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12회, 함께 여행을 떠난 혜원(김희애 분)과 선재(유아인 분), 선재는 혜원을 위해 음악 어플을 다운받아주고, 친절하게 혜원이 좋아할 만한 90년대 음악까지 다운받아준다. 그런 선재에게 혜원은 말한다. 자신은 그 시절에 유행하던 음악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고. 대신 혜원이 선재에게 들려달라고 했던 음악은 혜원도, 선재도 태어나기 전의 음악이라는 1973년에 발표한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이다. 피아노를 통해 교감을 이루고, 그 교감을 바탕으로 사랑으로 맺어진 이들에게, 세대를 초월한 [피아노맨]만큼 적절한 음악은 없을 것이다.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을 들으며 선재는 그 노래에 심취하고, 혜원은 조용히 오열한다. 

하루 전날 방영된 <마녀의 연애>3회에서 반지연(엄정화 분)과 윤동하(박서준 분) 역시 음악을 논한다. 반지연이 자신이 좋아하던 변진섭의 '희망 사항'을 불러주지만 윤동하는 그 노래를 모른다. 이어서 반지연이 '다섯손가락'의 '풍선'을 부르자, 윤동하는 그건 '동방신기'의 노래라고 답한다. 겨우 서로 아는 노랜가 싶어 함께 부르기 시작한 '붉은 노을'을 반지연은 '이문세'의 버전으로, 윤동하는 '빅뱅'의 버전으로 엇갈려 부른다. 하지만,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 순간 두 사람의 노래는 불협화음 속의 화음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다음 날 윤동하는 함께 와인을 마시는 순간 좋은 노래라며 반지연이 좋아했던 변진섭의 '희망 사항'을 들려준다. 

(사진; osen)

그저 함께 좋아하는 노래를 즐기는 장면이었지만, 그 장면을 통해 제법 나이 먹은 여자들의 연애를 다룬 두 드라마 <밀회>와 <마녀의 연애>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밀회> 역시 <마녀의 연애>와 다르지 않게 선재는 혜원을 배려하여 그녀의 시대의 음악을 골라준다. 하지만, 그녀에겐 그 시대는 없다. 그것은 마치 그녀에겐 삶이 없다는 의미로 전해진다. 대신 그녀에겐 유일하게 허락되었던 친구이자 오너였던 서영우(김혜은 분)를 기다리던 그 시간의 노래가 혜원의 노래가 된다. 그리고 세대를 초월한 '피아노 맨'을 통해 혜원과 선재는 다시 한번 공감을 한다. 그리고 그 순간만은 둘 사이의 나이차이란 무의미하다. 마치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빌리 조엘의 음악처럼. 

반면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인 <마녀의 연애>에서 기준은 윤동하가 얼마나 반지연을 이해하는가가 관건이 된다. 자기 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무려 14살이나) 서른 아홉살의 반지연을 스물 다섯의 윤동하가 이해할수만 있다면 이 연애는 오케이다. 그래서, 기센 팀장님이던 반지연은 번번히 윤동하 앞에서 여성으로서의 갸날픔을 들키고, 그래서 윤동하의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거기에, 직업 여성으로서의 멋짐은 옵션이다. 반지연을 이해하고, 어느 틈에 그녀를 사랑스러워 하기 시작한 윤동하의 무장 해제는 그가 선택한 음악 '희망 사항'으로 대변된다. 

먹을 만큼 먹은 그녀들의 연애라지만, <마녀의 연애>에서 반지연의 나이는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팽팽한 그녀의 얼굴만큼이나 실감나지 않는다. 드라마의 스토리는, 반지연이 서른 아홉이건, 서른이건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녀는 서른 아홉이라며 스스로 질색하지만, <마녀의 연애> 속 그녀에게서 나이로 인한 연륜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반지연으로 분한 엄정화가 서른 즈음에 하던 로맨틱 코미디와, 그녀가 서른 아홉의 반지연이 되어 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별 차별성이 없다. 그저 세상에 많고 많은 연상연하의 사랑 중 하나일 뿐.

하지만, <밀회>라는 드라마를 가득 채우는 것은 선재와 혜원의 사랑이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선재를 사랑하고 되돌아 보니, 미국 조그만 카페에서의 시간만큼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혜원의 삶이다. 열 네살이나 차이가 난다면서도 덥석 엄마 앞에서 사귀는 남자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여유가 혜원에게는 없다. 비단 유부녀라서가 아니다. 선재와의 일탈이 혜원의 삶 전체를 벼랑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그녀도 몰랐던 그녀 자신의 위태로운 도박으로 드라마는 충만해진다. 가질 만큼 가지고, 조금 더 하면 더 큰 욕망을 채울 것같았던 중년의 삶이, 사랑으로 인해 괴멸되는 그 중년의 허무함이 <밀회>의 공기다. 

