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하지만 종편 방송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 한다. 나이가 든 사람들이 자꾸 종편 쪽으로 리모컨을 돌리는 이유 중 하나는 편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제는 공중파에서는 진부하다고 밀려난 컨셉, 스타일들이 종편에서는 늘 익숙하게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익숙함 속에는 자신들이 살아온 세월들 속에서 더 익숙해진 사고와 관념의 스타일 또한 여전하게 자리잡는다. 새롭게 맞출 필요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그런 생각들, 그걸 우리는 '보수적'인 것이라 통틀어 쉽게 이야기 하곤 한다. 하지만 굳이 보수적인 것들을 꼭 종편에서만 만날 필요는 없다. 젊은이들이, 조금씩 외면하기 시작하는 공중파의 시간대는 자꾸 중장년층들의 눈치를 보며 시선을 맞추려고 애쓴다. 그런 의미에서 2월 4일 힐링 캠프는 조금 용감했고, 모처럼 '힐링' 캠프 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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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캠프> 홍석천 편이 방영되는 동안, 이경규는 여러 번에 걸쳐 자신은 홍석천을 게스트로 하는 것에 반대했다는 말을 표명했다. 그 말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지배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른바 '보수적'인 시선들을 의식한 말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국의 여배우가 시상식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성적 성향을 밝히는 이즈음에 홍석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라는 역설적 토닥임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이경규가 던지는 질문들은 더욱 돌직구성이었을 수가 있고, 또 그래서 홍석천은 공중파를 통해 모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자리를 깔 수 있었다.

 

물론 홍석천은 바로 몇 주 전에 <라디오 스타>에도 등장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었다. 하지만, 그 자신의 표현처럼 아직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라디오 스타>라는 웃자고 판을 벌이는 곳에서 홍석천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신을 희화화 시키면서 조금은 편하게 사람들이 '성적 소수자'를 바라보게 하는 그 정도 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힐링 캠프>는 그저 웃고 떠들며 홍석천을 편하게 보자는 방식을 버렸다. 대신 그 누구보다도 '보수적'이라며 편견어린 그리고 일상의 우리들도 사실은 궁금했던 질문들, 동성애는 정신병인가? 동성애자의 사랑은 어떤가? 당신의 부모님은 당신을 이해하는가? 등을 마구 던졌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홍석천은 '성적 소수자'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삶에 대해 오히려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대한민국의 대표적 '게이'인 홍석천의 입을 빌어 알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의 어느 나라는 동성 결혼이 허용되고, 동성애 부부의 입양이 허용되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성적 취향이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버려야 하고, 그들의 죽음조차도 '성적 비관'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채 덮어져야 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그저 우리가 무심히, 혹은 그저 편하게 자신의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가 사회적 압사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그것이 애초에 본원적으로 뇌의 형성 과저에서 부터 타고난 것이라던가, 혹은 청소년기의 질풍노도의 감정에서 그런 것이거나, 구분조차 할 시간도 없이, 선이 그어지고, 가족과 친구와 사회 밖으로 밀쳐져 극단적 선택을 하기가 쉽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거기에 덧붙여, 그저 동성애를 이해할 수 있어, 라고 편하게 생각한 뒤에 숨겨진 많은 사실들, 여전히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 동성애자라면 쉽게 에이즈에 걸리겠지 라는 편견들을 인식하게 되었다.

홍석천이란 한 사람을 통해, 게이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 열 배 이상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던 이 '성적 소수자'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굳어 있던 우리 뇌의 한 부분이 조금은 말랑말랑하게 되었다.

그 누구보다도 '보수적'이라고 주장한 이경규도, 자신은 깨어있다고 했지만 알고 보면 보수적인 면이 많다는 김제동도, 그리고 그 '보수'에 한 표를 더한 한혜진까지도 홍석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할 수 있었던 시간, 홍석천이 자신이 '게이'임을 밝히고, 그것을 공중파를 통해 이해받을 수 있기까지, 13년의 세월이 걸렸다.

by meditator 2013. 2. 5.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