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 방영된 <정도전>에서 정몽주는 임금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이성계를 찾아간다. 이성계가 병중에 있는 동안 정도전을 없애고, 그와 함께 그들이 추진려던 역성 혁명의 싹을 짤라버리려던 정몽주였다. 하지만, 그런 정몽주의 시도가 이성계가 정신이 돌아오자 마자, 정도전의 처형을 미루는 것으로 시작하여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리게 되려는 찰라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것을 알면서도 정몽주는 무장한 장수들과 군사들이 겹겹이 애워싸고 있는 이성계의 집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성계는 정몽주를 놓을 수 없다. 자신과 정도전 중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칼을 들이미는 정몽주에게 이성계는 눈물로 읍소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왕이 된다고 해서 권세를 누리려 하지 않겠다고 모든 것을 정도전과 정몽주에게 맡기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애닳게 잡은 이성계의 손을 정몽주는 밀어낸다. 그리고 돌아가 정도전을 처형하겠다고 단언한다. 그런 정몽주에게 이성계는 이제 당신과 절연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정몽주에게 연연해하는 아버지를 답답하게 여긴 이방원은 지필묵을 가지고 정도전을 찾아간다. 아버지를 설득해 달라고. 하지만 정도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당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고 초조해 하는 이방원에게 정도전은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며, 정몽주를 제거하면 자신들의 혁명은 정당성을 잃게 되는 것이라며 이방원의 청을 물린다. 

그런 아버지와, 정도전의 태도를 우유부단함으로 여긴 이방원은 결단을 내린다. 정몽주를 청해 그 유명한 '이런 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하여기를 통해 설득을 하고, 그에 정몽주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의 단심가의 화답을 받고, 자객을 보내 정몽주를 선죽교 다리 위에서 죽여버린다. 영문도 모르고 감옥에서 나오던 정도전은 정몽주가 죽은 것을 알고 그의 시신을 붙잡고 오열한다. 이성계도 마찬가지다. 정몽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포효한다. 어떻게든 피를 덜보고, 정당성을 놓치지 않고, 민심을 얻으며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던 정도전과 이성계의 시도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정도전 정몽주 단심가
(사진; tv데일리)

39회 <정도전>에서 이성계 역의 유동근이 정몽주 역의 임호의 손을 붙잡고 애원하는 모습은, 그 어떤 드라마의 애정씬 못지않게 간절했다. 역대 어느 드라마의 남녀 배우가 이렇게 간절하게 등을 돌린 연인을 향해 진심어린 애원을 했을까 싶다. 하지만, 그런 장면이 <정도전>을 지켜본 시청자들에게는 전혀 오글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성계의 진심으로  절절하게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이 이성계를 주군으로 모시고 역성 혁명을 도모하지만, 이미 그 이전에 이성계와 정몽주는 고려의 개혁이라는 뜻을 같이했던 정치적 동지였었다. 정도전과 정몽주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정치적 은인에 가깝다. 세상이 아직 이성계와 정도전을 알아보기 전부터, 정몽주는 그들을 알아봐주고, 그들의 뜻을 지지하고, 그들과 함께 정치적 행동을 했던 동지였다. 그런 정몽주였지만, 오랜 정치적 행보의 끝에 이제, 고려를 멸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이냐 말 것이냐는 궁극의 입장에서 이성계와 정도전, 정몽주는 뜻을 달리한다. 

우리가 어릴 적 배운 역사 이야기 속에서 정몽주는 그저 선죽교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고려의 충신일 뿐이었다. 드라마 <정도전>에서도 그런 모습이 드러났다. 정적들을 제거하고 승전보를 울리고 돌아온 이성계에게 정도전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라는 건의를 한 반면, 같은 글자에서 시작한 정몽주는 전혀 다른 충성 충(忠)자를 새겨 고려라는 테두리를 이성계에게 각인시켰다. 물론 드라마에서 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미 토지 제도를 둘러싼 유학들의 대립에서, 대지주 출신의 이색 등이 토지 제도 개혁을 강경하게 반대하고 나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주 계급 출신의 정몽주 역시 그런 자신의 출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강직한 유학자였던 그가 유학자로서의 역성 혁명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수용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가 옳고 그르고는 고려의 멸망이, 그리고 조선의 건국으로 증명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성계의 표현대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을 리가 없을 진대, 대들보가 썩어버린 고려를 붙들고 있었던 그의 신념은 우매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결과일 뿐이다. 당대를 살아갔던 인물로서 정몽주의 신념과 행보는 드라마<정도전>을 통해 보면 충분히 그럴만한 설득력을 가진다. 자신이 몸담았떤 시대를 쉽게 지워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정몽주를 통해 우리는 이해하게 된다. 

충신으로서, 혹은 계급적, 사상적 한계를 넘지 못한 사람으로서 정몽주를 드라마 <정도전>은 그 어떤 한 측면에서 규정짖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아간 한 명의 생생한 캐릭터로서 부각시킨다. 강직한 유학자였지만, 고려라는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그 역시 정도전이 그랬듯, 스스로 정치적 모든 수단을 도모하여야만 했던 인물, 그러나 무력을 장악한 이성계 세력에게 자신들이 역부족이라는 것을 절감했던 인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절친이었던 정도전과, 정치적 동지였던 이성계의 간청을 밀어낼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시대를 넘어설 수 없었던 보수주의자 정몽주를 드라마 <정도전>은 살려낸다. 그래서 그저 선죽교의 지워지지 않는 붉은 피로만 기억되었던 고리타분한 역사 속 위인은 고려말 격동기를 자신의 목숨을 다해 신념을 지켜내려 했던 인물로 되살아 났다. 간신 이인임을 권문 세족의 대표이자 정치적 실권자로서의 노회한 이인임으로 살려낸 데 이은, <정도전>의 또 하나의 성과이다. 


by meditator 2014. 5. 25. 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