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고현정이 합류했지만, 온전히 '어르신'들이 주인공이 드라마,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당연히 시청률 지상주의 '공중파'에서는 그 '어르신'들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대신 '시청률'과 무관하게 '어른'들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는 tvn이 '어르신'들의 자리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디어 마이 프렌즈>, <꽃보다 할배>가 할배만큼, 젊은이들에게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듯, <디어 마이 프렌즈>도 '어르신'들보다, 오히려 '어르신'들과 소통하지 못했던 젊은, 혹은 어른신이 될 세대에게 공감을 얻었다. 4%~8%를 오르내리는 tvn 드라마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시청률로는 설명할 길 없는, 어설픈 '로맨스 그레이'가 아닌 '어르신들'의 진솔한 속내만으로 이어간 16부의 이야기는 '꼰대'로 시작하여,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 똑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마음을 울렸다. 




왁자지껄 시끌벅적 어르신들의 적나라한 사연으로 시작하여, 
노희경의 드라마가 그렇듯, 드라마는 가장 적나라한 '어르신'들의 현실적 모습으로 시작된다. 시골 마을 동창인 '어르신들', 그들 각자의 모습은 우리 사회 어디선가 만날 법한 그분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바람을 핀 남편에 대한 트라우마를 동창에게 푸는 딸에 집착하는 열혈 가장인 엄마(장난희-고두심분), 시골마을 동창으로 만나 70평생 부부로 살았지만, 시부모로 부터 남편까지 이어지는 '구박'과 자식들 뒷바라지로 이골이 난 엄마(문정아-나문희 분), 그리고 남편마저 떠난 빈 집에서 자식들 부담주지 않으려 고독과 싸우는 엄마(조희자-김혜자 분), 이혼한 자식이 남겨놓은 그리고 엄마도 되지 못한 채 한평생 가족들 뒤치닥거리를 하다 처녀로 늙은 여전한 미스(오충남-윤여정 분). 화려한 배우이지만 그 뒤편에 남겨진 것은 고독과 병과의 싸움인 이혼녀(이영원-박원숙 분), 그리고 그들의 딸이라 칭해지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시집 못간 늙다리 노처녀(박완-고현정 분). 그들은 노희경 드라마답게 만나자마자 왁자하게 으르렁거리고 시끌벅적하게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길위에서 죽자고 다짐했던 오랜 우정, 정아와 희자가 길을 떠나며 그저 여느 우리네 어르신들의 시끌벅적한 사연은 각도를 달리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거치적거릴 것이 없다며 기꺼이 친구를 대신하여 감옥으로 가려했던 고운 우정은, 치매로 이어지며 밤마다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해야 만 했던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희자 이모의 다하지 못한 애닮은 모정의 사연으로 구비구비 전개된다. 그저 늘 말많은 가부장 남편의 그늘에서, 요구많은 딸들의 하루에서 방패막이 처럼 살며, tv를 보며 미련하게 언젠가 훗날 세계 일주를 꿈꾸기만 하던 정아 이모의 일상은 평생 고생만 하다 결국 하루의 여행조차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친정 엄마의 죽음으로 자유를 향한 무한한 일탈로 귀결된다. 극성스러웠던 난희 엄마의 열혈 모성은, 암이라는 브레이크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이제 딸을 놓아줄 수 있는 여유를 남긴다. 배우지 못한 한을 가난한 예술가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보상받으려 했던 충남의 무한 예술 사랑은 그녀가 그토록 멀어지려 했던 늙은 벗에대한 돌아봄으로 귀결되고. 

때로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손바닥을 마주치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환타지인듯한 늙은 그녀들의 행보는, 그저 완이만 만나면 1.4 후퇴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자신의 '한'을 풀어놓지 못해 입에 모타를 다는 기자(남능미 분) 이모의 한풀이가 아니다. 치매가 걸린 희자 이모가 회귀하듯 죽은 아이로 여겨지는 베개를 등에 업고 한없이 젊은 시절의 그 길을 찾아 가듯, 그래서 뒤늦게 그 자리를 헐레벌떡 찾아간 친구 정아의 머리 끄댕이를 잡고, 그 시절 못다했던 설움을 폭발하듯, 그저 이제는 '어르신'이던 그들도, 지나온 인생 구비구비에서,  지금을 사는 젊은 사람들처럼, 똑같은 '사람'이었음을 드라마는 밝힌다. 똑같이 상처받고, 그 상처를 부등켜 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이가 들어버린, 늙은 '사람'.



