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라이어 게임>과 <지니어스 게임>은 모두 가이타니 시노부의 만화 원작으로 부터 비롯된 작품들이다. 두 작품 모두, 원작의 게임을 충실히 반영하며, 게임 속에서 드러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심리를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지니어스 게임>이 리얼리티 게임으로, 게임 자체에 충실하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람들간의 심리적 이합집산에 치중하고 있다면, <라이어 게임>은 비록 배경은 LGT사무국에서 리얼리티 쇼로 바뀌었지만, 원작의 캐릭터들이 온전히 살아있고, 거기에, 게임의 호스트가 구체적 인물로 개입되면서, 드라마적 요소가 보다 강화되었다. 특히나,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순수한 여대생 캐릭터 칸자키 나오의 한국 버전인 남다정(김소은 분)의 존재로 인해, <라이어 게임>은 게임 그 이상,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 해볼 여지를 남기는 드라마가 되었다.
11월 3,4일에 방영된 <라이어 게임>에서 등장한 게임은 이른바 '정리해고' 게임이다. 이제 게임 과정을 통해 살아남은 남다정을 포함한 여덟 명의 사람들이, 몇 차례의 투표를 거쳐, 서로에게 표를 나누어 주고, 그 과정에서 가장 적은 표를 받은 최후의 한 사람이 게임에서 '정리해고'가 되는 방식이다.
그간 게임 과정을 통해,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순수한 캐릭터로 인해, 팬들까지 생긴 남다정은 당연히 생존자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 예상된다. 그에 반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게임 상대자를 속이며 살아남은 제이미(이엘 분)은 당연히 정리해고 대상자가 될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제이미가, 남다정을 도와주는 조달구(조재윤 분)와 하우진(이상윤 분)의 존재, 거기에 함께 식사를 한 듯한 강도영(신성록 분)과의 사진까지 제시하자, 여론은 전반대의 방향으로 전환된다. 그러니, 당연히 두 번의 투표 과정에서 남다정이 '정리해고' 대상자로 찍히게 된 것은 당연지사다.
물론, 여주인공인 남다정은 '정리해고'가 되지 않았다. 마지막 투표를 앞두고 돌아온 하우진이 그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게임의 조건을 이용해, 그녀의 개를 자처하면서 게임의 방향은 달라진다. 지금까지 판을 흔들던 제이미 대신, 하우진의 도움을 받은 남다정이 게임의 중심에 서고,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정리해고' 대상자가 정해지게 된 것이다.
뜻밖에도 그녀가 고른 '정리해고' 대상자는 실제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는 바람에, 병든 어머니의 병원비도 제대로 못내 고통을 받다 라이어 게임에 참가하게 된 정과장(박노식 분)이었다. 자신이 다시 한번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음을 알게 된 정과장은 분노를 뿜어낸다. 회사가 버린 자신을, 게임의 동료들이, 더구나, 그 누구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던 게임 과정에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유일하게 위로를 건넸던 남다정이 자신을 정리해고 대상자로 결정했음에 대해.
그런 정과장에 대해 남다정은 말한다. 당신의 정리 해고는, 그 예전 회사에서 짤린 정리해고와 다르다는 것을.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의 품으로, 병든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자신은 당신을 정리해고 대상자로 결정했다고.
그러면서, 정과장에게 필요한 만큼의 돈을 자신이 벌어들인 돈 중에서 나누어 준다.
또한 남다정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게임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에게 표를 구걸하여 빚진 나머지 게임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벌어들인 돈을 공평하게 나누어 준다. 먹고 먹히는 게임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무엇을 해도 지탄받지 않는 곳에서, 남다정은, 역설적인 결정을 내린다.
물론, 거짓을 하지 못해 아버지의 빚을 대신 짊어지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여, 늘 누군가의 희생양이 되고 마는 남다정은 착하다 못해, 답답하고 바보같은 캐릭터이다. 게임 과정에서, 그녀의 '개'를 자처한 '하우진'이 없었다면 도저히 승리는 꿈도 꾸지 못할 어리석은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내린 자신의 이익조차 포기하는 뜻밖의 결정은, <지니어스 게임>처럼 게임 자체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에서는 발견하지 못할 뜻밖의 교훈을 남긴다.
하우진은 말한다. 애초에 '정리해고' 게임이 제시됐을 때, 남다정이 제시한대로 모두가 우승 상금을 똑같이 나누어 가지는 것을 약속하고, 그 누구도 정리해고 대상자로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게임의 승리 방법이었다고. 이것은 단지, 게임의 승률을 떠나, 실제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정리해고'에 대한 상징적 금언이 된다. 누군가를 해고 하는 대신, 조금씩 나누어 일하고, 조금씩 나누어 받으면 되는 것, 역시 우리 사회 '정리 해고'의 가장 이상적인 해법이니까.
