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안상구(이병헌 분)가 우장훈(조승우 분)와 함께 찍으려고 했던 영화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절찬리에 상영되었다. 전 국민을 상대로. 미래 자동차 비자금 스캔들은 가장 강력한 대통령 후보 장필우를 무너뜨렸으며, 거대 기업 미래 자동차 오너 오현수(김홍파 분)와 유력 신문 논설 주간 이강희에게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내부자들>의 버거운 승리
결국 빽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심지어 신체의 일부분조차 상실한 두 사람의 합작품이 우리 사회의 근간을 쥐락펴락하는 언론, 정치, 경제의 카르텔을 뒤흔들어 버렸다. 가지지 못한 자의 의협심이 가진 자의 성벽을 무너뜨린다는 이 시나리오는 최근 1000만 관객을 돌파하였을 뿐만 아니라, 26일 청룡 영화제에서 그 주인공 중 한 명에게 남우 주연상을 선사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영화 <베테랑>의 설정과 그리 다르지 않다. 행동파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과 그를 중심으로 뭉친 특수 강력사건 담당 광역 수사대는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분)가 배후에 있는 사건을 수사한다. 영화의 소개들에 등장하듯 '우리에게 이런 형사 한 명쯤 있는 거 좋잖아'라고 하듯 그런 형사와 그런 형사와 같은 동료들이 갑질 진상을 떠는 재벌 3세를 통쾌하게 쳐부셔준다. <베테랑> 속 공권력은 권력에 눈치를 보지만, 결국 자신에게 맡은 바 공적 기능에 충실한 '정의의 수호자'이다. 그래서 영화 <베테랑>을 보고 나면 속이 다 시원해 진다. 조태오의 패악이 강력하면 할 수록, 그를 패태기쳐버릴 '정의'도 강력하게 작동할 테니까. 그럼에도 <베테랑> 속 대한민국은 순기능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야 만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그 '갑질'을 하던 세력을 축출해 버렸는데, 영화 <내부자들>의 뒷맛은 어쩐지 씁쓸하다. <베테랑>이나, <내부자들>이나 결국은 따지고 보면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쉽게 이루어지기 힘든 '갑질'의 아우토반을 몸으로 막아 저지한 '환타지'인데도,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 다르다. <베테랑>이 한바탕의 일장춘몽처럼 화끈하게 환타지스럽다면, <내부자들>은 그 버거운 승리만큼 되돌아 오는 현실의 무게가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내부자들>의 승리를 꿰어찬 두 사람은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잃었다. <베테랑> 속 광역 수사대가 팀원들이 함께 승리의 축배를 나눌 수 있는 반면, 안상구는 그의 손목아지가 날라갔으며, 그가 아끼던 조직의 후배 박사장(배성우 분)은 배신했으며, 그를 돕던 주은혜(이엘 분)는 죽임을 당했다. 우상훈 역시 마찬가지다. 이른바 족보 없는 경찰 출신의 검사로 어떻게든 검찰 조직 안에서 동앗줄을 잡고 승승장구 해보려는 그는 결국 내부자가 되어 검찰을 떠나야만 했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버려야만 했던, 그들의 버거운 승리는, 오히려 승리라기 보다는, 손목에서 부터 그들이 가진 것들을 쉬이 잘라버리는 그 사회악의 카르텔의 강고함을 절감하게 만든다.
영화 속 재벌과 정치와 언론의 카르텔은 강고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재벌의 돈줄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하수인이자, 또 다른 권력의 점유자 정치인과 언론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할 것이다. 그들이 영화 내내 벌이는 질펀한 섹스 파티는 그저 영화의 선정성이 아니라, 그들의 도덕적 붕괴를 상징한다. 도덕적으로 붕괴된, 아니 탈도덕화된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손목, 나아가 신체, 생명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권력을 위해, 이강희의 세 치 혀는 그의 손을 통해 교활하게 교묘하게 대중을 조정한다. 영화는 이런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부와 정치, 언론의 카르텔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칼을 가는 안상구와 우장훈은 산꼭대기를 향해 날마다 바위를 힘겹게 올리는 시지프스(sisyphus)와도 같다. 결국은 올려보려 하지만, 꼭대기에 오르자마자 반대편으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보듯, 영화 내내 그들의 실패를 지켜보아야만 했다.
