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보기힘든 연예인들의 TV출연은 노골적으로 자신이 출연한 작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홍보를 위한 각종 활동이 연예인들의 출연조건에 포함되기도 하고, 홍보를 제대로 해주지 않은 것 때문에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하지만, <해피투게더> 등 홍보를 위한 게스트 출연을 위주로 한 프로그램들의 오르락내리락하는 시청률처럼 뻔한 홍보가 꼭 출연자의 작품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주제에 맞춰 신선한 출연진을 구성하는 <라디오 스타>는 그간 홍보 위주의 출연진이 등장한 적이 있어도 그들이 출연진 전원을 구성한 적이 별로 없고, 출연을 했더라도 최근 대중들이 노골적인 홍보에 대해 눈쌀 지푸려 하는 걸 반응하듯 오히려 홍보를 하러 나왔다고 놀림을 당하거나, 김보성 편에서 처럼 홍보 멘트 한 마디 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물론 그래서 더 주목되는 역설적 효과도 있기는 하다). 그런 라디오 스타에 모처럼 뮤지컬팀 <그날들>의 출연진 네 명(유준상, 이정열, 오종혁, 지창욱) 이 단체로 출연했다.

 

라디오 스타 - 지창욱, 오종혁, 유준상, 이정열_2

 

어라, 그런데, 초반 이 네 명의 분위기가 묘하다.

프로그램 말미의 소감에서 지창욱이 토로하듯 '끌려 나온' 분위기가 역력한 것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긍정이 넘쳐 흐르는, 그래서 한번 만나면 '파이팅'을 대여섯번은 예사로 하게 만드는 배우 유준상의 그 넘치는 긍정성만큼이나 노골적인 출연할 뮤지컬에 대한 홍보와는 달리, 이정열 등 나머지 세 사람은 '나는 왜? 여기에?' 하는 분위기를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유준상은 솔선수범 경호원으로 나오는 자신의 배역상 무술 시범을 CG를 요구하며 적극적으로 해보이고, 그것도 모자라 매트도 없는 상황에서 후배들에게 심지어 이제 배운지 3일된 오종혁에게 '낙법' 시범을 시킨다. 자타가 공인하는 유명한 뮤지컬 배우이지만 텔레비젼에서는 낯선 이정열을 암수술을 하고 나온 최초의 출연자라며 굳이 애써 이슈를 만들어 주느라 애쓴다. '그날'을 기억하는 노래도 유준상, 이정열은 모두 속보이게 김광석의 노래다. 다른 때 같으면 노골적 홍보를 제지할 <라디오 스타> 측도 유준상의 적극적 에너지에 눌린 듯 작품 소개부터 하고 들어가게 해주고, 중간중간 깨알같은 <그날들> 홍보에의 유도도 웃음으로 넘겨준다.

어찌보면 눈쌀을 찌푸렸을 수도 있는 <그날들> 팀의 홍보성 출연은 이제는 국민 남편으로 그의 어떤 행동도 미워보이지 않는 유준상이란 배우의 이미지가 맞물리면서 너그럽게 보여졌다. 또 늘 <라디오 스타>가 해왔듯 조롱하며 웃기다 어느 순간 슬그머니 울려버리는 특유의 북치고 장구치는 그 스타일로 '홍보' 그 이상의 그저 <그날들> 출연진이 아니라 이정렬, 오종혁 이란 사람을 알아가게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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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공연에 들어가는 김광석의 노래로 만들어진 뮤지컬 <그날들>은 화제작 <김종욱 찾기>의 연출자 장유정의 복귀작으로도 화제를 모아 왔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네 사람이 <라디오 스타>에 나와 노골적인 홍보를 했던 바로 그날 신문 지상에는 '뮤지컬 수난시대'란 제목 아래 <그날들>에 대한 기사가 등장했다.

건물주 인 애니웍스가 시공사인 대우조선해양건설에 공사 대금을 지불하지 않아 시공사가 건물 유치권을 행사해 연습은 물론 공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공연장 출입이 전면 통제되어 막바지 연습에 큰 차질을 빚었으며 법원이 공연 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공연 준비는 다시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출입이 통제된 극장에서 버티며 연습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런 기사가 난 날 공교롭게도 <그날들>의 출연진은 <라디오 스타>에 출연을 했고, 그 자리에서 뻘쭘함을 무릎쓰고 홍보를 위해 위험도 무릎쓰고, 애를 쓰는 모습들을 보니 그저 홍보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안간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부디 그들의 노력과 긍정적 에너지가 상처받지 않게 <그날들>의 공연이 순조롭게, 성황리에 잘 이루어지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3. 4. 4. 09:15

인터넷 용어 중에 '관심병자'라는 단어가 있다. 게시판에 튀는 사진이나 글을 자꾸 올리는 사람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한 마디로 '주위의 이목을 끌기 위해 과도한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낸시랭'하면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대표적 관심병자로 여겨지는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거를 비롯해서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그 장소에 특이한 옷차림으로- 고양이를 어깨에 거는 건 약과, 이젠 비키니까지- 나타나 옷차림 이상의 기가 막히는 행동을 해서 주목을 안할래야 안할 수 없게 만드니까.

