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모래시계라는 호언장담이 무색하게도, 월화 공중파 3사 드라마 중 송지나 작가의 <힐러>는 제일 후속작 <빛나거나 미치거나>에도 밀리며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다. 이제 종영 단 2회를 남겨두고, 80년대에 얽힌 과거사가 모두 밝혀지고, 김문호(유지태 분)는, 썸데이를 통해, 그 진실을 폭로하였건만, 어쩐지 막상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맥이 뚝뚝 끊긴다. 분명 심각하고 진지한 것인데, 그 심각함의 톤을 오래 유지하기 힘들다. 


이렇게, 80년대의 악연이 풀어지는 가운데,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두 남녀가 있다. 자신의 아버지 서준석(지일주 분)이 사랑하게 된 채영신(박민영 분)의 아버지 오길한(오종혁 분)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된 서정후(지창욱 분)는 괴로워한다. 역시나 자신은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인물이라 자책한다. 하지만, 김문호의 도움으로, 그 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살인자도 비겁한 사람도 아니었다는 진실에 조금씩 다가간다. 역시나 그저 버림받은 줄로만 알았던 채영신 역시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서정후처럼 한때는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하지만, 역시나 사랑의 힘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한다. 
그런데, 바로 이 로미오와 줄리엣 커플이 문제다. 
극 초반, <힐러>라는 작품명답게, 스파이처럼 동분서주 신출귀몰하던 서정후는, 자신이 힐러라는 걸 채영신이 알게 되고, 그녀와의 사랑이 결실을 맺자, 힐러로서의 삶을 포기한다. 대신, 채영신 지킴이로써, 그녀의 곁에 머물고자 한다. 

80년대 부모들의 얽힌 인연이 낳은 서정후와, 채영신의 슬픈 운명,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분명, 그 사랑이 역사성까지 지니며 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만나기 시작하면서, 드라마는, 역사적 명제를 풀어가고 있는 극의 사명을 잊은 채 종종 '로맨틱'물이 아닌가 싶게 전혀 다른 드라마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사부의 죽음을 맞이하고 사부가 만들어 준 아지트에 칩거한 서정후, 힐러를 찾아간 영신, 거기까지는 구원의 여인으로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아지트에서 두 사람이 벌이는 애정 행각은, 극의 흐름을 끊은 채 마치 무릉도원에 간 사람들처럼, 세상에 없는 행복한 애정씬을 보인다. 그 이후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심각한 사명을 띠고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거침이 없다. 심지어, 2월 3일 자 방영 분에서는, 어르신의 집에서 잠이 든 서정후를 찾아 다짜고짜 어르신의 집으로 뛰쳐 들어간 영신이, 졸고 있는 정후를 자기 무릎에 뉜 채 한 동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거기가 어딘가, 목숨이 촌각을 다툴 수 있는 사지인데, 거기서 한가롭게 잠에 취한 서정후를 무릎에 눕히고, 영신은 애정에 겨운 대화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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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송지나 작가는, 심각한 역사적 이슈를 드라마로 풀어내는 무게감을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로 완화시키고자 하는 듯하다. 하지만, 최근 진행되고 있는 <힐러>에서, 서정후, 채영신의 사랑 이야기는 그런 완충적 역할을 넘어서 극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해볼 정도가 되고 있다.
마치 드라마는 '미드' 등에서 , 전형적으로는 <007> 시리즈에서 흔히 보이듯, 적나라한 남녀의 애정씬을 염두에 둔 듯, 두 사람의 애정씬을 소모하고자 하지만, 그것이, 흔히 '미드'의 소모적 눈요기씬이라기엔, 지금 <힐러>라는 드라마에서 서정후와 채영신의 애정씬은, 부모 세대의 비극으로 인한 극적인 사랑의 운명을 넘어서, 극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실제, 2월 3일 18회, 드라마는, 과거, 서정후의 부 서준석과, 채영신의 부 오길한이 함께 정치자금이 오가는 현장을 취재하게 된 경위와, 그 과정에서 오길한이 어떻게 희생되었는지, 그것을 보고, 서준석은 그것을 알리는 과정에서 어떻게 희생되었는지을 밝혔다. 서정후와 채영신을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만들었던 비극의 전사가 18부에 이르러서야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전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 과정의 목격자, 김문식이, 처음엔 잡혀가서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말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그것을 자신의 입신양명에 이용하기 위해 적극적이 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그려 냈었다. 오늘날 서울 시장 후보로 나와서, 80년대 자신이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며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 된 김문식의 전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고, 그의 동생 김문호는, 그런 형의 이면을, 그리고 형의 비겁으로, 억울한 죽음이 된 형의 친구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형들의 죽음을, 게릴라 형식으로, 썸데이를 통해 드러낸다. 
하지만, 이런 결정적 사건들이, 드라마에서는, 서정후와 채영신의 사랑 이야기에 눌려 조역처럼 작용한다. 마치, 그런 과거의 사건들은 두 사람의 애정을 가렸던 한 점 구름처럼만 여겨진다. 

