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최고 시청률 17. 3%로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마지막 회 마지막 장면은 진짜 동네 변호사가 된 조들호(박신양 분)가 슈퍼마켓에서 단돈 8000원짜리 사탕 봉지를 훔쳤다는 이유로 법정에 온 할머니의 변호를 맡는 것이다. 


조들호의 딸은 아빠 조들호를 슈퍼맨에 빗댄다. 드라마 내내 조들호의 활약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슈퍼맨에 버금가는 활약을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 회 조들호는 말한다. 자신이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자신의 딸이 믿는 것처럼 슈퍼맨도 아니라고. 하지만 '억울한 사람을 보면 그냥 못넘어 간다고. 우리 동네에 억울한 사람이 있는 한 슈퍼맨같은 동네 변호사의 활약은 계속될 것이라고 다짐한다. 



정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유망한 검사에서 노숙자로 전락한 조들호를 폐인 생활에서 건져낸 것은 눈앞에서 벌어진 '억울한 보육원 동생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그 한 개인의 죽음에서 부터 비롯된 조들호의 활약은 슈퍼맨처럼 대한민국 법조계와 경제계에 거미줄처럼 쳐진 커넥션을 일망타진하는 화끈한 활약으로 마무리되었다. 

특히 최근 시끌벅적한  '네이처 리퍼블릭' 회장의 불법 도박 사건으로 부터 시작되어 홍만표 변호사의 부도덕한 행태와 그런 행태의 뒷배를 봐준 전관 예우라는 법조계의 관행으로 이어진 사건들은 <동네 변호사> 속 검은 커넥션과 맞물리면서 이 드라마의 현실감을 돋보이게 해준다. 

소박한 인간의 선의에 대한 믿음을 확인 
하지만 드라마적 장치의 현실감은 <동네 변호사 조들호>만의 전매 특허는 아니다. 이미 시청자들은 여러 드라마들을 통해 정, 재계 사이의 커넥션에 대해 신물이 나도록 학습해 온 터였다. 이제 드라마에서 악역하면 재벌이요, 그들의 뒷배를 봐주는 변호법인이나, 검찰은 더 이상 신선한 소재가 아니다. 

더구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사건 해결 방식이 신선한 것도 아니다. 슈퍼맨 같은 조들호의 선전포고에도 언제나 정회장- 신영일 서울 지검 검사장(김갑수 분)- 법무법인 금산 커네션의 발걸기는 곳곳에서 조들호를 옭아매었다. 그 자신을 걸어 넘어뜨리는 올가미를 빠져나오는 조들호의 방식은 뜻밖에도 '사람'이었다. 



동네 변호사답게, 그가 만나는 사건에선 언제나 뜻밖의 곳에서 그의 편이 되줄 사람들이 있었다. 결국은 죽어가면서 자신의 죽음을 밝힐 동영상을 남겨준 보육원 동생에서부터, 유치원의 선생님, 학부모들, 치매에 걸린 할머니, 노숙자 아버지를 외면했던 아들까지, 우리 사회의 갑남을녀라 할 수 있는 평범한 '동네' 사람들이 결국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채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는 정의감 하나로 배팅한 조들호의 편을 들어 주었다. 

또한 끝내 아버지의 편에 서지 못한 젊은 검사 신지욱(류수영 분)과 변호사 장해경(박솔미 분)과 비록 여주인공임에도 미미한 활약을 보였지만 당찬 선택을 한 이은조 변호사(강소라 분)가 있다. 그리고 결국은 끝내 스스로의 죄를 담백하게 실토하고 만 커넥션의 주인공들 정회장, 신영일, 장선우의 본의아닌 개과천선도 <동네 변호사 조들호>를 담백하게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환타지적이고 만화적인 드라마였고, 그 담백한 마무리를 통해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선한 의지'와 그에 대한 믿음을 되새겨보게 만들었다는 점이 <동네 변호사 조들호>가 남긴 흐뭇한 유산이다. 그간 정, 재계 커넥션을 다룬 드라마가 인간의 밑바닥까지 훑어내며, 악의 잔치와 그 악취로 진동했던 것과 달리, 슈퍼맨같은 조들호의 활약에 방점이 찍힌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그래서 같은 소재를 다룬 드라마에 비해 한결 속시원하게 다가왔다. 

소박한 주제 의식에의 개연성 박신양
그리고 바로 이 <동네 변호사 조들호>가 속시원한 개연성을 밀고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자타공인 배우 박신양의 존재에 있다. 대부분 이런 류의 드라마들은 드라마의 극적 방점을 악역의 개연성에 둔다. 그래서 새로운 드라마들이 만들어 질 때마다 주인공은 얼마나 더 나쁜 놈인가를 고심한다. 그래서 최근 이런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리멤버-아들의 전쟁> 속 남규만(남궁민 분)이나, <시그널>속 신영진(이기우 분)처럼 서로 누가 더 사이코패스스러운가 경연 대회를 벌인다. 그건 상당부분 제작진이 극의 추동 방식을 지배적 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속칭 고구마를 잔뜩 먹여놓고 마지막에 속 시원한 사이다 한 잔이란 방식이란 평가처럼. 

물론 <동네 변호사 조들호>도 다르지 않다. 이 드라마에도 사이코패스같은 재벌 2세도 등장하고, 그를 싸고도는 아버지 재벌 회장과 법조계 인사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기존 드라마와 같은 갈등 구조를 조들호란 만화적 캐릭터가 압도해 버린다. 그리고 그 압도하는 힘은 전적으로 박신양의 연기가 설득해 낸다. 



