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방영된 <로맨스가 필요해3>에서는 두 나쁜 년의 대결이 그려졌다. 

여기서 대결이라고 해서 칼을 휘두르며 싸운다거나, 아니면 하다 못해 지난 번처럼 머리끄댕이를 잡고 육박전을 벌이는 그런 대결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보다 더 무서운 사람을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이용하고 이용해 먹는 대결이 벌어진 것이다. 

여주인공 신주연(김소연)과 불가피하게 함께 일하게 된 오세령(왕지원)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친구였던 주연이 자신이 사랑하는 강태윤(남궁민>을 좋아한다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우정을 이용하기로 한다. 고등학교 시절처럼 여전히 신주연이 사람의 감정 앞에서는 나약해 질 거라는 지레 짐작으로, '우정'의 이름으로 신주연을 옭아매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반전이었다. 신주연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잘못했다며 꼬리를 내리고 우정의 이름으로 다가온 오세령의 행동이 강태윤을 차지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그것을 역이용, 우정에 넘어간 듯이 행동한 것이다. 
드라마 말미 그런 속내를 들은 주완(성준>은 말한다. 자신이 나쁜 짓을 했다고도 깨닫지 못하는 네가 더 나쁘다고 말한다. 네 곁에 다시 돌아온 것을 후회하게 하지 말라면서. 

(사진; tv리포트)

tv속에 등장하는 일하는 여성들, 그것도 이른바 전문직의 커리어 우먼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결같이 신주연스럽거나, 오세령스럽다. 
여기서 신주연스럽거나, 오세령스럽다는 것은, 마치 여린 속살을 꽉 다물은 석회질의 껍질로 보호하듯,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으로 변화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의미한다.

이제 그녀와 함께 살며 그녀를 변화시키는 주완이 등장하기 까지 신주연은 그녀의 동료가 폐경 등의 고민에 빠져도 그건 당신의 일이라며, 심지어 회사 일에 방해가 되지 말라는 신호를 주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신주연만이 아니다. 오세령 역시 자신은 누구와 우정을 나눌 수 없는 사람이라며, 자신의 우정에 이용당하는 사람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역시 자신이 갖고픈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기괴한 논리를 편다. 어디 두 사람 뿐인가. 같은 사무실의 정희재(윤승아) 역시 오랫동안 사귀어 온 남자 친구에게 행시에 붙지 못한다면 더 이상 사귈 의미가 없다고 퍼붓는 극단적 사고 방식을 내보인다. 

(사진; osen)

<로맨스가 필요해3>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김선미(김유미)도 마찬가지다. 세 친구 중 가장 직업적으로 성공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김선미는 그녀 밑에서 일하던 직원이 그녀의 비인간적인 대우에 치를 떨며 그녀 곁을 떠날 만큼 매정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오너로 등장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설사 연적이 친구라 하더라도, 친구를 밀어내고 자신이 쟁취하려고 하는 이기적 인물이기도 하다.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은진의 동생 역을 맡고 있는 은영(한그루)의 캐릭터도 다르지 않다. 홀로 나가 살며 집안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무심하게, 반면 자신의 사랑 앞에선 맹목적이어서, 언니고 뭐고 없는 캐릭터이다.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전지현)나, 그녀의 연적으로 등장하는 유세미(유인나)나, <왕가네 식구들>의 왕수박(오현경)까지, tv속 능력있는 여성들의 캐릭터는 한결같다. 

tv속 일하는 여성, 그것도 전문직 여성들로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정점에서 싸우는 전사들과도 같은 캐릭터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본주의의 화법을 내재화한다. 즉, 싸워서 밟고 이겨내야 한다는 경쟁의 논리를 내재화하는 존재들로 tv 속에서 그려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자기 중심적이어야 하고, 우정 따위는 개나 줘버리란 식으로 친구들 이용하는 것조차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 눈썹하나 끔쩍하지 않고 해치줘 버리는 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tv 속 여성의 캐릭터들은 흡사 8,90년대 드라마의 야망에 불타오르는 남성 캐릭터와도 비슷하다. 야망 하나로 입지전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인기를 끌었던 <청춘의 덫>의 동우(이종원)로 대변되는 캐릭터와 다르지 않다. 사회적으로 가진 것 없는 남성이었던 동우가 성공 가도를 달리기 위해 자신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했던 여성을 버리고 야망을 위해 사랑을 갈아치우듯이, 21세기의 여성들은 아직까지도 사회적으로 불리한 여성이라는 지위에서도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캐릭터들로 그려진다.


