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tvn에서 새로 시작한 <마녀의 연애>는 2009년 대만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던 <패견 여왕>의 리메이크물이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패견 여왕>에서 33세에, 자기 중심적이고 일밖에 모르는 하지만, 날카로운 콧매와, 가녀린 얼굴 선에서 풍기는 이지적인 선무쌍(양진화 분)이 떠오르기 보다는 오히려 얼마전 <관능의 법칙>에서 어린 남자를 만나 당당히 연애에 빠졌던 엄정화가 연기했던 신혜라는 캐릭터가 떠오른다. 아니,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싱글즈>의 동미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가 떠오른다.
물론 엄정화가 연기한 캐릭터는 다양하다. <오로라 공주>의 딸을 잃은 엄마 정순정도 있었고,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따스한 선생님 김지수도, 가수를 꿈꾸던 열혈 아줌마 <댄싱 퀸>의 정화까지 손가락으로 꼽기가 힘들 정도이다. 어디 영화뿐인가, <12월의 열대야>에서 상처받은 주부 오영심에서, <아내>의 순둥이 윤현자까지, 그녀가 했던 캐릭터의 진폭 역시 새삼 살펴보면, 그 어떤 연기파 배우 저리가라할 정도다.
하지만, 그토록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음에도, 여전히 엄정화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지배적인 캐릭터로 인식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지금 그녀가 <마녀의 연애>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바로 그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관능의 법칙>에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mr. 로빈 꼬시기>, 그리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까지, 그녀가 했던 캐릭터 중 다수가 지금 그녀가 <마녀의 연애>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그 비슷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물론 이들이 모둔 같다고 하는 단언할 수는 없다. 각각의 캐릭터는, 각각의 작품 속에서, 그 작품에 맞는 빛깔로 변주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이들 작품에서 엄정화가 연기하는 인물들은, 가장 모던하게, 현대 사회에 적응한 캐릭터로써, 자신의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일에 그 누구보다 헌신적이며, 그 못지않게 전문적이다.(연애 따로, 결혼 따로 충실한 삶을 사는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연희 역시 그런 일련의 현대인의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엄정화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몹시 섹시하다. 그녀가, 드라마 상에서, 혹은 영화 상에서 노처녀이건, 결혼을 원하지 않는 워커 홀릭이건, 그런 캐릭터 적 성격과 상관없이 매우 섹시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영화 <관능의 법칙>에서 예능 피디인 신혜의 옷차림이나, 독거사를 고민하는 드라마<마녀의 연애>의 반지연이나, 그녀들은 쫙 달라붙은 치마에, 속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를 입고, 짙은 화장에, 붉은 입술을 하고서, 고민에 빠진다. 그간 사귀어 온 남자가 다른 여자랑 결혼을 한다고, 혹은 사랑하던 남자가 떠난지 6년이 되었다고, 그리고 홀로 늙어죽을 거 같다고.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그녀만 보면 침이 흘러내릴 거 같은 모습을 하고.
그간 엄정화가 가수 활동을 통해 쌓아온 섹시 이미지를 고스란히 반영한 듯한 뇌쇄적인 모습으로 드라마 속 주인공은 고뇌에 빠진다. 물론, 전혀 독거사 할 수 없는 것만 같은 모습으로 화면을 종횡무진하는 섹시한 그녀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드라마 속 그녀는 또한 엄정화만의 내공으로 다져진 연기로 보는 사람들을 설득해 낸다.
<마녀의 연애>의 시작은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파파라치 사진을 찍기 위해 학교로 잠입한 열혈 기자 반지연에, 자신이 찍은 기사를 올리기 위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의 자전거를 타고 날르다 젊은 남자와 조우하게 되는, 전형적인 로코의 뻔한 설정이지만, 엄정화 특유의 통통 튀는 분위기로 그걸 살려낸다. 마치 드라마는, 엄정화를 위한, 엄정화에 의한 드라마임을 공인하듯, 실연의 슬픔조차, 스피카의 노래를 따라하며 섹시 댄스를 추는 장면으로 승화시킨다.
결국, <마녀의 연애>는 예측 가능한 뻔한 로코의 정석을 엄정화라른 전설의 로코 퀸을 통해 변주해 나가는 드라마일 가능성이 크다. 함께 하는 박서준은, 그의 매력이, <금 나와라 뚝딱>,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통해 관심을 끌기 시작했지만, 과연, 로코의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끌어 갈 만한가 여부가 미지수인 상태에서, 이 드라마가 엄정화에게 의지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결국 드라마는 엄정화, 혹은 엄정화의 연기에 대한 호불호에 의해 판가름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다.
33세의 여자가 8년 연하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고민하던 대만 드라마 <패견 여왕>은 바다를 거너 <마녀의 연애>가 되면서, 39세의 반지연이, 스물 다섯의 윤동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단다. 2009년에 서른 셋만 되도, 패견, 즉 패한 개, 시집 못간 노처녀라 대접받는 대만의 이야기는, 2014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서른 아홉의 노처녀가 스물 다섯의 청년을 도발할 수 있는 러브스토리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관능의 법칙>에서 한참 어린 젊은 남자를 만나는 신혜에게 친구가 애랑 미쳤다고 하자, 신혜는 말한다. '그 애가 내 애는 아니'라고. 과연 내 애가 아닌 또 다른 남자 애와의 연애도 성공할 지, 대만판 <내 이름은 김삼순> 열풍을 일으켰던 <패견 여왕>의 리메이크, <마녀의 연애>가 우리나라에서도 붐을 일으키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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