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깬 한열무(백진희 분)는 옆에서 억지로 잠을 청하는 엄마에게 말한다. 동생 한별이를 죽게 만든 범인을 잡았노라고, 동생이 죽음에 이르게 된 건, 누가 동생을 미워해서가 아니고, 그저 운나쁘게 동생이 사건에 휩쓸려서 그렇게 된 거라고. 그러니 이제, 두 다리를 뻗고 잘 순 없어도, 한 다리라도 뻗고 주무시라고. 

<오만과 편견> 17회는, 드라마 전체의 흐름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동생 한별이를 납치해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검사가 된 한열무, 그리고 자신이 구하려고 했지만 구할 수 없었던 아이 때문에 검사가 된 구동치(최진혁 분)가, 그들의 15년 묵은 포원을 단방의 일격으로 풀어버리는 회차였기 때문이다. 
동생 한별이를 납치해 죽이도록 사주한 범인이 과연 문희만 부장검사(최민수 분)일까? 이종곤 검찰 국장(노주현 분)일까? 미로 속을 헤매던 이야기가, 이종곤 국장으로 가닥을 잡아갔지만, 검찰의 수뇌부가 된 이종곤 국장의 뒤를 파면 팔 수록, 문희만이 범인이라는 증거는 명확해지고, 수사를 하는 민생안정팀의 생사는 기로에 몰리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17회, 문희만의 자신감에 찬 설득과 지시로, 그리고 이제는 노회하기까지 한 구동치의 팀플레이와, 15년의 원한으로 국장실의 문턱을 넘은 한열무의 담판으로, 반전, 결국, 이종곤 국장의 손에 수갑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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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드라마틱한 회차였음에도 막상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그 긴박감이 실감나지 않는다. 핑퐁 게임처럼 누가 진범일까 라며 범인을 추적하는 구동치 휘하 민생 안정팀의 팀플레이는, 절박한데, 문희만이 취조실에 앉아있는 이후 구동치 역을 맡은 최진혁의 느긋한 말투처럼 느슨하다. 
무엇보다, 수석인 구동치의 지시를 어기고, 한별이의 수사를 계속하기 위해 성접대 동영상을 넘겨주면서까지 민생 안정팀을 지키려고 했지만, 그런 그녀의 마지막 승부수마저 무시당한 상태에서, 이른바 '검사의 고소'를 무기로 여론화라도 시키겠다는 명목으로 이종곤 국장과의 담판을 한 한열무의 독대씬은, 전율이 느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오글거린다. 

<오만과 편견>이 지금 다루고 있는 이종곤 국장 사건은, 드러나기는 한별이 납치 살해 사건이지만, 문희만의 정리처럼, 특검의 독직 사건이다. 법치를 실행해야 할 검찰 권력이, 자신의 법치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애꿏은 서민을 희생자로 삼은 사건이다. 자신의 한 순간의 실수로 윗사람의 실수를 덮어주어야 하는 문희만과, 그 사건의 직, 간접적 희생자이자, 엄한 혐의자인 구동치, 한열무를 민생안정팀이란 한 팀에 모아놓고,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고, 다시 한번 조작 은폐하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거기엔 또 다른 재벌을 뒷배로 삼고, 이른바 '나랏일'이라는 사명감을 앞세워 자신의 입신양명을 추구하는 검찰권력이 있다. 

