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리도 한 두번이지'
아마도 이 속담만큼 <땡큐>의 고민을 잘 보여준 표현도 없을 것같다.
2013년 3월 혜민 스님과 박찬호, 그리고 차인표가 여행을 떠나 길동무가 되어 하룻밤을 보내며 속내를 풀어놓기 시작한 <땡큐>는 어느덧 대표적인 힐링 프로그램이 되어 있었다.
만화가 이현세, 사진작가 김중만, 발레리나 강수진 등 사회저명인사에서 김지수, 하지원, 장서희 등 오락프로그램에서는 만나기 힘든 연예인에, mbc방송국을 그만두고 첫 방송을 시작하는 오상진 아나운서에, 야구를 그만두고 사회 생활을 막 시작한 박찬호, 오랜 자숙 기간을 거쳐 다시 무대에 오르는 지드래곤까지 각자의 사연을 지닌 사람들까지, 겨우 12회 남짓 기간 동안 <땡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속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었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보인 건 아니지만, 이 프로그램에 나온 누구라도 그간 그간 보여준 이미지와 상관없이 그 시간을 함께 한 시청자들에게 좋은 인사 하나를 심어놓은 건 따논 당상이었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게스트를 모셔놓고 그에 관해 심층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무르팍 도사>나 <힐링 캠프>같은 프로그램들도 게스트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한 회에 사회 각 분야에 나름 인지도 있는 인사를 모셔야 하는 <땡큐>는 10회를 넘어선 즈음 이미 다녀갈 사람은 꽤 다녀간 느낌을 준다. (그만큼 텔레비젼 오락 프로에 나와서 허심탄회하게 속을 내보일 저명인사가 희박하단 의미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매회 '아버지' 등 주제를 가지고 접근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10 여회 내내 <땡큐>의 이야기들은 '동어반복'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처음 말했던 '좋은 소리도 한 두번이지'라는 그 느낌 때문이 아니었을까. 학습 계획서에 맞추어 또박또박 공부하는 범생이처럼 꼭 '힐링'을 하고야 말테야 하는 의욕이 앞선 듯이 보일 때도 있었달까.
처음 <땡큐>를 시작할 때만 해도 꼭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곤 하였다.
처음 만나서 새로운 곳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그리고 다음 날 다함께 그곳의 풍광을 즐기고. 그런데 그 내용을 다 담으려고 하다보니, 늘 한 팀의 게스트로 만들어낸 분량이 애매했었다. 2회는 너무 늘어지고, 1회 반? 이러다 보니, 프로그램의 흐름이 끊어지고.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땡큐>의 여행은 여행지의 멀고 가까움과 상관없이 '긴~' 하루를 함께 보내는 것으로 대신하게 되었다. 덕분에 한 팀의 게스트로 한 회라는 쌈박한 분량이 정해지고. 하지만, 여행이란 게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1박2일을 보내면서 친해지고 나누는 이야기랑, 그저 하루를 함께 지내는 거랑 깊이가 다르듯이, <땡큐>가 전해주는 이야기의 깊이도 한결 가벼워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서로 즐겁게 지내면 그게 '힐링'이지 '힐링'이 뭐 별건가? 싶게.
12회 <땡큐>는 '기혼자들'이라는 주제로 배우 염정아, mc 지석진, 쉐프 강레오가 차인표와 함께 춘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마도 초창기의 <땡큐> 였다면 차인표가 춘천으로 가는 길에 게스트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거나, 게스트끼리의 만남을 이뤄가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한 팀의 게스트에 할애된 분량이 적어지면서 프로그램은 대뜸 춘천 닭갈비의 먹방으로 왁자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목소리 큰 사람이, 말많은 사람이 초반의 기세를 잡아갈 수 밖에 없었고, 지석진, 염정아 중심의 프로그램은 내내 마지막 까지 그 흐름을 이어갔다. 심지어 가끔은 지석진이 mc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만큼.
짧은 여행의 <땡큐>는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대세답게 '먹방'과 함께 '즐길거리'에 치중한다. 그래서 '기혼자들' 팀은 함께 닭갈비를 먹고, 검술 대련을 하고, 장을 보고, 각자 먹거리를 만들고 먹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기혼자들인 만큼 대부분이 부부들이 사는 이야기, 아이들을 키우는 이야기가 오고 갔고. 오늘 하루 검색어에 오를 만큼 지석진의 이상한 부부 생활이 줄곧 문제가 되었다. 결혼 8년차 염정아와 이제 막 신혼인 강레오, 그리고 십여년이 넘어도 한결 같은 차인표는 본인은 '노멀'하다고 주장하지만, 지극히 부부 중심의 생활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그 자리에선 전혀 '노멀'하지 않은 지석진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고, 결국 그의 부부의 '사랑해'를 나누는 것으로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했다.
가수 김창완이 예전에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부부에 대해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있다. 김창완네 부부는 서로의 동선을 알아서, 가급적이면 서로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피해다니며 생활한다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꼭 부부가 함께 지내는게 능사가 아니라고. 부딪쳐서 소리가 나기 보다는 지혜롭게 서로의 영역을 지켜줄 필요도 있다고.
아마도 <땡큐>의 그 자리에서 김창완이 나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다들 뒤로 넘어갔을 것이다. 김창완이 옳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예전의 <땡큐>같으면, 그래 그렇게 살 수도 있지 하고 바라볼 여유를, 짧아진 여행만큼 <땡큐>가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해서 하는 말인 것이다. 어거지로 '사랑해'를 입에 담는다고 더 사랑이 깊어진 것도 아니고, 꼭 지석진 부부가 잘못살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조급한 여행은 그럴 듯한 엔딩을 향해 '사랑해' 한 마디를 재촉하는 듯 했다.
또 예전 같으면 그리도 강레오가 궁금했다는 염정아가 강레오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궁금하다던 강레오의 말은 몇 마디 듣지도 않고 주구장창 지석진과 부부 관계를 둔 수다만이 넘쳐났던 <땡큐>는 어쩐지 동네 아줌마들이랑 잔뜩 먹고, 수다를 떨고 돌아온 뒤, 어쩐지 허탈한 그 심정같달까. 말은 넘쳐나고,음식은 충만했으나, 염정아네 오글거리는 '이번트'말고는 기억에 남는 것도 내 마음에 두고픈 것은 없는 허탈한 힐링이다. 아니 오히려 남들은 저렇게 사이좋게 사는데 그러며서 부부싸움나기 십상일 트러블 메이컬일 수도.
시청률을 무시할 수 없는 세상, 다른 채널에서 여섯 남자들이 모여 웃고 떠들고 즐기며 먹어대는 분위기를 <땡큐>의 느린 호흡으론 따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가볍게, 조금은 희희락락한 여행을 모색해 보았을 수도 있다.
너무 좋은 이야기만 해서 조금은 지루했던 <땡큐>가 두터운 겨울 옷을 벗어던지듯 가벼워졌는데, 웃고 즐기는 그 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어쩐지 허전한 건, 무슨 아이러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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