'마녀의 연애' 엄정화의 맞선에 박서준이 불안함을 드러냈다. ⓒ tvN 방송화면
(사진; 엑스포츠 뉴스)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이건, 치명적인 멜로이건, 두 드라마 모두, 드라마의 관점은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가 때론 심하게 상투적이거나, 평면적이다 싶을 만큼 여주인공의 편에서 전개된다. 그들 삶의 결정권은 여주인공에게 달려있다. 남자 주인공들을 등장할 때마다, 자기 자신보다는 여주인공들을 걱정하고, 어쩌면 그렇게 여주인공들이 원하는 것만 해준다. 마치 텔레비젼의 리모컨을 쥐고 있는 중년들의 마음을 훔치겠다는 결의라도 다진 양. 그게 아니라도, 너도 나도 결혼 따위는 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젊은 여성들에게, 걱정마라, 당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도, 그렇게 나이가 들어도 저렇게 멋진 연하남을 만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처럼.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 입장은, 처음 '나이 차이가 너무 심하잖아' 하던 반응이 무색하게,  '스물 다섯이라니, 땀 냄새도 향기롭겠다던' 반지연의 친구의 심정과도 같을 것이다. 서른 아홉 노처녀에게 다가온 친절하디 친절한 훤칠한 청년이건, 마흔이 넘은 중년의 위기로 다가온 천재 피아니스트이건, 마치 자신이 회춘이 되는 듯, 그저 감사할 따름일지도.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그 감사함에 옵션이 따른다는 것이다. <밀회>나, <마녀의 연애>나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갑'이다. 잡지사 팀장이거나, 문화 재단 부대표 정도는 되어야, 그래서 특종을 따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열혈 기자이거나, 천재를 한 눈에 알아봐줄 정도의 식견을 있어야, 저렇게 설레이는 훈남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 언제적 아름다운 여성을 쟁취하는 것이 팀장님이거나, 재벌남이었듯이 말이다. 아, 거기에 절대 빠져서는 안될 것이 있다. 서른 아홉이건, 마흔이건 절대 그 나이처럼 보이지 않는 외모와 몸매 말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한참 젊은 연하남의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건, 정말 현실의 남자들이 조선시대 꼬마 신랑처럼 자기 보다 열살 이상 많은 여자들을 여자로 생각하기는 하는 걸까? 


by meditator 2014. 4. 30. 02:12

가진 것 없는 피아노 지망생에서, 친구의 뒷바라지로 시작하여, 이제 서한 예술 재단의 기획실장에 오르기 까지 오혜원(김희애 분)이 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친구 서영우(김혜은 분)에게 뺨을 맞는 건 예사요, 그녀와 사귀었던 남자 강준형(박혁권 분)을 자신의 남편으로 맞아들이는 일도 할 수 있었고, 회장님의 집에 마작 게임에 초대 받기까지 오혜원이 한 일은 그저 예술 재단의 눈에 보이는 그런 일들만 있었던 것은 분명 아닐터이다. 


그러던 그녀가 자신의 삶에 모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녀 얼굴의 상처를 보고서도 차를 가져다 달라는 냉정한 남편에게 가진 것을 다 버리고서라도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고 싶은 속내를 언뜻 비춘다. 회장님의 여자 심부름으로 만난 국밥집 아주머니의 맥주 세례에 몸둘 바를 몰라한다. 예전의 그녀라면, 서영우에게 따귀를 맞은 그날처럼 한숨 한번 내쉬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일상의 그녀로 돌아가련만 이제 오혜원은 그럴 수 없다. 자꾸만 자신이 초라해 진다. 그럴 듯해 보이던 자신의 삶이 부끄럽다. 

물론 시시각각으로 오혜원의 주변이 그녀를 견딜 수 없도록 만들어 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예전의 그녀라면, 오히려 그것을 자신이 보다 더 유리해지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로 여겼을 터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다.바로 선재(유아인 분)때문이다. 

<밀회>에서 오혜원의 자각은 선재와의 만남과 궤를 같이 한다. 선재와 교감하고, 그를 마음에 두기 시작하면서, 오혜원은 더 이상, 자신을 기만하며 살아갈 수 없다. 