시청률 1위로 자족할 수 없는 제작 환경의 열악함 
20부작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비록 방영 내내 주중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 진행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사건은 심각하지만, 사건의 해결은 '실소'가 삐져나올 수 밖에 없는 어설프고, 소박한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하지만, 그 순진해 마지않는 해결 방식조차, 박신양이라는 배우는 자신의 연기로 채워나가 드라마를 밀어 붙인다. 과연 박신양이 아니었다면 이 드라마가 동시간대 1위를 했겠으며, 마지막까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겠느냐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또한 주먹구구식으로 시간에 쫓겨 만들어진 드라마는 애초 여주인공이었던 강소라의 비중 축소와 김유신 역의 김동준의 역할 실종 등 씁쓸한 뒷맛을 낳는다. 

박신양이라는 드라마의 개연성은 동시에 다시 한번 현재 우리나라 드라마의 제작 방식에 대한 고민을 던져 준다. <쩐의 전쟁>을 작업한 이향희 작가와 박신양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었던 <동네 변호사 조들호>지만, 이미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부터 등장한 표절 시비는 차치하고더라도, 이후 이향희 작가 대신 김영찬, 유미경이란 새로운 작가가 등장함으로써 드라마 제작 방식의 문제점을 노정했다. 또한 이런 열악한 제작 환경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동시간대 1위를 유지하자, 차기작 제작에 시간이 쫓긴 kbs측이 연장을 빌미로 기사를 띠우며 주연 박신양을 몰아가는 후진적인 행태를 되풀이했다.

비록 드라마는 박신양의 연기로 모든 개연성을 채워가지만, 극 중반부 드라마는 늘어지며 할 이야기가 없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등장할 정도로 20부작이라기엔 버거운 모양새를 보였다. '무사히 마친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박신양의 뼈있는 소감처럼.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박신양의 연기로 동시간대 1위를 수성하며 그간 드라마 제작 시장에서 마이더스의 손으로 통했던 smc&c에게 최초로 성공의 축배를 안겨 주었다. sm 소속 연기자들 중심으로 작품을 꾸렸던 smc&c는 최근 들어 자사 소속이 아닌 다양한 출연진 위주로 제작 방식에 변화를 주었고,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그 첫 성과물이다. 엔터테인먼트계의 독과점 sm, 그 자회사 smc&c가 우리 사회의 검은 커넥션을 쳐부수는 슈퍼맨 조들호 변호사의 활약으로 고소원하던 시청률마저 얻었다는 점, 이 아이러니한 성과물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까. 
by meditator 2016. 6. 1. 16:45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최근 클리셰가 되다시피한 사회정의에 눈을 뜬 영웅적 주인공이 우리 사회 권력의 카르텔 재벌과 검찰, 법무법인을 상대로 '정의'를 실현하는 '카타르시스'넘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기왕의 이야기들과 이 드라마가 다른 점이 있다. 드라마는 검찰에서 버림받은 변호사 조들호의 활약상을 주로 다루지만, 그 갈등의 변곡점에 존재론적 고민에 휩싸인 검찰과 법무법인의 상속자들이 등장한다. 


상속들의 딜레마 
현실적으로야 법학 전문 대학원 입학 원서에 당당하게 자신의 친인척이 '법조계'에 있다는 걸 '스펙'으로 내세우는 세상이라지만, 현실의 불온함을 홍길동같은 조들호의 환타지로 다룬 <동네 변호사> 속 상속자 중앙지검 검사장 신영일(김갑수 분)의 아들 신지욱(류수영 분)과 법무법인 금산의 대표 변호사 장신우(강신일 분)의 딸 장해경(박솔미 분)은 자신의 어깨를 짖누르는 부도덕한 유산으로 인해 고뇌한다. 



신지욱은 아버지가 대화 그룹 정회장(정원중 분)과의 커넥션으로 차기 검찰 총장 선발 과정에서 흠집이 생기자 아버지를 설득하여 대화 그룹과 결별 수순을 밟고자 한다. 그런가 하면 장해경은 어린 딸이 금산의 자신보다도 아버지를 더 자랑스러워하자 마음이 변한다. 그래서 아버지를 설득한다. 재벌 그룹의 뒤치닥거리나 하는 금산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진정한 대한민국 최고의 법무법인으로 거듭날 기회를 얻자고. 16회 큰 형님처럼 생각했었다는 조들호의 표현이나, 회상 장면에서 보여지듯 이제는 변심한(?) 조들호조차도 신영일의 정신적 상속자였다. 

하지만, 이런 상속자들의 '도덕성 회복'을 통한 거듭남은 쉽지 않다. 드라마 속 악의 축은 '대화'라는 재벌에서 이제 그런 재벌조차 손아귀에 쥐고 쥐락펴락하는 검찰과 법무범인이라는 숨은 실세로 옮겨간다. 아들조차 속아넘기며 대화 회장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는 신영일과 딸을 보호하려 애쓰지만 자신이 손에 쥔 대화라는 패를 포기할 수 없는 장신우는 그저 '이익'을 넘어 내면화된 부도덕의 주체이다. 그저 '재벌'에 이용당한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들, 하지만 사건이 드러날 수록 '몸통'이 되어가는 그 '유산'에 자식들은 우유부단하게 고뇌한다. 그들의 고뇌는 그저 부자, 부녀 사이의 혈연 문제만이 아니다. 아버지에 이어 대를 이거 '가업'을 계승한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가 가진 기득권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동네 변호사 조들호>가 만화같은 해결방식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드리워진 권력의 카르텔 그 내면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의 순간에도 자신이 준 '대화'라는 패를 포기하지 않는, 아니 포기할 생각조차 없는 '법' 권력의 민낯은 이제는 구조화된 우리 사회 '갑'의 실체이다. 그들은 결코 후회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모면하려 머리를 쓸 뿐. 