늙은 사람일 뿐, 친구가 된 어르신들
그러기에, 그들은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 거침없이 딸 완이 엄마 난희에게 '우리 이제 친구하자'라고 말할 수 있듯이, 그리고 엄마의 늙다리 친구들을, 기꺼이 '나의 늙은 친구들'이라고 말할 수 있듯이, '어르신'들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친구'로 다가온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저 그들에게 '친구'의 이해만을 바라지는 않는다. '친구'가 되었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나이든' 사람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16회, 암에 걸려 수술을 받은 난희는 그토록 집착했던 딸을 놓아준다. 자신의 동생으로 인해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때문에 장애인은 안된다고 했던 '고집'에서 벗어나 딸 완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치매에 걸린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던 희자 이모도 마찬가지다.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을 자식 대신 기꺼이 요양원을 택한다. 자신의 평생을 '희생'이라 정의내린 완에게 완강하게 저항했던 희자 이모였지만, 끝까지 엄마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가장 현실적인 어르신들의 모습으로 시작하여, 15회까지 <디어 마이 프렌즈>는 줄곧 우리가 외면했던 늙은 사람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전하려 애썼다. 15회, 암에 걸린 엄마 앞에 눈물을 흘릴 자격이 없다 스스로 자신의 뺨을 후려치는 완의 모습은, 곧 늙은 사람들, 어르신의 삶에 냉정했던 우리들에 대한 단죄였다. 그렇게 15회까지 '이해'를 위해 달려왔던 드라마는, 16회, 이제 이해를 받은 '어른들'에 대한 당부로 끝을 낸다. 젊은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삶을 이해받으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어른'으로서의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식이라 집착하지 말고, 기대려 해서는 안된다고. 품위있는 난희와 희자 이모의 선택은 그래서 사실은 단호한 작가의 어른들에 대한 당부의 말씀이 된다. 물론 그 '슬픈' 당부에 '에필로그'도 있다. 이제, 당신들이 살아온 평생의 그 '짐'에서 내려와, 자유롭게 살라고, 아직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는 추신. 그래서, 늙고 병들어 함께 살 수 조차 없는 늙은 벗들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비록 정아 이모가 원하던 세계 일주는 아니지만, 기꺼이 그들이 힘닿는 그곳으로. 



늙음에 대한 이해와 당부로 깔끔하게 마무리된 <디어 마이 프렌즈>가 가능했던 것은 노희경이라는 작가가 전제가 되지만, 그것의 완결 조건은 결국 '프렌즈'를 설득했던 어르신 배우들이었다. 진짜 희자인지, 정아인지 헷갈릴 정도로, 희자와 정아와, 난희와 충남, 영원, 그리고 석균과 성재, 오쌍분 여사로 열연했던 어르신 배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늙은 꼰대들을 '친구'로 다가오게 만들어 주신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 여전한 열정의 그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by meditator 2016. 7. 3. 16:18

인기리에 방영되는 tvn의 월화 드라마 <또 오해영>, 주인공들은 '전쟁'같은 사랑을 치루고 있는 중이다. 그들의 절실한 '사랑'이 화제가 되고 있지만, 주인공 오해영(서현진 분)과 박도경(에릭 분)은 '이성적' 시각에서 따지고 보면 '미친 년, 놈'이 따로 없다. 자신의 결혼을 파탄냈는 그 놈을 못잊어 하는 오해영도 제 정신이 아니고, 그런 그녀를 연민으로 바라보다 이제 자신으로 인해 감옥까지 다녀온 피해자 오해영 전 남친에게 다짜고짜 주먹다짐을 하고 마는 박도경도 만만치 않다. 굳이 다른 드라마에서 찾을 게 뭐 있겠는가. <디어 마이 프렌즈> 속 박완(고현정 분)이 장애인이라 자신이 없다며 외면했던 애인 연하를(조인성 분) 첫사랑과 키스를 해가며 잊으려 몸부림치다 결국 몇 년만에 18시간의 거리를 단숨에 달려(?) 해후하고 마는 사랑은 또 어떻고. 


기꺼이 양보도 가능한 노년의 사랑
이렇게 '미침'을 거부하지 않는, 아니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열정적인 '젊음'의 사랑이 있는가 하면, 오랜 시간 알아왔던 동생이 좋아한다 하면 기꺼이 '양보'할 수 있는 '노년'의 사랑도 있다. 그렇다고 그게 사랑이 아닌 건 아니다. 