인간에게 사랑이란 감정은 무얼 의미할까? 
가장 원초적으로는 자신의 유전자를 재생산하고픈 본능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런 재생산에 대한 욕구는, 결국, 삶의 에너지이다.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그것을 더 확산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욕구,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이 된다. 영화<은교>에서 70대의 노작가는 은교를 사랑하게 되면서, 20대 못지 않은 젊음을 발산한다. 30대의 제자가 감히 내려가지 못하고 주저하던 벼랑을 눈 깜짝할 사이에 내려가, 은교를 발 동동거리게 하던 거울을 구한다. 70대의 노인도 펄펄 뛰게 만드는 사랑이건대, 하물며 마흔의 여자임예랴.

중년이란 나이는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안정기에 들어선 나이이겠지만, 중년에 들어선 사람들이 그럼에도 상실감을 어쩔 수 없어 하는 이유는, 더 이상 그들에게 젊은 시절과 같은 사랑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실감이다. 하지만, 이제 중년이 되어서도 젊고 팽팽한 그들에게, 사랑은 금단의 열매와도 같다.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 동산이라는 낙원에서 쫓겨나듯, 오혜원은 거부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거부할 수 없는 선재를 마음에 두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에덴 동산이라 여겼던 서한 예술 재단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다. 중년이라 가둬두었던 삶의 열정적 에너지에 자신을 맡기게 된다. 

사랑은 그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에 눈뜨면서, 개울 물에 비춰진 자신을 바라보듯,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과연 자신이 그 사람을 사랑할 만한 사람인가 반문한다. 오혜원도 마찬가지다. 선재와의 모텔 행을 앞에 두고, 홀로 돌아와 목욕을 하며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눈물 짓던 그녀는 자신의 몸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직 순수한 청년 선재 앞에 내보이기에는 자신의 나이든 몸만큼이나 부끄러운 자신의 삶.

다시 영화<은교>에서, 노작가는 자신이 은교를 사랑하게 된 것을 깨닫고 거울 앞에 서서 나신이 되어 자신의 몸을 샅샅이 바라본다. 그는, 정신적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지만, 그리고 육체적 능력으로는 모자랄 것 없지만, 그럼에도 늙어가는 육신에 괴로워한다. 마찬가지다. 오혜원도, 젊은 선재 앞에, 중년의 육신과, 어쩌면 그 보다도 더 노회한 자신의 삶에 딜레마를 느낄 것이다. 사회적 통념과, 윤리를 넘어선, 보다 본능적인 사랑하는 이로써의 부끄러움이다. 

오혜원을 연기하는 배우 김희애는 자신의 몸에 부끄러움을 느끼기에는 여전히 너무 아름다운 딜레마를 지니지만, 그녀만큼 우아하면서, 모멸감을 느끼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제대로 연기하는 배우도 드물다. 드라마 <장희빈>에서 어색했던 유아인은 모처럼 제 몸에 맡는 배역을 맡은 듯하다.  배우만이 아니다. 드라마의 제목처럼, 늘 두 주인공을 훔쳐보는 듯한 시선을 유지하는 장면은, 보는 이로하여금, 관음의 아찔한 감정을 오가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젊은이와의 사랑, 그와 함께 그녀를 위기로 몰아넣는 그녀 주변의 상황을 급박하게 이끌어내는 정성주 작가의 내공은 역시 대단하다. 영화 <색계>의 파멸을 항해가는 위험한 사랑에 매력을 느꼈듯, <밀회>에 빠져들게 만든다. 


by meditator 2014. 4. 8. 02:49

<밀회>에 빠져들고 계신가요? 이 드라마를 보면 가슴이 떨리시나요? 혜원(김희애 분)과 선재(유아인 분)의 사랑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손을 꼭 움켜 쥐고 계신가요?

그런데 혹시 얼마 전에 종영한 <따뜻한 말 한디>를 보셨나요? 아니 바로 지난 주에 종영한 <세 번 결혼한 여자>는요?

<밀회>는 40대 여인과 20대 남자의 사랑이야기입니다. 40대의 혜원은 서한 예술 재단 기획실장으로 권력을 쥔 쪽이죠. 선재는 공익 근무를 하며 킥배달을 하는 피아노 천재로 남편의 부탁을 받고 재능있는 피아노 지망생을 찾던 혜원의 눈에 띤 간택받는 입장인거죠. 선재를 만나 함께 연주를 하던 혜원은, 그리고 선재는 음악을 통한 교감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음악을 통해 교감을 이루는 사랑이라니요, 아름답지 않습니까? 제인 캠피온의 영화 <피아노>의 한 장면이 오버랩 되지 않나요?

