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드라마 페스티벌의 열 번 째 작품 <;.,!:나엄마아빠할머니안나>가 방영되었다.
드라마의 제목부터 이해하기 힘든 문장 부호들로 시작되는 <;.,!:나엄마아빠 할머니 안나>는 그 익숙하지만 미지의 의미를 지니는 문장부호처럼, 익숙한 불륜과 복수의 스토리의 얼개를 가지면서도 그와는 전혀 다른 빛깔을 자아내는 드라마였다. 

드라마의 대부분은 스토리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자기 고백과도 같은 독뱅으로 이어지고, 사건을 진행시키는 스토리보다는, 인물들의 고뇌를 담은 클로즈업을 강조한다. 자신의 핏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위와 의붓 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복수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라며 목을 매려던 할머니의 모습은 '패악'만이 그들의 메뉴얼인 양 익숙하게 보아왔던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넘어 충격마저 남겼다. 마치 원본의 사진을 흐리게 그려내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내거나, 기존에 우리가 믿어왔던 이미지에 혼란을 야기시킨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미술 작품처럼. 

덕분에 시청자들은 처제와 형부의 흔한 불륜 이야기를 넘어,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채울 수 없는 절대 고독이 가져오는 비극과, 그 비극을 덮으려는 복수의 허무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익숙한 스토리의 전개에 길이 들여진 시청자들이라면 이러한 실험적 시도가 낯설고 때로는 불편하기까지 하겠지만, 시청률의 고저에 드라마의 스토리가 널뛰어야 하는 강박이 없는 <드라마 페스티벌>이기에 가능한 신선한 시도였다. 


그리고 이렇게 실험적인 <;.,!:나엄마아빠할머니안나>까지 열 편의 작품을 끝으로 7년만에 돌아온 <드라마 페스티벌>의 축제가 막을 내렸다. 시대적으로는 조선시대를 다룬 작품이 두 편에, 일제 시대, 6.25를 거쳐 6,70년는 물론 현대까지 다양한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등장했다. 장르 상으로도 마찬가지다. 심리극에 가까웠던 마지막 회 작품이 있는가 하면, 한바탕 소동극과도 같았던 첫 회<햇빛 노인정의 기막힌 장례식>이 있었다. 추리극을 표방한 <이상, 그 이상>에 수사극의 모양새를 지닌<수사부반장-왕조현으 지켜라>에, 코믹한 <상놈 탈출기>에 진지한 역사극이었던 <불온>, 멜로와 스릴러를 적절하게 조화시킨 <하늘재 살인사건>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시켜 10주간의 축제를 만끽하도록 했다. 

물론 주제 의식이 강한 이야기를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갖은 드라마가 선보일 수 있는 예술적 기교까지 넣어 작품을 만들려다 보니, 과유불급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알겠지만, 공감 지수가 낮았던 작품들도 있고, 짜한 시놉시스에 비해 평범하고 뻔한 구성을 보인 작품도 있었으며, 한 편의 예술 영화처럼 주제 의식과 스토리, 심지어 화면까지 삼위일체 완성도가 높았던 <하늘재 살인 사건>과도 같은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남아 돌았건 모자랐건 단절되었던 7년간 mbc단막극의 전통을 회고하도록 만드는데 모자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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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미니 시리즈가 끝나고, 타사의 미니 시리즈와 첫 방을 맞추기 위해 땜빵 식으로 편성되었던 단막극의 처지에 비하면, 비록 몇 주에 불과했지만, <드라마 페스티벌>은 축제였다. 설사 부족했단 한들, 시청률의 눈치를 보며 '막장급'전개를 하거나, 역사 왜곡에 눈감는 기존 드라마보다는 신선한 의욕을 보인 열 편의 단막극들이 나았다. 무엇보다, 뻔한 드라마에 지친 시청자들에게는 무엇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소중한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부디 내년에도 보다 실험적이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시청자들의 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3. 12. 1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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