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혹은 그 시절이라 정의내린다. 한자어로, 푸를 청(靑)에 봄 춘(春)이니, 마치 동어반복처럼, 푸르고 또 푸른 시절을 뜻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얼마 전 <응답하라 1988>에 삽입되어 다시금 회자되었던 김창완 작사, 작곡의 <청춘>은 청춘을 구슬프다 답한다. 가장 푸른 계절인데, 가장 애조띤 어조로, '정둘 곳없어라, 허전한 마음'을 노래한다. 가장 활기찬 계절이 구슬프다니, 그 답을 찾고자 한다면, jtbc의 <청춘시대>를 보면 되지 않을까?




구슬픈 청춘의 연가 
이십대의 청춘인 네 여주인공들이 세어 하우스 '벨 에포크'에 모여든다. 스물 여덟, 휴학과 알바로 점철된 대학 생활을 버티며 이제 겨우 고갯마루 졸업반까지 도달한 윤진명(한예리 분), 매일 '다이어트'와의 전쟁을 벌이며, '오빠'에 울고웄는 예은(한승연 분), 그녀가 지나가면 뭍 남자들의 시선이 그녀를 따라 움직이는게 하등 이상하지 않은 매력적인 몸매와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 강이나(류화영 분), 성격도 좋고, 머리도 좋고, 심지어 말빨도 좋지만 남자는 없어 안달인 송지원(박은빈 분)에, 뒤늦게 합류하여 톡톡히 신방례를 치룬 유은재(박혜수 분)까지 다섯 명의 말 그대로 청춘들이다. 

하지만, 1회 '출발 선상의 두려움'이란 제목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싱그러운' 젊음의 찬사 대신, '젊음'이기에, 말 그대로 삶의 본격적 출발 선상에 선 자들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옮긴다. 대학 입학과 함께 난생 처음 홀로 올라온 서울, 그곳에서 만나게 된 새로운 사람들, 그 '새로움'이 반가움보다, '두려움' 혹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첫 회는, 그간 '청춘'을 마냥 '예찬'하거나, 씩씩함으로 쉬이 극복해 왔던 여느 청춘 드라마와 다른 결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결은, 이 쉽지 않은 솔직한 청춘 드라마의 갈길이 가시밭길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 8회에 들어선 이 드라마는 첫 회 이후로 1%로 안되는 시청률에서 조금씩 회복하고 있지만, 여전히 2%의 고지조차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시청률의 고전과 상관없이, 드라마는 엄마의 카드 빚까지 덤태기를 쓰는 만년 대학생 윤진명에, 알고보니 대학생이 아니라 돈을 받고 남자들의 애인을 해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나에, 새침한 줄 알았더니 자존감 부족으로 나쁜 남자에게 끌려다니는 예은까지, '한심한' 청춘의 자화상을 가감없이 그려내고 있다. 말 그대로 궁상맞다못해, 구슬픈 청춘의 연가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똑부러진 지원의 입을 통해 등장한 벨 에포크에 그들과 동거하는 귀신의 존재에, 순진한 은재를 비롯하여, 진명, 이나 등 등장인물들이, 놀라는 대신, 모두 그 귀신과 자신의 연관성을 떠올리거나, 입에 올리며, 드라마는 가장 푸르른 청춘과 '죽음'을 이어붙인다. 



청춘, 그 뒤안길에 드리운 죽음
거리에서 만나는 그 누군가 중 한 명이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그녀들, 하지만 '귀신'의 존재에 '두려움'보다는, 귀신과의 연관성을 떠올리는 모습은 기괴하다. 하지만, 그 '기괴함'을 파고들어 가기 시작한 드라마에서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우리 삶 속의 죽음이다. 

그만 버티고 나가라는 재완(윤박 분)의 충고에, 여기서 버티지 못하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버틸 수 없을 것같아 나갈 수 없다는 진명, 그녀에게 죽음은 동생이다. 죽지 않고 6년째 식물인간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동생, 그런 동생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는 엄마, 그런 가족을 외면한 채 자신의 삶을 버텨가지만, 결국 엄마의 카드빚 동의서에 서명하고 마는 처지, 신발장 앞의 귀신을 죽지 못한 채 떠돌고 있는 동생이라 생각하는 그녀에게 죽음은 그녀가 기꺼이 바라지만, 바래서는 안될, 딜레마이자, 삶의 아이러니이다.  