푸치오 일가의 가업, '납치'
그리고 이런 <동네 변호사 조들호>속 권력의 얼굴은 클랜 속 아버지의 얼굴에 겹쳐진다. 씨족, 한패거리라는 뜻의 'CLAN'을 제목으로 한 파블로 트라베로 감독의 아르헨티나 영화 <클랜>은 '납치'를 업으로 삼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교직을 하는 부인과의 사이에 3남2녀를 둔 아르키메데스 푸치오(길예르모 푸란셀라 분)는 겉보기엔 자영업자이지만, 사실 군사 정권시절부터 비밀 경찰로 활약해(?) 왔으며 이제 군사 정권이 종식된 이후 자신의 일을 '사영화'하여 가업화시킨 인물이다. 

그가 가업으로 삼은 일은 다름아닌, 1976년 군사 정권이 시작되고 1983년 영국과 포클랜드 전쟁이 패배하기 까지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 시절 3만 여명에 달했던 '납치, 감금, 고문, 살해'의 그 업이다. 푸치오는 두 명의 조력자와 거기에 자신의 아들을 합류시켜 이제 지역 유지나 그 자제를 납치해 돈벌이를 한다. 영화 속 등장하지 않지만 뉴질랜드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 큰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가업'으로 인해 가출한 듯 보인다. 잘 나가는 럭비 선수인 둘째 아들은 자신의 친구가 아버지의 납치로 인해 살해 당하자 잠시 방황하지만 아버지가 제공한 부에 곧 죄의식이 마비된다. 막내 아들은 가업을 눈치채고 큰 형처럼 뉴질랜드로 도망가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이 여의치 않았던 듯 돌아와 기꺼이 가업에 합류한다. 선생인 아내도, 두 딸들도 눈치채고 자책감을 느끼는 듯하지만 결국 진실을 외면한 채 일상에 매몰된다. 

결국 푸치오 일가의 가업은 경찰이 그들이 납치한 여성을 찾아 그들의 집에 들이닥칠 때까지 계속된다.  푸치오 일가의 무시무시한 범죄는 결국 군사 정권이 남긴 정신적 유산, 혹은 휴유증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당시 유행하던 킹크스(The Kinks)의 ‘써니 애프터눈(Sunny Afternoon)’,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톰스톤 새도우(Tombstone Shadow)’ 등의 경쾌한 팝송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범죄는 그 일상성으로 인한 잔혹감을 돋게 만든다. 


부도덕의 상속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 나오지만 과도한 카페인 음료를 만들어 팔고, 그 음료의 판매를 방조하는 등의 방식으로 무차별적 대중을 '살해'하려는 음모에 비해, <클랜> 속 푸치오 일가의 가업은 직접적이며 잔인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죽이거나, 살해를 방조하거나 결국 <클랜> 속 푸치오 일가의 범죄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 속 법과 재벌간이 카르텔은 모두, 아르헨티나와 대한민국이 성장해온 왜곡된 현대사로 부터 잉태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요인을 납치하는 비밀 경찰로 부터 시작하여 이제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당당히 납치를 한 푸치오나, 법을 수호해야 하는 검찰과 법무법인의 대표적 인물이 '법'위에 자기 권력의 성채를 쌓아가는 모습은 그저 그 정도의 차이일뿐 사회의 도덕적 아노미를 상징한다. 더구나, 아버지에 협조하지 않는 아들의 뺨을 때리며 니가 무슨 돈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아느냐며 기세등등한 아버지 푸치오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과 딸조차 기만하는 신영일이나 장선우나 부도덕한 권력을 내면화, 신념화했다는 점에서 일맥 상통한다. 

<클랜> 속 암묵적으로 아버지의 등에 기대어 살아왔던 아들 알렉스(피터 란자니 분)는 결국 아버지의 입에서 까발려진 가업과 자신이 파렴치함을 견디지 못하고 아버지 앞에서 보란듯이 몸을 날린다. 비록 그의 자살은 단번에 성공하지 못하지만, 이미 그의 삶은 거기서 끝나고 만 것이다. '가업'으로 인해 암묵적으로 동조했다 했지만, 알렉스는 그제서야 자신 역시 그 가업에 공범이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과연 <동네 변호사 조들호> 속 아들과 딸은 그저 재벌의 '개'인줄 알았던 아버지가, 결국 우리 사회 어두운 권력의 주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어떤 선택을 할까? 그들의 귀추가, 조들호의 슈퍼맨같은 활약상만큼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6. 5. 18. 20:34

