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두 편의 드라마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mbc의 <여자를 울려>와 sbs의 <이혼 변호사는 연애중>이 그것이다. 주말 안방을 찾아간 두 드라마는 각가 9시(8;45)와 10시대를 공략한다. 3년만에 돌아온 김정은으로 화제를 모은 <여자를 울려>는 전작 첫 시청률을 뛰어넘은 14.2%(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고, 늘 상대방 mbc의 주말 드라마에 눌려 기를 못펴던 sbs의 주말극 역시 타 드라마를 넘기에는 버거웠지만, 전작이었던 <내 마음 반짝반짝> 마지막 회보다 높은 5.5%로 가능성을 보였다. 그런데 새로이 시작하는 두 드라마들 다른 방송사, 다른 방송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도 공통적인 부분이 찾아진다. 



일하는 여자들, 고척희와 정덕인
mbc 주말 드라마가 다양한 연령대의 여주인공을 등장시켰지만, 전작 <전설의 마녀>에서도 차앵란(전인화 분)과 심복녀(고두심 분)의 가정사가 극의 주된 스토리를 끌고 갔듯이 중장년층의 시점을 중심으로 하였듯이, <여왕의 꽃> 역시 마희라(김미숙 분), 최혜진(장영남 분), 레나정(김성령 분) 등 중년의 배우들이 활약을 한다. 그에 반해 차별성이라도 두듯이, 이미 한예슬과 주상욱의 달달한 러브 스토리를 다루었던 <미녀의 탄생>이후, sbs의 주말극은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대의 사랑 이야기에 촛점을 둔다. <이혼 변호사는 연애중> 역시 다르지 않다. 

<이혼 변호사는 연애중>은 이혼 전문 변호사였던 고척희(조여정 분)가 한때의 실수로 변호사직을 잃고 호구지책으로 그의 사무장이었던 소정우(연우진 분)의 사무장으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와 연애담을 다룬다. 당연히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는 이 변화된 갑을 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이다. 이름에서도 연상되고, 그녀의 책상에 당당하게 놓여진 '처키 인형'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척희는 공포 영화 속 저주의 인형처럼 부하 직원들을 달달 볶으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성취지향형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던 그녀가 자신의 변호사 직을 잃고 이제 어쩔 수 없이 부하직원의 사무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변호사 시절의 습성(?)을 잊지 못하여 벌어지는 해프닝이 이 러브스토리의 출발점이다. 

그에 반해 <여자를 울려>의 정덕인(김정은 분)은 스스로 전직을 그만두었다. 동네 양아치 정도쯤은 혼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치우는 이 여자, 전직 강력계 형사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누군가를 때려잡는 그 일이 싫어졌다. 자신이 누군가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 이상 형사직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또한 아들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것이 아들 학교 앞에서 밥집을 차린 것이다. 하지만, 이 아줌마, 전직을 숨길 수가 없다. 그저 밥이나 팔면 될 것을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주는 홍길동이 되어버린다. 일진 들과 맞서고, 한 술 더 떠서, 학교 안나오는 아이의 집을 찾아나서다, 그 아버지를 찾아온 일수꾼들과 맞선다. 이러고서야, 말이 밥집아줌마지, 형사 할 때나 마인드가 달라진 게 없다. 

<이혼 변호사는 연애 중>의 고척희와 <여자를 울려>의 정덕인은 모두 따박따박 제대로된 돈을 받던, 심지어는 더 잘 나가던 전직, 변호사와 형사였던 사람들이다. 그러던 그녀들이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전직에서 놓여나, 거친 세상의 그물에 던져졌다. 이젠, 내로라하는 직함 대신, 신참 변호사의 목숨 달랑달랑한 사무장이거나, 학교 앞 밥집 아줌마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하방'된 자신의 새로운 직업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혼을 하겠다는 아줌마를 부추겨 그녀 남편이 든 모텔을 찾아간 고척희는 모처럼 자신의 주 업무 분야 '이혼'에 관한 일을 하게 된 것에 흥분을 감출 수 없다. 정덕인 역시 그녀에게 한낮 가녀린 여자는 저리가라이다. 북한도 무서워 한다는 일진 무리를 상대하고, 야구 방망이를 든 조폭 나부랭이도 무섭지 않다. 하지만 사실, 그녀들이 전직이 변호사였다거나, 형사였다거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녀들이 이제 변호사가 아니건, 형사가 아니건, 겨우 일개 사무장이건, 밥집 아줌마이건, 그녀들은 여전히 자신의 삶의 주도성을 놓치지 않고 맹렬하게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진취적 삶을 사는 주말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
물론 <여자를 울려>의 정덕인의 결혼은 위태롭고, 그녀의 결혼 생활은 남편은 물론 시댁 식구까지 거둬먹여야 하는 현모양처 형이고, 고척희는 이혼 변호사로 날리며 번 돈을 몽땅 동생을 위해 퍼부어 주어 집조차 없는 신세이지만, 그래도 그녀들은 자신의 삶에 열렬하다. 자신의 일이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위치야 어떻든 자신에게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중심으로 세상과 싸워나갈 '전사'들이다. 다소곳이 남자에게 차이고 버려져 복수의 칼을 갈던 여자들의 세대와 다른 삶의 양식을 가진다. 그녀들에게는 전문적이었던 일이 있었고, 지금도 호구지책이든 어쨋든 그녀들의 삶의 중심엔 '일'이 있다. 그 일을 매개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남자를 만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것이 새로이 등장한 주말 드라마 속 여성상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게 이렇게 새로이 시작한 주말 드라마 속 여성들이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데 반해, 그녀의 상대로 등장하는 남자들은 영 시원치 않다. <이혼 변호사는 연애중>의 소정우는 이제는 고척희의 사무장이었던 시절을 벗어나 변호사가 되었지만, 아직도 고척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변호사 200만 시대에 그녀를 좋아하던 친구의 소개로 겨우 변호사 자리를 얻었지만, 신참 변호사인 그의 능력은 아직 검증된 바 없다. 이혼을 하겠다고 찾아온 여자에게 남편의 장점을 공책 하나로 써보라는 소정우의 갈 길은 아직 멀고, 고척희가 나서서 도와줄 수 밖에 없어 보이는 애숭이 변호사이다. <여자를 울려>의 고등학교 교사 강진우(송창의 분) 역시 모양새가 그렇다. 2회, 학생 집을 찾아가 일수꾼에게 몰리자, 그걸 나서서 물리친 사람은 정덕인이다. 그녀의 뒤에 숨어 전전긍긍하고, 심지어 다리를 접질러 정덕인 등에 업히려 하고, 완전히 여성과 남성의 전형적 역할이 전복되어 나타난다. 

이렇게 기존 드라마에서 보여지던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전복되어져 나타나고, 거기에 여성들은 자신의 일을 중심으로 열렬하게 살아가는 모습, 그것은 현재 우리 사회 속 여성들의 모습을, 혹은 기대되어지는 모습을 반영한다. 심지어, 좋은 남자를 만나는 대신에, 무엇이 되었든 스스로 호구지책을 해결해야 하는 현실조차도 냉정하게 담는다.  <여자를 울려>와 <이혼 변호사는 연애중>의 고척희가 억척스러우면서도 정겹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by meditator 2015. 4. 20. 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