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허영만의 <식객>이 붐이었다. <식객>의 묘미는 뭐였을까? 그 만화를 읽은 독자들 나름의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사라져가는 우리의 맛'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여기 우리의 맛에는 '내가 아는'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의 맛도 있지만, 미처 몰랐던 '맛보고 싶은' 맛도 있다. 어린 시절, 혹은 지나온 시절에 맛보았던 그 맛들이 만화를 통해 재현되며 묻어 두었던 추억의 감성을 되살려내는가 하면, 함께 살아왔던 우리네 삶이건만 미처 알지 못했던 전국 방방곡곡의 사연어린 맛들이 독자들의 발길을 전국으로 흩뿌려놓았다. 그리고 그건 바로 올곧이 리네 삶이 지나간 흔적에의 공유이자 공감이었다. 바로 그 '식객'의 묘미가 예능으로 재현되려고 한다. sbs에서 7일 첫 선을 보인 <폼나게 먹자>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상징인 김상중이 예능을? 그 김상중이 하려는 예능이라면 뭐가 다를까? 라는 흥미를 부추긴다. 아니나 다를까? 예의 <그것이 알고싶다>의 '그런데 말입니다'로 프로그램의  서막을 연다. 매년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식재료의 수가 27000 개. 이런 진지한 김상중의 나레이션에 8년만에 tv로 돌아온 채림이 의문을 제기한다. 갈수록 갖가지 해외의 신기한 과일이나 식재료가 수입되며 우리의 식탁은 풍성해져만 가는데 사라진다니 라고 말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해외 농축수산물, 하지만 그런 가운데 토종 식물의 멸종이 우리 농업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현실, 과연 우리의 토종을 살리기 위해 어떤 방법이 모색되어야 할까? 그 하나의 길로서 예능 <폼나게 먹자>가 제시된다.  <폼나게 먹자>는 먹방의 홍수 속에 사라져 가는 우리의 맛을 찾아가는 업그레이드 된 ' tv식객'의 포부를 연다. 

김치라고 다 같은 김치가 아니다. 
7일의 메인 먹거리를 찾아나서기 앞서 에피타이저로 네 사람의 출연자 이경규, 김상중, 채림, 로꼬는 유현수 셰프의 레스토랑에서 장장 30일간 숙성한 한우를 시식한다. 소고기를 30일이나 삭히다니. 하지만, 오늘날처럼 '냉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염장이나, 훈증과 함께 '삭히는'건 주요한 요리 방식 중 하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불고기'도, '회'도 사실은 삭힌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활어회'를 즐기는 이제 생소한 예외가 된 세상이다. 

삭힌 소고기, 당연히 삭혔기에 일반의 소고기와는 다른 향취를 내는 이 고기를 유현수 셰프는 삭힌 고기만이 가능한 어만두로 출연자의 미각을 돕는다. 일반 고기는 질겨져서 가능하지 않은 다져서 만두피로 만들어 찐 요리, 그 '어만두'는 상상 그 이상의 부드러움으로 '삭힌' 식재료의 예외적 세계를 연다. 


 




그렇게 '소고기'가 아니라, '삭힘'에 방점을 찍은 에피타이저로 연 프로그램은 김상중의 폭염 속 오토바이 질주와 함께 한 국도의 여정을 따라 충남 예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조우한 첫 회의 식재료. 

그 식재료와 첫 만남을 가진 이경규는 '쓰레기'가 아니냐고 대뜸 던진다. 허옇게 핀 곰팡이, 쓰레기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여진 식재료의 모습은 우리가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만날 만한 시레기국 찌꺼기와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걸 본 채림은 '이건 맛이 없을 수가 없다'고 장담한다. 

이 서로 다른 반응을 이끌어 낸 주인공은 바로 '삭힌 김치'이다. 아니 <폼나게 먹자>며 사라져가는 식재료를 운운했던 프로그램의 첫 주인공이 겨우 삭힌 김치? 하지만 김치라고 다 같은 김치가 아니다. 만화 <식객>의 실질적 주인공에 다름아니라 저자 허영만이 소개한 식재료 전문가 김재료, 아니, 김진영씨가 나선다. 

옛 것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가 '배추'가 알고 있는 개량 배추가 아닌 토종 배추, 제주도 대정읍에서 고집스레 지켜낸 토종 배추 구억배추로, 임진왜란 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담궈 먹던 방식으로 고춧가루를 치지 않은 채 새우젓에 파, 마늘, 생강 등의 양념만을 넣어 담궈, 조상들의 방식대로 깨진 장독에 대나무를 깔고 그 위에 김치를 넣어 물기를 쫙 빼며 곰팡이가 필 때까지 삭혀지고, 또 삭혀진 김치. 
예산 고을에서도 겨우 10명이 지켜왔던 이 김치의 방식, 하지만 그 분들마저도 연로하셔서 이젠 겨우 2집만이 담그는 그 김치가 바로 첫 회의 주인공이다. 

우리의 대표적인 음식 김치, 하지만 김치라고 다 같은 김치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토종 씨앗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지역의 특색을 살려 우리가 알지만, 우리에겐 생소한 맛으로 지켜져온 전통의 맛, 그것이야말로 <폼나게 먹자>가 어떤 지향성을 가진 프로그램이란 것을 제대로 보여준 가장 걸맞는 첫 회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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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늦가을 배추 수확 후 담궈져 찌는 듯한 여름까지 그 수 개월 자연의 공기를 고스란히 품어내며 삭아들어간 김치의 맛은 어땠을까? 식재료 전문가 김진영씨의 소개에 따르면 대부분의 토종 배추들이 그러하듯 우리가 맛보는 일반 배추처럼 부드럽지 않다. 마치 봄동처럼 질기고 쌉싸름한 첫 맛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따스한 봄의 전령사 봄동처럼, 토종 배추 역시 씹으면 씹을 수록 단 맛이 나며 맛본 이의 기억에 진한 흔적을 남긴다. 

그 구억 배추로 지난 가을 담궈진 예산 삭힌 김치를 맛본 네 명의 mc가 보인 공통적인 반응은 생각 외로 아삭거린다는 것이다. 보기엔 흐드러져 물러터질 것같은데, 아삭한 식감이 출연자들을 놀래키고, 쌀뜨물만 넣어 자작하게 쪄내어 들기름 한 방울 더한 그 별 거 아닌 삭힌 김치찜이 먹고 나도 삼삼하게 떠오르는 '밥도둑'이라는 사실 또한 이구동성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폼나게 먹자>는 그렇게 '과거'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 예전 <국민교육 헌장>의 문장처럼 옛 것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한식의 명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원일 셰프에게 삭힌 김치를 들고 찾아간다. 옛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 옛것이 여전히 '고인 물'이 되지 않도록 '젊은 감각'을 더하여, 그저 들기름을 넣어 조려졌던 삭힌 김치는 데친 얼갈이 배추를 더해 삭힌 맛을 중화시키고, 된장을 풀어 그 풍미를 더하고, 두부를 얹어 모두의 찬탄을 불러오는 대중적인 한 끼의 음식으로 재탄생된다. 

삭힌 한우로 시작된 프롤로그, 그리고 이어진 충남 예산의 삭힌 김치의 본 레시피, 거기에 더해진 오늘에 되살려진 이원일 셰프의 된장 삭힌 김치 두부 조림을 통해, <폼나게 먹자>는 프로그램이 의도한 바를 깔끔하고 흥미롭게 살려냈다. 부디 오래오래 잊혀져 가는 우리의 맛을 소개해 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8. 9. 8. 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