세월호 이후 다수의 드라마들이 어긋난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계몽주의적 방식'을 택한다. 그 방향은 달라도 세상 사람들을 향해 사람사는 도리를 이야기한다. 하물며 전쟁과 테러, 자연 재해를 빌어 결국은 사랑 이야기를 했던 변형된 로맨틱 멜로<태양의 후예>마저도. 결국은 사랑꾼이었던 유시진의 입을 빌어 어린이와 노인, 여성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어야 하며, 국가는 무릇 국가라는 전체보다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의 생명을 우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유시진의 보편적 인류애가 본래적 의도가 어떻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의 맘도 흔들고, 드라마를 보는 평범한 시청자들의 맘도 흔드는 사상적 정체성에 애매모호함을 지녔지만 말이다. 그러나 <태양의 후예>가 '대한늬우스'같은 뻔한 교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해도, 그 문제 의식의 발원처는 우리 사회가 봉착한 사회적 윤리의 위기라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계몽주의적 드라마들
드라마는 영웅적인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작가가 원하는 싸움을 진행시킨다. 최근 높은 시청률이나 화제성을 보였던 <리멤버-아들의 전쟁>이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 그리고 <시그널>은 공통적으로 주인공이 구조적인 사회 악을 향해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시대를 달리해도 한결 같다. 1980년에서 90년대를 살아냈던 이재한 형사(조진웅 분)든, 아버지를 잃은 서진우(유승호 분)든, 그리고 이제 한때 잘 나가던 검사였던 조들호(박신양 분)든 국가와 손잡은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비호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공적 기구, 그리고 그의 엄호를 마다하지 않는 법과 그 제도 등을 향해 돌진한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그 싸움의 과정은 화성 살인 사건, 홍제동 살인 사건 등에서 이제 거대 자본에 밀려나는 영세 상인의 싸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우리의 현대사의 현장을 밟는다. 그리고 드라마는 현실에서 그저 하나의 사건이나 패배로 끝난 기록들을 복기하고 새로이 써간다. 

물론 싸움의 방식은 작가의 개성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시그널>이 미제 사건을 통해 당시 해결되지 못했던 사건 배후에 숨겨진 공공의 적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에 집중한다면, <리멤버>는 억울하게 살인자가 된 아비의 죄를 벗기기 위해 아들이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 선다. 장장 20에 달하는 때론 선보다 악이 더 준동하던 싸움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에 악의 전횡을 증명하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이제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그 싸움의 방식은 법정을 빌어 사회악의 실체를 밝혀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리멤버>와 유사하지만 그 표현에 있어 명랑 만화처럼 단순 명쾌하다. 



현실에서 아직 결론나지 않거나 패배로 끝난 싸움을 드라마로 복기하는 것은 어쩌면 그 자체로 이미 환타지이다. 뿐만 아니라 환타지라지만 현실에서도 쉽지 않은 싸움을 드라마를 통해 복기할 뿐만 아니라 현실과 다른 전복을 시도하고자 하는 드라마들은 그 '개연성'의 방식에 고민한다. 그래서 <태양의 후예>처럼 작가는 작정하고 썼지만, 그 작정하고 쓴 대사들이 당국자들조차 감동시키는 광범위한 보편성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수도 있고, <리멤버>처럼 선을 표현하기 위해 '악'에 매달리는 본말이 전도된 형국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통쾌한 선을 선보자니 <동네 변호사 조들호>처럼 실소가 나오고 마는 어설픈 기승전 '미담'으로 마무리되는 구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회적 구원
하지만 이렇거나 저렇거나 결국 드라마들이 말하고자 하는 교훈의 결론엔 언제나 '사람'이 중심에 놓여있다. 국가나, 공적 이익에 우선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우선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에는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공통된 화법이다. 일신상의 입신양명에만 뜻을 두었던 '개인' 강모연은 진짜 군인 유시진을 만나 진정한 히포크라테스로 거듭난다. 심지어 사전 제작이었음에도 아쉽게도 유시진의 멋짐에 편향되어 버렸지만 진짜 이 드라마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은 출세의 지름길인 의사 강모연의 인류애적 성장이다. 

마찬가지로 주제는 아들의 전쟁이고, 유승호의 미모에 기댔지만 시청자들에게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던 것은 초반 법정에서 서진우(유승호 분)를 배신하고 남규만(남궁 민 분)의 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박동호(박성웅 분)의 개과천선이다. 아예 자본의 개로 시작하여 개과천선한 조들호의 유쾌통쾌한 반란으로 꾸려져 가는 <동네 변호사 조들호>도 마찬가지다. 어리숙한 순경에서 자신의 목숨조차 초개같이 여긴 집요한 이재한도 있다.

주인공들만이 아니다. 주인공들의 영웅담이 성공하기 위해선 결국은 주인공의 편을 들어줄, 그리고 그 편에 기꺼이 함께 설 '사람들'이 필수다. 매 사건마다 '미담'이나 '감동 스토리'로 귀결되는 어설픈 법정 드라마지만, 그럼에도 증인이 나타나지 않는 법정에서 '관심'을 호소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조들호 앞에 문이 열리고 나타나는 '깨인 시민들'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시대의 아픔을 호소하고 관심을 호소하는 이들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에서 그 해결의 키를 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이들 사람의 '변심'이 아니고서는 결국 현실은 변화될 수 없다고 드라마들을 입을 모은다. 




비행기 테러를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해낸 인간의 선의 
이런 일련의 계몽주의적 드라마의 흐름은 이제 종영한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정점을 맞이한다. 비록 안타깝게도 최근 불거진 드라마 공모전과 관련된 '표절' 논란이 안그래도 반응이 미미한 이 드라마에 발목을 잡았지만, 표절과 관련된 도덕적 책임과 별개로, <피리부는 사나이>가 내세운 문제 제기와 의식은 가치가 있다. 

<피리부는 사나이>도 최근의 여느 드라마들과 마찬가지로 자각된 주인공으로부터 시작된다. k그룹의 기업 협상가로 잘 나가던 주성찬(신하균 분)은 도심 테러 현장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고 피리부는 사나이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드라마는 경찰 무선을 따던 주성찬이 경찰 위기 협상팀으로 자리를 옮기며 본격 대테러 협상 드라마로 변신한다. 하지만 정작 '협상'과 '대화'를 내걸었던 드라마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사회의 불통과 무관심, 그리고 그 속에서 자행된 약자들의 처절한 희생이었다. 그를 밝히기 위해 철거 현장의 총알받이로 차출된 전경 윤희상(유준상 분)이 도심 테러의 배후 '피리부는 사나이'가 되어 15,6회 비행기 테러까지 자행한다. 



