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한자로 하면, 休暇, 

여기서 休는 쉴 휴자로, 쉬다. 작업이나 일을 그만두다 라는 뜻인데, 재밌는 것은 거기에 그만두라는 명령의 취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참 적절하다, 강제적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쉬라. 暇는 겨를, 짬을 의미한다. 느긋하게, 여유있게 지내는 것이다. 이 의미들을 모아서 다시 해석해 보면, 무조건 강제적으로라도 일을 쉬고, 느긋하게 지내는 것, 그게 휴가다. 그런데 우리의 휴가는 어떨까? 
그간 한 여름에 '물없이 살기', '전기없이 살기' 등 가혹한 미션을 달려왔던 <인간의 조건>이 이번엔 제대로 쉬어가 보기로 한다. 바로, <휴가의 조건>, 여섯 남자에게 미션으로 휴가를 주고, 그들이 '휴가'를 누리는 모습을 통해 우리네 삶의 휴가 문화를 짚어보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한겨레 신문>에는 휴가를 대하는 부부의 서로 다른 자세로 인한 갈등의 에피소드가 올라왔었다. 휴가라면 어디를 가서 아침 댓바람부터 부지런히 그곳의 볼 거리를 보고, 이름난 먹거리도 빠짐없이 먹어야 하는 아내, 청정 지역으로 휴가를 다녀오라는 미션에, 동트기도 전에 일어나 한라산을 종주하고, 이름난 해변을 다니고, 맛집도 빠짐없이 탐방한 정태호, 허경환의 스타일이 그것이다. 
반면, 남편은 그냥 좀 어디를 가더라도, 느긋하게 쉬다 오면 안되냐는 주의다. <인간의 조건>에서 보자면 김준현의 입장이다. 잘 먹고, 잘 쉬는게 남는 거라는 식이다. 언제나 어떤 미션에도 여유로운 자세를 견지해오던 김준현은 이번에도, 휴가를 가지 못해(?) 초조해 하는 김준호에게 집에서도 편하게 즐기는 방법을 전파하고자 애쓴다. 
이렇듯 휴가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은 겨우 결혼 3년차의 부부를 냉정과 부부싸움으로 몰라갈 정도로 성격이나 취향으로 몰아붙이기엔 입장의 차이가 확연한 노선들이다.  그리고 <인간의 조건>은 휴가에 대해 다른 양상을 보이는 여섯 남자들의 모습을 통해  양립하기 힘든 '휴가'의 다양한 면들을 고찰한다. 

"난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모르겠어. 미션 중에 이번 미션이 제일 힘든 거 같아"
세상에, '휴가의 조건'을 겪고 있는 김준호의 고백이다. 짬짬이 일이 있어 멀리 떠나지 못하는 , 지금까지 줄곧 일을 하느라 휴가다운 휴가를 누려보지 못했던 김준호는 처음 '휴가'를 준다고 했을 때 좋아했던 것도 잠시, 점점 이른바 '멘붕'에 빠져간다. 여행을 가는 것 말고는 도대체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놀아본 놈이 논다'는 속어가 떠오르는 지점이다. 그런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 많은 미션을 받고 미션 중에 어려움을 겪던 그의 모습과 달리 묘하게 애잔하다. 그 이유는 그런 그의 모습이, 휴가라고 하면 죽자고 가족들 데리고 이름난 휴양지나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엔 그 어떤 대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바로 지금 전국의 유명 휴양지를 메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일 것 같아서이다.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휴가라 하면, 느긋하게 쉬는 시간이라기보다는, 휴가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와 달리, 치뤄야 할  또 하나의 미션같은 경우가 많을 테니까. 김준호처럼 휴가기간에 어딘가를 떠나지 않고 시간을 그저 보낸다는 것에 적응하지 못할 '시간의 노예'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성호가 사이판에서 만난 한 달짜리 휴가를 보내는 필리핀의 가족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모습이다. 휴가도 전투적으로 치뤄내야 하는 2013년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박성호의 놀라움은 그대로 반사된다. 김준호의 혼란과, 박성호의 깨달음을 통해 <인간의 조건>은 슬며시 질문을 던진다. 쉬어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사진; 스포츠 월드)

휴가에 대한 고찰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늘 그렇듯 김준호의 대척점에는 박성호가 있다. 박성호는 '휴가'가 주어지자, 대뜸, 무조건, 가보고 싶었던 해외 여행을 떠난다. 급작스럽게 주어진 미션인 만큼 당연히 미리 예약 따위는 할 수 없는 상황을 '떠나자!'라는 의지 하나로 극복해 가며 해외로 떠난다. 개 짖는 소리조차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이국의 낯선 마을에서 짧은 영어로 방을 얻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박성호의 모습에시청자들은 엄두가 나지 않으면서도 부러운 마음이 절로 든다. 휴가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예약이다 뭐다에 시다린 사람들은 저게 진짜 휴가다 싶다. 더구나, 아무도 없을 거 같은 해변에 뛰어들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모습은, 함께 제주도를 다녀와, 역시 휴가는 친구와 함께 가야 돼라고 말하는 허경환의 입장과는 또 다르게 매혹적이다. 늘 가족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숙제처럼 치루는 가장이라면 더더욱 공감이 될. 

'휴가의 조건'의 첫 번째 과제 '청청 지역 돌아보기'는 이렇게 휴가에 대처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통해 '쉼'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 과제, 해보지 못했던 일 하기를 통해, 그저 쉬는 것 이상의 휴가의 의미를 덧붙일 것이다. 


by meditator 2013. 8. 11. 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