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연이어 주말이 이어져 유독 길고 긴 연휴, 가족들과의 시끌벅적한 만남도 잠시, 장시간 귀향길에 지친 몸을 끌고 또 북적이는 영화관이다 뭐다 다니는 것도 시들하다면 이 넘치는 연휴의 시간에 드라마 몰아보기 한 판어떨까? 까짓거 맘만 먹는다면야 하루 날 잡아서 16부작 드라마 전회 정도는 너끈히! 그래서 연휴 기간 동안, 그동안 못봤던 드라마, 혹은 재밌는 드라마를 몰아보려고 준비중인 드라마 덕후들을 위한 몰아보기권장 드라마! 그 두 번 째로, 최근 <무한도전>무한상사로 파트너쉽의 건재를 보여준 장항준, 김은희 부부다.

 

<무한도전>은 우리 시대 대표적 예능이다. 언제나 화제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늘 새로운 문화적 콘텐츠들을 창출해 내왔다. 그런 <무한도전>의 여러 콘텐츠들 중 출연 멤버들이 회사원으로 등장하여 직장인의 삶과 애환을 그려낸 무한상사는 스테디셀러이다. 2011년 첫 선을 보인 무한상사탄생에서부터, ‘야유회’, ‘종무식과 새해인사’, 신입사워 gd, 그리고 뮤지컬 편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여왔다. 2015년에는 나는 액션 배우다를 예고했지만 선보이지 못했던 <무한도전>은 그 아쉬움을 보상하려는 듯 2016년 액션 블록버스터 무한상사를 방영했다. 그리고 몇 달간의 대장정을 통해 한 편의 영화처럼 ‘2016년 무한상사를 완성시킨 사람은 바로 김은희 작가와 장항준 감독 부부이다.

 



1. 김은희 작가와 장항준 부부의 또 다른 콤비 플레이가 궁금하다면?

김은희 작가와 장항준 감독 부부가 대중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방영된 <싸인>을 통해서이다. 당시로서는 드문 범죄 스릴러물에 신선했던 법의학자가 주인공인 <싸인>은 이 새로운 설정을 뛰어넘어, 매회 시청자들을 쥐락펴락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심지어 마지막 회에 주인공이 스스로를 희생하는 기상천외한 엔딩으로 25.5%의 최고 시청률을 달성했다. 초반에는 감독으로, 후반에는 함께 대본 작업을 하며 협업을 펼친 두 사람의 <싸인>은 아직도 범죄 스릴러물의 대표적 작품으로 오르내린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이 호흡을 함께 한 것은 <싸인>이 첨이 아니다. 불운의 괴작으로 이 드라마를 봤던 소수의 시청자들에게 기억되는 <위기일발 풍년빌라>tv 드라마로는 첫 작품이다. 2010년 당시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케이블 방송국 tvn의 초창기 작품으로 풍년빌라라는 음산한 빌라를 배경으로 아버지에게 3000만원짜리 빌라를 유산으로 받았지만, 그로 인해 자신도 원치 않았던 사건에 얽혀 들어가는 오복규(신하균 분)의 해프닝을 그린다.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장항준 감독 특유의 기발함과 초창기 김은희의 스릴러적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면 <풍년빌라>을 주행해 볼 일이다.


싸인        위기일발 풍년빌라

 

2. 김은희 작가하면 역시?

암만해도 최근 김은희 작가라 하면 올 한 해 최고의 화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시그널>이 떠올려 질 것이다. <미생>의 김원석 피디와 만나, 조진웅, 이제훈, 김혜수라는 배우들의 새로운 면모, 그리고 과거와의 대화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아니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순들을 신랄하게, 하지만 인간미넘치게 그려낸 수작이다.