13년전 일어났던 철거 현장의 무모한 죽음, 그리고 그런 죽음이 자행되도록 만들었던 당사자들을 하나씩 밝혀가며, 그뒤에 k 그룹이라는 자본과 그를 비호하는 경찰, 그리고 그것을 침묵했던 언론의 비리를 낱낱이 밝혀내던 드라마는 마지막에 이르러 다수의 승객을 실은 비행기가 k그룹 본사 건물을 향한다는 설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침묵하거나 방조했던 '사람들'에게 그 비판의 날을 향한다. 마치 법정에서 소환되지 않는 증인을 통해 침묵하는 다수가 우리 사회의 범죄를 묵인한다고 호소했던 조들호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드라마는 다수 시민들의 투표로 항로가 변경되는 납치된 비행기를 통해 결국 우리 사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나 하나쯤이야 하는 시민들의 무관심, 그리고 양은냄비같은 여론이 있었음을 질타한다. 

하지만 테러라는 극단적 방식을 통해 다수의 방관과 표변하는 여론을 질타했던 드라마는 16회 '인간의 선의'라는 환타지 노선으로 급회항한다. 그토록 인명의 희생조차 마다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 했던 윤희상의 마지막 테러는 결국 '인간들의 무관심'이라는 장막을 깨기 위한 자신마저 내던진 살신성인이 되었고, 자폭을 향해가던 비행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 무너지지 않는 다수들의 선의로 무사히 안착하게 된다. 99번의 절망 끝에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음을, 그리고 그 '희망'은 '사람'을 통해 길어진다는 것을, 드라마는 가장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by meditator 2016. 4. 27. 13:14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모두들 투표를 하느라 애쓰고, 투표를 해야 한다 독려하고, 투표율이 얼마인가가 화제의 중심이 된다. 아마도 오늘 하루가 지나면 당락에 따라, 어느 당과 어느 당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십일의 투표 과정에서 과연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 현실은 '국회의원'들이, 그리고 그들의 출사표가 얼마나 담아냈는지 점검했을까? 그리고 앞으로도 저마다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이 의원들이 '우리 동네' 사람들의 살 길을 제대로 살펴줄 것인지 기대해 볼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국회의원 선거 당일 SBS TV를 통해 방영된 2부작 <나청렴 의원 납치 사건>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방영 그 자체가 한편의 블랙코미디와도 같다. 한마음당(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국회의원 납치 사건을 둘러싼 한바탕 해프닝으로 펼쳐진 <나청렴 의원 납치 사건>은 그 누구도 크게 다치지 않는, 아니 청렴하지 않은 의원만 청렴하지 않는게 만천하에 드러나는 속시원한 소동극이다. 

국회의원 선거일, 국회의원을 납치하는 철거민들
극중 나청렴 의원이 납치되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배경이 되는 건 그의 지역구 행복구 낙원동이다. 미당 건설이 이곳을 재개발하려고 하고 그런 재개발 사업에 주민들이 반대하며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도장을 내놓으라 못내놓겠다 철거 용역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주민들을 나청렴 의원을 찾아와 도와달라 요청하고 그런 주민들에게 자신이 건설사 사장을 만나보겠다며 의원은 주민들을 진정시킨다. 하지만 그날밤 철거 '알바'들이 들이닥쳐 낙원동을 마구 때려부수고 그 과정에서 희경(전미선 분)의 아들이 철거 용역에게 상해를 입혀 감옥에 갇히고, 영란(김현숙 분)의 남편은 의식을 잃는다. 정작 영란의 남편에게 상해를 입힌 용역은 무죄로 풀려나고. 결국 희경과 영란은 철거는 둘째치고 아들의 합의금과 남편의 병원비가 발등에 불이다. 그런 두 사람에게 막무가내 영란의 시누이 슬기(이수경 분)는 은행을 털거나 납치를 하자고 하지만 희경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며 말린다. 그러나 정작 다음 날 하루 벌이를 위해 골프장 잔디를 뽑으러 간 곳에서 사실 이 일련의 철거 과정이 모두 그 뒤의 실세 나청렴 의원의 계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세 사람은 의원 납치를 모의한다. 

납치 과정에서 부터 나청렴 의원과 박사장의 알력으로 얻어걸린 세 사람의 '납치'는 '납치'를 하기에는 모질지 못하고 어리숙한 세 사람과 납치를 당해서도 '갑질'의 기력을 다하는 나청렴 의원, 그리고 그의 하수인 박사장과 김사장 등의 이해 관계가 얽혀 이리저리 얽히고 설킨다. 드라마는 이름부터 아이러니한 나청렴 의원을 통해 말로는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척 하면서 뒤로는 비자금을 불리기 위해 철거마저 무자비하게 강행하는 국회의원의 두 얼굴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결국 소동극답게 경찰서까지 잡혀갔던 희경과 슬기는 영란의 지혜 덕분에 무사히 풀려나고, 오히려 나청렴 의원을 협박하여 그의 비자금으로 철거민들에게 나눠주고, 그의 비리는 밝힌 후 다시 돌아온 행복한 일상으로 마무리된다. 일장춘몽처럼. 물론 당신들이 제대로 뽑지 않으면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될 거라는 암시는 명약관화하다. 

