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 <정도전>은 이성계(유동근 분)의 위화도 회군 이후 최영(서인석 분)에 이은, 우왕(박진우 분) 축출까지 거침없이 달려오던 반군 세력이 각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차기 왕 옹립을 둘러싸고 입장을 달리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드러난 것은, 이성계 일파가 밀었던 왕족이 아닌, 왕가의 사람들과 조민수 (김민수 분)장군 일파, 그리고 왕통을 중시한 이색(박지일 분) 등의 신진 사대부들이 민 우왕의 왕자 왕창, 창왕의 등극이다. 

드러나는 사건은 귀양을 가 있음에도 여전히 중앙 정계 복귀를 노리고 있는 이인임과 손을 잡은 조민수 세력이 정통성을 중시하는 신진 사대부 유림 세력과 손을 잡아, 새롭게 대두된 실세 이성계를 정치적으로 패배시킨 사건이다. 하지만, 정치적 세력의 이합집산 외에, 이 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보다 결정적이다.

극중 정도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은 고려를 부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런 이유를 꿈꾼 가장 본질적 이유는, 바로 지금의 고려가 어떻게 해도, 기존 권문 세족들의 기득권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12일 방영된 방송분 중, 정도전은 함께 할 인물로 염두에 둔 조준(전현 분)의 집은 찾는 장면이 방영된다.
조준 집 벽에는 고려의 지도가 걸려있고, 그 곳곳에 서로 다른 색으로 표기된 팻말이 붙어있었다. 그 지도의 표식에 대한 정도전의 집요한 추궁 끝에, 조준은 그 지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색이 바로 권문 세족의 땅이라는 것을 밝힌다. 경계를 세우는 것조차 무색하여, 산과 강으로 경계를 세우게 되었다는 고려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어버린 고려의 현실을 밝힌다. 
그런 조준에게 정도전은 자신의 꿈에 함께 동참할 것을 권유하며, 계민수전(計民授田)이라 적은 종이를 건넨다. 즉, 정도전이 꿈꾸는 나라란 바로, 지주도 없고, 소작도 없고, 제 땅을 일구는 자작농의 나라라는 것을 의미하는 네 단어이다.

(사진; tv리포트)

즉, 정도전의 개혁이란, 단지 정치적 실권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지금의 권문세족들을 개혁하고, 그들이 점횡한 토지를 빼앗아 백성들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고려에서는 더 이상 그런 그의 이상이 실현될 수 없다고 보았기에 고려를 멸망시켜야 한다는 야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내세우고자 한 이성계는 여전히 고려라는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런 이성계와 보조를 맞추고자 과도기적 과정으로 선택한 것이 자신들의 입장에 서줄 수 있는 왕의 등극과 함께 권문 세족에대한 개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2일 방송에서도 보여졌듯이, 고려라는 틀을 어찌되었든 유지해 보고자 했던 이성계와 정도전의 마지막 시도는 결국 조민수라는 권문 세족과 유림 세력의 합종연횡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이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조민수와 이인임의 결탁 과정에서도 보여지듯이, 고려에서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권문 세족의 발호이다. 광대한 농장을 기반으로 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고, 그것이 몇몇 정치적 인물의 거세만으론 정도전과 이성계가 지향하는 개혁에 이르기 힘들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결과가 되었다. 

또한 정치적 혈통을 운운하며 기존 정치 세력과 합류하는 이색 등의 유림 세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진 사대부라고 불리워지는 유림 세력 내에서도 기득권 세력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원칙적인 유교적 입장을 견지하는 듯 하면서도, 왕통이라는 명분에 매달리는 이색 등의 입장은, 결국, 고려라는 틀 속에서 자기 세력의 부흥을 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세력으로 신진 사대부가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색 일파와 그와 입장을 달리하는 정도전, 그리고 거기에 합류한 윤소종, 조준 등에서도 보여지듯이, 신진 사대부라며 고려 말에 대두되었던 유림 세력이, 고려말 조선 건국 과정에서 서로 갈라질 수 밖에 없는 과정을 또한 12일의 방송분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2일의 <정도전>은 위화되 회군 이후의 또 한 번의 분수령이 된다. 당장의 정치적 사건으로 이성계는 실패하지만, 결국 권문 세족과 신진 사대부 세력의 연합에 의한 이성계의 정치적 실각은, 결국 이성계로 하여금 역성 혁명을 앞당기게 만드는, 혹은 역성 혁명을 결심하게 만드는 도화선이 되도록 한 사건이다.

의식있는 드라마가 반영하는 현실은 극명하다. <정도전>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든 정치적 이합집산의 그 배후에는 결국 당대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태도가 존재하며, 각각의 경제적 이해에 따라 결국 패가 갈리고 입장을 달리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땅을 일구는 사람들에게 땅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2014년에조차 가장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정도전에게 있어, 고려는 거둬 던져버려야 할 거추장스러운 허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고려라는 나라를 통해 쬐금의 이해 관계라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거기에 집착하거나, 거기에 연연한다. 바로 그런 기본적 이해관계가,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게 된다는 것을, 드라마<정도전>은 보여주고 있다. 이성계의 앞에서 충성 충자를 쓴 정몽주의 한계가 또한 그것이다. 

(사진; 뉴스엔)

하지만 정도전만이 아니다. 또 한 사람의 지도자의 운명이 걸린 <쓰리데이즈>에서 이동휘 대통령과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재벌 김도진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서울 한 복판에서 테러를 일으키는 것조차 눈 하나 끔쩍하지 않는 조국이 없는 무한 이익주의의 경제적 동물과의 전쟁을 이동휘는 선포하였다. 
<골든 크로스>도 마찬가지다. 강주완이라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의 가정을 뒤흔든 건,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상위 1%의 집단의 경제적 이해 관계를 향항 무한 이기주의이다. 
몇 백년전의 과거가 되었든,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을 다룬 드라마건, 한 개별 가족의 복수극이건, 드라마들은 말한다. 본질은 내 삶의 밥줄을 쥐고 흔드는 경제적 문제라고, 그리고 그 본질을 뒤덮고, 나와는 상관없는 저들간의 노름처럼 보이는 정치가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것은 단순한 경제 환원주의나 경제 결정론과는 다르다. 오히려, 그보다는 우리을 무관심으로 끌고가는 정치의 본질이 무엇이라는 걸, 그래서 저들의 리그려니 하지 말고, 정신 똑똑히 차려야 한다는 각성을 촉구하는 입장에 가깝다. 바로 이것이 최근 드라마들이 줄기차게 부르짖고 있는 담론의 본질이다. 이성계가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를 통해, 백성에게 땅을 골고루 나눠주려 했던, 정도전의 혁명이 실현되느냐가 본질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제목이 <정도전>이다. 


by meditator 2014. 4. 13. 1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