하지만 <시그널>만이 아니다. 김은희 작가는 이미 <싸인> 이래 줄곧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그에 대항하여 자신을 던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그려왔다. 또한 그 방식과 서사에 있어서도 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왔다. <싸인>에서 법의학자를 내세워 의 견고함에 자신을 내던지도록 했다면, 2012<유령>에서는 사이버 수사팀장 김우현(소지섭 분)을 내세워 사이버 세계권력에 대항하도록 한다. 그런가 하면 2014<쓰리데이즈>에서는 단 3일간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경제적 권력 앞에 무기력한 대통령(손현주 분)과 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경호원(박유천 분)을 통해 당시 세월호 사건 등으로 침통했던 상황 속에서 국가지도자에 대해 질문한다. 2016무한상사에서도 이어진 작가 김은희의 질문은 언제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묻혀져서는 안될 사회의 근본에 대한 물음들이다.

몇 편의 김은희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재미로 보는 관전 포인트 하나, 김은희 장항준 부부의 친구이기도 한 장현성은 김은희 작가 작품에는 단골 손님이다. 그것도 주로 악역으로, 변호사로, 경찰국장으로, 경호원으로, 다시 경찰로 장현성의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악역 열전 또한 숨겨진 볼거리라 할 수 있다.


유령       쓰리데이즈 시그널      드라마의 제왕




 

3. 장항준의 단독 플레이는?

장항준은 김은희 작가와 함께 <풍년빌라>, <싸인>을 감독하기에 앞서 이미 <라이터를 켜라(2002)>, <불어라 봄바람(2003)>을 통해 흥행 감독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이후 <전투의 매너(2008)>등 몇몇 작품을 연출했지만 대중들의 뇌리엔 남아있지 않다. 그렇게 영화 쪽에서 이렇다할 소득을 얻지 못했던 장항준 감독은 tv로 넘어와 김은희 작가와 함께 연달아 두 작품을 한 후 서로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가 달라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김은희 작가와 작품적으로 이별한 장항준 감독의 첫 작품이자, ‘무한상사이전의 마지막 작품은 <드라마의 제왕(2012)>이다. 최고 시청률 8.9%로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지 못한 이 작품은 김명민의 코믹한 연기와 드라마판의 까발린 이면으로 그 이후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 벤치 마킹할 정도로 아직도 종종 이 드라마 속 에피소드가 현실 사건으로 등장하며 종종 언급될 정도의 리얼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우리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블랙코미디를 맛보고 싶다면 장항준 감독의 <드라마의 제왕>을 권해본다

by meditator 2016. 9. 17. 15:05

<미생>처럼 이미 그 원작에서 부터 화제가 되었던 또 하나의 만화 작품이 드라마가 되었다. 10월 24일 jtbc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최규석 작가의 <송곳>이 그것이다. 


영화 <스물>속 생생한 젊음의 원작인 만화 <울기엔 좀 애매한>의 원작자로 알려진 최규석 작가는 이미 만화를 통해 당대를 표현하는데 발군의 능력을 보인 작가이다. 과학책일까 하는 의심을 품게 하는 <습지 생태 보고서>를 통해 빗물이 새는 반지하 셋방에 모인 일군의 젊은 군상들의 리얼한 궁상을 기록하는가 하면, 작가 자신의 가족을 통해 성장주의 대한민국의 속살을 드러낸 <대한민국 원주민>은 역사가 외면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낱낱이 그린다. 일찌기 2003년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통해 아기 공룡 둘리가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았다면 노동자 둘리가 되어 손가락을 프레스 기계에 잃었을 것이란 작가의 냉철한 현실 인식은 2009년 <100도씨>를 통해 6월 민주 항쟁을 기록했고, 만화로 보는 노동법이란 평을 들은 <송곳>으로 귀결된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관통해 온 최규석 작가의 작품 세계는 현실을 다룬 다는 것에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오히려 그것보다는 그 속에서 살아내는 인간 군상의 민낯을 거침없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술 주정뱅이 아버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엄마, 그리고 가족의 기대를 등에 업고 성공하려 했지만 맘처럼 되지 않았던 형, 그리고 그런 가족을 보면서 일가를 이루는 것에 회의를 하는 자신을 '원주민'이라 지칭하고, 찌질한 젊은 군상들을 '울기에 좀 애매한' 존재로 그려내는 것처럼, 현실 인간의 '미시사'에 천착해 왔다. 그리고 그 최규석 작가의 최신작 <송곳>을 드라마환 <송곳> 역시 현실의 '인간'에 촛점을 맞춘다. 