(사진; 부산일보)

시대별 자본주의적 화법을 내재화하는 캐릭터들은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대적 강요이기도 하다. <로맨스가 필요해3> 등을 보면서, 동시대의 여성들은, 그녀들의 어쩔 수 없는 고달픔에 동병상련의 심정을 가지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 사회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위해서는 저런 삶이 불가피하는 심리적 강요를 은밀하게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저렇게 누군가의 사랑을 받게 되려면, 저 정도의 삶은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산업 자본주의 시대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남성 캐릭터들이 야망을 위해 희생시킨 여성들의 사랑으로 인해 주저앉거나, 진실한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으로 드라마들이 진행되었던 것처럼, 이제, 21세기의 드라마는, 이기적인 사회적 성취를 위해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지만, 단단한 겉껍질 속에서 외로움 조차 깨닫지 못하는 그녀들을 위해 그녀들에게 복수를 하고 무너뜨리는 대상이 아닌 그녀들을 위로하고 보살펴 주는 남자들을 보내준다. 과거의 드라마의 야망남과 오늘날 드라마의 그녀들에게 내려진 처방이 다른 이유는, tv를 소비하는 주 시청층이 누구냐 라는데 달려 있다. 

그래서 드라마 속 그는, 가끔은 그녀에게 가슴 아픈 말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녀를 '케어' 해준다. <로맨스가 필요해3>처럼 노골적으로 아예 집에 들어와 살면서 시시때때로 먹는 거 챙겨주고, 마음까지 보살펴 주기도 하거나, 그게 아니라도 직장에서든, 사회 생활에서든, 그게 아니라도 드라마의 주인공인 처지라면 멀찍이 지켜보는 그라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그'들의 역할은 요즘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멘토'라던가, '힐링'이라던가, 혹은 ''상담'이란 명목의 여러가지 심리적 처방전의 유행과도 다르지 않다. 네가 아무리 상처받고, 못되게 굴어도 괜찮아, 네가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잖아, 너를 사랑해, 기운내 라는 식이다. 그렇게 '케어' 받으며 그녀들은 다시 힘을 내서 전쟁터로 나간다. 아마도 대부분의 드라마들 속 그녀들은 사랑도, 일도, 아니 사랑의 힘으로 일조차 성취해 내는 성공인이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4. 2. 11. 11:04

이제는 몇 십 년 전이지만, 지금 와 되돌아 보면 청춘의 시절은 참 화사했다. 하지만 그건 지금에 와서야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이 글을 쓰는 이 사람에게 만약 다시 이십대의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글쎄, 진지하게 고민한 후에, 고개를 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십대란, 거리에 핀 꽃보다도 자신이 더 싱그럽고 아름다웠음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불가지론과, 불확실성의 혼돈의 시대였으니까. 다시 그 고통스러운 터널을,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아름다움이란 이름표를 달고 지나가야 한다는 건, 노회한 나이듦이 감당할 수 있는 몽매가 아니다.

그러기에, 젊음을 대상으로, 젊음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들은 엎어치건 메치건, 결국은 그 혼돈과 혼란의 젊음을 위로하는데 공을 들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곤 한다. 요즘 한참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별에서 온 그대>, 그리고 시즌1,2의 인기를 힘입어 야심차게 시작한 <로맨스가 필요해3>도 그런 화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진; 조선닷컴)


