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 서구 경제는 신자유주의 체계에 들어서며 호황을 누렸다. 그 경제적 호황은 최근 '레트로'붐을 일으키고 있는 1980년대의 문화적 융성기를 낳았다. <원더우먼 1984>는 바로 펑크와 파워숄더로 대변되는 1980대의 정점에 시선을 맞춘다. 

 

 

레트로붐을 타고 있는 최근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처럼 영화 속 여주인공 원더우먼(갤 가돗 분) 다이애나 프린스는 그녀의 직장인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출근하기 위해 어깨에 심이 잔뜩 들어간 상의에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출근을 한다. 

영화 속 여주인공 원더우먼 만이 아니라, 빌런 맥스 로드(페트로 파스칼 분) 역시 어깨심을 넣어 각이 잡힌 스트라이프 정장으로 그 시대를 대변하지만 그런 그의 의상보다 한층 더 강조된 다이애나의 의상들은 70년대 후반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 '페미니즘'의 영향을 통해 사회적으로 한층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한 여성들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욕망의 시대
그 존재만으로도 당당한 여전사 원더우먼, 그녀는 자신의 고향인 아마존 데미스키라 왕국을 떠나 조종사였던 트레버 대위(크리스 파인 분)와 함께 참전했던 인간들의 전쟁에 참전했었다. 그리고 그 세계 제 1차대전의 와중에서 사랑하게 된 연인 트레버 대위를 잃은 그녀는 1984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한다. 그런 그녀에게 기적처럼 죽었던 트레버 대위가 다른 남자의 몸을 빌어 그녀에게 돌아오게 된다. 다이애나가 오로지 바라던 일, 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일이 바로 <원더우먼 1984>의 가장 큰 '딜레마'가 된다.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나고자 하는 '희망', 하지만 그 '희망'이 불가능한 욕망이라면? 영화는 원더우먼의 사랑을 통해 1980년대의 시대 정신, '욕망'을 조망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88년 올림픽 당시 정부 시책에 의해 여러 건전 가요가 만들어졌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 대한민국'이다.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자유로운 곳,....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라는 가사, 하지만 그 시절 무엇이든 될 수가 있다던 그 시절의 거리에서 젊은이들은 민주적인 국가를 쟁취하고자 최류탄을 마시며 시위를 했고, 고층 아파트를 짖기위해 가난한 동네의 주민들은 철거민이 되었다. <원더우먼 1984>는 미국의 '아, 대한민국'같은 시대를 '욕망'이란 화두를 통해 들여다본다. 

다이애나가 걸어가는 거리 상점 속 tv에서는 맥스 로드가 나와 자신이 개발 중인 유전에 투자하라는 홍보성 광고를 한다. 구구절절한 홍보성 멘트 뒤에 맥스 로드는 '아, 대한민국'의 가사같은 명쾌한 한 마디로 대 '아메리칸 드림'을 부추긴다.  

'무엇을 원하고 꿈꾸던지 그것을 가질 수 있어요.'


하지만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거액의 후원금을 내며 너스레를 떨던 맥스 로드를 반긴건 성처럼 거대한 '블랙 골드 인터네셔널' 건물 안에 텅빈 사무실과 체불과 체납의 영수증 더미이다. 그리고 그의 가장 유력했던 투자자 한 명이 찾아와 그가 후원하라는 유전이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은 '사기극'이었다며 빚을 독촉한다. 그가 대중을 현혹했던 말은 '신기루'였다. 

 

 

1980년대를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영화배우 출신의 훤칠한 외모로 인기몰이를 하여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은 그 이전의 카터 대통령과 달리 '강한 미국의 전성기'를 주창했다. 하지만 그 강한 미국의 전성기를 위해 미국이 가장 열을 올렸던 던 바로 '무기 산업'이었다. 그들이 판 무기는 1980년 이란 이라크 전쟁을 위시하여 이스라엘과 아랍, 레바논 내 종교적 분쟁,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전세계 곳곳에서 지역간 분쟁과 갈등의 '불쏘시개'가 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소련과 신냉전주의 체제를 구축, 긴장을 격화하며 다시금 군비 경쟁에 나선다. 무기를 팔고 석유로 받는 새롭게 구축되어가는 '신자유주의' 체제는 영화 속 되돌아온 트레버 대위가 신은 '나이키'로 대변되는 문화 산업으로 거리를 휩쓴다. 

