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간통법이 폐지되었다. 그 이전 간통법이 폐지되기 전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갖는 것을 피해 배우자가 신고하면 징역 2년의 처벌을 받았었다. 하지만 이 간통법은 '개인'의 결혼에 대해 '국가'가 법적으로 개입하는 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사회적 인식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법'만 사라졌을 뿐,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불륜'은 사회적 금기를 어기는 대표적 사안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 '불륜'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의 속내는 무엇일까? 거기엔 최근 성과 관련된 보고서(2016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50대 남성의 53.7%, 여성의 9.6%가 외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이런 확률은 연령대 별로 4%씩 증가하며 40대에서는 6%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보고서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대다수의 여성들이 '결혼'이란 제도에 성실한 반면, 남성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고, 결국 그로 인해 여성들이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불륜'에 대한 노골적 불편함은 이런 여전한 결혼제도를 둘러싼 남녀의 '불평등'한 관계의 반증이다. 그러기에 여성들이 주된 시청층인 tv에서 불륜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진짜 사랑이 뒤늦게 찾아온다면?
이런 조심스러운 '불륜'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해, <공항 가는 길>이 취한 해법은 바로 '사랑'이다. 그것도 뒤늦게서야 찾아온 진정한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의 핵심은 '소울 메이트'이다. 말 그대로 당신 영혼의 짝이 뒤늦게서야 나타난다면? 이다. 효은 엄마, 애니 아빠로 애니의 죽음을 매개로 얽히게 된 두 사람, 최수아(김하늘 분), 서도우(이상윤 분)은 각자 아이들로 인해 겪게되는 가정의 위기 속에서 정작 각자의 남편, 아내 대신 서로에게서 '위로'를 받고, 서로에게 공감한다. 
서도우는 딸이 죽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딸을 지워버리려는 아내와 달리, 빗속에서 잠시 차를 가지러 자리를 비운 사이 자신을 대신하여 '애니'의 유골이 든 가방을 꼭 끌어안고 기다려주는 최수아에게 위로를 받는다. 그런가 하면 마음 둘 곳 없는 시어머니의 집에서 뛰쳐나온 수아의 다친 마음을 쉬게 해주는 건 서도우이다. 

하지만 그 정도론 이들의 '사랑'을 진척시키기엔 아직 시기상조라고 느꼈을까? 아니, 그 보다는 뒤늦게 찾아온 사랑에 대한 '유부남', '유부녀'가 가지는 자연스러운 '경계'를 그리기 위해, 드라마는 한번 더 에돌아 간다. 서로를 찾아 헤매면서도 굳이 만지지도 말고, 애써 만나려 하지도 말고 운운하는 3무의 관계를 설정한다. 서로의 마음은 알지만, 그래도 만나면 죄책감이 느껴지는 관계에 대한 일말의 책임 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 3무란 경계선은 흐르는 인간의 마음을, 그리고 그 마음을 조장하는 상황을 이겨내지 못한다. 드라마는 애니의 죽음으로 만나게 된 두 사람, 하지만 여전히 서로의 가정이란 경계 앞에서 조심스러워하는 두 사람을 서도우 어머니의 죽음이란 '극단적 상황'을 통해 감정의 봇물을 터트린다.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의 죽음이란 극약 처방을 통해서야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심리적 정당성을 획득하려고 한 것이다. 

애니의 죽음 앞에서 냉정한 아내 때문에 홀로 딸의 죽음을 가슴에 접어두어야 했던 서도우, 그런 그가 달려오는 수아의 품에서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린다. 애니의 죽음에서부터 참고 참았던 모든 설움을 한껏 토해낸다. 서도우의 불행을 두고 물불 안가리고 달려온 수아와, 그런 그녀 품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서도우, 이 절정의 공감과 위로가, 이들이 '서로의 영혼'을 공유하는 진짜 '사랑'임을 드라마는 역설한다. '불륜'이라는 도덕적 잣대가 아닌 불가항력의 인간적 감정임을 설득하고자 한다. 

