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영화제를 돌며 한국 영화의 성취를 널리 알리고 있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조용한 성적을 거두며 사라진 영화 <해무>, 조선족 밀항자들의 떼 죽음과 그 사후 처리 과정에서의 잔인함으로 19금 판정을 받았던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묘하게도 엇갈렸다. 실제 영화에서 보면, 다수의 조선족들이 몰살당하는 장면을 감독은 그 충격파를 우려해 어둡게 스쳐 지나가듯 그린다. 그리고 그 이후, 그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장면도, 피가 낭자한 살육의 현장이란 느낌이 들지 않도록 최소화시킨 느낌이 든다. 하지만 정작 이 영화를 보고 나온 후 잔인하다며 그 고통을 호소한 사람들 중에는 보이는 그 장면보다, 그 장면에서 울려퍼지는 음향과 분위기에 더 짖눌리는 느낌이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해무>를 보고 그 잔인함에 눌려 영화가 제시하는 내용이고 뭐고 다 생각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던 지인과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를 봤다. 19금에, 영화 마지막 후반부에 생각지도 못한 대규모 인명 살상씬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 괜히 보았다는 평가를 내리면 어떻게 하나 지레 우려가 들었다. 하지만 웬걸, 영화를 보고난 지인은 전혀 잔인하단 생각이 들지 않았단다. 심지어, 영화 클라이막스의 그 부분에서 어떤 경쾌함조차 느꼈다고 하니. 심지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발렌타인데이에(우리가 영화를 본 날이 발렌타인데이였다) 본 영화에 악당이 발렌타인이었다는 아이러니함까지 지적하는 섬세한 관람평을 남겼다. 



007의 전복? 하지만 여전히 전형적인 영웅 서사
아빠의 뒤를 이어 새로운 비밀요원으로 탄생하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은 19금의 액션 오락 영화이다. 이렇게 웃고 즐기자고 보는 영화를 놓고, 엄정한 사회 의식을 주제로 내걸었던 <해무>와 비교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대상을 어떻게 희석해 전달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의식이 어떻게 마비되거나, 예민하게 반응하는가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 볼 여지는 있지 않을까.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는 그 영화를 보면 떠올릴 수 밖에 없는 007시리즈를 전복시키는 다수의 코드를 가지고 등장한다. 온 세상을 떠돌며 악의 무리들을 응징하는 한편 아름다운 여성과 사랑을 나누는데 주저하지 않는 007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실한 여왕의 신하이다. 이름에서 부터 '킹스맨'이라 지칭하는 킹스맨 역시 007과 다르지 않는 영국 황실 직속 비밀 첩보 기관의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한껏 귀족적 풍모를 내세우는 007과 달리, 이제 영화 <킹스맨>에서 주인공이 될 소년(태론 애거튼 분)은 힙합 스타일에, 뒷골목 깡패 의붓 아버지를 가진, 빈곤층의 해병대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한, 뭐 하나 제대로 된 스펙을 가지지 못한 청년이다. 

그의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킹스맨의 수장은 귀족 신분만이 참여할 수 있는 이 조직에 해리하트(콜린 퍼스 분)의 무모한 선택이 낳은 필연적 결과인 듯 말한다. 하지만, 그런 수장의 표현에 해리 하트는 그가 있었기에 자신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며 반기를 든다. 그런 해리 하트였기에, 자신의 목숨을 구했던 동지의 아들 애거시가 보낸 구조 요청을 넘어 다시 한번 그를 킹스맨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언제나 그렇듯 조직과 타인의 생명을 위해 헌신하는 킹스맨의 훈련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고, 누군가의 모멸을 견디면서, 결국은 가장 사랑하는 대상조차도 희생시킬 마음가짐의 시간이 된다. 물론, 킹스맨 조직이 바라본 선인관을 넘지 못하고, 애거시는 그가 애지중지 키워왔던 개를 쏘지 못하면서 최종 선발에서 탈락하고 만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하지 못해서 탈락한 애거시는, 그러기에 자신을 그 길로 인도한 해리 하트가 악당 발렌타인(샤무엘 L잭슨)의 농간에 빠져 한껏 피의 향연을 벌인 채 희생당하고마는 과정을 지켜 본 후 그의 복수를 위해 의연하게 히어로의 길로 떨쳐 나선다. 

자신을 킹스맨의 길로 이끈 해리 하트의 죽음, 그 죽음을 보복하기 위해 나선 길이 결국 진정한 킹스맨 요원으로 탄생되는 과정은, 일찌기 신화적 서사에서 등장한 '살부'신화의 전형이다. 아비의 죽음을 딛고, 그 아비의 길을 승화시키는 젊은이, 그렇게,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는 역시나 영웅의 탄생을 전형적인 신화적 서사를 도용해 이끌어 나간다. 그저 스토리상 히어로가 되는 것만이 아니다. 사투리에 가까운 이상한 영어를 쓰던 애거시가, 마지막 해리 하트와 같은 멋진 신사복을 입고 그가 들던 우산으로 무장한 무기를 들고 멋지게 그가 했듯이, 자신의 어머니를 괴롭히던 악당과 해리 하트가 했듯이, 다시 한번 펍의 문을 닫고, 매너가 운운하면서 판을 벌이는 과정은 얼굴에 멍이 든 어머니 때문에 분에 못이겨 펍을 향해 킹스맨 수장의 차를 타고 질주하던 그 분위기와는 한결 차이가 난다. 그저 아비로 상징되는 그 길을 같이 걷는 것이 아니라, 아비로 상징되는 세상을 자기 것으로 내화한 성숙한 한 청년의 등장이다. 