그렇게 진명에게 죽음이 '딜레마'라면, 그녀와 비슷한 연배이지만, 삶 속에서 버티는 그녀와 달리, 너무 쉽게 자신을 세상에 던져버린 그래서 늘 진명과 신경전을 벌이는 이나의 죽음은, 8회를 통해 드러난 '트라우마'이다. 고등학교 시절 사고로 물 속에서 겨우 가방 하나에 의지한 채 발버둥치던 그녀에게 다가온 또 한 사람, 살아야겠다는 악다구니로 그 다가온 손길을 뿌리쳤던 이나는, 물 속으로 잠겨들던 그 눈빛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그녀는 살아있다는 부적같은 거라고 하지만,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는 그녀의 말대로 이나는 여전히 그 물 속에 잠겨 있는 듯 자신을 방기한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았지만, 스스로 누군가를 죽였다고 이미 고백한 바 있는 은재에게 드리운 '죽음'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드리울 '죽음'의 그림자도. 드라마는 '극단'의 죽음에서부터 소소한 연애사까지, 2016년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세월호가 연상되는 이나의 트라우마에서, 사회보장 제도 대신 개인의 고스란히 짊어지는 경제적 질곡을 진명의 버티는 삶에서, 그리고 아직 분명하지는 않지만 가족의 모순은 은재를 통해, 그리고 그 청춘 사업이라는 연애의 이면은 예은을 통해, 가장 현실적인 청춘의 모습들이 드라마로 그려진다. 



이렇게 <청춘 시대>는 여느 청춘 드라마들이 환상적인 연애사를 위한 짦은 시련으로서의 삶의 고통을 전제한 것과 달리, 청춘이라는 시절 조차도 우리 삶의 긴 여정 속에서 따로 띠어놓고 볼 수 없는 한 사람의 짊어진 긴 인생 여정의 일부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자신의 가족과, 자신이 겪은 사건 속으로부터, 튀어나오지 못한 채 아니, 거기에 청춘이기에 짊어져야 할 '연애사'조차 때론 숙제처럼 짊어진 채 고통받는다. 그리고 청춘을 지나간 사람들, 혹은 청춘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밖에서 청춘이 하냥 아름답다 하지만, 청춘들은 지나온 궤적과 함께, 그저 가능서으로만 열려있는 자신의 삶에서 이중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청춘시대>는 그걸 가장 '적나라하게' 그려내고자 한다. 

박연선의 역설
그러나, <청춘시대>의 작가가 누군인가.  바로 일찌기 이혼하고 만나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내어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연애시대(2006)>의 작가이자, 전무후무한 '괴작'이라 하면 꼭 언급되는 <얼렁뚱땅 흥신소(2007)>에, 걸출한 단막극이었던 <화이트 크리스마스(2011)>의 작가 박연선이다. 그녀의 작품에선 삶과 죽음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산 사람과 죽은 이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그리고 그걸 통해, 역설적으로 포장되지 않는 삶의 진솔함과, 기가 막히게도 긍정성으로 도달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섯 명의 여주인공들이 지금 함께 모여 살고 있는 셰어 하우스의 이름이 '벨 에포크'다. 프랑스 어로  La belle époque , 좋은 시대란 의미다. 그런데 여기서 좋은 시대는, 정확하게는 '좋았던 시대'다. 돌아올 수 없는, 지나간. 벨 에포크의 여주인공들은 저마다 삶, 혹은 죽음의 경계에 선 자신들이 짊어지기엔 버거운 문제들로 인해 고통받는다. 그리고, 벨 에포크라는 곳에서 저마다 그 문제들을 풀어가기 시작한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청춘은 푸른 계절이다.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프지만 버티려고 하고, 아프지만 아픔을 직시할 용기가 있던, 그래서 때론 아픔조차 껴안을 수 있었던, 그 푸른 기세의 시절, 그렇게 벨 에포키의 다섯 청춘들은 우리 시대 가장 첨예한 고민에 휩싸이지만, 그 속에서 고민하고 풀어감으로써 진짜 아름다운 시절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 아름다운 상처의 기록, 그게 아마도 청춘 시대가 아닐까.  소수의 애청자들만이 공유할 소중한 기억. 
by meditator 2016. 8. 14. 1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