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2015년 1월1일부터 '관세화'를 통한 쌀 시장 개방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의무 수입 물량을 늘려오다, 2005년 이후 의무 수입 물량을 두 배로 늘려 쌀을 수입해오던 정부는, 2015년 수입 쌀에 대한 관세를 물리는 것을 전제로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일본처럼 고율 관세를 통해 우리나라 쌀 시장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미 미, 중과 FTA를 통해 연계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고율 관세 부과는 또 비현실적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쌀의 자급률이 2010년 104%에서, 2013년 86%로 떨어지고, 전체 식량 자급률이 44.5%로 OECD회원국 사이에서 꼴찌인 상황에서 쌀 시장 개방은, 그저 농업이 한 부분의 개방이 아니라, 한국 농업 전체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중이다. 또한 오래 지속된 저농산물 가격 정책으로 인해 낮은 쌀 수매값으로 인해, 농촌의 인력이 사라지고, 쌀을 재배하는 논이 실종되고 있는 상황에서 쌀 시장 개방은, 농촌 붕괴의 지름길이 될거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사진; 뉴시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텔레비젼에서는 '농촌'을 매개로 한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40대 이후 세대들의 '귀농' 증가와 함께, 건강을 우선시하는 '친환경적인 음식 문화'가 트렌드가 되면서, 농촌은 현실인 듯한 '이상향'의 존재로 각종 프로그램 속에 등장한다.
18일 나영석 이서진의 조합으로 첫 방송부터 4%대의 안정적인 출발을 보인 <삼시 세끼>의 취지는 '내 몸과 내 마음을 위한 충전의 시간, 두 남자의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이다. 프로그램 속 이서진과 옥택연을 떨궈 놓은 마을은 산 좋고 공기 좋은 강원도 정선 골짜기이다. 비록 한 끼를 해먹는 자체가 전쟁이라지만, 삼시 세끼를 너끈히 해 먹을 수 있는 갖가지 푸성귀로 가득찬 너른 앞뜰은 그 자체만으로도 휴식이 된다. 이런 이서진과 옥택연의 고생을 앞서 체험한 사람들이 바로 <삼村로망스>의 양준혁, 양상국 등이다.
18일 첫 선을 보인 또 다른 '농촌'이 소재가 된 프로그램, <모던 파머>는 농촌으로 간 청춘들을 다룬다. '엑설런트 소울즈'라는 록밴드 활동을 했지만, 시골 장터를 떠돌며 행사나 전전하던 이민기와 친구들은, 배추 밭을 일궈 그걸 밑천으로 복귀를 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 '하드록'리로 향한다. 그를 맞이한 고향에는 활기가 넘친다. 70넘은 노인들이 하루 종일 허리도 펴지 못하고 일을 하는 농촌 현실은 오간데 없이, 서른 살 여자 이장 윤희를 비롯하여, 비록 마흔 살의 노총각 청년 회장에 중년의 가장들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화훼 농장을 하는 안주인과 딸은 보톡스에, 손톱 손질을 하러 다닌다. 이런 시트콤같은 <모던 파머>의 케이블 버전은 10월 1일 종영한 TVN의 <황금 거탑>이다.
매주 일요일 3시 50분 SBS를 통해 찾아오는 <즐거운 家>는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시골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아름다운 텃밭을 일군다.
이서진과 옥택연은 밥을 한다하며 가마솥과 씨름을 한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부터, 도시인 그들에게는 난감한다. 이렇게 농촌을 소재로 하여 등장한 모든 프로그램들의 서막은, 마치 외국이라도 간 듯, 아니 외국보다 더하게 문화적 이질감을 보이는 도시인들의 문화 충격으로 시작된다. <모던 파머>의 1,2회는 온전히, 하드록리에 가서 해프닝을 벌이는 '엑설런트 소울즈'의 해프닝으로 채워진다. 과수원의 사과를 '서리'라며 따먹고, 트렉터를 몰다 사슴을 치어 죽이고, 상수원에 오줌을 누는 등, 물색없는 도시인의 실수담이 재미의 원천이다. 이 정신없는 해프닝의 원조는 <황금거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도시에서 이리저리 직업을 가져 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뽀족하게 이룬 것이 없었던 청년이, 농촌 정착 지원금을 받아 시골로 오게 되고, 거기서 사는 여러 사람들과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좌충우돌하는 것이 <황금 거탑>의 주요 스토리이다. <모던 파머>의 여자 이장은, 바로 <삼촌 로망스>의 양준혁 등이 찾아간 마을 여자 이장에게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그래도 현실을 반영한다고, <황금 거탑>에서도, <모던 파머>에서도 외국인 신부의 존재는 필수다.