그런데 만약, 여기서 등장하는 혜원과 선재의 성이 반대라면요?
예술 재단의 기획실장이며 선재를 스카웃하려는 혜원이 40대의 미중년 남자였다면 어땠을까요? 그에게 선택을 당하는 피아노의 천재가 꽃다운 스무 살의 처자였다면요? 그들이 피아노를 통해 교감을 하고, 스무 살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자기 보다 스물 살이 많은 남자 선생님에게 대뜸 사랑한다며 키스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그런 설정이었다면, 제 아무리 개연성 있는 설정으로 주인공 캐릭터를 그려낸 정성주 작가에, 영화 보다도 더 몽환적인 화면을 만들어 내는 안판석 피디라도, '불륜'이라는 명제를 벗어나기 힘들지 않았을까요? 왜 나이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가 만나면 불륜이 되고, 어린 남자와 나이 많은 여자가 만나면 사랑처럼 보이는 걸까요?

(사진; 스포츠 한국)

앞서 말했던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보자구요. 
거기 주인공들 중 류재학(지진희 분)과 나은진(한혜진 분)도 사랑에 빠졌어요. 이 사람들 혜원과 선재가 나눈 피아노를 통한 교감이나, 키쓰는 커녕, 손이나 한번 제대로 잡아보았나요? 호텔에 들어갔다가 그냥 나왔다지요. 그런데도 그 두 사람은 드라마가 하는 20회 내내 불륜이란 분홍 글씨가 찍힌 채 혹독한 댓가를 치뤘습니다.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니, 잠자리를 하지 않아서, 진짜 사랑을 했다고, 류재학의 아내 송미경(김지수 분)은 더 분노했었지요. 
<세번 결혼하는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수(이지아 분)와 결혼한 준구(하석진 분)는 결혼 전 만나던 다미(장혜진 분)와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합니다. 결국 그의 우유부단한 혹은 충동적인 행위들은 은수와의 결혼에 종지부를 찍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지요. 

경우가 다르다구요?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나은진은 모르겠지만 류재학은 분명히 사랑에 빠졌었어요. <세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다미는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만큼 준구를 사랑하지요. 하지만 두 드라마는 두 커플의 사랑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요. 은진과, 재학이 저지른 결과에만 몰두하며, 그들이 가져온 가정 파괴에 주목하지요. <세번 결혼하는 여자>의 준구나 다미는 거의 파렴치범 수준입니다. 

반면, <밀회>는 혜원과 선재의 사랑 그 자체에 주목합니다. 
그 사랑의 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해 드라마는 작동합니다. 예술 재단과 그것을 움직이는 가진 자들의 개처럼 살아가는 혜원, 그리고 예술적 재능을 가졌지만 현실이 그것을 받쳐주지 않아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살아가던 선재, 그들에게 찾아온 사랑은 그저 사랑이 아니라, 억압적 현실에 비춘 한 줄기 삶의 희망같은 것처럼 드라마는 묘사해냅니다. 선재는 혜원을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실제 스승은 혜원의 남편이지만, 선재는 아니라고 합니다. 진흙 속에서 뒹굴던 자신을 알아봐 준 당신이 자신의 진짜 스승이라고 합니다. 선재의 사랑은 흡사 아기 오리들이 처음 시각적으로 마주한 대상을 따라다니는 '각인'과도 같은 현상입니다. 
자신의 꿈을 병으로 포기한 채 결혼조차도 정략적으로 선택하며 마름으로 살아가는 혜원에게 자신과 같은 병을 가진, 불우한 환경에서 고사되어 가는 선재는 또 다른 자아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불륜이지만, 다른 이름으로 짓눌려 가던 자아의 회복이요, 자기애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사람들의 머리는 참 합리적(?)입니다.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자신들이 보고싶은 것만 봅니다. 드라마도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을 그려내기에 앞장섭니다. 여성들이 주시청층인 10시 대의 드라마들은 그래서 누군가의 남편들의 사랑은 불륜으로 정의내리고, 자신들과 같은 여성의 불륜은 사랑이라 이름붙입니다. 더구나 그 어린 남자애랑 사랑에 빠지는 혜원, 아니 김희애는 그 나이에도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심지어, 예술 재단 이사장의 뒤를 봐주고, 회장님의 여자를 대줘도, 그녀는 여전히 우아함을 잃지 않습니다. 드라마는 보는 여성들의 꿈속의 자아이자 욕망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재는 나이는 어리지만, 여성인 혜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태도는 여전히 우리 사회 남성과 여성의 성적 관계의 틀을 유지합니다. 사랑에 수동적인 여성과 그에 대해 저돌적으로 접근하는 남성, 대신 이전의 남성들이 그들의 날개를 경제적인 것으로 포장했다면, 선재는 대신 나이로 치장합니다. 속된 말로, 나이가 벼슬입니다. 나이어린 백마 탄 왕자가 조만간 늙을 일만 남은 여자 앞에 나타나 당신을 온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그 하나는 '공평하게' 나의 사랑이 불륜만이 아니라 사랑의 이름으로 불리워지길 원한다면, 남의 사랑도 그저 불륜으로 낙인 찍지 말고 사랑으로 다시 보아줘야 하는 마음의 자세겠지요. 어쨋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원의 사랑은 불륜입니다.  마흔 살 먹은 여자의 불륜도, 마흔 살 넘은 남자의 그것도 사랑일 수도 있는 거지요. 남자들이 하면 나쁜 짓이고, 우아한 여자가 하면 봐주는 건 너무 비겁한 태도입니다. <세번 결혼하는 여자>의 마지막 회 준구와 다미를 맺어준 김수현 작가님의 깊은 속내가 그것이었을까요?