성당에서 희자(김혜자 분)는 성재(주현 분)을 만난다. 아니 희자가 성당에 다니는 걸 알게 된 성재가 희자 앞에 나타난 것이다. 성재는 바로 희자의 첫사랑, 하지만 우연한 엇갈림이 두 사람 사이에 몇 십 년의 이별을 낳았다. 그 동안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다른 삶을 살아내고, 이제 정신이 까무룩하는 노년이 되어서야 해후를 하게 되었다. 

속되게 노년의 사랑을 인생의 마지막 행로에서 다시 오지 못할 사랑이기에, 동네 노인정 할머니들이 한 분의 할아버지를 두고 머리 뜯고 싸울만큼 '열정'의 사랑으로 빗대기도 한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는 낭만적인 희자와 성재의 해후를 환타지같은 낭만을 뚫고 현실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희자의 앞에 나타난 성재, 이 로맨틱한 설정에, 희자는 성재를 소닭보듯한다. 첫사랑의 그 시절, 그녀를 홀로 남겨두어, 사별한 남편과 인연을 만들 빌미를 주었던 성재에 대한 원망도 있지만, 이제 72세의 치매끼와 싸워야 하는 희자에게 성재는 그저 성가신 배 나온 노인네에 불과할 뿐이다. 그녀 앞에 나타난 성재는 다시 만난 그녀를 보고 설레어 하지만, 희자는 오히려 정아와 벌인 교통사고 수습으로 인해 성재가 내뱉는 말들이 성가실 뿐이다. 

그러나 자꾸 그녀 앞에 나타나 보고싶다는 성재, 조금 솔깃해질까 싶은데, 오랜 벗이나 다름없는 동생 충남(윤여정 분)이 성재가 좋단다. 그러자 희자는 기꺼이 양보한다. 심지어, 성재와 함께 떠나겠다던 여행조차 대번에 포기하고 만다. 

불타오르지 않아도 사랑은 사랑 
머리뜯고 싸울 노인정 할머니들의 애정 삼각 전선이 등장하는가 싶었던 희자-충남-성재의 삼각 로맨스는 충남의 사랑 선언에 기꺼이 포기를 선택한 희자의 우정과, 희자의 외로움을 이해한 충남의 호쾌한 포기 선언으로 싱겁게 마무리된다. 희자는 오랜 시절 가족을 돌보느라 결혼조차 하지 못한 채 살아온 충남을 안쓰러워하고, 충남은 이제는 홀로 남아 시간과 싸우는 희자의 고독을 이해한다. 



결국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 희자와 성재, 하지만 로맨스 그레인인 줄 알았더 이들의 여행은 생각보다 여의치 않다. 아침부터 꽃단장했던 성재의 의도와 달리, 달리는 차 속에서 흩날리는 건 봄바람이 아니라, 성재의 흑채 가루였고, 그 시절 흔연히 희자 정도는 엎어줄 수 있었던 기력은 차가 끊겨서가 아니라, 늙어서 더는 운전을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하는 하룻밤이 되었다. 

어찌어찌해서 가방을 가운데 두고 한 방에 누운 두 사람, 이 로맨틱한 정취 속에 토로되는 건, 곱게 늙은 노년의 얼굴 속에 숨어있는 이제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을 신산한 삶이다. 젊었다면 어찌 해볼 이 운명의 시간, 달콤한 사랑의 운명을 방해하는 건 노년의 다한 기력이 몰고오는 잠이다. 

몇 십년만에 다시 만난 첫 사랑, 그들의 하룻밤 여행이라는 낭만적인 로맨스의 소재는 노희경 작가에 의해 가장 현실적인 노년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된다. 그렇다고, 희자와 성재의 만남이 무위가 된 건 아니다. 이제와 다시 만나 어쩌겠냐고 외면하는 희자에게 성재는 그저 늙어서 치구가 되자고 한다. 그리고 친구처럼 요의를 참을 수 없는 희자를 위해 차를 세우고, 치매끼에 도움이 되는 그림책을 사온다. 그런 성재의 성의에 조금씩 긴장이 풀린 희자는 입가에 묻은 검댕이를 닦아주고. 함께 선 일출의 정상에서 '지금만으로도 좋다'며 그의 손을 잡아준다. 여느 드라마나 영화같은 낭만적인 로맨스대신, 70여년의 삶을 지고온 시간고 그 시간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 만남이 이어진다. 굳이 '전쟁'처럼 불타오르지 않더라도, 때론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해프닝과 잔잔하게 미소가 지어지는 우정으로 인해 은은하게 온기를 느끼게 하는 사랑이다. 