한열무의 다그침에도 당당한 이종곤 국장, 그런 그에겐 대의를 위해 한 아이의 목숨 정도야 별 거 아닐 수 있다는, '나랏일을 하는 자의 사명감'이 있었다. 그러기에, 검사의 고소라는 극단의 조치에도 눈도 끔쩍하지 않던 그가, '쓰레기'라는 외마디에 자백에 가까운 감정적 반응을 보인 것이다. 
드라마는 이렇게 사슬처럼 이어진 검찰 권력의 구조적인 '갑질'을 설명하기 위해, 정의감넘치는 젊은 검사들을 등장시킨다. 민생 안정팀에 모인 구동치, 한열무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젊다고 정의감이 넘치지 않는다는 것이 이제는 상식이 된 세상에 어쩐지, 그들의 '정의감'은 서걱거린다. 사실, <오만과 편견>에서 가장 현실감넘치며 살아 움직이는 젊은 검사의 캐릭터는 안타깝게도 조연인 이장원(최우식 분)의 캐릭터다. 그가 연기하면 진짜 검사인 듯하다가, 구동치랑 한열무가 등장하면, 어쩐지 그저 극중 캐릭터만 같다. 그런 이질감을 방지하기 위해, 작가가 마련한 장치는 15년 전 의협심에 납치된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다 실패한 구동치와, 동생을 납치범에게 잃은 한열무라는 개인적 원한을 가진 주인공 캐릭터를 만든다. 그들이 검사로서 정의감을 갖게 된 이유는, 바로 그들이, 사건의 목격자이자, 희생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15년이 지나, 수석 검사와, 수습 검사가 된 그들은, 15년 전 자신들이 희생자가 된 사건을 직접 수임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선다. 하지만, 그들이 해결하려 들면 들수록 사건은 미로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증거를 발견해도, 그 증거를 가지고 어찌 해볼 도리가 없이 그들의 수사망은 옥죄어진다. 누가 범인인가를 넘어, 눈 앞에서 범인을 보고도 놓쳐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이른바, 여론을 불러 일으키는 '검사의 고소'를 빌미로 한 담판이요, 결국 그 역시, 15년 전 범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범죄를 시인하게 만드는, '자백'인 것이다. 
그토록 누가 범인일까를 두고, 두뇌 싸움을 벌이던 드라마는, 결국 이종곤 국장이 범인인 것을 밝히기가 무섭게, 민생안정팀의 해체라는, 두 손, 두 발을 묶어 버리는 극단의 장치를 쓰는가 싶더니, '자백'이라는  가장 손쉬운 길을 택한다. 
동생의 범인을 눈 앞에 두고도 놓치는 막막한 상황, 성접대 동영상까지 넘겨주는 무리수를 쓰면서도 수사를 계속 해보려던 상황이 막혀버린 절막감을 심어주면서, '자백'의 장치를 극적으로 몰고가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수사극에서 손쉬운 해결 방법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드라마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재계와 밀착하여 권력을 이어가는 법치의 세계, 눈 앞에 범인을 두고도 권력의 의중에 따라, 춤 출 수 밖에 없는 재판, 그리고 거기에 희생된 애꿏은 서민들의 구도는 명확하지만, 그것을 극적으로 풀어내는 회심의 일격으로, 한열무와, 이종곤 국장의 독대씬은 도무지, '크레센도'의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화영'이라는 뒷배와의 딜을 통해 해결을 했다는 문희만의 복선과 무관한 극적 감흥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뜬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긴 절박감도, 마지막 말로 묵은 포원이라도 풀어 보겠다는 듯이, '검사의 고소'라는 카드를 들고 국장실을 찾은 좌절감도 어쩐지 실감나게 풀어내지 못한 여주인공의 연기이다. 안그래도 남자 주인공의 연기도 건들건들 설렁설렁이라는 캐릭터 설정을 넘어, 설렁설렁 해보이는데, 여주인공의 연기는, 15년 묵은 포원이라기엔, 너무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이종곤 국장의 '사명감 넘치는 자신감'마저 덤덛하게 만들 정도로. 그녀의 앳되고 해맑은 얼굴과 덤덤한 말투는 야무지고 당돌하고 밝긴 하지만, 그 이상, 15년전 동생을 잃고 공부만 했던 한열무라는 인물을 느끼기엔 역부족이다.  

언제나 그래왔다. 문희만이 등장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다가도, 그가 사라지고 나면, 그 어떤 극적인 행동을 해도 느슨해져 버리는 것, 그게, <오만과 편견>의 딜레마다. 제 아무리 문희만이 분위기를 잡고 긴장감을 부여해도, 결국, 중반부를 넘어서는, 기성 세대의 비리를 척결하는 젊은이들이 앞장서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주저 앉아 버리니, 여러모로 아쉽다. 

물론, 여전히 '화영'이라는 재벌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과 손을 잡은 문희만의 행보, 과연 그가 구동치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 그리고 범인을 죽인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임을 깨달은 구동치의 행보 역시 남은 <오만과 편견>의 관전 포인트이다. 하지만, 17회처럼 드라마를 풀어낸다면, 애초의 주제 의식을 제대로 살려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설익은 젊은 배우들의 연기와 쉬운 해결이 드라마를 용두사미로 만들 지 않기를. 


by meditator 2014. 12. 24. 1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