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달>이 방영된 건 1994년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2014년의 <서울의 달>이라는 부제를 걸고 또 하나의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JTBC의 <유나의 거리>, 무려 2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90년대 그 시절이나, 21세기의 오늘이나 밑바닥 인생들이 사는 삶은 그리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 


서울 어느 하늘 아래 몸 부대끼며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들의 삶을 질펀하게 그려내는 작가들이 있었다. 
<바보 같은 사랑>, <내가 사는 이유>, <화려한 시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까지의 노희경 작가는, 가난이라는 단어에 한 발을 담그고 사는 이웃들의 얼크러진 인생을 영상화시키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그 언제부터인가 노희경 드라마에서 더는 그 밑바닥 인생의 리얼리티는 점점 그 비중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이제 그의 드라마는 화려하거나 세련된 배경의 주택을 배경으로 저들의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작가의 삶도 달라졌으니,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달라진 걸 누가 뭐라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누군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여 가는 중에도 여전히, 그곳에서,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에 천착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 우리가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김운경이 바로 그 사람이다. 

굳이 예고편에서 <서울의 달>의 홍식과, <유나의 거리>의 유나가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유나의 거리>에서 극중 배경이 되는 유나가 사는 다세대 주택이 등장하자,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 예전 흥식이 살던, 아니 언제나 김운경 작가의 작품에 익숙하게 등장하곤 했던 가진 것없는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그 동네가 말이다. 

(TV리포트)

김운경 작가의 세계에서는 늘 집주인이 갑이다. 서울 하늘 아래 겨우 방 한 칸 얻어사는 사람들의 생사 여탈권을 쥔 그들이 김운경의 세계에선 재벌 회장님만큼 유세가 대단하다. <유나의 거리>에서도 다르지 않다. 유나가 세들어 사는 집주인 한만복(이문식 분)과 그의 아내는 이층 방에 세들어 살던 여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황에서도 집주인의 이해 관계를 내세우며 그녀가 염치가 없다며 투덜거린다. 이런 식이다.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들을 자신의 아랫 사람 부리듯하며, 갑으로 행세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뭐 그리 나아보이지도 않는다. 당장 다른 사람의 호주머니를 슬쩍하는 소매치기들을 소매치기 하는 유나가 드라마의 처음을 이끌듯, <유나의 거리>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조폭 출신에 피눈물도 없어보이는 집주인의 한만복에서 부터, 형사 출신에 하도 돈을 밝혀 걸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봉달호까지 저마다 한 구석에 구린 냄새를 풍기며 그 세계를 이뤄간다. 
물론 구린 냄새만이 그들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냉큼 죽은 여자의 노트북을 챙겼으면서도, 안타까운 죽음을 한 그녀를 위해 향을 피워주고 술을 따라주는 홍계팔처럼 푸근한 사람 냄새 또한 그들의 또 다른 면이다. 일찌기 <서울의 달>에서 제비족 박선생(김용건 분)과 미술 선생(백윤식 분) 그들처럼 말이다.
서울 하늘 아래 발붙이고 살기 위해 눈 앞의 이익을 위해 파렴치하기를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또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을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이 김운경이 1990년대에도, 그릭 2014년에도 그려내고자 하는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이다.

사실 <유나의 거리>는 새롭지 않다. 극중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구도는 <서울의 달>의 그것과 흡사하고, 주인공 유나의 설정은 이미 작가가 <도둑의 딸>을 통해 써먹었던 설정이다. 극중 등장 인물들은,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지고 등장하지만, 김운경 작가 전작 들의 그 누군가가 느껴진다. 남자 주인공 김창만에게서는 <서울의 달>의 춘섭이 떠오르고, 유나는 그 시절 홍식같기도 하다. 아니, 창만과 유나의 관계는 <서울의 달>의 홍식과 영숙의 관계가 역전된 듯하다. 어찌보면 자기 복제 같은데, 그 자기 복제를 모처럼 보니, 새삼스레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유나의 거리>의 첫 회를 보면서, 2014년에도 여전한 그 세계가, 아니 여전히 그 세계의 이야기를 뚝심있게 전해주는 김운경 작가가 어쩐지 반갑기도 하면서, 늘 넉넉하고 화려한 드라마 속 인물들에 길들여지다 보니, 새삼, 아직도 저런 세계가 있었지 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조차 느껴진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새삼스레 그려지는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 삶의 언저리의 저 이야기들을 과연 상류사회의 에스컬레이팅을 시도하던 사람들의 농염한 사랑 이야기 <밀회>를 즐기던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늘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던 입맛으로 모처럼 시장통의 순대국을 모처럼 맛보게 되는 그런 기시감이랄까, 부디 모처럼 맛보는 <유나의 거리>가 푸근한 옛맛의 향수를 넘어 이 시대의 소문난 맛집으로 등극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5. 20. 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