영화 마지막 결국 그들은 승리를 거머쥐었다. 내부자들이었던 안상구가 조폭이란 이유만으로 외면받았던 바로 그 실패의 고리가 그들의 승리의 아이템이 되어, 검찰인 우장훈이 내부자들로써 카르텔의 덜미를 잡아챈 것이다. 이런 그들의 승리를 안상구는 한 편의 영화라 했다. 그렇다 영화 같은 환타지이다. 그래도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검찰이란 조직을 떠나면서도 저격을 멈추지 않는 검사도, 자신의 손목아지가 날아갔다는 울분에 복수를 포기하지 않는 조폭도, 그들의 말처럼 영화같은 설정이다. 오히려 현실은 박사장이나 문일석처럼 회유되거나 잔뜩 겁에 질려 쫄거나, 까라면 까는 부장검사이거나, 떡고물에 감읍하는 민정 수석, 그리고 내부자의 단 맛에 홀리는 사람이기 십상이다. 그들의 영화 같은 승리는 오히려 그걸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의 비굴함을 연상케 한다. <베테랑>의 몰아치는 한판 싸움에 솔깃했던 관객들은, <내부자들>을 보고서는 오히려 자신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이겨낼 수 없는 그 역설의 승리에서 현실의 막막함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복수'를 하고 싶은 저 악의 카르텔의 비열함을, 갑갑함을 맛보게 된다.
<베테랑>, <내부자들> 그들의 예봉이 향하는 곳은?
<베테랑>의 통쾌한 한 판 승이던, <내부자들>의 버거운 승리이던 우리 사회의 현실을 기반으로 한 '환타지'같은 영웅담의 예봉은 결국 우리 사회 부조리와 악의 근원이 '부'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재벌 3세든, 미래 자동차든 '부'를 배경으로, 기반으로 그것을 수단으로 우리 사회의 다른 '갑질'의 카테로리를 주무른다. 재벌 3세 조태오의 하수인은 치밀한 하수인 최상무(유해진 분)의 도움으로 법망을 자유롭게 빠져나간다. <내부자들>은 좀 더 치밀하다. 미래 자동차의 돈줄 앞에 정치인 장필우도, 언론인 이강희도, 대통령을 보필하는 민정 수석도, 부장 검사도 그저 또 하나의 '을'일 뿐이다. 2015년 대한민국에서 1000만을 찍고, 이제 다시 19금으로서 또 다른 흥행 신화를 쓰고 있는 영화는 현실 모순의 고리가 어느 곳에 매어져 있는가를 정확하게 지적한다.
11월 20일자 한겨레 신문을 통해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은 현실을 이렇게 진단한다. ' 오늘날 대한민국의 세력 판도는 외환위기 이후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파워그룹의 신질서가 만들어낸 것이다. 관료와 재벌이 패권을 정치가 힘을 잃자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차지했다.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는 시대가 열렸다. 반독재 투쟁보다 반독점 투쟁이 훨씬 어렵다. 가장 힘이 센 자와 가장 자주 보는 자와 가장 분노해야 할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적이 안 보이는 시대다. 반독재 시대가 칼싸움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적이 누구인지, 어디서 공격하는지 알 수 없는 ‘테러의 시대’요 ‘드론의 시대’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모든 엘리트들이 다 포섭되었기 때문에 ‘어용’도 없고 ‘사쿠라’도 없다. 대한민국은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공공성이 결여된 이기적인 사회가 되고 말았다.'<내부자들>이 힘겨운 내부자의 승리를 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엘리트'가 포섭된 현실에 기반한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테랑>의 정의가 싱그러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안흔 인간에의 순수한 믿음 때문이다.
'1990년대가 ‘개혁의 시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개혁의제를 선도했던 ‘시민단체’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2000년 총선에서의 ‘낙천·낙선 운동’ 이후 시민단체의 영향력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대한민국은 전략적으로 개혁의제를 선도할 ‘지적 네트워크’가 경제 규모에 비해 굉장히 취약하다.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그 불행의 시대를 그나마 막아서고 있는 것은, 윤태호를 비롯한 웹툰 등의 날카로운 서사와 그 서사를 대중적으로 설득해 낸 <베테랑>, <내부자들>같은 영화들의 끈질긴 목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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