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새벽 급상승 검색어 1위에 '루시드 폴'이 떠올랐다. 그 이유는 같은 시간 홈쇼핑 채널인 cj오쇼핑을 통해 자칭 타칭 '감성 시인'이라 칭해지는 뮤지션 루시드 폴의 7집이 판매되었기 때문이다. 제주도로 귀농하여 귤 농사를 지은 뮤지션 루시드 폴은 '누군가를 위한'이라는 제목의 7집 앨범과 함께 그가 지은 동화책 <푸른 연꽃> 그리고 그가 찍은 혹은 그를 담은 그림 엽서에, 그가 직접 농사를 지은 '농약을 치지 않았지만 유기농이라 말할 수 없는' 귤 10개 정도를 담아 '한정판 패키지'로 홈쇼핑에 등장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루시드 폴이 소속된 안테나 뮤직의 대표 유희열을 비롯하여, 소속 뮤지션 페퍼톤즈, 정재형, 이진아, 샘킴 등과 <k팝스타>를 통해 익숙한 얼굴들이 자리를 함께 하여, '안테나 뮤직'의 루시드 폴을 빛냈다. 그런 소속사의 지원에 힘입어, 루시드 폴의 음반은 발매된지 단 9여분만에 매진이 되었고, 나머지 시간은 루시드 폴의 새 음반 '쇼케이스'로써 충실한 시간이 되었다.
<안테나 뮤직>은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뮤지션들의 고학력을 평균치로 했을 때 가장 높은 학력의 소유자들이 모여있는 음악 기획사라고 대중들에게 각인된 곳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세간의 인식을 넘어, <안테나 뮤직>은 대표 유희열과 소속 가수 루시드 폴과 정재형이 이날 홈쇼핑 방송에서 전화 연결한 김동률이 그 곳은 소속 가수들의 가창력을 봐서 자신없다는 역설적 표현에서 보여지듯, 대표 유희열이 소속 가수 루시드 폴의 음반 소개에, 불면증에 자신있다는 언습에서도 보여지듯, 가창력을 가수의 기준이라 보는 세상의 시선에서 빗껴간 음악인들의 공동체이다. 뿐만 아니라, 몇 해에 걸쳐 보여졌던 <안테나 뮤직> 뮤지션들이 보여준 '무엇을 기대해도 그 이하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발한 콘서트에서 보여지듯, 늘 세상 사람들이 '음악'과 '가수'에게 기대하는 그 무엇의 이변을 즐겨 기획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12월 11일 새벽 홈쇼핑을 통해 공개된 루시드 폴의 7집 앨범 패키지 판매는 바로 그런 <안테나 뮤직>의 일련의 행보 궤도에서 역시나 벗어나지 않는 '유머'러스하지만, 한편에서는 뜨끔한 기획이다.
유머러스한 해프닝? 그 안에 담긴 암울한 음악계에 대한 해학
이날 방송에서 쇼호스트는 질문한다. <안테나 뮤직>의 대표 유희열씨는 <유희열의 스케치북> mc로도 활동 중인데 소속가수인 루시드 폴은 왜 그 음악 방송 대신 홈쇼핑을 택했냐고. 그런 질문에 유희열은 제주에 내려가 귤 농사를 짓는 루시드 폴이 그가 직접 지은 귤도 팔고, 음반도 파는 방법을 모색하다 보니, 홈쇼핑에서의 판매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대답한다. 이런 유희열의 말은 액면 그대로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말의 저변에는 우리 음반계의 열악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과연 루시드 폴이 그가 소속된 '안테나 뮤직'의 대표 유희열이 mc를 보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한다고 하면 몇 분의 방송을 배정받을 수 있을까? 10분? 그에 반해 12월 11일의 루시드 폴의 앨범 패키지를 팔기 위해 할애된 시간은 40여분이 넘는다. 포맷은 홈쇼핑의 여타 물건을 파는 방식이었고, 심지어 루시드 폴은 귤이 포함된 앨범을 파기 위해 귤 코스프레를 했지만, 그 40여분 동안 방송은 온전히 루시드 폴과 안테나 식구들에 집중했다. 현재의 음악 방송에서, 온전히 한 음악인의 음악과 앨범을 위해 40여분을 투자해 주는 방송이 있을까? <유희열의 스케치북> 10여분이면 감지덕지 아닐까? 그 마저도 할애받지 못한 앨범은, 앨범 순위 사이트의 시선 밖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루시드 폴과 안테나 뮤직의 홈쇼핑 선택은 이제는 퇴화해 버린 음악 생태계의 활로를 모색한 웃픈 시도가 되는 것이다. 그 시간 검색어 1위를 비롯하여 하루가 지나도 기묘한 해프닝으로 화제되는 이 사건(?)은 결국 안테나 뮤직과 루시드 폴의 기획의 승리로 결과된다. 음악을 그 '숭고함'의 가치로 논하기엔 너무 밑바닥이 되어버린 현실에, 스스로 그 바닥에서 몸을 굴러, 자신의 음악을 구한 루시드 폴의 이벤트는 그런 면에서 통쾌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세월호 아이들이 남겼을 말, '아직, 있다' 가 흘러나오는 홈쇼핑
하지만 비록 홈쇼핑이었지만, 40여분간의 루시드 폴을 위한 시간은 풍성했다. 그의 신곡 '집까지 무사히'와 '아직, 있다'를 조윤성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루시드 폴 자신의 목소리로 전달했고, 그가 지은 동화 <푸른 연꽃>의 ost와 같은 별은 반짝임으로 말하죠가 또 다른 소속 가수 이진아의 목소리로 전해졌다.
이렇게 한 편의 코미디처럼 진행된 홈쇼핑 시간 속에 그의 귤 따는 모습의 영상 뒤로 전해지는 루시드 폴의 잔잔한 목소리에 얹혀진 그의 앨범 대표곡 '아직, 있다', (살아)남아서 학교를 가는 친구에게, 기죽어 어깨가 움츠러든 친구에게 노란 나비가 된 자신을 대신하여 대신 하늘을 봐달라고 하는 그 가사에서 선뜻 떠올려지는 누군가가 있다. 그 노래 가사를 듣는 순간, 드는 생각은 과연 저 '아직, 있다'가 공중파의 음악 방송이라면, 그것이 소속사 대표인 유희열이 mc를 보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라도 불리워 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일찌기 앨범 <레미제라블><국경의 밤> 등을 통해 비록 낮은 목소리로 잠이 올 정도로 잔잔한 음률을 통해 읊조리듯 노래하지만, 그 노래에 담긴 이야기가 결코 사회의 제 사건으로 부터 괴리되어 있지 않고, 그 어떤 투쟁가보다 묵직했던 루시드 폴의 전작들의 흐름을 이번 앨범은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용산 참사를 두고 쓴 '평범한 사람'처럼 '아직, 있다'는 새 봄이 오기도 전에 노란 나비가 되어 버린 친구가, 남은 친구에게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 주렴' 하고 '영원의 날개를 달고 지켜볼테니'라며.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넨다. 자본주의의 극점인 홈쇼핑에서 그 가사를 듣자마자 눈물이 흐르고 말, 세월호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가 울려퍼진다. 그저 해프닝이나, 재미로만 넘기기엔 끝내 목에 무언가가 걸리고야 마는, 기억에 남는 판매 방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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