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문 사회면이나, 뉴스를 통해 만나게 되는 어이없는 기사들 중의 하나가 바로 '주차' 시비나 층간 소음 문제로 이웃까지 분쟁을 벌이다, 폭력을 불러오건, 심하면 상해 치사에 이르게 되는 사건들이다. 과연 이런 사건들을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그 흔한 이웃간의 각박함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드라마 스페셜-부정주차>는 바로 그런 주차 문제로 빚어지는 이웃간의 갈등 속에 숨겨진 소시민의 애환을 다룬 모처럼의 수작이다. 


35세의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노정도(온주완 분), 상식적이며 교양있는 변호사처럼 행세하고 다니지만, 시골집 아버지에게 용돈을 부쳐드려야 하는, 이제는 소형차를 몰아야 하는 처지의 월급쟁이이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큰소리 칠 수 있는 것은 거주자 주차 구역에 당당히 차를 댈 권리와, 그런 그의 차를 함께 타고 다니는 여자 지현(장준유 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그가 내세울 유일한 권리인 거주자 주착 구역 그의 자리에 자꾸 차를 대는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그 동네를 힘으로 평정한 택시 회사 사장 안상식(김상호 분)이다. 

남자들에게 차란 무엇일까? 지난 주 수요일 <매직아이>에서는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해 특히 더 차에 집착하는 이유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남자 객원 mc로 출연한 이적은, 남자들에게 차는 곧 자신들의 상징, 거기서 좀 더 노골적으로는 남근의 상징처럼 여겨진다는 의견을 편다. 그러기에, 남성들은 자신의 차에 어떤 위해가 가해질 경우 마치 자기 자신에 대한 해꼬지라고 한 것처럼, 심지어는 그 이상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근거에 더해서, 최근 빈번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주차 문제나, 아파트 층간 소음의 기저에는 바로 '재산권'의 문제가 있다. 겨우 힘들게 마련한 '나의 차', '나의 집', 바로 개인에게 있어, 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를 재산적으로 증며할 유일한 근거인 그것이 위해를 입는다고 느껴질 때 그것을 소유한 개인은, 또한 자본주의 사회의 자기 정체성에 위해를 입은 것처럼 분노하게 된다. 


<부정 주차>에서 노정도에게 있어 차도 그런 남성적 자존심이자, 개인의 유일한 재산권의 증거라는 면에서 다르지 않다. 한때 사시를 준비했지만, 지금의 처지는 겨우 자기 몸 누일 방 한 칸에, 한때 대학 선배였던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인 그가, 유일하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증거가 자신의 차를 댈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거주자 주차 구역이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 자신의 차 대신 남의 차가 떠억하니 자리 잡았을 때, 더구나 그가 그가 사는 동네의 실세라는 이유만으로 법을 마구 무시하는 건 물론, 동네 사람들에게 이젠 은근히 민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노정도의 뜻모를 정의감은 분기탱천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가 적으로 삼는 안만식이 뭐 그렇데 대단한 사람도 아니다. 동네 주민의 주차 구역에 무단 주차를 하며 행세를 하지만 택시 회사 사장이라는 그의 위세도, 결국 마지막에 가서 보여지듯이 사상누각에 불과한 처지일 뿐이다. 알량한 거주자 주차 구역 그 한 자리를 놓고, 그저 조금 더 가진 듯이 보이는 자와, 그것을 사수하려는 자의 밀고 밀리는 한 판, 그건 자본주의 사회 밑바닥 이전투구의 단면일 뿐이다. 낙수 효과는 커녕, 결국 나누어 가질 몫이 애초에 별로 없는 그 한 자리를 두고, 서로가 밀고, 밀리기 싫다며 벌이는 치킨 게임에 불과한 것이다. 

<부정주차>는 불쾌감으로 시작된 노정도의 태도가 지각을 할 지언정 차를 두고 출근하는 집착을 거쳐, 상대방의 차를 부수고, 자신을 쫓는 그와 차량 질주극을 벌이게 되기 까지, 폭주하는 소시민의 상황을 차근차근 따라간다. 그저 자신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분노에서 시작된 그의 감정이, 동네 주민들을 쑤석거려 안상식을 따돌리려 하거나, 편법을 써서라도 자신의 거주자 주차 구역을 지키려 하다, 그도 안되자 폭력적으로 돌변하여 상대방의 차가 폭발에 이르도록 모종의 조치를 취하고, 자기 분에 못이겨 상대방의 차를 때려부수는 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 본다. 물론 드라마는 희망적으로 끝난다. 그토록 자신이 가진 유일한 차에 집착하던 노정도는 그것으로 인해 결국 상대방의 차를 폭발시키고, 그로 인해 자신도 수갑을 차고 경찰서로 향하는 신세가 되고, 직업까지 잃는 처지에 이르렀지만, 오히려 모든 것을 잃어 홀가분하게 다시 사시에 도전하는 희망을 꿈꾸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드라마일뿐, 현실의 소시민들은, 그나마 가진 자신의 것을 잃을 위기에 놓일 때, 드라마 속 노정도처럼 펄펄 날뛰다가, 뜻밖의 결과를 맞이하고, 신문의 사회면에 등장하기가 십상이다. 드라마의 결론은 오히려 모든 것을 잃는 순간 주인공들은 자유로워져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잃는 것에 그리 초연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결국 사회면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우매함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부정주차>는 현실의 그것과 궤를 달리하였지만, 그 과정에 이르는 소시민의 번뇌와 갈등, 그리고 치졸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에는 적나라하다.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이지만 말만 앞설 뿐 실제 그 어떤 보복 능력이 없어, 결국 상대방의 차에 고구마나 끼우는 졸렬한 복수를 감행하는 노정도의 행보를 차근히 따라간다. 또한 절정에 이르는 두 사람의 분노를 동네라는 특성을 살린 절묘한 자동차 추격씬으로 묘미를 더한다. 좁은 골목을 위태롭게 꺾어대는 두 사람의 쫓고 쫓기는 자동차 추격 장면은, 위기에 빠진 두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듯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2014년 들어 선보인 드라마 스페셜들이 의욕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면에서 미흡했던 작품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던 것에 비해 모처럼, <부정주차>는 주제 의식과 내용이 합일 된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찌질한 노정도 역의 온주완도, 완력으로 동네를 평정한 무대뽀 택시 회사 사장 안만식의 김상호는 물론, 식당 주인 아줌마, 슈퍼 아저씨 등 동네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연기조차 허투루 지나칠 것 없는 조화로운 연기의 앙상블 역시 <부정 주차>의 또 하나의 볼거리이다. 


by meditator 2014. 5. 19.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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