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고교 처세왕>같은 젊은이들만 볼만한 로코만 있는게 아니다. 할배들의 청춘을, 여배우들의 그림자 속 인생을, 그리고 이제 다시, 청춘을 노래했던 뮤지션들의 여전한 청춘을 노래하는 여행 프로그램에 가두기엔 그 진폭이 너무 큰 <꽃보다> 시리즈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제는 흘러가버릴 시대가 되어버릴 뻔 했던 1990년대의 젊음을, 그리고 음악을 전국민적인 붐으로 되살린 <응답하라> 시리즈도 있다. 시즌제를 거듭하는 그런 화제작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주목받는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이제는 공중파에서도 외면하는 우리 사회의 곳곳을 들여다 보는 꾸준하고 따뜻한 시선들이 지속된다. 군대를 우물 속에서 건져낸 <푸른 거탑>이 그러했고, 농촌을 길어낸 <황금 거탑>이나, <삼村로망스>가 그렇다. 그리고 이제, 또 한편의 소외받은 문화 영역을 향한 따스한 시선이 담긴 프로그램이 마무리 되었다. 바로 4부작 <국악 스캔들 꾼>이다.
말 그대로 '바람 난 국악'을 다룬 프로그램이다. 즉, 국악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여러 타 음악과 교류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이른바 '퓨전 국악'을 다룬 프로그램이다. 국악이라고 하면 그나마 토요일 낮 12시에 면피하듯이 방영되는 kbs의 <국악 한 마당>말고는 공중파에서는 찾아볼 길 없는데, 케이블 tvn이,재미있는 국악을 표방하며, 국악에 한 자리를 내어 주었다.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사람은 박칼린이다. <남자의 자격>을 통해 여성 마에스트로로 이름을 날린, 뮤지컬 연출자로 알려진 박칼린이지만, 사실 그녀는 파란 눈의 이국적 외모와 달리,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악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국악통이다.
그런 박칼린과 함께 4부를 이끌어 간 또 다른 사람은 하림이다. 첫 회 광고를 통해 얼굴이 알려진 송소희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2부에서부터 등장한 하림은, 이국의 외모 하지만 국악통인 박칼린과 대척점에서, 한국적 외모에 코스코폴리탄의 정서를 가진, 세계 음악의 정통한 사람으로서, <국악 스캔들 꾼>의 지평을 넓힌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진행자와 함께, 매회 국악계의 대표적 명인들이 함께 해 '바람'에 부채질을 한다. 남원을 여행하던 첫 회에는 남원이 낳은 여류 명창 안숙선씨가, 2회 부산 여행지에는 사물놀이의 대가 김덕수씨가, 3회 서울 여행에서는 창작 음악계의 거목 황병기씨가, 4회 안성에서는 국악 마에스트로 박범훈씨가 등장해, 바람의 빛깔을 서로 다르게 채색한다.
4회에 걸쳐 '춘향전'의 본가 남원을 시작으로 해서, 부산, 서울을 경유하여, 안성에 종착한 <국악 스캔들 꾼>은 2014년 현재 국악이란 음악을 하며, 그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는 젊은 재주꾼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남도 창의 본가 남원은 그렇다 치고, 부산, 서울, 안성까지, 힘합과 아이돌 음악이 대세인 듯 판을 치는 세상에서, 꾸준히 국악의 길을, 국악의 발전을 모색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지켜보던 보지 않던, 우리 음악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으로 전달하기 위해 땀을 흘리기를 마다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해 준다.
또한 그들의 공연을 통해, 그리고 그 공연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박칼린, 하림, 그리고 매 회의 명창들을 통해, 국악, 그리고 퓨전 국악의 다양한 면면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퓨전' 이제는 그 단어조차도 새로울 것이 없는, '퓨전'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하지만 그만큼 쉽지 않은 작업인지를 <국악 스캔들 꾼>은 4부작의 짧은 시간이지만 충분히 전해주었다.
그저 섞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국악 고유의 음색, 가락, 리듬, 장단이 살아 있어야, 이른바 제대로 '퓨전' 이 된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그저 두루뭉수리 '국악'이 가락이 흐르고, 장단을 놓치지 않고, 정조가 살아있는 살아있는 음악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마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집을 나선 '인형의 집' 로라처럼, 타 장르의 음악과 '바람이 난' 국악을 통해, 국악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굳이 정색을 하고, 국악은 이것이고, 타 음악과는 이렇게 만나야 한다고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4회의 걸친 여행을 맛본 것만으로도, 국악의 정체성에 대한 실마리를 얻게 해준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논리적인 귀결로 이어지는 것이지만, 그 시작은 역시나, 음악 답게 '듣는 귀'의 트임에서 시작되게 만드는 것도 <국악 스캔들 꾼>이다.
'퓨전'이라지만, 익숙한 드럼, 바이얼린 등 서양 악기에서부터, 모양에서부터 신선한 아프리카, 스위스 등의 이방의 악기들이 가야금, 아쟁 등 우리의 전통 악기들과, 때로는 소리들과 어우러지는 음악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들어서 좋다 싶으면 감상자들의 칭찬과, 제대로 된 모색이었다는 평가가 이어지는 것으로 '퓨전'의 방향성과 목적성에 대한 '현장 학습' 그 자체가 되었다.
4회 박칼린은 말한다. 고리타분한 국악이 아니라 듣고 즐길 수 있는 신선한 국악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동행했던 하림의 말도 그리 다르지 않다. 외국을 여행하며, 아프리카의 리듬이 고스란히 현대의 음악으로 재현된 것을 들으며 느꼈던 그 부러움이, 바람난 국악을 통해 해소되기를 바란다고.
그리고 비록 4회였지만, 그저 그런 '퓨전 국악'이 아니라, 얼마든지 아이돌 음악 저리가라할 재미와, 그 이상의 듣는 묘미의 가능성을 전해준 <국악 스캔들 꾼>이었다. 물론 첫 시도인 만큼, 빗 속에서 공연을 강행해야 하는 등 그만큼의 아쉬운 점도 소소하게 남는다. 하지만, 돌려막기, 틀어막기 급급한 프로그램들이 양산되는 과정에서,그저 우선은 이런 실험적 시도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반갑고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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