또 하나는, 그것보다는 좀 더 본질적으로, 이제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점점 담아기 힘들어 지는 남자와 여자들의 욕망에 대한 태도입니다. 여전히 결혼이라는 제도의 틀 속에 놓여진 사람들의 새로운 사랑은 윤리적 지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 아무리 철부지 같은 남편이라도 남편이 있는 혜원의 사랑은 불륜입니다. 류재학의 사랑이 불륜인 것처럼요. 하지만, 무수히 양산되는 드라마 속 불륜들처럼, 어쩌면 이제 우리 사회에서 남녀 간의 사랑을 담기엔 결혼이란 제도가 너무 경직되거나, 오래되어버린 문물제도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뭐 그런 지점도 한번쯤은 짚어보자구요. 그러면 그 낡은 제도에 목매여 사는 사람들이 너무 초라해 지는 건 아니냐구요? 낡고 이제는 쓸모가 덜해도 여전히 누군가와 평생 믿음과 신뢰로 관계를 꾸려간다는 건 꼭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지요. 그런 행복을 맛보지 못한 혜원의 사랑이기에, 더 안쓰러운 것도 있잖아요. 


by meditator 2014. 4. 1. 11:02

Ladies in Lavender라는 영화가 있다. (우리말로 번역된 '라벤더의 연인'이라는 제목이 있지만, 어쩐지 대놓고 연인이라는 제목보다는 이 영화에는 원제가 어울리는 듯하다)

영국의 작은 마을 황혼의 삶을 안온하게 살아가고 있는 두 자매 쟈넷(매기 스미스 분)과 우슬라(주디 덴치 분)의 집 앞 해변에 한 젊은 남자(다니엘 브륄 분)가 폭풍우에 휩쓸려 쓰러진 채 발견된다. 기억을 잃은 이 남자는 두 자매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고, 자매 중 우슬라는 활기를 넘어 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를 사랑하게 된다. 젊은 청년을 사랑하는 할머니라, 얼토당토 말도 되지 않는 설정이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할머니가 되어서도 여전히 소녀같은 감성을 지닌 우슬라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그리고 자신들의 삶에 청량제가 되어주는 이 젊은이를 사랑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영화를 보면 사랑은 결국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나이를 불문하고, 그 사람과 내가 조우하게 되는 그 감정의 어느 지점이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는 일흔 살의 할머니도 앳된 젊은이를 사랑하는데 마흔 무렵의 사랑이 뭐 어떻겠는가. <밀회>는 대담하게 마흔 무렵의 사랑을 내세운다. 
드라마가 시작되자 마자, 선재(유아인 분)가 보여지는 것도 잠시, 화면은 줄곧 정신없는 스케줄에 빽빽하게 돌아가는 혜원(김희애 분)의 일상을 담는다. 예술 재단의 기획실장으로 마사지를 받는 이사장 곁에서 오늘의 일정을 프레젠테이션하고, 당장 있을 연주회는 나 몰라라 젊은 애인과 호텔 방에 머무는 아트 센터 대표를 찾아가 온갖 모멸 섞인 투정에 뺨 싸다귀까지맞으면서도 일정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자기 몫을 챙겨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내뱉는 남편의 지청구까지 사무적으로 능수능란하게 해결해 내는 능력자이다. 하지만 친구이자 상사인 영우(김혜은 분)의 독기어린 말처럼, 서한 재단 이사장의 마작 게임까지 불려다니는 실세이지만, 결국 서한 재단과 혈연으로 얽혀 있지 않아, 자신의 것이라고는 확실하게 없는 고달픈 '마름' 신세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상에서 만난 자신과 같은 병을 앓는 청년에게 간곡하게 치료를 권해주는 슬픈 과거의 트라우마가 있다. 