이렇게 최근 등장한 '농촌' 프로그램들에는 농촌에 대해 뭘 모르는 도시인과, 친환경적인 농촌이라는 대립점이 존재한다. 그래서 불편해하고, 뭘 잘 모르던 도시인들이 하나하나 시골에서의 삶을 배우가면, 친환경, 유기농 라이프에 적응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취지는 마치 텔레비젼으로 배우는 '귀농' 강습과도 같다. 아니, 귀농 홍보 프로그램에 더 어울린달까? 하지만, 현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택하지만, 이제 그만큼의 사람들이 귀농에 실패하고 시골을 나서는 것이 현실이 된 것처럼, '농촌'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에 농촌은 지극히 부분적으로만 존재한다. 즉, TVN을 통해 4부작으로 방영되었던 <농부가 사라졌다>의 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의 조건>에서 '농활'로 시골 마을을 찾아간 개그맨들을 반긴 것은 70이 넘은 촌로들이다. 가장 젊은 사람이라 봐야, 마흔 줄의, 오십 줄이다. 그런 사람들마저도 드물다. 대부분이 젊은이들이 떠난 농촌을 별 수 없이 지키고 있는 노인들이다. 그들은 하루 종일 허리 필 틈도 없이, 도와줄 인력이 귀한 농촌의 일을 홀로 해낸다. <모던 파머>에서 한갓지게 하얀 모시 적삼을 입고, 부채질을 느긋하게 하며 마을 어른입네 하는 노인은 없다. 그런 노인들을 돕기 위해 등장한 농촌 기계화? 말이 좋아 편리한 기계화지, 그 기계를 임대하거나, 사기 위해 들어간 돈이 전부 다 농촌의 빚이다. 어디 그뿐인가, <농부가 사라졌다>에서 농부가 사라지게 된 이유인, 거대 외국 종자 회사가 독점한 작물 씨앗과, 각종 비료들, 그리고 수입 사료들로 인해, 우리 농촌은 농사를 지으면 지을 수록 빚만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농약 과용으로 산성화된 농토와 치워가지 않는 쓰레기 더미가 점령한 비감한 농촌, 유기농 라이프의 아름다운 친환경 농촌은 없다. 무엇보다 '쌀 시장 개방'등으로 위기에 빠진 농촌이 없다. 물론 <농부가 사라졌다>에서도 역설적 대안으로 닥파머(의사처럼 치유를 해주는 농업을 하는 농부)와 인터러뱅이라는 대안 농부 집단이 등장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가상 다큐로서, 대안을 희망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희망이지만, 아직 농촌 현실의 대세는 아니다. 하지만, TV속 농촌에는 대안과 희망과, 아이러니하게도 회고적 농촌 공동체의 기억만이 넘쳐난다.
하지만, 텔레비젼 프로그램 속에 등장한 농촌은 여전히 이웃간 정이 넘쳐나며, 젊은이들과 중년층의 노동 인력이 풍부하고, 친환경적 유기농 삶이 그득하다. 마치 그 옛날 서양인들이, 풍문으로 전해들은 동양을 이상향으로 그리고, 찾아나서듯이, 도시 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농촌은 비감한 삶의 현실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과 육체를 쉬게 해줄 휴식처로서만 존재한다. 산업화 속에 몰락해 갔던 농촌을 서정적으로만 그려냈던 <전원일기>의 2014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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