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 토요일 tvn을 통해 방영되었던 <연애 말고 결혼>이 16부작으로 마무리 되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연히 두 주인공은, 결혼을 하였다. 하지만, 첫 회부터 얽히기 시작했던 두 주인공은 16부작 내내 거짓 결혼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였으며, 거짓 결혼이 사라진 이후에는 진짜 결혼을 하기 위한 '산고'의 시간을 견뎌냈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식날, 역시나 그 조차도 이 커플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하객이 폭포수처럼 내리는 비를 피해 사라지고, 비를 쫄딱 맞은 두 주인공들, 우리가 그럼 그렇지 한다. 그럼 그렇지, 결혼은 역시 쉬운 게 아니다. 


<연애 말고 결혼>의 가장 큰 미덕을 들자면, 첫 회 1년간 사귄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기 위해 이벤트를 벌이는 주장미(한그루 분)의 솔직담백함에서도 보여지듯이, 때로는  도를 지나쳐'진상'이 되기도 하는, 여주인공 주장미의 캐릭터에서 오는 매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자신의 재판에 다짜고짜 나타나 스토커로 몰린 자신을 변호해준 공기태(연우진 분)에게 얽혀 동정과 연민에서 시작된 그와의 거짓 결혼 해프닝이 결국 사랑으로 변모되어 결혼에 이르기까지, 해프닝과 해프닝으로 이어져가는 드라마의 스토리를 이끈 상당 부분은 배우 한그루의 몸을 던진 연기에서 비롯되었다.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통해 언니의 불륜으로 인해 자신의 사랑에 고통을 받는 동생 역을 실감나게 연기했던 한그루는, <연애 말고 결혼>에서 혼신의 연기라 할 만큼 그녀의 모든 매력을 아낌없이 드러내며 극을 이끈다. 또한 그런 한그루의 연기에, 연우진 역시 어색하지 않을 만큼 호흠을 맞추며 공기태라는 안하무인 캐릭터를 연주해 낸다. 그런 두 주인공의 발군의 연기는, 그들과 함께 하는 아이돌 출신들 배우들의 정형화된 연기가 보여주는 갑갑함을 덮으며, <연애 말고 결혼>을 생동감있는 드라마로 마무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도대체 연애 드라마에 무슨 '혼신의 연기'가 필요하겠느냐는 질문이 우문이 될 만큼, <연애 말고 결혼>은 우연히 필요에 의해 부모들에게 거짓 연인 행세를 한 두 사람이 말려드는 해프닝에 상당 부분 스토리를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한 연애담을 말하려한 듯이 보였던 이 드라마는 16부작의 상당 부분을 부모님을 상대로 한 자신들의 거짓을 덮기 위한 두 사람의 어쩌지 못한 상황의 연속으로 끌어간다. 
가장 연애에 당당할 것 같은 이십대 후반의, 삼십대 초반의 두 사람,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계기가 공기태의 아파트를 유지하기 위한 거짓 연인 행세였던 만큼, 두 사람은 내내 자신들이 한 거짓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느꼈음에도 그 감정조차 부인한 채 자신들에게 부여된 '미션'에 충실하고자, 혹은, 그 미션이 가진 부도덕함에 짖눌린 채 거기서 헤어나오기 위한 발버둥에 드라마는 상당한 시간을 소비한다. 문득 도대체 법적으로 당당하게 결혼을 할 수 있는 나이도 훌쩍 지나버린 저 나잇대의 젊은이들이 왜 저렇게 부모와의 관계에 연연한 걸까? 라는 의문이 들만큼.

공교롭게도 <연애 말고 결혼>의 두 주인공의 결혼관은 모두 그들 부모님의 불행한 결혼 생활에서 기인한다. 그러니, 두 주인공이 결혼에 대한 '카르마'를 풀기 위해서는 결국 드라마는 두 사람 부모님의 불행한 결혼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하고, 16부에 가서야 두 부모님들은 자신들의 거짓 원망이 사실은 사랑이었음을 알고 화해하고, 또 반대로 자신들의 위선으로 점철된 결혼을 풀고 이혼을 선택하는 결론에 이르른다. 
결국 드라마는 여전히 당당한 젊음을 구가한다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부모 세대의 '카르마'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들에게 정신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여전히 의존적인 세대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젊은 세대의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부모 세대의 결자해지가 필요한 것이 선결 과제가 되는 것이다. 
즉, 가장 트렌디한 연애 이야기를 다룬 2014년의 드라마에서조차, 여전히 대한민국은, '가족중심'의 공동체적 국가라는 걸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결혼을 둘러싼 두 가족의 시끌벅적한 해프닝이 남의 나라 이야기만이 아닌 것이다. 단지 스타일만 다를 뿐이지, 여전히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16부작의 상당 부분을 부모 세대의 카르마를 풀기 위해 진력했던 두 주인공이지만, 그 사이사이에서 드러난 젊은 사람들의 솔직한 연애 담론은, 지루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많은 젊은 사람들을 <연애 말고 결혼>에 붙잡아 놓은 매력 포인트이다. 
진짜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는지는 드라마 중반이 흐르도록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자신의 감정에는 그 누구보다 솔직한, 그래서 어쩌면 진짜 요즘 여자같은 주장미의 솔직한 매력에, 그런 여주인공에 부응이라도 하듯, 가장 이기적인 캐릭터로 등장하여, 가장 주변의 눈치를 보며, 그의 결정 하나하나가 자신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결국은 주변을 배려한 것이 되어버린, 전형적인 여성 중심 로코의 남자 주인공 캐릭터였던 공기태의 호응 역시, 이 드라마를 많은 젊은 사람들의 워너비 드라마로 만들게 한 요인이다. 

거기에 백화점 직원인 여성이, 병원장 딸인 여자 친구를 가진 성형외과 의사인 남자 주인공을 만나고, 프렌치 레스토랑 사장인 전 남친을 차버리는 직업으로서의 '환타지'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부모가 술 장사를 한다던 트라우마를 그녀 자신이 레스토랑 알바였지만 사실은 능력있는 쉐프였던 또 다른 남자를 만나 신세대 주점을 개업함으로써 멋지게 해소해 버린 성공기는 드라마의 매력적인 '토핑'이다. 
사랑은 하지만 결혼에 얽매이기 싫다며 아기를 가지고 싶다는 '육아 환타지'에, 다시 만난 두 남녀가, 결혼에 얽매이지 말자며 연애를 하기 위해, '동거'에 가까운 생활을 보이는 '연애 환타지' 역시 이 드라마의 빠질 수 없는 재미요소이다. 

가장 트렌디한 연애가 가장 진부한 가족이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 거렸던 16부, 어쩌면 그게 가장 현실적인 대한민국의 연애사일지도 모르겠다. 


by meditator 2014. 8. 24. 1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