by meditator 2016. 6. 12. 16:25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다. '더 살믄 뭐 하누. 그저 오늘 밤이라도 자다가 조용히 가면 좋겠다'고. 하지만, 당신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 만큼, 아이러니하게도 당신들의 삶에 대한 집착은 커져 가는 듯 보인다. 매 끼니마다 밥 보다 더 많은 양의 약을 한 움큼씩 드시고, 혹여라도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다싶으면 득달같이 병원, 그것도 종합 병원을 내 집 드나들듯 하신다. 그렇게 말씀과 다르게 '건강 염려증'으로 삶에 대한 열렬한 욕구를 표출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나이듦이 무서워진다. 그리고 그 무서워짐의 내면에는 '뭐 저 나이 돼서도 저렇게 삶에 연연하나?'라는 선입견이 있다. 


완의 나레이션을 통해 사회적 선입견을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가 노인들을 주인공으로 삼았음에도 극의 나레이션을 난희(고두심 분)의 딸 완이(고현정 분)에게 맡긴 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노인들을 보는 바로 저 선입견으로 부터 비롯한다. 

급격한 노인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초고속 노령 사회로 진입하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달리, 우리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개념을 정립하지 못했다. 농경 사회 속 '어르신'이었던 노인은 어느 틈에 산업 사회 '뒷방 늙은이'가 되었다가, 이즈음에는 빈곤 노인과 어버이 연합으로 상징되는 소통 불능의 꼰대들로 취급받을 뿐이다. 

그래서 드라마 속 노인들은 누군가의 엄마로, 혹은 집안 어른으로 주로 맡는 역할이 '하드 캐리'한 '안티'캐릭터들이 대부분이다. 언제나 목소리 높은 악독 시어머니의 대명사였던 박원숙씨처럼 말이다. 그런 그들을 노희경 작가는 '인생'이 있는 노년으로 불러온다. 그래서 박원숙씨는 경우없는 시어머니에서 돌아온 거울 앞의 국화같은 노년의, 배포있고 그 배포만큼이나 아량도 넓은 동창생 영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악독한 시어머니가 넉넉한 마음을 가진 노년의 멋쟁이로 되살아나는 이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해 노희경 작가는 난희의 골치덩어리 노처녀 딸 완이를 개입시켜, 노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감정을 마음껏 풀어댄다. 그래서 그녀는 엄마 난희를 비롯하여, 엄마의 동창생 이모들이 갖가지 해프닝을 벌일 때마다 시청자, 그리고 우리 사회 속 시선에 따라 한껏 '욕'을 해댄다. 

그렇게 완은 외진 시골 도로에서 더 이상 운전을 못하겠다며 자신을 불러댄 희자(김혜자 분) 이모와 정아(나문희 분)이모에게 노인네들이 집에나 있을 것이지, 오밤중에 운전을 하느냐 부터 시작하여 온갖 할 소리 못할 소리를 다해댄다. 말은 완이의 입에서 나오지만, 사실 그들을 보는 시청자의 입장도 그리 다른 건 아닐 터이다. 

아직은 끝나지 않은 노년의 삶
죽기에 좋은 날이라며 빌딩 옥상에 올라간 희자의 처지가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에서 그럴만도 하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쓸쓸한 노년의 삶이다. 그들의 여전한 악다구니와 해프닝이 '뭐 나이 들어 저렇게 까지'라는 생각이 들어 더 씁쓸해 지는 상황들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희자와 정아의 교통 사고가 있다. 한밤중 고속도로에서 <델마와 루이스> 기분을 내던 정아와 희자는 운전 미숙으로 교통사고를 내고만다. 그리고 너무 놀라 뺑소니를 친다. 운전도 못하는 노인네들의 주책맞은 한밤중 드라이브라는 상황을 뛰어넘은 이 사고를 통해 작가 노희경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삶으로서의 '노년'을 역설적으로 정의해 낸다. 

