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신>이 종영되었다.

마지막회는 소위 말하는 막판 반전없이 예상한대로 흘러갔다. 미스 김은 3개월의 시한이 끝나자 과감히 와이장을 떠나고, 떠나는 그녀를 모든 직원은 아쉬워하고, 물러터져서 사회 생활 어찌할까 싶은 무정한 대리는 주변 사람들을 품은 그 성격 덕에 승승장구 했다. 그리고 여전히 창고 관리직으로 남은 장규직에게 미스 김은 다시 돌아가는 걸로 여운을 남기는 것까지. 굳이 이변이라면 그렇게도 와이장의 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했던 정주리가 스스로 재계약을 거부한 것? 하지만 그것조차도 너무도 간절했기에 오히려 떠나려는 복선이 아닐까 의심을 충분히 둘 수 있는 정도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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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신 종영 메시지)

 

반전도 없고, 장규직을 미스 김이 구하는 해프닝 외에는 딱히 극적인 결말도 없었음에도 <직장의 신> 마지막은 가슴을 물렁물렁하게 만든다. 장규직의 어머니가 미스 김이 그토록 못잊었던 계약직 선배였다는 설정은 지극히 도식적이었지만, 그 어머니를 불길 속에서 구해내지 못해, 그 어머니 혼자 놔두고 살아남아 오랜 시간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미스 김에게 고해 성사를 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번복할순 없지만, 얼마나마 갚았다는 마을을 들게 한 창고 화재씬은 어설펐지만 따스했다. 더구나, 장규직의 그 마지막 한마디, '당신 잘못이 아니야'는 뭉클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온 '전구 운운'하는 정주리의 나레이션은 반갑기 까지 했다. 정주리는 말한다. 그저 '수많은 전구 중 하나에 불과하더라도 크리스마스 트리는 전구가 없으면 불을 밝히지 못한다'고. 그리고 미스 김은 정주리에게 말했다. 정규직이냐 계약직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너 자신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마치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팀장이 된 무정한 대리는 예의 그 모습을 하나도 변화시키지 않은 채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로 사람들을 대한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우리 사회 내의 뿌리깊은 사회적 갑을 관계를 직접적으로 들고 나온 <직장의 신> 결말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체계가 달라졌다는 말은 없고, 그저 각자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서 한 사람 한 사람 빛나는 전구가 되도록 노력하고 산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그 어느 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그저 장규직의 희생으로 정주리의, 마케팅 지원부의, 무정한의 기획안의 성공을 거둔 것, 오래도록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미스 김이 장규직의 '너의 죄를 사하노라'와 같은 그 한 마디로 인해, 그의 사랑으로 인해 오랜 상처에서 한 걸음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 외에는 구조와 조직의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막막한 세상에도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상투적이지만 또 여전히 '사람만이 희망이다'란 끈을 붙잡고 다시 살게 만드는 용기를 북돋는 환타지랄까.

 

(학교 2013 마지막 촬영 현장)

 

그런데 <직장의 신>만이 아니었다. 2012년 12월부터 방영된 <학교 2013>의 주제 역시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회 돌아오지 않는 학생을 기다리는 끝나지 않는 종례의 여운은 내내 <학교 2013>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었다. 그리고 그걸 말하는 방식 역시 가장 현실에 가까운 여전히 입시 전쟁 속에서 질식해 가는 아이들, 그리고 그 전쟁에서 튕겨져 나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리저리 부대끼기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으려 노력했었다.

<직장의 신>의 현실성이 희화화되어 통쾌함을 주었던 것과 달리, 너무도 그 아픔이 현실적으로 다가와 보기가 저어된다 할 정도로 '모사'에 다가갔던 학교의 모습은 또 학교 시리즈의 답습이냐던 힐문을 닫게 만들었었다.

비록 <직장의 신>이나 <학교 2013>에 비하면 불발탄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3년 2월부터 방영된 <광고 천재 이태백>이 지향하는 '착한 드라마' 역시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게 아니었다.

지방대 출신으로 세계 광고계에서 인정을 받고, 센세이셔널한 공익 광고로 주목을 받은 이제석이란 실존 인물을 밑그림으로 하고 진행된 드라마가 지향한 것도 우리 사회 루저의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하는 건강한 문제의식이었다. 단지, 두 드라마와 달리 <광고 천재 이태백>이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 지점, 문제의식은 건강하되, <직장의 신>과 <학교 2013>이 정확히 천착했던 우리 사회 현실에 제대로 가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광고 천재 이태백 마지막 촬영 현장)

 

혹자는 이제 텔레비젼은 디지털 시대의 아나로그처럼 다면화되고 쌍방향이 되어가는 문화 시대에 과거의 매체가 되어가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중장년층이 쥐고 있는 리모컨의 향배에 좌우되는 시청률에 목매는 공중파의 프로그램들은, 장옥적이 악녀 본색을 드러내자 올라가는 시청률처럼, 시청률 상승을 위한 막장식의 스토리를 쏟아내며 시선끌기에만 몰두하다보니, 건강한 시청층의 이탈을 막을 도리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경향 속에서, <학교 2013>에서 <직장의 신>의 계보로 이어지는 월화 드라마의 건강한 현실주의는 신선하다. 더구나, 젊은 층 사이의 회자되는 이들 드라마의 이슈성은 시청률로만 다할 수 없는 방송의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 막장식 궁중비사나, 환타지가 아닌, 텔레비젼을 보고 함께 공감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드라마의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권의 전통이 내내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막장이나 뻔한 러브 스토리가 아닌 개인적 자족이든 환타지든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를 나누는 드라마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흘러간 매체가 아닌 동시대를 숨쉬며 살아가는 살아있는 매체로 텔레비젼이 생명 연장을 누릴 수 있는 해법이기도 하다.

후속작으로 5년간 절치부심의 칼을 갈았다는 김지우, 박찬홍의 <상어>가 시작된다. 과연 이 드라마도 짧은 시기나마 이어져온 kbs월화 드라마의 전통을 이어갈까 기대가 된다.

 

by meditator 2013. 5. 2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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