영화 속 '빌런'이 되는 맥스 로드의 욕망처럼 원하고 꿈꾸는 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미국의 시대였다. 맥스는 가난한 이방인이었다. 그는 새 신발을 살 돈조차 없어 낡고 구멍난 신발을 신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지고 싶은 것은 그에게 너무도 요원했다. 그가 꿈꾸던 일은 외면받았다. 하지만 그가 살던 시대는 풍요로웠고, 그 풍요로운 성장의 시대에서 맥스의 욕망은 제어되지 않았다. 결국 나지도 않은 석유를 볼모로 대중들의 욕망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그 제어되지 않는 욕망에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굴러다니던 신비의 금속이 불을 지핀다. 

그리고 그런 맥스에게 결정적 조력자가 되는 건 다이애나의 동료이자, 당당한 그녀를 가장 부러워하는 바바라 미네르바(크리스틴 위그 분)이다. 알고보면 능력있는 고고학자였지만 펑퍼짐한 옷차림으로 가려진 그녀의 외모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두툼한 맨투맨티와 헐렁한 치마 속에 바바라는 주목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숨겼다. 그녀의 욕망은 그녀 앞에 등장한 바바라를 통해 구체화되었고, 신비의 돌이다. 

신비의 돌이 발견된 문명마다 결국은 '멸망'으로 이끌었던 그 돌이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등장했고, 그 돌의 쓰임새를 알아본 맥스가 바바라를 유혹하여 손에 넣는다. 그리고 맥스는 그 돌에 자신의 욕망을 동일시시킨다. 망해가던 블랙 골드 인터네셔널을 다시 일으켜세우려 했던 욕망은 그가 만난 사람들의 욕망과 함께 상승하며 대통령, 나아가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 그렇게 그저 한탄 사기꾼에 불과했던 맥스의 욕망이 세계의 멸망으로 치달을 수 있는건 바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고 싶은 모든 이들의 '열망'이다. 

원더우먼 다이애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오랜 세월 오로지 바래왔던 '사랑', 그 하나만을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세계를 파멸로 이끄는 욕망의 가속화된 엘리베이터를 멈출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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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반면교사'
욕망이 자연스러웠던 시대,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산업이 되고 문화가 되었던 시대, 그 시대의 정점 1984년, 그 중심에 있는 미국에서 <원더우먼 1984>는 여전히 그칠 줄 모르는 욕망의 열차를 추동시키고 있는 자본주의 문명의 욕망을 묻는다. 특히 대다수의 마블과 dc 코믹스의 히어로 영화들이 '코로나'로 인해 개봉을 미루고 있는 시점에 개봉한 <원더우먼 1984>는 코로나 시대 우리의 반성과 궤를 같이 한다. 결국 빌런이 되어버린 맥스를 진정시킬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소박한 가장으로서의 소망이었음을 상기시킨 영화는 그칠 줄 모르고 달려오다 멈추어버린 코로나 시대, 진정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되새겨보게 한다. 

화끈한 히어로물을 기대하고 모처럼 극장을 향했다면 초반 쇼핑몰에서의 활약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영웅적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사랑'에 발목 묶여버린 원더우먼의 모습은 아쉬울 지 모르겠다. 더구나, 절정의 장면에서조차 그녀는 여전사로서의 씩씩한 모습 대신 설득과 애원을 했으니. 그렇게 영웅담으로서의 <원더우먼 1984>의 면모는 아쉬웠지만 대신 시대적 욕망을 통한 반성의 담론으로서 <원더우먼 1984>는 코로나 시대 '반면교사'로서의 메시지는 충실하게 전한다. 

by meditator 2020. 12. 26.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