하지만 하우진이 비웃듯이, 사람들은, 그렇게 힘을 모아 모두가 살아남는 가장 안전한 방법 대신,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마음으로, 혹은 '내가 더 많은 이익을 차지하고 싶다는' 이기심으로, 모두가 상생하는 방법 대신, 그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방법을 택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속고 속이는, 제이미의 방식이 다시 한번 판을 치고, 결국 하우진의 도움을 받은 남다정의 트릭에 놀아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즉, 제 아무리 나만 아니면 돼 라고 하지만, 마지막 투표를 앞두고, 모두가, 탈락 대상자가 되듯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게임을 조율하는 누군가에 의해 '장기판의 '졸'과 같은 존재가 될 뿐이다. 기세 등등하던 그들이 남다정 앞에 비굴하게 찾아와 표를 구걸하는 존재가 되듯이 말이다. 결국 나 하나의 약간의 이익을 챙기려던 것이, 나의 존재를 비굴하게 만들고, 정리 해고의 위험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정리해고' 게임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결과가 보여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사회에서 정리해고를 당했던 정과장이 다시 한번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남다정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자신을 얽어매었던 '과장'이라는 직함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본래 이름을 되찾고 웃으며 물고 물리는 게임판을 떠날 수 있었다.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업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고용 유동성이다. 즉, 기업의 입맛에 따라, 혹은 경기에 따라 마음대로 직장 내 인원을 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원한다. 이에 대해, 고용되는 입장에서 원하는 것은, 그 반대의 고용 안정성이다.
정과장의 게임 내 정리 해고 과정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문제는 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제도를 운용하는 방식, 그것을 운용하는 사회가 문제임을 보여준다.
실제 스웨덴이나, 덴마크 등은 높은 고용 유동성을 가진 사회이다. 하지만, 이들 사회의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해고가 되어도, 그들의 삶을 사회가 보장한다. 다음 직장을 위해 사회가 그들을 재교육 시켜주고, 아이들의 교육과 가정 경제를 책임져주기에, 직장에서 밀려나도 사람들이 생존권에 위협을 받지 않는다.
즉, 게임에서 정리해고가 되었지만, 남다정의 도움으로 경제적 위기를 모면한 정과장처럼, 정리해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정리 해고 이후의 삶을 보장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면, 정리 해고도 문제가 되지 않음을 드라마 <라이어 게임>은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리해고가 두려운 것, 역시 재취업이 보장되지 않은, 사회 밖으로 밀려날 위기에 몰린, 보장되지 않은 삶때문 아닐까. 고용 안정성, 고용 유동성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운용하는 사회의 복지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남다정의 선택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몰랐던, 혹은 알고도 눈감았던 '정리 해고'에 대한 정리를 '정리해고' 게임을 통해 명쾌하게 정리해 준다.
착한 남다정은 결국, 아버지의 빚을 갚는 대신, 다음 단계에 진출하는 것을 전제로, 자신이 번 돈을 나머지 참가자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를 도왔던 하우진과 조달구의 입장에서는, 아니, 속시원한 결과를 바랬던 시청자들 입장에서 조차, 답답하다 못해 속이 터질 결단이다. 결국 누군가 이기고 지는 게임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조력자들의 우문에, 남다정은, 답을 한다. 누군가에게 빚을 안기고, 자신이 승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그녀가, 우승 상금을 안고 게임에서 빠져나온 순간, 그녀가 승리를 통해 얻은 상금은, 나머지 참가자들에게 곧 빚으로 남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는, 전 단계의 그 누군가처럼, 은행에 자신을 저당잡히거나, 그도 아니면 야반도주를 할 신세가 되고 말 것이기에, 그런 처지를 겪은 남다정은 자신과 같은 처지를 물려주는 결정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밟고 일어서야 생존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에서, 남다정이 보여준 결정은, 우리의 생존 논리를 다시 생각케 한다.
아주 원칙적이면서도, 순진무구한 남다정이 내린 결론, 거짓말 게임, 누군가를 속고 속이면서도, 자신만 살아남으면 되는 게임을 통해, 도달한 결론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도와, 힘을 합쳐 살아남는 것이 생존의 지름길이며, 경쟁이 아닌 '상생'이 살 길이라 말한다. 또한 그녀에게서, 사람이 사람을 믿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며 반문하며 죽어간 어머니의 모습을 느끼며, 그녀의 조력자를 자처하는 하우진처럼, 그리고 조달구처럼, 그녀의 순수함이, 진정한 조력자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경쟁이 아닌, 상생의 과정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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