사랑, 그리고 결혼 
거기에 이런 이들의 '금기'에의 도발에 대한 '알리바이'를 위해, 두 남녀의 파트너에 대한 '신뢰'에 먼저 금이 가게 만든다. 서도우는 애니의 죽음 앞에 동요하기는 커녕 애니의 기억조차 없애버리려 애쓰는 아내를 보며, 그리고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온 애니에 대한 기억의 조작을 보며, 이제 아내에 대한 의심으로 한 발 나아간다. 그런가 하면 '자네'라며 아내에게 문자로 지시하는 '시드니의 신사' 최수아의 남편, 그가 가진 이중성이 자꾸 삐져나온다. 그렇게 드라마는 두 사람의 순애보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미 그 이전에 '신뢰'가 무너진 결혼을 그려간다. 즉 사랑에 빠진, 그리고 이제 '불륜'으로 들어설 두 남녀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애써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현실에서 불공정한 '불륜'대신에 가장 아름다운 환타지로서의 '사랑'을 통해 결혼에 찾아든 변수를 질문한다. 



불성실한 배우자, 심지어 애초에 '신뢰'할 수 없었던 결혼, 그리고 이제 서로의 세계관조차 엇물리는 배우자, 그리고 그런 배우자와 달리, 눈빛 하나로도 서로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소울메이트의 출현, 드라마는 뒤늦게 찾아온 '진짜 사랑'을,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소통'을 얻는 관계를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거기서 던져지는 반문은 '결혼'에 대한 것이다. 아마도 최수아와 서도우의 사랑이 아름답고 공감되면서도, 쉽게 그들의 손을 들 수 없는 건 여전히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의 제도 때문일 것이다. 과연 현재 우리 사회의 결혼은 무엇일까? 여전히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관계일까? 공정한 불륜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불성실한 상대방을 어디까지 참아내며 지속시켜야 하는 제도일까?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파트너와의 결혼 생활은 불가능한 것인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혼'은 파기되어야 하는 것인가? 사랑이 곡진할 수록, 이 반문도 깊어진다.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소울 메이트와의 사랑에 빠져든 두 사람이 봉착할 문제도 결국 '제도'로서 그들이 얽어매어진 결혼이다. 
by meditator 2016. 10. 7. 05:26

oecd 이혼율 1위의 국가, 하지만 현실에서 맞닦뜨리는 것은 오히려 결혼이란 제도에 대한 융통성있는(?) 사고보다, 그 반대급부적인 '강고한 결혼과 가정'에 대한 이데올로기이다. 명절만 지나면 이혼율이 높아지는 사회, 높아지는 이혼율로 인해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것은 '가족'이요, '결혼'이다. 하지만, 그 '신봉하고 있는' 결혼과 가정의 현실은 어떨까? 연예인이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의심만 들어도, 혹은 그 '바람'의 대상이었다는 의혹만으로도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이름보다 욕으로 불리워지는 세상이지만, 아침드라마에서 부터 주말드라마까지 드라마를 견인하는 것은 숱한 불륜들이다. 거기에 또 하나의 '불륜' 드라마가 주중 미니 시리즈도 첫 선을 보였다. 바로 <공항 가는 길>이다. 