이렇게 드라마 <밀회>는 언뜻 보면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듯한 여성 혜원의 삶에 숨겨진 틈을 열어보이며 이 여성이 충분히 자신의 삶에서 흔들릴 여지가 있음을 보여주기에 공들인다.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많은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이해 관계에 충실한 위선자들의 사회 속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혹은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빠듯하게 살아가는 혜원의 모습은, 그리고 그 속에 갇혀진 그녀의 또 다른 삶의 욕망은, 연주회 리허설을 엿보다 결국 참지 못하고,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하고 마는 천재 청년 선재의 숨겨진 욕망과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이물감이 없다는 것을 단 1회만에 <밀회>는 설득해 내고 있다. 그렇게 드라마는 혜원을 중심으로 그려냄으로써, 이 드라마가 중년의 삶에 밀려 들어온 사랑의 이야기에 촛점을 맞출거라는 걸 밝힌다. 마치 파도에 휩쓸려 할머니들 집 앞 해변에 나타난 젊은 청년처럼, 혜원의 삶의 울타리 안에 선재란 청년이 던져진다. 

그렇다면 사랑하기 나쁘지 않은 나이 중년의 조건이 되는 건 무엇일까. 역시나 <밀회>는 그에 앞서 종영한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주인공들처럼 중년의 나이임에도 전혀 삶의 현장에서 물러나 있지 않다. 오히려 첫 장면부터 그 누구보다도 정력적으로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의 마흔을 넘은 나이가 전혀 사랑하는데 문제가 될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꽃보다 누나>를 통해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김희애가 만들어낸 혜원은 더 이상 적역이 없다 싶을 만큼 우아하고 아름다운 중년이 그것이다. 드라마는 속옷 차림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몸매를 자랑하는 혜원이 된 김희애의 젊음을 충분히 부각하며, 중년이란 나이를 잊게 만들고자 분투한다. 거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일찌기 치맛바람 강남 엄마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부담스럽지 않은 중년의 사랑으로 인기를 얻었던 전작 <아내의 자격>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녀의 사랑이 무리가 없을 거란 기대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사진; osen)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밀회>는 이른바 멜로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휘황찬란하게 눈요기가 되는 재벌가에, 그들 사이의 암투에, 그에 못지 않은 음대를 중심으로 한 입시 비리, 거기에 한 술 더 얹어, 고급스런 클래식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덕분에 드라마는, 맛깔나는 이야깃거리와, 눈과 귀가 즐거워진다. 멜로에, 치정에,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까지, 이만하면 고품격 멜로다 하고 내놓을만 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모와 조카 같은 혜원과 선재의 사랑을 얼마나 공감가게 그려낼 것인가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제 아무리 중년의 사랑이라지만, <아내의 자격>에서 동년배의 사랑을 넘어, 영화가 아닌 드라마에서, 젊은 청년과의 사랑까지 우리 사회에서 어디까지용인 될 수 있는가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덧붙이자면, 처음 이야기를 꺼냈던 라벤더의 연인의 우슬라 할머니는 천재 청년을 고이(?) 보내준다. 그리고 청년의 첫 데뷔 연주를 보고 나온 할머니는 언니에게 말한다. 우리는 여기 까지라고. 물론 꼭 혜원의 사랑이 이루어지는가만이 이 드라마의 관건은 아닐 것이다. 선재와의 사랑을 통한 껍데기같은 삶을 벗어던지는 혜원의 자아 찾기, 그것의 지향점이 어디가 될 지, 그것을 얼마나 공감가게 그려낼 지가 아마도 <밀회>의 본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4. 3. 18.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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