갑갑한 현실 속 송곳같은 사람들
방영전부터 마트 노동자들의 정리 해고 투쟁을 다뤘다는 점에서 영화 <카트>와 소재 면에서 중복이 우려되었던 드라마 <송곳> 하지만, 첫 선을 보인 <송곳>의 시점은 마트가 아니라, 노숙자가 되어가는 짜장면집 배달원과 조우한 구고신으로 부터 시작된다. 6개월 동안 일한 짜장면 집에서 오토바이를 부쉈다는 이유만으로 돈 한 푼 못받고 쫓겨나 박스를 덮고 잠을 청하던 배달원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구고신은 대뜸 그의 손을 잡고 그가 일하던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법'으로 얼르고, 짜장면 집 단골 사업장으로 '뺨치며' 단번에 배달원의 밀린 봉급을 챙겨준다. 그리고 그에게 사례비를 건네는 건네는 배달원의 어깨를 치며 자신의 밥그릇이나 잘 챙기라는 말을 건네고 휭하니 사라지는 구고신의 모습에서, 이 드라마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 그를 통해 보여줄 '인간'에의 천착을 대번에 설명해 낸다. 

그렇게 구고신으로 부터 '해학적'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극중 배경이 마트로 바뀌면서 진지해진다. 분주한 마트의 아침 개장 시간, 관례대로 일을 하려는 마트 직원들 사이에서 원칙을 강조하며 사서 미움을 받는 과장 이수인, 그 깐깐한 원칙으로 인해 외국인 지점장에게 총애를 받는 그는 하지만 부장이 지시로 자기밑의 직원들을 자르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협력업체 직원들을 마트 직원인 양 부리려는 마트 직원들을 저지하며 원칙을 강조하는 이수인의 캐릭터는 이어지는 부당 해고 지시에서 '거부'로 연결되며 그 일관성이 드러난다. 또한 부장 앞에서 부당한 지시에 놀란 그의 모습은 일찌기 어린 시절 '남성의 강고함'을 강조하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부터 유래된, 그리고 학창 시절과 육사 생도 시절을 경과하며 원치 않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송곳'같은 캐릭터의  존재감을 대번에 설득해 낸다. 



그렇게 드라마 <송곳>은 그 원작의 그것처럼, 현실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되, 상황의 불가역성을 강조하는 대신, 그 곳에서 결국 선택지가 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과, 그 곳에서 고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송곳'처럼 튀어나오는 인간형을 그려냄으로서 삶의 투쟁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현실의 역동성에 발을 거는 단단한 돌부리같은 존재는 불편하게 현실에 길들여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마음에 돌을 던진다. 

그렇게 잊고 있던 당연함을 일깨우며 불편하게 시작된 <송곳>이 마트 직원들의 부당 해고과 그에 맞선 투쟁으로 어이질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그리고 그런 내용의 드라마가 무노조주의를 일관되게 관철시켜오는 삼성 계열 하의 jtbc에서 방영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그 아이러니를 조소하기 에 앞서, 삼포 세대의 비감한 현실을 다룬 <미생>조차 결국 환타지로 끝나고 마는 세상에 권력의 눈치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뉴스가 재벌의 시야 내에서 이듯이, 역시나 재벌의 품 안에서만이 이런 사회비판적 드라마가 만들어 질 수 있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감내해야 하는 것이 현재 미디어의 현실에의 직시가 우선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jtbc 뉴스의 건재를 감사하듯이, 그저 <송곳>이 원작의 주제 의식을 훼손하지 않고, 시청률에 휘둘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그 송곳같은 이야기를 잘 마무리 하길 바란다. 그리고 jtbc든 어디든, 부디 이런 현실적인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 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by meditator 2015. 10. 25. 11:38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