빌딩 옥상에 올라 떨어져 죽으려다 떨어지는 자신 때문에 거리의 행인이 다칠까 한강 다리로 자리를 옮겼다가 경찰에 잡혀간 희자는 여전히 삶에 미련이 없다. 하지만, 정작 정아와 함께 사고를 낸 순간 그녀는 아직 자신이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경험한다. 정아의 역설은 다른 지점에서 온다. 뺑소니를 친 사실을 안 완이 자수를 권하자 자신이 친 피해자가 늙어서 다행이라며 어깃장을 놓던 그녀, 하지만, 완의 차 백미러에 비친 역시나 늙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으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진 피해자의 아직 끝나지 않은 노년의 삶에 감정 이입을 한다. 

<디어 마이 프렌즈>가, 그리고 노희경 작가는 이런 죽음의 역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징그러워해 마지 않는 노년의 끝나지 않은 삶에 대한 공감을 제시한다. 하지만 공감에서 그치지 않는다. 삶에 대한 여전한 열망을 깨닳은 두 노인이 선택한 삶의 방식으로 인해 시청자들을 감동시킨다. 

아직은 죽고 싶지 않은 자신을 깨달은 희자, 그녀가 선택한 다음 행보는 자신이 친구 정아 대신 교통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로 자수를 하려는 것이다. 아직 죽지 않은 남편과 그녀의 도움이 필요한 세 딸이 있는 정아와 달리, 막상 자식들에게 유서 한 장을 적으려 해도 딱히 할 말이 없을 정도의 걸리적거릴 것이 없는 자신의 삶을 핑계 대며 친구를 대신하여 감옥에 가려는 것이다. 정아 역시 다르지 않다. 늙은 두 친구가 손을 꼭 잡고 함께 한 경찰서 행은 끝나지 않은 삶을 '욕구'와 욕망'이 아닌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이타적'일수 있고, '도덕적'인 존재로서의 어른으로 그들의 여전한 삶을 응원하게 만든다. 그리고 뒤늦게 자신의 편견과 선입관을 후회하며 쫓아온 완이를 통해, 우리 역시 '선입관'과 '편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음을 반성하게 만든다. 

이제 4회이지만 <디어 마이 프렌즈>의 노년은 '훈계'나 하며 자신의 존재를 위해 '인정 투쟁'을 하는 뒷방 세대가 아니다. 얼굴의 주름은 자글자글할 지언정, '내일 밭 농사가 더 걱정인' 오쌍분(김영옥 분) 여사처럼 오늘의 삶에 펄떡이는 당대성이다. 완이의 사랑 이야기보다 더 귀추가 주목되는. 
by meditator 2016. 5. 22. 17:21
2008년 출간 즉시 붐을 이루었던 <엄마를 부탁해>는 자식의 집에 가려고 서울로 상경했다 남편의 손을 놓친 채 실종된 '엄마'의 삶을 복원한 이야기다. 그저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던 엄마의 실존적 삶을 복원해 내려 애썼던 이 소설은 당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 '붐'은 '붐'으로서 흘러가고, 여전히 우리 문화 속 '엄마', '어머니'는 여전히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다.

tv도 다르지 않다. tv 속 '엄마'들은 주말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 속에서 누군가의 결혼과 사랑의 매개자나, 반대자 등의 '갈등' 혹은 '감초' 요소로서 등장한다. 그나마 '가족'을 '주제'로 내건 주말, 일일 드라마에서는 존재감이라도 있지만, 제작비와 출연료의 문제로 언제부터인가 주중 드라마 속 주인공들에게 '부모님'의 존재감은 '희박'해지고 있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의욕적으로 중, 노년의 이야기를 선보이겠다고 한 김수현 작가의 <그래 그런거야>에서도 중, 노년의 삶은 등장하지만, 여전히 거기서 중년의, 노년의 여성들은 종종 '자아'에 대한 결핍증을 호소하다, 결국은 '가족'이라는 구심력 속에 자신을 '실종'시키고 만다. 오죽했으면 늘 막장 드라마의 악역을 도맡았던 박정수, 이휘향 등이 역시나 비슷한 캐릭터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개연성있게 전개시켰던 <결혼 계약>이라는 드라마에 반가움을 표명했을까.

디어 마이 프렌즈ⓒ tvn
노년, 풍성한 삶의 속내를 열다 
그런 중에 5월 14일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가 등장했다. tv 속 어머니들이 '막장' 속 악다구니의 담당자가 되자 우리 곁에서 슬그머니 사라져갔던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누구누구의 엄마 대신, 정아(나문희 분), 희자(김혜자 분), 난희(고두심 분), 충남(윤여정 분), 영원(박원숙 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름만이 아니다. 누구누구의 어머니나 아내라는 이름표 대신, 그 어떤 통속극보다도 적나라한 삶의 속내를 내보이며 '사람'의 모습으로.

