐츠들을 보며, '분노'의 과녁이 왜곡되어 가는 건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 드는 것이다. 과녁은 그들의 '부도덕'이 아니라, 그들 자체이니까. 

땅콩 항공 사건에서 보여졌던 분노의 파도처럼, 튀어나온 돌처럼 '부도덕'이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형상화되는 재벌을 사회적 분노 대신 한풀이처럼 소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지금의 우리 사회는 나쁜 재벌이어서 나쁜 것이 아니라, 재벌이어서 그들에게로 온 사회적 부의 초 집중 현상이 나쁜 것인데, 마치 그들의 부도덕함이라는 한 현상에 '분노'의 촛점을 맞춤으로써 오히려 역설적으로, 본질적 분노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아쉬움이다. 즉, 조태오가 나쁜 것은, 그리고 남규만이 나쁜 것은 그들이 개인적으로 부도덕한 망나니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음서'처럼 자리 잡아 가는 대한민국의 부의 승계 카르텔 속의 인물이기 때문인 것이다. 검찰과 언론의 부도덕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되풀이 되는 부도덕한 인물로써 재벌의 클리셰는 그 촛점에 혼돈을 가져올 수 있으며, 그저 액박이로 대중들의 근본적 분노를 희화화시키는 결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송곳> 속 구고신의 대사, '사는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그 구조적 진리를 '부도덕'의 허울 아래 쉽게 소비하고 있다. 

by meditator 2015. 12. 1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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