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최고 시청률 17. 3%로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마지막 회 마지막 장면은 진짜 동네 변호사가 된 조들호(박신양 분)가 슈퍼마켓에서 단돈 8000원짜리 사탕 봉지를 훔쳤다는 이유로 법정에 온 할머니의 변호를 맡는 것이다.
조들호의 딸은 아빠 조들호를 슈퍼맨에 빗댄다. 드라마 내내 조들호의 활약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슈퍼맨에 버금가는 활약을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 회 조들호는 말한다. 자신이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자신의 딸이 믿는 것처럼 슈퍼맨도 아니라고. 하지만 '억울한 사람을 보면 그냥 못넘어 간다고. 우리 동네에 억울한 사람이 있는 한 슈퍼맨같은 동네 변호사의 활약은 계속될 것이라고 다짐한다.
정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유망한 검사에서 노숙자로 전락한 조들호를 폐인 생활에서 건져낸 것은 눈앞에서 벌어진 '억울한 보육원 동생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그 한 개인의 죽음에서 부터 비롯된 조들호의 활약은 슈퍼맨처럼 대한민국 법조계와 경제계에 거미줄처럼 쳐진 커넥션을 일망타진하는 화끈한 활약으로 마무리되었다.
특히 최근 시끌벅적한 '네이처 리퍼블릭' 회장의 불법 도박 사건으로 부터 시작되어 홍만표 변호사의 부도덕한 행태와 그런 행태의 뒷배를 봐준 전관 예우라는 법조계의 관행으로 이어진 사건들은 <동네 변호사> 속 검은 커넥션과 맞물리면서 이 드라마의 현실감을 돋보이게 해준다.
소박한 인간의 선의에 대한 믿음을 확인
하지만 드라마적 장치의 현실감은 <동네 변호사 조들호>만의 전매 특허는 아니다. 이미 시청자들은 여러 드라마들을 통해 정, 재계 사이의 커넥션에 대해 신물이 나도록 학습해 온 터였다. 이제 드라마에서 악역하면 재벌이요, 그들의 뒷배를 봐주는 변호법인이나, 검찰은 더 이상 신선한 소재가 아니다.
더구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사건 해결 방식이 신선한 것도 아니다. 슈퍼맨 같은 조들호의 선전포고에도 언제나 정회장- 신영일 서울 지검 검사장(김갑수 분)- 법무법인 금산 커네션의 발걸기는 곳곳에서 조들호를 옭아매었다. 그 자신을 걸어 넘어뜨리는 올가미를 빠져나오는 조들호의 방식은 뜻밖에도 '사람'이었다.
동네 변호사답게, 그가 만나는 사건에선 언제나 뜻밖의 곳에서 그의 편이 되줄 사람들이 있었다. 결국은 죽어가면서 자신의 죽음을 밝힐 동영상을 남겨준 보육원 동생에서부터, 유치원의 선생님, 학부모들, 치매에 걸린 할머니, 노숙자 아버지를 외면했던 아들까지, 우리 사회의 갑남을녀라 할 수 있는 평범한 '동네' 사람들이 결국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채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는 정의감 하나로 배팅한 조들호의 편을 들어 주었다.
또한 끝내 아버지의 편에 서지 못한 젊은 검사 신지욱(류수영 분)과 변호사 장해경(박솔미 분)과 비록 여주인공임에도 미미한 활약을 보였지만 당찬 선택을 한 이은조 변호사(강소라 분)가 있다. 그리고 결국은 끝내 스스로의 죄를 담백하게 실토하고 만 커넥션의 주인공들 정회장, 신영일, 장선우의 본의아닌 개과천선도 <동네 변호사 조들호>를 담백하게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환타지적이고 만화적인 드라마였고, 그 담백한 마무리를 통해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선한 의지'와 그에 대한 믿음을 되새겨보게 만들었다는 점이 <동네 변호사 조들호>가 남긴 흐뭇한 유산이다. 그간 정, 재계 커넥션을 다룬 드라마가 인간의 밑바닥까지 훑어내며, 악의 잔치와 그 악취로 진동했던 것과 달리, 슈퍼맨같은 조들호의 활약에 방점이 찍힌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그래서 같은 소재를 다룬 드라마에 비해 한결 속시원하게 다가왔다.