시끌벅적 첫 회를 연 것은 바로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동창회다. 충남의 야외 까페에서 열린 동창회, 하고 많은 설정 중에 동창회는 바로 누군가의 엄마, 아내로 살아온 노년의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부여하는 절묘한 장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이들이 가족 속 이름표를 내던진 채 '누구야' 라고 불리워지는 이 세월의 역회전 순간, 드라마는 '노년'이라는 단절된 세대에게 생생한 삶의 가치를 부여한다.

등장한 배우들의 면모가 쟁쟁한 만큼, 그 배우들이 연기하는 <디어 마이 프렌즈> 속 삶도 제 각각이다. 72살의 정아는 중졸 출신 컴플렉스를 가진 남편의 비위를 맞추며 세계 여행의 꿈에 부풀어 세 딸의 뒤치닥거리를 하며 오늘도 분주하게 산다. 그런가 하면 그녀의 오랜 친구 희자의 삶은 바쁜 정아와 정반대다. 오죽하면 그녀의 남편이 돌아가셨을 때 자식들이 차라리 어머니가 먼저 가시는 게 낫다하며 걱정할 만큼, 홀로 갈아가는 하루하루가 그녀에겐 버겁다. 결국 홀로 남겨진 집은 공허하고, 시간은 깃털처럼 휘날리는데 정작 그녀는 그걸 주체할 수 없다. 유학까지 뒷바라지한 딸에게 조차 열심히 살아온 삶을 쉬이 이해받지 못하는 난희의 열혈 노년도, 65세의 나이에도 '처녀'임을 자부하는 충남의 부질없는 예술혼 치닥거리도, 그리고 이제는 돌아온 거울 앞의 국화가 되고 싶지만, 우정조차 용인받지 못하는 영원의 노년도, 그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다.

디어 마이 프렌즈 인물 관계도 ⓒ tvn
나이듦, 꼰대, 그 이상 
1,2회를 통해 보여준 것은, 세상에서 쉽게 단절적으로 정의 내리는 '노년'에 대한 거부이다. 나이듦이란 시간의 경과로 한 세대를 동질의 그 무엇으로 정의내리지만, 드라마는 '나이가 들었다는 것' 그 이상 들여다 보면 동일하다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삶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또한, 그와 다른 세대는 쉬이, '꼰대'라고 치부해 버리는 그 '나이듦'의 진부함 속에 사실은 풍성하고도 생생한 삶의 풍경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단 2회만에 드러낸다. 희자의 삶이 하루 아침에 독거노인의 고독을 절실하게 보여준다면, 그녀의 친구인 정아는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한 '엄마'와 '아내'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그저 '꼰대'라고 치부했던 그들의 요지부동 고집스러움의 속내도 살짝 드러낸다. 고졸인 정아가 자신의 고졸이 부끄러울 줄 몰랐다는 토로처럼 중졸 그녀의 남편 석균의 열등감은 그의 자수성가에 힘입어 '본투비 꼰대'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딸과의 소통이 안된 엄마 난희의 '꼰대스러움'에는 사랑받아보지 못한 결핍의 잔재가 역력하다. 죽음을 결심한 희자에게 꼰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렇게 <디어 마이 프렌즈>는 oecd 국가 중 가장 급격하게 노령 사회가 되어가는, 하지만 그런 사회적 지표에 반대급부로 급격하게 사회적 신뢰감을 잃어가는 노년층을 '삶'을 가진 풍성한 존재로 불러온다. 그리고 '단절'되고 '처치곤란'한 노년을 넘어, 삶의 지속적이면 '완성'을 앞둔 존재로서 노년에 대한 '상념'을 풀어놓는다.

무엇보다 <디어 마이 프렌즈>가 반가운 것은 제목에서부터 '프렌즈'이듯, 노년의 삶을 엄숙하지 않은 어조로 다가서려는 점이 반갑다. 더구나 그 작가가 노희경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간 <꽃보다 아름다워(2004)>, <기적(2006)>, <유행가가 되리(2005)> 등 노년의 삶을 진솔하게 감동적으로 그려왔던 작가였기에 기대가 크다. 
by meditator 2016. 5. 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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