얼마 전 종영한 <굿와이프>, 미드를 각색한 이 드라마에서는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옮겨와 여주인공 김혜경(전도연 분)이 남편 이태준(유지태 분)과 옛친구이자 현재의 동료인 서중원(윤계상 분) 사이에서 애정의 줄타기를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극중에서 김혜경은 남편을 만나고 난 후 바로 엘리베이터에서 중원과 키쓰를 하는 모습을 통해 '욕망'에 솔직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원작 미드 굿 와이프가 몇 시즌에 걸쳐 여주인공 앨리시아의 캐릭터를 구축한 것과 달리, 단 16부작으로 김혜경의 일과 사랑을 다룬 <굿 와이프>는 독자적인 삶을 개척하는 여주인공보다, 결국 두 남자 사이에 불륜과 사랑의 줄타기를 하는 모습에 치중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주체적인' 사랑의 선택이란 측면에서, <굿 와이프>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륜'이란 꼬리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이러니다, 여주인공의 파격적인 사랑이 화제가 되면서도, 여전히 한편에서는 그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네'라고 불리는 아내와 아내 몰래 딸을 그리는 아빠의 만남
9월 21일 시작한 <공항 가는 길>은 심지어 남녀 두 주인공이 모두 유뷰남, 유부녀이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어차피 불륜 드라마'라는 부담감을 안고 시작하는 처지가 되었다. 드라마의 기획 의도는 두 남녀의 두 번째 사춘기를 그리겠다고 하지만, 두 기혼자가 주인공인 것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 제작을 맡은 김철규 피디는 '불륜 드라마라고 확정지어버리면 할 말이 없다.며,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위로'와 '관계'에 주목해 달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21일 1회에 이어, 22일 방영된 2회는, 김철규 피디가 공언한 '위로'와 '관계'의 주춧돌을 쌓기 위해 공을 들인다. 경력 10년이 넘은 베테랑 승무원인 최수아(김하늘 분), 직장에선 똑부러지는 그녀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의 일상은 달라진다. 그녀를 '자네'라 부르는 남편 박진석(신성록 분)과 그녀의 관계는 '부부'라지만 상하 관계에 가깝다. '기내식'처럼 아내가 랩으로 싸놓은 반찬으로 만나는 이들 부부는 하나있는 딸의 교육에 있어서도 아빠의 욕심이 먼저다. 아내의 의견을, 그저 투정으로 받아들이는 남편, 그리고 싱글 라이프를 즐기기에 여념없는 시어머니 앞에, 워킹맘 수아의 딸 수호작전은 역부족이다. 

그런 그녀 앞에 서도우가 나타난다. 국제 학교에 보내진 딸과 같은 방을 쓰던 룸메이트의 아빠, 그리고 그 딸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고통받는, 하지만 그 역시 그런 그의 마음을 아내와 소통할 수 없어 하던 차에, 사소하게 그를 배려해주는 수아와 서로 '소통'하게 되는 것이 1,2화의 내용이다. 



자식을 둔 부모들, 하지만 부모라는 공통점만으로 함께 나눌 수 없는 부부, 거기서 벌어진 틈을 드라마는 세밀하게 그려낸다. 항공사 기장으로 국제화 시대에 능력있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욕망에 충실한 박진석과, 자신의 일에 열심이지만 소박한 가정을 꿈꾸는 그의 아내가 빚어내는 긴장과 딸을 그리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 달리 미스터리하게 딸을 어떻게든지 멀리하려하다 결국 죽음으로 내몰고, 그런 상황에서도 잔인하리만치 자신의 일상을 지켜내려는 아내의 독기 사이의 불협화음을 섬세하게 드라마는 들여다 본다. 그리고 그런 소통할 수 없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외로워진 두 영혼이 서로를 들여다봐주는 작은 소통을 통해 선뜻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낸다. 남자와 여자라는 '성'으로서의 만남 이전에, '위로'와 '관계'를 전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위로'와 '관계'의 전제 속에, 질문이 던져진다. 과연 이들 '부부'는 무엇일까? 하고. 

<공항 가는 길>은 가을이라는 계절을 타고, 요즘 흔한 드라마의 템포에서 한 발짝 비껴선다. 남과 여의 채워지지 않은 욕망 대신에, 함께 살지만, 서로의 다른 가치관과 소통하지 못하는 외로움에 천착한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알아주는 눈 밝은 이에게 어쩔 수 없이 열리는 마음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반문한다. 아마도 이 느리게 감정을 쌓아가는, '욕망의 전차'로서의 불륜 드라마로서의 화제성도 부족할 지도 모를  이 드라마가 이 가을의 대표작이 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누군가 허허로운 마음에서 솟아오른 질문 한 자락이 있다면 한번쯤 귀기울여볼만한 드라마란 생각이 들게한다. '불륜'이라는 방패가 아니라, 김철규 피디의 바램대로, '성숙한 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드라마로 끝까지 완주해 주길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6. 9. 23.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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