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정도전>이 50부작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혁명가 정도전은 사라졌고, 이씨 왕조로서 조선은 정립되었다. 

학창 시절 국사 교과서에 줄 좀 그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우리가 배웠던 교과서는, 정도전의 피를 자기 칼에 묻힌 이방원을 조선의 기틀을 닦은 왕이라 정의내린다. 아버지 태조 이성계가 만든 조선을, 본격적으로 국가로서 기틀을 세운 사람이 바로 이방원, 조선의 3대 임금 태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정도전>이라는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그 이방원이 세운 조선의 기틀의 대부분을 정도전에게 빚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정도전의 죽음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혁명의 설계자들의 죽음과 그리 다르지 않다.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로베스 피에르와 당통은 결국 그들이 반혁명 분자를 처단하기 위해 만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고, <정도전>이라는 드라마에서 비유되었던 한나라의 실질적 설계자 한신 역시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를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역사 속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원칙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일구었던 이들처럼, 정도전도, 그가 꿈꾸던 '민본'의 세상을 앞두고, 왕조의 부흥을 꿈꾸는 이방원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만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이 로베스 피에르와 당통의 죽음으로 훼손되지 않듯이, 한신이 사라져도 한나라의 정치 제도는 달라지지 않았듯이, 고종 시대에 가서야 복권이 된 정도전이었지만, 조선이라는 나라는, 결국 정도전의 나라였다. 그가 만든 법률, 그가 만든 정치제도, 그가 방향을 잡아놓은 숭유억불의 사상, 그가 꿈꾸었던 정전제의 이상을 지향했던 토지 제도까지, 하다못해 궁궐에서 울려퍼지던 음악까지,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가장 순수한 혁명을 꿈꾸던 순수한 이상들이, 현실의 정치 과정에서 가장 과격한 길을 걸어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듯, 자신의 당대에 '민본'을 완수하겠다는 욕심에 조바심을 내던 정도전은 스스로 악마가 되기를 불사하며, 비타협적인 길을 걷다 스스로 고사되어 버리고 마는 모습으로 드라마는 그려낸다. 

(사진; tv리포트)

이렇게 드라마 <정도전>은 역사 속에 숨겨졌던 이름 정도전을 현재로 끌어낸다. 그리고 그와 함께, 50부작의 드라마 내내 그가 줄기차게 부르짖던 '민본'도 함께 길어 올린다. 
또한 현대의 민주주의와도 다르지 않은, 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도전의 행로에서, 때로는 그와 전우가 되고, 때로는 그와 척을 지며, 이합집산하는 많은 인물들도 함께 우리 사는 세상의 그 누군가처럼 등장시킨다. 
그래서 그저 외척의 권세를 등에 업은 간신배였던 역사 속 이인임은, 현실 정치의 속성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노회한 정치가로, 그런 이인임에 맞서 고려의 쌍두마차로 자리매김했던 최영은, 자신의 이상에 비타협적이었던 고지식한 무장으로 되살아 났다. 
조선의 첫 임금이 된 이성계는, 고려라는 나라의 신하와,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은 이상 사이게서 고뇌하는 권력자로, 선죽교의 피로만 기억되던 정몽주는, 망해가는 나라와, 새로운 국가 사이에서, 자신의 신념을 고수했던 고지식한 선비의 현현이 되었다. 이렇게 대표적인 인물들 외에, 하륜, 조준, 윤소종 등, 역사 책의 행간에서 스쳐지나갔던 역사적 인물들이, 생생한 캐릭터로, 우리 곁에 찾아들었다. 

그래서, 백성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정도전의 이상과, 그 이상이 조선이라는 국가로 실현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물들의 갈등은 곧, 대한민국 헌법 제 1조에서 민주주의 국가임을 선언하지만, 현실의 민주주의는 언제난 난망인, 우리 현실 정치의 고뇌로 이어진다. 가장 이상적이지만 비타협적이어서 결국 스스로 절멸의 길을 걷고 마는 정도전도, 가장 유연한 정치가인 듯 하지만 결국 그가 추구한 것은, 자기 권세에 불과한 이인임도, 가장 포용력 있는 듯하지만, 시류에 눈이 어두운 정도전의 선택도, 고스란히 민주주의의 혼돈 속에 놓인 우리의 고민으로 치환된다. 그래서, 더 <정도전>이라는 드라마의 '민본'이 소중하고, 그것을 목전에 두고, 융통성없는 아집, 혹은 독선으로 권력을 왕권으로 넘긴 정도전이 아쉽다. 하지만, 그가 남긴 '조선'에서 보여지듯이, 원칙은 그리 쉽게 훼손되는 것이 아니란 교훈도 남긴다. 조선 왕조 500년의 끈질긴 왕권과 신권의 갈등이, 어쩌면 조선이라는 나라를 500년씩이나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 되었고, 그것의 단초는, 결국 정도전과, 그를 벤 이방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드라마 <정도전>은 위인전 속에서 교훈을 남기고, 속담이나 사자성어의 주인공으로 고사되어가던 인물들을 현실로 끌어 올리고, 그들의 행보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그들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물이 되어, 그저 옳다 그르다 그 어떤 잣대로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인간'다운 모습이 되어, 현실의 반면교사가 된다. 

모처럼 돌아온 kbs1의 대하사극은 왕조를 넘어선, 인물 정도전을 집중 조명하고, 그 인물을 통해, 여말 선초의 격동기의 역사를 생동감있게 전달하여, kbs1 사극을 복원하였다. 부디 이 되살려진 흐름을 잘 이어가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6. 30. 0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