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아니'라고 했지만 별 일이 아닐 수 없덨다던 최수아(김하늘 분)는 자신의 일상을 흐트러트린 서도우(이상윤 분)와 이별을 한다. 3무 사이라, 그리고 2무 사이라 애써 자신들을 변명하며 서로를 놓지 않으려던 했던 두 사람이지만, 자신에게 몰려온 개인사들은 두 사람으로 하여금 서로를 핑계대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불륜'을 핑계대고 싶지 않았던 두 사람, 11회 제주의 공항에서 결국 다시 조우하고 만다.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드라마는 '불륜'을 정당화하기 위해 '운명'을 내세우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 오히려 두 사람의 운명적 재회를 통해 <공항 가는 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운명'처럼 보이는 '재회'의 필연이 아닐까?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지난 10월 10일에서 13일까지 방영된 <ebs다큐 프라임-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3부작은 대한민국 부부의 현실을 들여다 보고자 했다. 전통과 개인의 중간 지점에 놓인 한국의 결혼, 그래도 현재 한국의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한 남녀의 결합이다. 하지만 '사랑'의 관계로서 결혼은 아이의 출산과 함께 그 '사랑'의 양상이 급격하게 변화해 간다. 즉 대한민국 부부는 사랑하는 개인의 결합을 넘어 남편은 돈을 벌어다주고, 아내는 아이를 키우는 자녀 양육의 경제적 단위로 기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된 부부의 성격은 아이가 다 성장해서 부모의 품을 떠날 때까지 지속된다. 그리고 그때까지 대한민국에서 부부로서 살아가는 만족도는 현격하게 떨어진다.
드라마는 바로 그 지점, 자녀 양육의 경제적 단위로서 부부의 현실에서 시작된다. 서도우-김혜원 부부, 두 사람은 비록 서도우의 친자는 아니지만 '애니'라는 아이를 매개로 시작된 부부이자, 애니를 아껴주는 할머니, 형과 같은 민석(손종학 분)과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이룬다. 민석이 친형은 아니지만, 도우가 돌아가신 어머니만큼 믿는 형이듯이, 애니가 친자는 아니지만 도우도, 애니도 가장 애틋한 부녀지간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진짜못지 않던 유사 가족은 친모 혜원의 도발로 인한 애니의 죽음으로 파괴되어간다. 애니가 죽고, 애니의 죽음을 애처로워하다 자신과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결국 애니에 대한 아내의 배신을 알고 분노하며, 결별을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수아네 역시 마찬가지다. 애니와 룸메이트였던 수아의 딸 효은(김환희 분)은 애니의 죽음으로 인해 고통받고, 그런 딸의 고통을 공감한 수아는 무작정 말레이시아에서 딸을 데리고 귀국한다. 하지만 그런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박진석(신성록 분). 국제화 시대의 경쟁력을 내세우던 현실주의자인 그는 아내의 무모한 결정에 분노하고 아내의 직업으로 인한 육아의 공백을 아내와 딸을 시어머니 집으로 강제 입주시키는 것으로 분풀이한다. 소통하지 못하는 남편, 홀로 남겨지는 딸을 견디지 못한 수아는 결국 사표를 쓰고,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국제학교' 행이라 거짓말을 하고 딸과 함께 제주도로 향한다.
양육의 경제적 단위로서의 부부, 그 이면엔?
이렇게 드라마는 '자녀 양육 단위'로서 그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부부로서의 그 기반을 파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가 연결 고리가 되지 않을 때 두 부부를 들여다 본다.
애니의 죽음이후 급격하게 파괴되어져가는 서도우 부부, 하지만 그건 '애니'라는 의붓딸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딸 애니를 미혼모로 자신이 어렵게 키워왔던 딸이라 속인 혜원은 딸을 이용하여 서도우와 결혼해야 할 만큼, 서도우, 그리고 재벌가와 막역한 인간문화재 그의 어머니 고은희 여사(예수정 분)의 그늘이 필요했다. 결국 애니와 고은희 여사의 죽음 이후 벌어진 사이는 이 부부를 부부로 포장해 왔던 포장지가 사라진 부부로서의 민낯을 드러낸다.
수아와 진석의 부부도 다르지 않다. 딸 효은의 육아로 인해 번번이 충돌하는 부부, 아내를 자네라 부르며 '가부장'적으로 군림하는 남편 진석은 아내의 의사는 커녕, 아내의 진심어린 말 한 마디조차 짜증내 한다. 아내와 딸이 없는 집에서 홀로 자유로워하는 남편, 그리고 오래전 연인이었던 아내의 친구 송미진(최여진 분)에게 거침없이 도발하는 남편, 무엇보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양육과 아이의 생각을 먼저인 양육 태도를 상징으로 대립되는 두 사람의 가치관은 자녀 양육의 단위로서 부부의 삶조차 충실해 질 수 없게 된다.
결국 드라마는 '자녀'라는 대한민국 부부의 허울을 벗겨버리고 난 자리에 이질적인 두 사람으로 남겨진 두 부부의 민낯을 펼쳐보인다. 불륜이 문제가 되었을 때, 과감히 둘의 관계에 공백을 제시할 만큼, 최수아나 서도우에게 있어, 불륜이 가정 파괴의 주범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에 '파괴된 부부'가 있었음을 드라마는 설득하고자 한다.
그에 반해 아내가 외면한 애니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는 수아에게 마음이 열렸던 도우, 그리고 마찬가지로 가장 외롭고 힘들었을 때 수아를 품어주었던 도우처럼 서로의 '정서'만으로 무작정 서로에게 끌렸던 두 사람이 이제 제주에서 다시 조우하게 함으로써, <공항 가는 길>은 그저 불륜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한 교감으로서 불륜을 생각하고자 한다.
물론, 아직도 박진석의 아내이고, 김혜원의 남편인 두 사람은 여전히 결혼이란 제도 속에서 놓여있다. 그러기에 그래도 불륜은 불륜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저 막연한 끌림으로 혼돈에 빠졌던 두 사람이, 각자 자신의 삶을 '느리게', '새롭게' 시작하는 제주에서의 만남은 삶의 방향을 정한 이후의 또 다른 각도의 불륜을 전개하게 한다. 과연 삶의 태도에서조차 결단을 내린 두 사람은 이제 다시 운명적으로 찾아온 이 필연의 만남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이런 수아와 도우의 이후의 행보를 통해, 드라마는 '자녀'라는 허울에 씌여 사는 부부들을 거울 앞으로 내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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