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된 유나(김옥빈 분)는 다른 패거리들이 찜을 한 사람의 지갑을 먼저 터는 바람에 좇기는 신세가 된다. 쫓기던 유나가 숨어든 곳은 폐업한 식당, 그곳에서 홀로 지내던 창만(이희준 분)은 쫓기던 유나를 숨겨주고, 그녀의 다친 발을 치료해 준다.이렇게 우연히 시작된 만남은 창만이 유나의 권유로, 전 거주인이 자살한 유나의 옆방으로 이사오면서 이어지고, 창만의 유나에 대한 짝사랑으로 발전된다.


유나를 사랑한 창만은, 유나가 소매치기라는 사실에 가슴아파한다. 그리고, 그녀를 언제 잡혀갈 지 모를 소매치기의 늪에서 구해내고자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어가면서 자신의 손을 자르면서 이제 소매치기를 그만하라고 당부해도, 자기 맘대로 살겠다, 자기보다 더 큰 도둑놈들이 있는데, 자기 정도가 무에 그리 큰 문제냐며 당당한 유나 앞에, 창만의 설득은 무기력하다. 고심 끝에 창만이 생각해 낸 것은, 어린 시절 유나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찾아주는 것이었다. 어린 유나가 외로움과 생존의 수단으로 선택했던 소매치기를 버리게 하기 위해서는, 그 외로움의 근원을 치유해야 한다고 창만은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극진한 창만의 사랑으로 유나는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고, 이제 소매치기도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유나가 소매치기에 손을 씻고,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는데, 정작 창만의 사랑은 어렵게 되었다.

'유나의 거리' 행복한 김옥빈 보며 눈물 흘리는 이희준

내로라하는 기업의 안주인이 된 유나의 친엄마, 처음에 머뭇거리던 것과 달리, 유나를 받아들이기로 한 엄마는 적극적으로 유나를 자신의 환경 속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꽃뱀인 미선(서유정)의 방에 얹혀 살던 유나는 이제 어머니가 사주신 번듯한 아파트가 생기고, 멋진 외제차가 생겼다. 그렇게 조금씩 변화해 가는 유나의 환경을 보면서, 창만은 자신이 스스로 발등을 찍었음을 깨다게 된다. 유나는 그토록 그리워 하던 엄마를 창만으로 인해 만나게 되었지만, 정작 창만은, 엄마로 인해 달라진 유나에게 범접하기 어려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고뇌하던 창만은 유나를 놓아주기로 결심한다. '사랑하기에 이별하노라'라는 진부한 사랑의 공식을 창만은 구현 중이다. 

사랑하기에 유나를 소매치기로 부터 빼내오기 위해 고군분투, 심지어 때로는 위험에 노출되기까지 했던 창만이 결국 내린 선택은, 바보같이 유나의 행복을 위해 유나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 뻔한 '사랑하기에 이별하노라'라는 공식이, 그런데, 45회를 이끌어 온 우직한 창만이란 캐릭터로 인해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 

그런데 바보같은 사랑을 하는 건 창만만이 아니다. 
유나를 만난 남수(강신효 분)와 윤지(하은설 분)는 바닥 식구인 자신들이 유나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테니 이제 그만 보자고 말한다. 그토록 자신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던 창만은 이제 주춤 한발 물러날 태세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유나의 존재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 새 아버지와 엄마는 유나에게 새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지금까지 유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 창만과 인연을 끓으라고 말한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어머니, 인자한 새 아버지와 따뜻한 여동생, 그리고 그들이 제공하는 넓은 아파트, 멋진 차, 그리고 그에 부응하는 부, 그 모든 것들을, 지금까지 소매치기로 살던 삶과 바꾸어야만 하는 기로에 놓인 것이다. 

역시나 고뇌하던 유나는 어머니와 번듯한 환경과 부를 택하는 대신,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오던 삶과 바닥 식구들을 버리지 않기로 한다. 어머니가 원하는 것은, 유나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부정하는 것이었지만, 유나는, 그러지 않기로 한 것이다. 비록 소매치기를 하고, 장물을 팔며 살아가지만, 유나를 위해 언제라도 솔선수범하며 나서주는 진짜 가족같은 바닥 식구들, 그리고 유나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사랑마저도 포기하는 창만을 포기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동시에, 비록 전과 몇 범의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처지이지만, 자신의 소매치기로 살아왔던 삶을 부끄럽게만 여기지 않았던 유나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다. 

이 바보같은 커플의 선택은 흡사,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떠올리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위해, 탐스러운 머리채를 자른 아내, 멋드러진 금시계를 잡힌 남편, 그들이 선택한 것은, 아름다운 머리를 장식한 머리핀과, 금시계에 어울리는 시계줄이었다. 이 웃픈 커플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오래도록 고전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자기 희생적인 아름다운 사랑이었다. 그리고 이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랑조차 포기하고, 자신이 어렵게 찾은 혈육과 부를 포기한 또 다른 바보같은 커플의 사랑이 감동을 주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45회에 이르는 동안 우직하게 쌓아 온 의리의 유나와 창만이란 캐릭터가 주는 감동이기도 하다.  가진 것을 다 내려놓은 이 커플의 사랑의 길이 부디 순탄한 해피엔딩이기를 기원한다. 


by meditator 2014. 10. 29. 1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