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촌각을 다투며, 심지어 헬기를 타고다니면서까지 강연을 다니던 김정운 교수가 사라졌다. 그러던 그가,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책, [에디톨로지]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2015년 새해 벽두부터, kbs2tv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장장 3부작에 걸쳐 드러낸다.
2012년부터 홀로 일본에서 지내며 일본 옛그림을 배웠다는 김정운은 홀로 지냈던 시간이 너무 외로워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는 조금은 아니, 많이 업된 자신을 양해해 달라며 흥겹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굳이 그가 소개한 하버드 대학의 빌 게이츠와, 스탠포드 대학의 스티브 잡스의 연설을 비교하지 않아도, 스스로 흥이 자서, '자뻑'을 빈번하게 드러내며, 자신의 새로운 학문, '에디톨로지'를 통해 풀어낸 '수다'는 '영양가'를 떠나, 그 어떤 개그 프로그램보다도 즐겁다.
그런가 하면, 흔들림없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에 진력하던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영화 평론가라는 그의 직업에는 생소한 장르, 토크쇼의 mc로 '수다 한 판'을 풀어낸다. 이미 <금요일엔 수다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김태훈과 함께 진행했지만, 그 역시 영화 관련 프로그램이었기에, 본격적인 외도라 할 만하다.
이동진이 새롭게 mc를 맡은 <시간여행자k>는 온전히 '수다'의 한 판이다. 해방 이후 70년간 대한민국 사회가 변화되어 왔던 시간들을, 개그맨 이윤석, <비정상회담>의 타일러 라쉬, 시나리오 작가 김희재, 독고탁으로 상징되는 만화가 이상무, 배우 김부선, 가수 레이디 제인 등, 다양한 연령과 직업군의 인물들이 모여, 온전히 '입'으로만 터는' 시간이다.
일찌기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라는 도발적 저서로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여,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을 통해, 오로로 '일'밖에 모르며 늙어가는 이 시대의 남자들을 도발하기 시작했던 김정운은, 그의 새 책, <에디 톨로지>를 통해, 일한 만큼, 늙어가는 시간이 남아도는,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대안적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창조는 재미다>, <재미는 창조다>, <데이터베이스가 공부다>를 통해, 정보가 만연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정보의 늪에 빠지는 대신, 주체적으로 그 정보를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편집하며, 자신의 삶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다. 그런데 여기서 김정운이 추구하라고 하는 삶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달려왔던 '성공'이 아니다. 그 자신이 바쁜 교수와 강연의 늪에서 빠져 나와, 일본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며 새로운 삶을 모색하듯이, 결국 은퇴하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삶에 연연하지 말고, 진짜 자신이 즐기며 행복해할 공부를 하라고 충고한다.
'편집'으로 부터 시작하여, 재미와 행복으로 넘어가는 김정운의 수다는 현실적이다. 더 많은 정보 속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정보'의 주체성을 강조하며, 더 이상 '성장'과 '발전'을 담론으로 삼을 수 없는 '저성장, 고소비'의 사회를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이 ,'공부'하는 것이라며. 그가 말하는 공부가 별거 아니다. 우리 나라 최고의 명강사였던 그가, 일본 작은 대학에서, 미술 공부를 하듯, '재미'를 느끼는 것에 몰두하는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라고 충고한다. 물론, 정신적 만족의 함정도 놓치지 않는다. 그저 나 좋은 것만에 탐닉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인다, 자신이 느끼는 재미, 자신이 느끼는 행복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끊임없이 되물어야, 재미가, 자기 만족적 탐닉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말한다.
그가 들고온 새로운 그의 이론이 재밌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발을 디고 사는 삶의 현실에서 출발했기 때문이요, 50세 이후의 오래될 늙음과, 쉬이 성공을 기대하기 힘든 젊음들에게 '생각해 볼만한' 현실적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3일에 걸쳐 김정운 교수의, 아니 교수가 적성에 안맞아 때려 친, 저술가 김정운의 수다가 질펀하게 드리워진 한편에서 조용히 새로 시작된 또 다른 수다 프로그램은 <시간 여행자k>다.
첫 시간 주제 한국인의 몸, 피비린내 나는 전란 속에서 시작된 미스코리아 대회를 시작으로, 변화되어가는 여성의 몸과, 그 한편에서, '살찌는 약'을 광고하고, 우량아 선발대회를 하던 못살던 대한민국의 변화상을, mc와 패널들의 수다로 온전히 짚어간다.
이런 수다의 관건은 결국, 시각이다. 어떤 관점에서 지나온 대한민국의 역사를 볼 것인가? 더구나 최근 지나온 과거의 역사에 대해, '칭송'과 '폄하'의 양 극단이 오고가는 상황에서, 그런 <시간 여행자k>의 관점은 건강하다.
전란의 과정에서도 수영복 심사를 받는 미스코리아 후보들을 바라보는 심사위원들의 관음적 시각을 짚을 수 있는 관점과, 변화되어가는 육체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시선, 그리고, 이제 다시 '마름'이 트렌드가 된 세상을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비판적 시각까지, 70년이란 시간을 훑어보는 시각들이 편향되어 있지 않다.
가끔은 열혈 투사 배우 김부선의 입을 통해 거친 단어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 스스로, <100분> 토론인가 라며 자정하는 센스를 보였고, 이제는 고전이 된 만화 독고탁의 만화가 이상무 옹의 시선은 노회하지 않았다. <썰전>에서 말 한 마디 하기 힘들던 이윤석은 모처럼, 그 자신의 탁견을 펼치며 신이 났고, 중년의 김희재와, 젊은 레이디 제인이, 여성이라는 공감대에서 크게 비껴가지 않는다. 이방인 타일러의 낯섬이 어색하지 않고, 또 다른 다양함으로 어우러진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그 다름이 튕겨가지 않고, 지나온 70년의 격동의 세월처럼, 그저 한데 어우러진다.
무엇보다, 그간 영화 평론을 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폄하보다는, 장점을 짚어보려 하고, 열연을 했던 배우와 감독에 대한 존중감을 놓치려 하지 않았던, 평론가 이동진의 객관성이 돋보였다. 그의 넉넉한 시선 아래, 김부선의 튀는 언어도, 이상문의 고답적 시선도, 타일러의 색다른 시선도, 모두 그럴 수 있는 생각들이 된다. 19금의 야한 이야기도, 지레 얼굴이 빨개지는 이 mc덕에, 수즙은 생각으로 돌변한다.
과연 현재 kbs라는 공영 방송의 토요일 8시대에 토크 프로그램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할 수있을까?라는 회의를, <시간 여행자k>는 얼마든지, 건강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누가, 어떻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고답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다름을 차이나, 차별로 읽지 않고, 그저, 다름의 개성으로, 역사로 읽어낼 수 있음을 <시간 여행자k>는 보여주었다. 과거를 지레 미화하지도, 섣불리 그리워하지 않으며, 지나온 시간으로 덤덤히 짚어보며, 오늘을 반추할 수 있는 시간, 건강한 수다 한 판, <시간여행자k>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은, 비록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더라도 ,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건강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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