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4일 국내 유일의 지역 평론가 그룹인 부산 영화 평론협회가 수여하는 '부산영평상' 시상식이 있었다. 지난 일년간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영화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총 13개 부문에서 수여하는 부산 영평상에서 장률 감독의 <경주>가 대상을 수상했다.
한국 평론가 협회가 수여하는 34회 영평상에서, 올해의 10대 영화와, 장률 감독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것에 이은 성취이다.
하지만, 영화 <경주>는 박해일과 신민아가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는 소식 이후, 6월 12일 조용히 개봉하고, 조용히 사라졌던 작품이다. 영화 평론가들이 인정한, <경주>를 그래서 아쉬워하며 다시 한번 되돌아 보고자 한다.
영화 <경주>는 어찌보면 제목이 다한 영화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개봉되면, 제목 경주는 내내 영화를 지배함에도 불구하고 잠시 젖혀두게 된다. 왜? 그놈의 '춘화' 때문이다.
영화 <경주>는 친한 형의 장례식 참석 차 한국을 찾은 북경대 교수 최현(박해일 분)이 7년전 그와 보았던 춘화를 찾아 충동적으로 경주를 다시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죽음의 이유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그래서, 그의 아내를 둘러싼 불미스러운 소문이 흥건한 장례식장에서 시작된 영화는, 홍상수와 같은 '화법'의 영화인가(?) 라는 의심을 들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홍상수 영화의 지식인적, 하지만 도무지 속내를 알 길 없는 북경대 교수 최현이 다짜고짜 '춘화'를 찾아 헤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춘화를 찾아서 간 미모의 여주인 공윤희(신민아 분)가 있는 찻집 아리솔에서 보이는 박해일의 행동도, 예의 홍상수 영화에서 이쁜 여주인을 넘보는 놈팽이 지식인의 그 모습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하루 종일 찻집에서 몇 잔의 차를 마시며 무위도식하던 최현이 결국 공윤희의 술자리까지 쫓아가고, 마침내 그녀의 집까지 도착하는 여정에 이르면 더더욱, 의심은 깊어진다.
하지만, 정작,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최현이 지나치는, 그리고 최현과 공윤희가 밤마실을 간 경주의 풍경이다.
2014년의 현재라기엔 현실감이 없는, 70년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시, 그리고, 윤희의 말처럼, 창문을 열면 언제가 거기에 '능'이 존재하는, 삶은 정체되어 있고, 거기에 죽음이 함께 늘 공존하는 경주가, 내내 자신의 존재를 나지막히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에서 자전거를 탄 최현을 통해, '아, 나도 저렇게 고즈넉한 경주를 자전거로 여행해 보고 싶다' 정도의 감상을 가지게 만들던 조용한 도시 경주는, 최현이 윤희의 집을 찾아들며, 전혀 다른 공기의 도시로 바뀐다.
그리고 영화 자체도, 예의 홍상수 식 긴듯 아닌듯하며 '남녀 상열지사'를 향해 가는가 싶었던 방향을 정반대로 튼다.
찻집 여주인이라기엔 너무나 해맑아보였던, 그래서 최현이 '춘화'에 대한 질문을 하는 걸로 그를 변태로 규정해도 이견이 없어 보였던 윤희에게는 홀로 지내는 집에 숨겨진 아픈 사연이 있다.
그리고 그 사연은 최현이 여행지 경주에서 우연히 만난 엄마와 딸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결국, '춘화'를 찾아헤맨 최현과 선배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창문을 열면 죽음을 담은 공간 능이 항상 거기에 보이듯, 영화는 바로 우리 곁에서 숨쉬고 있는 죽음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장례식장, 고분의 도시 경주, 그리고 남편의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지닌 여자 공윤희, 여행지에서 만난 모녀의 죽음, 그리고 선배와 함께 농했던 '춘화'를 찾아헤맨 최현의 속내까지, '해명'되어지지 않은, 그리고 해명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경주>는 건넨다.
그래서 가장 무료하게 시작된 경주의 여행은, 영화 말미에 가면 가장 둔중한, 죽음을 함유한 삶에 대한 고찰과 천착으로 귀결된다.
2014년 12월2일자 한겨레의 이명수의 사람 그물은 세월호 부모님들의 심리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이의 생일상차리는 엄마, 그런 엄마와 함께 아이의 존재를 기억해주는 사람들, 세상의 사람들은 아이의 존재를 '무'로 돌리기에 급급하지만, 아직 아이와의 정신적 탯줄을 끊어내지 못한 엄마는 아이를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직도 아이를 잊지 않고 함께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위로를 받는다. 이명수는 말한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잃고 '왜 살아야 하나'란 질문에 답을 얻지 못하는 부모님들이 아이가 돌아올 시간 현관문을 열지 않고 버티는 시간, 이별과 슬픔에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을 함께 해주는 것이 치유라고.
다시 영화<경주>로 돌아와서, 장례식장에서 시작된 영화는 내내 죽음의 존재를 배경으로 깔면서도 능청스럽게 삶의 일상을 밀고 간다. 하지만, 밤이 드리워지고, 홀로 남은 윤희가 괴로워하듯, 죽음을 배제시킨 온전히 삶으로만 충만된 삶은, 죽음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더 고통이다. 더구나 영화 속 죽음들은 '병명'은 있되, 이유는 분명치 않다. 장률 감독은 말한다. 죽음은 결국 그렇다고.
영화<경주>는 도시를 품은 드리워진 고분들을 통해 말한다. 죽음을 배제하지 말라고, 우리 곁의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그리고 그건, 장례식장 조문이 아닌, 선배의 진심이 흘러든 '춘화'를 찾아들은 최현의 행보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영화는 잠시 만난 전 애인의 남편의 추적을 피해 허겁지겁 경주를 떠나는 최현의 행보로 마무리된다. 뭔가 사연을 이룰 것같았던 최현과 윤희의 사연도 최현 아내의 전화로 중지된 채그뿐이다. 삶은 여전히 그렇게, 속물적인 듯 지속된다. 하지만, 즉물적 삶의 창문을 열면, 거기 미처 해명되지 못한 채 숨쉬는 죽음이 있다. 현재 우리의 삶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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