1. 어린 시절, 혹은 전생의 인연

청소년 시절에 재미로, 하지만, 사실은 진지하게 화자되던 놀이가 있다. 깊은 밤 불을 끄고 거울을 보면, 미래의 파트너 얼굴이 보인다는. 실제로 그 놀이(?)를 실행에 옮기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한번쯤은 청소년 시절에 그런, 혹은 그와 비슷한 이야기에 귀가 솔깃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핵심은 바로, '내 님은 누구일까?'겠다. 지금 내가 만나는 수많은 이 남자들 중 과연 누가 나의 진정한 파트너가 될 것인가, 이것만큼 청춘에게 심각한 고민은 없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4>의 초반, 나정이가 부르는 '여보~'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다섯 남자들, 그 누구에게도 가능성이 있어 보였듯이, 누구라도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오히려 반대로, 그 누구라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청춘의 불안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안전판을 만든다. <로맨스가 필요해3>의 주완(성준 분)은 어린 시절 주연(김소연 분)을 좋아하던 주연이 보살펴 주던 꼬마 고구마이다. 주연 덕택에 음악을 알았고, 그 음악이 그의 천직이 되었듯이, 그에게 주연은 하늘이 내려준 사람과도 같다. 드라마는 희비의 쌍곡선을 그려가겠지만, 혈연처럼 어린 시절에 각인된 인연은 쉽게 피할 수 없다라며 시청자들을 안심시킨다.

<별에서 온 그대>는 한 술 더 뜬다. 몇 백년 전 전생의 인연으로 주인공 두 사람을 결박시켜 놓는다. 인간을 티끌처럼 여기며 사는 외계인 도준(김수현 분)의 태도가 180도 바뀌어, 천송이 해바라기를 만들기 위해, 전생과 환생으로 이어지는 필연의 고리를 만든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그들의 사랑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들이 결국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현실의 자신들처럼 심지어 결혼이라는 서약을 거쳐서도 불가지론의 세계에 빠지지 않고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안온함을 깔고 드라마를 지켜보게 만든다.


(사진; 리뷰스타)


2. 백마을 타고 온 왕자님들

어린 시절, 혹은 전생의 인연까지 들먹이며 사랑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드라마는 그것도 부족해 여주인공만을 바라봐주는 백마 탄 왕자님을 한 명,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한 명 더, 때로는 그 이상으로 보험용으로 준비해 둔다.

2014년에도 드라마 속 남자들은 아침 드라마, 주말 드라마, 미니 시리즈 할 것 없이, 직업 고하를 가리지 않고, 신데렐라 시절에 잃어버린 유리 구두를 들고 나타난 왕자님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드라마의 성패는, 그 드라마 속 백마 탄 왕자님이 얼마나 환타지를 잘 구현해 내는가와 비례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어린 시절 절친에게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기고 머리끄댕이를 휘어잡으려 싸우는 현장에 들어와 바닥을 친 자존심을 위로해 주며, 다친 상처조차 치료해 주고, 사회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스타의 매니저를 자청한다. <별에서 온 그대>와 <로맨스가 필요해3>는 그 핵심만을 꼭꼭 짚어주는 족집게 참고서와도 같다.

심지어 한 명이 아니다. <로맨스가 필요해3>에는 키다리 아저씨같은 회사 선배 태윤(남궁 민)이 있고, <별에서 온 그대>에는 소나기의 소년같던 시절부터 천송이만 해바라기 해온 휘경(박해진 분)이 있다. 다다익선이자, 보험이다.


현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말 조차 건넬 여유가 없다는 현실의 청춘은 사랑조차도, 직장과, 마련해야 할 전셋집과, 결혼 비용에 밀려,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한숨을 내쉬어야 할 조건으로 밀려나기 십상인 세상에서, 드라마는 더 열심히, 더 열렬하게 환타지를 실행하고자 애쓴다. 그래서 불가지론의 사랑은 어린 시절 혹은 환생의 끈을 빌려 확신을 심어주려 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현실의 철딱서니 없는 남자들은 멋진 백마 탄 왕자가 되어, 여주인공을 위해 헌신한다. 홈쇼핑 팀장으로서, 여배우로서의 리얼리티는, 환타지조차 현실의 일부분인양 교묘하게 포장해 낸다. 결국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사랑에 성공하고, 일에서도 보람을 찾겠지만, 암전이 된 텔레비전 앞에 자신은 달라지지 않는다. 현실이 각박할 수록, 드라마는 아름다워진다. 





by meditator 2014. 1. 1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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