그리고 <힐러>의 진짜 딜레마는 이것이다. 송지나 작가는, 80년대 이 땅을 뒤덥은 비극적 역사와, 거기에 임했던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의 역사를 통해, 그들, 그들의 동생, 그리고 그들의 아들, 딸 등을 통해, 해결되지 않은 역사가 오늘에 있어서도 어떤 질곡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가를 풀어내고자 하는데, 정작 드라마는, 방점을 어디에 찍을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가 내세운 주인공은, 20대의 젊은 남녀들이고, 그리고 그들이야 말로, 어른들 세대의 질곡을 해결할 세대라는 걸 알면서도, 정작 그것을 풀어내는데, 젊다보니 사랑도 해야 하고, 뭐 그런 처지다. 그렇게 젊은 세대를 전면에 내세우다 보니, 정작, 지금 과거의 질곡을 풀어내기 위해, 메이저 방송사의 앵커직마저 때려치우고 나와서, 찌라시 언론이었던 썸데이를 통해, 형들이 하던 방송으로 21세기판 해적 방송을 하는 김문호의 도전은 항상 한 켠으로 밀려나곤 한다. 정작, 드라마가 벌이는 싸움은, 거대 언론의 수구가 된 형 김문식과, 그런 형에 대해, 또 다른 방식의 언론을 통해, 실현 가능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문호의 게릴라전인데, 그런 주된 싸움의 방식이, 주인공이 된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의 들러리가 되는 느낌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종종 들곤 한다. 차라리, 김문호가 주인공이 되어, 싸우고, 두 남녀 주인공이 거기에 양념처럼 버무려진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면 좀 더 극의 주제가 살아날 텐데, 번연히 드라마는, 갈 길을 헤맨다. 

거기에 덧붙여, 이른바 '어르신'이라는 상징적 악의 존재도 피상적이다. 어르신(최종원 분)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80년대도 그렇고, 21세기가 된 현재에도 그렇고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어르신으로 존재하는, 그 정체가 불분명하다. 권력의 파워가 몇 번을 명멸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피상적인 '어르신'으로 대한민국의 권력을 규정하는 것 역시 <힐러>의 딜레마이다. 18회, 드디어 썸데이에 대한 검찰 , 세무, 심지어 썸데이 대표 부인이 하는 치킨집에 대한 세금 폭탄 등의 구체적인 제제가 등장하지만, 그 이전에는 맘에 들지 않으면 없애 버리는 원천적인 응징이 드라마의 주를 이루었다. 현대 세계의 시스템화된 악에 대해 드라마는 피상적으로 밖에 그려내지 못한다, 그러니, 결국, 다시 18회 마지막, 영신 앞에 등장한 해결사 킬러로 극의 돌파구를 해결하려 든다. 이제 세상은 킬러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한 사람 정도는 없앨 수 있는 조직화된 악의 시스템을 갖춘 세상에서, 여전히 <힐러>는 그 예전의 원초적 해결 방식으로,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만들고자 한다. 역사를 논하고자 하면서, 정작 역사의 변화에 대해 둔감하다고나 할까. 이런 점들이, 드라마 <힐러>를 어딘가 붕 뜬 사회 고발극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에서 부터 이어진 대한민국의 비리 권력의 역사, 그리고, 거기에 끊임없이 도전해온, 그리고 지금도 도전 가능한 언론의 기능, 그리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시도하고자 한 송지나 작가의 열정이 무색해 지지는 않는다. 부디, 마지막까지 그 본진을 잃지 않고, 훌륭한 마무리를 해주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5. 2. 4. 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