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내가 말하는 아줌마들이란 단어에 보편성이 좀 부족할 지도 모른다는 말을 해두고 싶다. 여기서 생략된 말은 '내 주변에 있는' 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주변에 있는 아줌마들이 이상한 건지, 죄다 <오로라 공주>에 빠져있다.


매일 저녁 7시 15분 방영하는 <오로라 공주>는 당초 120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작가의 요청으로 30회를 연장했고, 이제 다시 또 30~50회 연장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장과 관련하여, 그간 등장 인물 10여명이 빠져나갈 정도로 개연성 없는 전개에 분노한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다음 아고라에 '연장 반대 서명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일부 지각있는 네티즌들의 연장 반대 서명 운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로라 공주>는 이번 한 주 동안 자체 최고 시청률을 세 번이나 갈아치웠다. 

*친정 아버지 제사 때 만난 친정 어머님은 요즘 낙이 <오로라 공주>를 보는 거라고 하신다. kbs1의 8시 30분 일일 드라마의 고정 시청자였던 어머니가 노선을 바꾸셨다. 거기 다 한 술 더 떠서, 드라마를 보고 나면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의 시청담을 나누신단다.
*친정집 김장하는 날 동생이 늦었다. 산더미같은 배추더미를 쌓아놓고, 속을 버무리고 있는데, 느지막히 나타난 동생이 하는 말, 어제 <오로라 공주>를 못봐서 아침에 재방송 보고 오느라 늦었다나.
*직장을 다니느라 바쁜 이웃집 아줌마가 쉬는 날 오전 빼먹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면 일주일 동안 바뻐서 빼먹은 <오로라 공주>를 몰아서 보는 일이다.

(사진; tv리포트)

그런데 재미있는 건, 세대별로 <오로라 공주>를 시청하는 태도에 차이가 난다. 
친정 어머님처럼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전혀 꺼리낌없이 <오로라 공주> 찬가를 부르신다. 네티즌들이 문제를 삼고 있는 것 중 하나인,등장인물의 잦은 사라짐에 대해서는 '잔가지를 쳐낸다'는 표현을 쓰시고, 오로라 공주와 시월드의 다툼을 논하실 때는 흥이 나셔서 열변을 토하신다. 어머니 세대의 최근 가장 핫한 이슈는 오로라의 시집살이이다. 
반면 중년의 주부들은 <오로라 공주>를 재미있게 그것도 빠짐없이 보면서도, 어딘가 껄끄러운 자세를 취한다. 마친, 한참 야한 영화를 보다 그 모습을 엄마에게 들킨 아들처럼 면구스러워한다. 그냥 뭐 욕하면서 본다든가,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마지못해 본다는 식이다. 보고는 있지만, 자신들이 보는 드라마가 그닥 건전하지 않다는 걸 인식하는 모습이다. 
물론 세대를 막론하고 오로라의 또 다른 남자, 설설희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걔중에는 그 남자 보는 맛에 본다는 분조차 계신다. 

<오로라 공주>는 아줌마들의 '게임'이다. 그것도 가장 환타지스러운 rpg게임이다. 드라마 <오로라 공주>는 마치 게임 한 판을 하듯이 매회 승부가 결정된다. 오늘은 오로라의 시월드가 한 판을 따면, 내일은 거기에 오로라가 반격을 하고, 다시 그 다음날이면 숨죽여 있던 오로라의 남편 마마가 목소리를 높인다. 오로라가 궁지에 몰리자, 설희가 나타나 손을 내밀어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부잣집 공주님같던 오로라가 모든 걸 잃고 가난에 빠져있다가, 스타가 되고, 다시 결혼을 하며 시월드의 늪에 빠지는 방식은 rpg게임의 롤을 고스란히 빼다박는다. 자식들이 게임이나 한다고 쯧쯧거리던 그들이 정작 자신이 가장 게임같은 드라마에 빠져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은 그런 나이든 세대를 한심스러워 한다. 누군가는 엄마 때문에 강제 시청의 고통을 호소하고, 또 누군가는 그 소리를 듣는 거 조차 소음 공해라며 비명을 지른다. 몇 십회의 연장으로 작가가 얻어가는 수십억의 돈에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젊은 세대들은 어떤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벌 집 자제들의 사랑 싸움 드라마에 또한 열을 올리지 않는가 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놀 것이 없는, 재미를 찾을 수 없는 중년 이후 세대의 놀이이다. 수능을 앞둔 고3들 중 다수가, league of legend에 빠져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소중한 1년을 날려버린 거에 비하면, 작가에서 수십억을 더 얹어주고, <오로라 공주>라는 게임을 연장하는 건 약과같기도 한다.
엄마는 아들에게 게임만 한다고 욕을 하고, 아들은 엄마가 맨날 막장 드라마만 골라서 본다고 한심해 하고, 세대별로 극명하게 갈리는 문화적 괴리감, 과연 이걸 각 가정의 문제로만 치부해야 할까?  

최근 게임과 관련하여,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이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욕하면서 드라마를 즐기는 중년 주부들에 대해서도 그저 '개념이 없다'며 치부할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드라마 중독의 관점에서 치유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 게임이 하다보면 점점 더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스케일이 큰 장르에 빠져드는 것처럼,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주부를 대상으로 비슷비슷한 내용으로 쏟아붓는 드라마 들 중에서 당연히 가장 자극적이고 쾌락적인 그 무엇을 찾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드라마는 그저 재미있으면 보는 것인 것이다. 그러기에, <기황후>가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게임이 잘 팔린다고 해서, 그 게임을 좋은 게임이라고 하지 않듯이, 시청률을 척도로 드라마를 재단하는 기준 자체를 달리해야 할 것이다. 더더구나 게임이 찾아가 하는 것과 달리, 드라마는 그것을 만들어 제공하는 방송사라는 '공공'의 기관이 있다. 결국 연장 반대 서명이든 무엇이든, 그 공적 구조를 가진 방송국과, 제작진의 양식에 기대어 볼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오로라 공주>의 연장에, 역사 인식에 기본적으로 함정을 지닌 <기황후>의 방영을 결정한 mbc의 행보가 아쉬울 뿐이다. 
더더구나 결국 연장 결정은 방송국이 함에도 우리는 임성한 작가의 결정에 따를 거예요, 하면 뒤로 물러나 있는 방송국의 태도는 더더욱 비겁하다. 
작년 kbs 주말 드라마로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인기를 끌었던 <내 딸 서영이> 같은 드라마는 늙고 젊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세대가 감동을 받으며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도 교훈적 내용이 넘쳐났던 드라마였다. 꼭 막장이라야 사람들이 보는 게 아니다. 결국 만드는 사람들이 어떤 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만드는가에 따라 좋은 드라마라도 높은 시청률을 올리며 인기를 끌 수 있다. 
만드는 사람의 자질과 인식에 따라 세대간 평화를 불러올 수도, 세대간 갈등과 반목을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3. 11. 16. 1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