클리셰같은 조들호의 승리 
또 한 편의 철거민의 승리는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서도 이루어 졌다. 조들호(박신양 분) 변호사가 평소그 사장님을 어머니라 부르던 시장 순대굿집에 철거반원이 들이닥친다. 건물주인이 재개발을 빌미로 순댓국집을 철거하려 했던 것,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건물주의 뒤에는 대화 그룹의 아들, 바로 조들호가 밝히고자 하는 3년전 뺑소니 사건의 범인 마이클 정이 있다. 그는 재건축을 빌미로 건물주들을 내쫓은 뒤 리모델링하여 집세를 올려받고자 현재 세입자들을 내쫓으려 한 것이다. 



이 사실을 밝혀낸 조들호는 법정에서 그 사실을 밝히려 하지만 그의 편에서, 순댓국집 할머니 편에 서서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은 쉬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조들호의 진심, 그리고 몇 십년간 시장 상인들의 어머니처럼 인심을 쌓아왔던 순댓국집 주인의 마음이 시장 상인들을 움직여 재판을 승소로 이끈다. 이런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승리는 철거민의 클리셰처럼 익숙하다. 2014년 방영된 <빅맨>에서도 주인공 김지혁(강지환 분)은 조들호와 같은 방식으로 시장 상인들의 승리를 이끌어 낸다. 심지어 극중 중심이 되는 곳도 조들호의 그곳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어머니처럼 여기는 분이 운영하던 식당이었다. 

10여년이 지나도 쉬이 나아지지 않는 철거의 상흔 
하지만 늘 철거민들이 승리를 거머쥐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현실에서 그들은 드라마 속 그들처럼 기분 좋은 승리를 맛보거나,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을 세상에 적나라하게 고발하지 못한다. 현실에 좀 더 가까운 철거민의 이야기를 다룬 것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통해 등장한다. 

극중 등장하는 모든 갈등의 근원지는 바로 13년전 k그룹의 철거 현장이다. 이제는 카지노가 들어서 화려한 불빛이 번쩍이는 이곳이 13년전에는 여명하(조윤희 분), 정수경(정수경 분)이 그의 가족들과 경찰들과 대치하던 곳이요, 가족들을 잃은 곳이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여명하는 위기 협상팀이 되었고, 정수경은 정반대로 피리부는 사나이의 하수인이 되어 각종 사건의 배후로 암약한다. 13년이 흘러도 '철거'의 상흔은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그들을 지배한다. 

12회, 진실을 알리기 위해 트라우마 센터 사람들을 인질로 삼은 이철용 형사(이원종 분) 사건에서 피리부는 사나이 윤희성(유준상 분)과 하수인 정수경의 입장은 어긋난다. 이철용의 도발로 생방송 토론에 나온 양청장의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윤희성은 목적한 바를 성취했다 생각했지만, 정수경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트라우마 센터에 독극물을 푼다. 공지만 팀장(유승목 분)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위기 협상이 주가 되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위기 협상팀 주성찬(신하균 분)의 활약에 촛점을 맞추어야 하기에 드라마는 사건과 그 해결 과정에 집중하지만, 12회에 드러난 윤희성과 정수경의 대립은 주목할 만하다. 정수경을 찾아가 각목으로 피가 흐르도록 그를 팬 윤희성, 그는 말한다. 니가 이렇게 맞아도 니 생각이 변하지 않듯이, 사람들은 이철용의 인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양청장의 비리 대신, 피리남이 저지른 횽포한 사건에만 주목한다고. 윤희성은 일련의 테러를 통해 k그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정치 언론 법이 함께한 카르텔을 폭로하고자 하는 반면, 정수경은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당한 만큼 갚아주어야 한다며 질주한다. 폭로를 위해 테러도 마다하지 않는 윤의성도, 당한만큼 갚아주어야 한다며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정수경도 결국 13년전 k그룹 철거의 상흔이다. 비록 드라마는 철거의 희생자였던 두 사람을 이제 최종 보스와 그 희생자로 한정해 가지만, 가장 현실과 가까웁게 '철거'를 다룬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철거의 희생자들은 그렇게 상흔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공교롭게도 선거 당일 국회의원 납치 소동극이 등장한 단막극도, 그리고 월화 드라마 1위에 빛나는 <동네 변호사 조들호>도, 그리고 신하균과 유준상이란 걸출한 배우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분위기, 매끄럽지 않은 진행으로 부진한 <피리부는 사나이>도 모두 우리 시대의 '철거'를 다룬다. 물론 이제는 클리셰처럼 '소재주의'의 경계에서 간당간당해 보이기도 하고, 통쾌한 소동극이 되기도 하고, 주객체가 뒤바뀐 듯 고민이 깊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선거판에서 활개를 치는 발전과 개발의 그늘에서 보이지 않는 철거를 동시대의 드라마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6. 4. 13. 16:56

가마솥 안에 물을 붓고 개구리들을 넣어 놓은 뒤 불을 땐다. 개구리들은 어떻게 할까? 살기 위해 펄쩍펄쩍 뛰어 오를까? 답은 개구리들은, 서서히 덥혀지는 가마솥의 열기에 뜨거운 줄로 모르고 있다가 죽는다이다. 

이 우화적 문구는 <피리부는 사나이>10회에서 등장했다. 극중 윤희성(유준상 분)은 말한다. 대한민국이 바로 끓는 가마솥이라고,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서서히 덥혀지는 가마솥으로 인해 자신들이 죽는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고. 결국은 가마솥 안의 개구리들을 죽이고야 말 끓는 가마솥, 드라마는 대한민국을 그렇게 정의한다. 그리고 그 끓는 가마솥의 현실을 낱낱이 고발하고자 한다. <피리부는 사나이>가 그렇다. 이제 4회를 맞이한 <동네 변호사 조들호>도 마찬가지다. 