 

낸시랭 본인은 자칭 행위 예술가라고 하지만, 남의 나라 여왕 즉위식에 나타나 여왕 코스프레를 하고, 선거에 대한 독려 행위라며 광화문 한복판에서 비키니를 입는 행동은 늘 본인의 의도랑 상관없이 대중적 이슈를 이용해 자신에 대한 관심을 끌려는 행위 이상으로 보여지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가 주장하는 바 전위적 예술 행위에 대한 평가는 더더욱 없었으며, <라디오 스타>에도 나왔듯이 등장한 모든 사람들에게 호의적 평가가 뒤따르는 <인간 극장>의 출연조차 된장녀라는 숱한 악성 댓글로 프로그램 게시판이 도배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그런 낸시랭이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느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혼자서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온 사람처럼 이질적이다못해 채널을 돌리게 만들었던 낸시랭이 <라디오 스타>에서는 그저 '희한한 사람' 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2월 27일과 3월 6일의 라디오 스타는 <희한한 사람들>의 특집으로 네 명의 게스트를 불러 모았다. 유세윤과 함께 uv의 멤버로 활동하는 뮤지션 뮤지, 외국인으로 독특하게 욕을 잘 하는 개그맨으로 샘, 아이돌이지만 아이돌같지 않은 인피니트의 성규, 그리고 설명이 필요없는 낸시 랭.

물론 성규의 출연은 구색을 맞추기 위한 조합인 것처럼 나머지 세 사람에 비해 아이돌스럽지 않다는 성규의 '포스'는 나머지 세 사람에 비해 '멀쩡'했지만, 이 특집 자체로만 봤을 때, 두 손이 마구 오그라지다 못해 짙누르는 손톱 자국이 손바닥에 남도록 낸시랭의 '뱅의 해' 퍼포먼스나, '그때 그사람' 노래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낸시랭의 존재감은 다른 두 사람 뮤지나 샘에 비해서는 밀리는 편이었다.

그것은 그만큼 이젠 낸시랭이 해왔던 퍼포먼스나 말들이 뻔한 것이 될 만큼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것이 되었다는 것일 수도 있고, 나머지 두 사람이 더 눈에 띨 만큼 사실은 낸시랭이라는 사람의 '돌출'이 어찌 보면 그저 그런 것일 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제목이 아예 <희한한 사람들>인 것처럼 뮤지나 샘, 그리고 낸시랭과 같은 사람들이 오늘날 연예 미디어에서는 '깜짝 쇼'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 예전 서커스단 시절에 본 접시 돌리기나, 공중 그네 등의 본 공연에 앞서 얼굴이 이상하게 생긴 사람, 몸이 지나치게 뚱뚱한 사람을 내보이듯이 그저 관중들의 놀라움을 이용해 쇼에 집중을 시키던 그 방식 그대로인 것이다. 그 시절 똑같은 사람인데도 이상한 사람이 궁금해서 구경을 갔던 그 마음으로 사람들은 여전히 '희한한 연예인'을 구경하고 욕을 한다. 세상은 발전했다고 하지만 인간의 진화가 신석기 시대에 멈추었듯이 인간의 놀이 방식 역시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여전하다.

그러기에 그런 인물들의 등장은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을 정도로 놀라우면 놀라울 수록 '이용가치'가 있는 것이었고, 오늘날 게시판의 악성 댓글이 어쩌면 그들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낸시랭이 댓글이 크리에이티브 하지 않다고 불평을 늘어놓지만, 어쩌면 이제 대중들에게 낸시랭은 그 돌발 행위조차도 뻔한 사람이 되어간다는것이고 어쩌면 조만간 그 뻔한 돌출 행위조차도 주목받지 못할 때가 올 수도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이제는 조금 뻔해져가는 낸시랭이라는 존재의 <라디오 스타>의 출연은 비록 쇼 프로가 가지는 이벤트 성의 측면에서는 이미 좀 진부한 소재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낸시랭이라는 사람을 희한한 구경거리가 아닌 뱀띠해 퍼포먼스가 클럽에서의 춤과 다르지 않아보이지만 '제 멋에 겨워 어쩌지 못하는' 자칭 '행위 예술가'로 온전히 보아내는데는 순기능을 하게 된 듯하다. 그녀보다 더 기발하고 희한한 다른 두 사람으로 인해 그녀의 말들은 '희한함'을 넘어 그럴 수도 있다는 한 줄기 이해의 빛을 얻었고, 오그라들거나 오해를 샀던 의 행동들도 해명의 기회을 얻었다. 우리가 뮤지나 샘의 행보를 꼭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듯이, 낸시랭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저 그런 사람이 있다고 흔쾌히 인정하면 그만인 것이다.

유리벽 속의 구경거리가 숨쉬는 사람처럼 여겨졌던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3. 3. 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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