<킹스맨;시크릿 에이전>가 조롱하고 폄하하는 것들
이렇게 힙합 스타일의 한 청년이 자신의 가족은 물론 세상을 구하는 영웅으로 재 탄생되는 과정을 통해 멋진 신사로 거듭나는 것과 달리, 그와 똑같이 힙합 스타일을 고수하던 악당 발렌타인은 결국 스스로 벌여놓은 문명의 이기로 스스로 징벌을 당하고야 만다. 

007시리즈이 고전적인 악당들은 <킹스맨>으로 오면, 전세계 인을 대상으로 '선민 의식'에 사로잡혀 인구 청소를 하겠다는 야심찬 전략을 내보인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무기는 다름아닌 우리가 가장 일상적으로 의존도가 높은 핸드폰이다. 그의 회사가 제공한 무료 칩이 결국 전세계인의 살상 무기가 된다는 설정은, 가장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은 섬뜩함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구약 성서의 소돔 시처럼, 그 누구의 손을 빌지 않고,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죽이는 상황을 통해 인간 청소를 하겠다는 발상은 기발하면서도 현실의 거울처럼 느껴져 섬뜩하다. 더구나, 자신들이 봉사해야할 국민들을 저버리고, 자신이 선택받은 존재라는 사실에 들떠 웃고 떠들다 내장된 칩이 터져 명멸하는 숱한 세계의 지도자들이라니!

영화 <킹스맨>은 이렇게 이 시대의 보편적 이기를 무기로 둔갑시키며, 과잉 인구로 헐떡이는 지구라는 재앙을 악의 목적으로 삼으며 보편적 공감을 얻는 한편, 그런 악의 일소에 젊은 영웅의 등장에의 개연성을 획득해나간다. 개 한 마디로 죽이지 못하던 젊은이가 자신의 아비와 같은 해리 하트의 죽음을 목격하고, 해리 하트는 물론 역시나 싼 핸드폰에 홀려 무료 칩을 받은 어머니와 그 어머니 손아귀에 놓인 동생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다수의 인명을 살상하는 작전에 돌입한다는 폭력적 개연성말이다. 

하지만 영화가 순조롭게 영웅이 될 주인공의 개연성을 <올드보이>의 오마주를 해가면서 얻어가는 한편, 좀 더 면밀하게 이 영화를 들여다 보면 우리 사회에 여전한 편견, 혹은 편협함에 대한 불편함을 느낀다. 

우선 처음 주인공 애거시가 힙합 스타일에 사투리에 가까운 언어를 쓰며 등장하듯이, 이 영화는 은연 중에 힙합 스타일은 치기어린 것이며, 그에 반해 나중에 그가 착용한 '영국 신사 풍'의 스타일이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어른'이라는 식의 화법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애거시와 같은 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이 또 한 사람 있다. 다름아닌 악의 축 발렌타인이다.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 허연 힙합 스타일을 고수한다. 또한 그가 해리 하트를 초대해 대접한 음식은 '해피밀'이다. 영화는 소위 힙합으로 대변되는 빈민층의 정서와, 블루 칼라의 음식으로 대변되는 해피밀을 악인으로 설정으로 가져온다. 전 세계인을 죽이려는 계획을 착착 진행해 가면서도, 막상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발렌타인의 아이러니한 모습등을 통해, 그가 미성숙한 인간임을 한껏 드러낸다. 

어디 스타일뿐인가. 악의 축인 발렌타인이 여전히 흑인이며, 그를 측근에서 보좌하는 최고의 킬러 가젤(소피아 부텔라 분)는 동양인이다. 그에 반해 주인공도, 그를 이끈 해리하트도 전형적인 백인이며, 그들이 주창하는 '매너'가 운운하는 대사는, 결국 해리 하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 영국 귀족 계급의 정신을 대변한다. 마치 '관용'을 내세우면서 한껏 조롱하는 모양새와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영화 클라이막스에 등장하는 폭죽처럼 터지는 수많은 인간들의 머리통들이다. 그들이 다수의 국민들을 외면한 채 자신의 안전만을 구한 채 그곳에서 희희낙락 파티를 벌인 죄과는 엄정하지만, 발렌타인의 도발을 방지하기 위한 영화적 선택으로 숱한 머리통들의 폭죽을 바라보아야 하는 불편함은 어떨지. 더구나, 그것이 폭죽처럼 터지는 순간, 쾌감까지 느끼게 만드는 영화적 장치라니 말이다. 결국, 그 누구가 되었건, 개 한 마디도 쏘아 죽이지 못하던 청년은, 자신을 멋진 신사의 길로 인도해준 은인의 복수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다수의 사람들을 죽이고도 술잔을 들고 공주의 방으로 유유히 걸어가는 역시나 007과 다르지 않은 살인 기계로 탄생되었다. 하지만 <올드보이>의 비장한 망치씬을 피비린내 한 점 나지 않는 스타일리쉬한 액션씬으로 거듭 재탄생시킨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는 그런 피 냄새를 제거한 채 경쾌한 오락 액션으로 다가올 뿐이다. 

by meditator 2015. 2. 16. 1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