뉴타운 재개발에서 외국인 노동자 임금 체납까지 익숙한 사회적 현실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극을 이끌어 가는 주요한 갈등의 진원지는 k그룹의 철거 피해 현장이다. 철거민들이 강력하게 저항한 현장에 경찰들이 무자비한 진압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불길이 번져 철거민과 경찰 사상자가 발생했다. k그룹의 신입 사원이었던 주성찬(신하균 분)은 강제 진압의 불가피함을 설파했고, 그의 의견에 따라 강제 진압이 이루어 졌다. 그리고 그 진압 작전에 오정학 팀장(성동일 분)과 양청장(김종수 분)이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여명하(조윤희 분) 등은 가족을 잃었다. 이제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피리부는 사나이 윤희성도, 그리고 그의 하수인으로 피리부는 사나이로 수배를 받게 된 정수경(이신성 분)도 모두 그 강제 진압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다. 

이렇게 극중 주요 인물들을 얽히고 설키게 만든 뉴타운 재개발 철거 현장은 시청자의 뇌리에 한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바로 철거민과 경찰 사상자를 남긴 용산 철거 현장이 그것이다. 이렇게 <피리부는 사나이>는 인명 피해까지 생긴 용산 참사를 기본 얼개로 하여, 매회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끓는 가마솥같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발한다. 10회 오랫동안 별러왔던 용역 우두머리를 죽이고 괴로워하는 정수경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피리부는 사나이 윤희성은 그저 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며 끓는 가마솥에서 죽는 줄도 모른 채 죽어가는 개구리같은 사람들이 스스로 싸울 수 있도록 돕자며 정수경을 설득한다. 그리고 그들은 언더그라운드라는 사이트를 매개로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모집하고 그들로 하여금 마치 볏짚을 지고 불에 뛰어들듯 자신을 그렇게 만든 그곳으로 몸을 던지게 유도한다. 

9,10회에 등장한 사건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와 인질 사건이다. 드러난 사건은 공장장을 비롯한 한국인 직원들을 볼모로 삼은 공장 점거이지만, 그 사건의 이면에는 수시로 때리고 모욕을 주는 인간 이하의 대우는 물론, 결국 임금까지 체불한 파렴치한 악덕 기업주와 그 하수인들이 있다. 뉴타운 재개발에서 부터, 외국인 노동자 임금 체납까지, <피리부는 사나이> 속 사건들은 이미 우리가 시사 다큐를 통해 익숙한 우리 사회의 사회적 현실이다. 



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영세 소상인들의 몰락
자신이 잘 나가던 검사 시절 대화 그룹 회장 아들이 벌인 사건인 줄 알면서도 검찰 수뇌부의 지시에 따라 덮었던 사건으로 인해 보육원 시절 동생처럼 강일구(최재환 분)가 죽고, 노숙자 변지식(김기천 분)이 살인범으로 몰리자,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노숙자로 살아가던 조들호(박신양 분)는 이제 다시 변호사로 법정에 선다. 

그가 변호해야 하는 변기식 씨는 설렁탕 집을 내고 가족과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지만, 장사가 잘 되자 집주인이 그들을 내모는 바람에 결국 가족과 헤어진 채 노숙자 신세가 된 사람이다. 그의 아들까지 증인으로 동원하여 진실을 밝히려 했지만 결국 1심에서 실패하고, 조들호는 방향을 바꿔 목격자인 치매 할머니를 등장시켜 항소심을 승리로 이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동내 변호사 조들호'란 간판까지 걸고 본격적인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렇게 동네 변호사가 된 그의 첫 사건은 모처럼 함께 회식을 하러간 감자탕집에서 시작된다. 

줄 서서 먹었다는 단골집이란 말이 무색하게 파리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감자탕집, 그곳에서 조들호 일행이 식사를 하려하자 집주인이란 사람이 빈 소주 박스를 말로 차며 시끄럽게 등장한다. 침을 찍찍 뱉으며 식탁에 발을 올리는 등 불손한 자세로 일관하던 그는, 이곳을 재개발하려 하니 얼른 집을 비우라고 독촉을 한다. 분개하는 감자탕집 아들에게 '임대자 보호법'까지 운운하며 법대로 하잔다. 이어 철거 용역까지 등장하고 이들과 몸싸움을 벌이던 조들호는 설렁탕집에 이어, 감자탕집 주인을 위한 본격 동네 변호사가 된다. 

4회 조들호 일행에게 밀린 가게 주인이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조들호가 해결하지 못한 뺑소니 사고의 범인 정회장의 아들이 있는 룸싸롱이었다. 그는 그 일대의 가게를 모조리 사들여 또 하나의 '뉴타운'을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노숙자가 된 변씨도, 이제 조들호의 단골 감자탕집도, 그저 서민들이 열심히 땀흘려 노력해서 살려고 하는데, 좀 살만하게 놔두지를 않는 또 하나의 끓는 가마솥이다. 