소박한 주제 의식에의 개연성 박신양
그리고 바로 이 <동네 변호사 조들호>가 속시원한 개연성을 밀고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자타공인 배우 박신양의 존재에 있다. 대부분 이런 류의 드라마들은 드라마의 극적 방점을 악역의 개연성에 둔다. 그래서 새로운 드라마들이 만들어 질 때마다 주인공은 얼마나 더 나쁜 놈인가를 고심한다. 그래서 최근 이런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리멤버-아들의 전쟁> 속 남규만(남궁민 분)이나, <시그널>속 신영진(이기우 분)처럼 서로 누가 더 사이코패스스러운가 경연 대회를 벌인다. 그건 상당부분 제작진이 극의 추동 방식을 지배적 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속칭 고구마를 잔뜩 먹여놓고 마지막에 속 시원한 사이다 한 잔이란 방식이란 평가처럼.
물론 <동네 변호사 조들호>도 다르지 않다. 이 드라마에도 사이코패스같은 재벌 2세도 등장하고, 그를 싸고도는 아버지 재벌 회장과 법조계 인사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기존 드라마와 같은 갈등 구조를 조들호란 만화적 캐릭터가 압도해 버린다. 그리고 그 압도하는 힘은 전적으로 박신양의 연기가 설득해 낸다.
시청률 1위로 자족할 수 없는 제작 환경의 열악함
20부작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비록 방영 내내 주중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 진행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사건은 심각하지만, 사건의 해결은 '실소'가 삐져나올 수 밖에 없는 어설프고, 소박한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하지만, 그 순진해 마지않는 해결 방식조차, 박신양이라는 배우는 자신의 연기로 채워나가 드라마를 밀어 붙인다. 과연 박신양이 아니었다면 이 드라마가 동시간대 1위를 했겠으며, 마지막까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겠느냐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또한 주먹구구식으로 시간에 쫓겨 만들어진 드라마는 애초 여주인공이었던 강소라의 비중 축소와 김유신 역의 김동준의 역할 실종 등 씁쓸한 뒷맛을 낳는다.
박신양이라는 드라마의 개연성은 동시에 다시 한번 현재 우리나라 드라마의 제작 방식에 대한 고민을 던져 준다. <쩐의 전쟁>을 작업한 이향희 작가와 박신양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었던 <동네 변호사 조들호>지만, 이미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부터 등장한 표절 시비는 차치하고더라도, 이후 이향희 작가 대신 김영찬, 유미경이란 새로운 작가가 등장함으로써 드라마 제작 방식의 문제점을 노정했다. 또한 이런 열악한 제작 환경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동시간대 1위를 유지하자, 차기작 제작에 시간이 쫓긴 kbs측이 연장을 빌미로 기사를 띠우며 주연 박신양을 몰아가는 후진적인 행태를 되풀이했다.
비록 드라마는 박신양의 연기로 모든 개연성을 채워가지만, 극 중반부 드라마는 늘어지며 할 이야기가 없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등장할 정도로 20부작이라기엔 버거운 모양새를 보였다. '무사히 마친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박신양의 뼈있는 소감처럼.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박신양의 연기로 동시간대 1위를 수성하며 그간 드라마 제작 시장에서 마이더스의 손으로 통했던 smc&c에게 최초로 성공의 축배를 안겨 주었다. sm 소속 연기자들 중심으로 작품을 꾸렸던 smc&c는 최근 들어 자사 소속이 아닌 다양한 출연진 위주로 제작 방식에 변화를 주었고,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그 첫 성과물이다. 엔터테인먼트계의 독과점 sm, 그 자회사 smc&c가 우리 사회의 검은 커넥션을 쳐부수는 슈퍼맨 조들호 변호사의 활약으로 고소원하던 시청률마저 얻었다는 점, 이 아이러니한 성과물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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