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방영된 <응답하라 1988>이 드디어 케이블 시청률 10%를 넘었다.(닐슨 코리아 기준 10.145%) 그도 그럴 것이 20일 방영된 5회는 자식되는 혹은 부모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공감할 '모성'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죽고 홀로 자식을 키우는 선우모(김선영 분)는 시어머니의 구박을 의연하게 견뎌냈지만, 결국 친정 엄마의 측은지심에 무너지는 모습에 시청자의 누선을 자극했다. 민정당사 농성에 가담했다 잡혀가는 큰딸 보라(류혜영 분)를 막아선 엄마(이일화 분)의 애끓는 일편단심 모정은 또 다른 의미에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남편과 아들 둘을 놔두고 차마 집을 떠나지 못하던, 그리고 자신의 부재에도 잘 지내는 가족들에게 실망하는 정환 모(라미란 분)의 모정은 바로 우리네 엄마들의 모습 그자체로 공감을 자아냈다. 그렇게 울고 미소지으며 한 시간을 시청하고, 채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하지만 마음은 씁쓸해졌다. 




부동산 투기를 하던 엄마도 88년의 모성이었고, 
유신 말기에서 부터 전두환 정권이 끝나던 시기인 85년까지 안정세를 보이던 부동산 시세는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88년 부동산 광풍이 불기 시작하였다. 이때의 부동산 광풍은 강남권 아파트는 물론 전국의 모든 토지가 그 대상이 되었고, 오죽하면 '망국병'이라 지칭될 정도였다. 그렇다면 당시 '망국병'에 앞장선 사람들이 누구였을까? 바로 그 누군가의 '엄마'들이다. '부동산 투기'바람의 선봉에 선 그 누군가의 엄마들이 드라마에서 처럼 '마른 자리 진 자리' 보살피는 대신, 아파트다. 토지다 하며 전국을 휩쓸며 다닌 덕분에, 그 '엄마'의 자식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어, 한 자리 할라치면 너도 나도 불법 토지 거래로 걸리는 망국 유전병'을 가진 자식들이 되었다. 그렇게 <응답할 1988>은 88년의 모성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이야기 하지 않고 있다. 

이 드라마 이야기 하지 않고 있는 모성은 또 있다. 바로 운동권 자녀를 둔 보라 엄마의 모성이다. 엄마는 골목에 숨어있다 잡혀가는 보라를 막아선다. 빗속에 신발도 벗어제친 채 달려온 엄마의 발에선 피가 흐리고, 하지만 엄마는 아랑곳없다. 잡혀가는 딸을 막아서며 자신의 딸 보라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자식인가, 부모를 생각하는 딸인가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보며, 딸 보라는 집안 식구들조차도 꼼짝못하게 만들었던 그 기세 등등한 보라는 '잘못했다'는 말을 성큼 내뱉고 만다. 자식을 위해서는 맨발도 마다하지 않고 가녀린 몸으로 막아서는 모정, 그 앞에서 자식은 결국 '자존심'을 내던지고 만다. 그리고 드라마는 보라가 내던진 자존심이, 그리고 사복 경찰 앞에서 빌듯이 애원하는 엄마의 보잘것 없는 자존심이  바로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삼베 수건을 쓰고 거리로 나선 엄마들도 88년의 모성이었다. 
하지만, 88년의 모성은 보라 엄마같은 모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시작은 보라 엄마처럼 시작했을 수도 있다. 85년 12월 12일 서울 기독교 회관 2층에서 민주화 가족 협의회가 창립되었다. 이 조직의 원칙은 특이하게도 '담보물 우선주의'이다. 여기서 말하는 담보물은 바로 '감옥에 갇힌 자녀'들이고, 그 담보물을 지키기 위해 나선 부모들이 이 협의회의 회원들이다. 이 회원들도 보라 엄마처럼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부모들은 '한 개인의 석방을 애원하기 보다는 민주화의 대열에 함께 서는 것이 고통받는 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지름길'이라고 믿으며 민주화 운동에 앞장 서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부모들은 6.10 항쟁의 기폭제가 박종철 치사 사건 때 머리에 삼베 수건을 뒤집어 쓰고 박종철이 고문으로 죽어간 남영동 대공 분실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었다. 7월 4일 최류탄을 맞고 죽어간 이한열 군 장례식때도 시청까지 꽉 매운 행렬의 선두에 선 것은 역시나 머리에 삼베 수건을 쓴 어머니들이었다. 그 어머니들이 바로 드라마가 배경이 된 88년에 무엇을 했냐 하면, 10월 기독교 회관에서 의문사 유가족을 중심으로 135일의 농성을 벌였다. 



‘그들도 처음엔 평범한 어머니 보통의 아내였다. / 늦게 들어오는 자식을 기다리고 / 자기 일에만 바쁜 남편이 밉던 / 남들과 똑같은 여자였고 어머니였다. 자식이 혹시 / 무슨 물이나 들지 않을까. 조바심 내던 아버지였다. / 적어도 가족들이 고난받는 길을 택하기 전까지는 / 식구 중의 하나가 이 민족의 고통을 끌어안고 / 전생애를 다 던지는 사람이었음을 확인하기 전까지는.’(도종환; 민가협 창립 열돌에 부쳐; 민가협)

드라마는 민주화 시위를 벌이던 보라의 문제를 '집안 문제'로 해결한다. 아버지가 나서서 딸을 주리틀듯 잡아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튕겨나갔던 딸은 어머니의 눈물 겨운 모성에 결국 '항복'을 하고야 만다. 극중 보이듯 보라는 '단순 가담'으로 인해 '훈방'조치에 처해진다. 마치 드라마는 엄마 아빠의 극진한 마음이 닿았던 것처럼 그려지지만, '훈방 조치' 할만 하니까 한 사안인 것이다. 오히려 그 기세 등등했던 보라는 엄마, 아빠의 마음을 핑계로, 도망치고 싶던 자신의 '퇴로'를 마련한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민주화 시위'에 가담했던 보라의 일은 드라마 속 가족의 '해프닝'으로 다루어진다. 마치 경기에 진 택이를 동네 아이들이 응원하여 추스리게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건 그저 드라마의 해법이 아니라, 이 드라마가 '모성'에 기대어 우리의 가족을 설명하듯이, 그 모성과 부성의 이데올로기에 기대어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 사회가 선택한 해법이다. 

'내 가족'을 선택한 우리 사회의 결과, 헬조선 
민가협의 어머니들이 자식을 잃은 고통을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의 민주화에 적극 동참하는 것을 '지름길'을 찾았지만, 우리 사회는 가족에게 전해지는 모든 사회적 부담과 고통을 '가족끼리' 보담고 '사랑'하는 것으로 해결해 왔다. 우리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복지 제도를 가진 스웨덴이 자신들의 집이 곧 사회이며 국가이고 민족 공동체라는 의식을 가지고 노인과 여성과 아동을 위한 복지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열렬한 전투를 벌이는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 새끼', 내 부모'를 보담고, 각자 도생하기 위해 각자 고군분투 해왔다. 그래서 어느 부모는 없는 살림에 아끼고 아껴 자식을 번듯하게 키워내고, 또 어느 부모는 자식의 밥을 챙기는 대신 열심히 투기 바람에 날라 다녔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2015년이 '헬조선'이다. 그렇게 살아온 사회이기에 대통령이 된 사람의 과업이 아버지 되살리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응답하라 1988>이 그려내고 있는 88년에도 여전히 전근대적이고 극진한 가족애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1. 21. 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