<피리부는 사나이>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비록 경찰 위기 협상팀과 변호사라는 하는 일은 서로 다르지만 그들이 자신의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끓는 가마솥같은 대한민국에서 서서히 목이 졸려가는 서민들이다. 가족과 함께 살던 터전은 빼앗기고, 그래서 가족들은 죽거나 뿔뿔이 흩어지거나, 심지어 범죄자로 몰리거나, 스스로 범죄자가 되어가는 대한민국 을들의 강팍한 현실을 드라마는 극의 주요한 갈등으로 끌어들인다. 거기에 한때 자신의 영달에 눈이 멀어, 애꿏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데 앞장섰던 '앞잪이' 노릇을 하던 주인공들의 '개과천선'이 더해져 정의의 싹이 핀다. 끓는 가마솥의 불길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각성과 위로를 주기 위해 드라마가 솔선수범한다. 

by meditator 2016. 4. 6. 05:32

배우들 중에는 그가 출연했던 작품보다 배우 그 자신이 더 앞서 존재하는 몇몇의 사람이 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을 꼽으라면 박신양이 아닐까? 그 박신양이 2011년 <싸인>이후 오랜 칩거 끝에 kbs2의 드라마 <동네 변호사 조들호>로 돌아왔다. 첫 회를 본 소감? 역시 박신양이다. 몇 년의 칩거가 무색하게 <동네 변호사 조들호> 첫 회에서 박신양은 펄펄 날았다. 드라마는 미지수이지만, 그저 박신양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한 시간 여가 후딱 지나가 버린다. 



모처럼 박신양을 보는 것만으로 즐거웠던 첫 회 
오랜 침묵을 깨고 박신양이 tv에 얼굴을 비친 것은 뜻밖에도 드라마가 아니라 tvn의 <배우 학교>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중후한 이원종에서 부터, 앳된 아이돌 남태현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 등장했다. 첫 회 '예능'이란 프로그램의 목적에 걸맞게 자기 소개를 눙치던 유병재에게 박신양은 정색을 한다. 그런가 하면 능숙하게 출연의 변을 늘어놓은 이원종에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직언한다. 예능 한번 해보겠다고 출연을 결심했던 학생들을 첫 회부터 오금이 저리게 만든 건, 바로 선생 박신양의 '진정성'이었다. 제 아무리 '예능'의 탈을 써도, 결국 '연기'는 진정성이 없다면 거짓이라는 박신양의 신념이 졸지에 프로그램을 다큐로 만든다. 결국 예능 <배우 학교>는 '예능'과 '다큐'의 경계선에서 선 진정성의 딜레마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예능이 되건, 다큐가 되건, 그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 박신양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은 확인되었다. 

그리고 그 신념의 실현은 바로 오랜만에 그가 출연한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첫 회를 통해 입증된다. 선배 연기자 이원종조차도 그 앞에서 쫄게 만들었던 박신양의 진정어린 연기는, 드라마 이전의 박신양을 보는 것만으로 한 시간을 채운다. 법정씬이라는 묵직한 장면을 이제는 클리셰가 된 휠체어에 앉은 회장을 전동 벌레 한 마리로 펄쩍 뒤게 만들며 그의 거짓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장면, 그리고 진실이 드러나려는 순간 역으로 회장의 뇌물 수수로 검사에서 노숙자로 급전직하고, 다시 변호사로 법정에 서기 까지의 드라마틱한,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만화 원작의 허구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내용을 박신양의 연기로 설득해 간다. 회장 앞에서 '바다의 왕자'를 부르며 재롱을 떠는 검사도, 그리고 그의 거짓을 벌레 장난감 하나로 드러내는 의로운  검사도, 그리고 한 끼의 밥을 위해 줄을 서는 노숙인도, 그리고 다시 법정에 나타난 변호사도, 전혀 연결이 되지 않지만, 박신양의 연기로 그들은 하나의 캐릭터로 완성되어 조들호가 된다. 

정재계 커넥션에 대항한 정의로운 변호사라 하니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바로 2014년작 <개과천선>이다. 그리고 개과천선에서 최고 로펌의 가장 속물적인 변호사에서 정의로운 변호사로 변신하여 역시나 정재계 커넥션에 대항하는 김석주를 연기한 김명민은 박신양처럼, 그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된 배우이다. <개과천선>에서 김명민은 가장 비도덕적인 로펌 최고의 변호사에서 부터 머리가 조금 이상해진 어리숙한 김석주까지 종횡무진 김명민이란 진기명기를 펼쳤다. 첫 회부터 종횡무진 활약을 보인 박신양의 장르는 <개과천선>의 김명민을 떠올린다. 두 배우 모두 가장 자신을 돋보이는 장르로 '법정' 드라마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박신양만이 아닌 좋은 작품으로 
하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조기 종영을 하다시피한 <개과천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갑갑한 사회 상황에서, 한 줄기 빛처럼 갑갑한 세상을 속시원하게 뚫어 주었다면, 역시나 비슷한 설정의 <동네 변호사 조들호> 역시 그것이 가능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박신양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캐릭터 등 원작인 만화와 많이 달라진 내용, 심지어 원작에는 없었던 이은조(강소라 분)의 등장이 과연 원작의 주제 의식을 제대로 살려낼 지는 아직 미지수다. 특히 첫 회 보육원 동생의 죽음으로 노숙자였던 조들호가 다시 변호사가 되는 계기는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작위적이란 느낌이 강해 작품성에 있어 의문 부호가 달린다. 

특히나 <개과천선> 이래, 최근 <리멤버>까지 정재계 커넥션을 상대로 통쾌하게 한  방을 먹이는 '사이다'성 드라마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동네 변호사 조들호가 그런 작품들과의 차별성을 어느 정도 선보일지가 또한 관건이 될 것이다. 거기에 첫 회부터 기구한 인생 유전을 보인 조들호에게서 작가 이향희 작가의 전작 <쩐의 전쟁>의 기시감도 느껴지니, 이 점 역시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발목을 잡는 숨겨진 복병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첫 회에선 이런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연기로 돌아온 박신양을 보는 맛에 즐거웠다. 부디 이 즐거움이 작품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6. 3. 2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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