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위원회 위원의 조사가 다가오자, 용현자 교장 선생님은 마여진 선생이 더 이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교육 방식을 바꿀 것을 촉구하며 말한다. 

"제가 선생님을 받아들인 건, 선생님의 교육 방식이 맘에 들어서가 아니예요. 전 선생님의 교육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아요. 단지 선생님이 그 어떤 선생님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걸 알기에 우리 학교로 모신 겁니다"라고.


(사진; 스포츠 월드)


마여진 선생의 교육 방식은 '독선적'이고, '억압적'이다. 교육 위원의 질문에 아이들은 아니다 라고 대답할 추호의 여지도 없이. 그리고 14회에 이르른 <여왕의 교실>은 마여진 선생님이 왜 그런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는가가 드러나고 있다. 

부모들이 하라고 하니까 공부를 하고, 잘 되야 한다니까 더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이담에 좋은 직장을 가지기 위해 공부를 하고,그렇게 공부만 하다보니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아이들은 호시탐탐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외면하고 상처를 주고 왕따나 시키는. 이것이 바로 마여진 선생님이 진단한 6학년 3반의 현재이고, 텔레비젼 밖에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다. 

그렇게 친구의 소중함, 나아가 인간의, 생명의 소중함을 모른 채, 입시 교육에만 매달려 고사당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마여진 선생이 선택한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반교육적인 방식이다.



마여진 선생은 결국 쓰러지게 될 만큼 자신을 혹사해 가며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를 비롯해, 오동구, 서현이, 보미, 그리고 전학온 도진이에 이르기 까지 각 아이별 맞춤 교육 해법을 실행했다. 

그런데, 부모들은 어떤가? 

드라마 속 부모들은 내 자식을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매진하는 맹목적인 부모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아이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좋다는 학원에 아이들을 보내고, 아이들의 친구 관계를 코치하고, 학교 생활의 모든 것조차 장악하고자 한다. 

자녀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며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특히 교육과 관련된 문제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헬리콥터 맘이요, 통제와 관리,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서하지않는 엄격한 규칙을 강요하는 타이거맘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과잉 보호와 간섭은 다 아이들을 사랑해서이다. 제 아무리 마여진 선생이 아이들을 사랑한다 해도, 부모들만 할까.

이런 적극적인 부모들의 교육열 덕분에 대한민국이 이 정도로 발전했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최근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바로 이런 부모들의 과도한 교육열로 인해 아이들의 온실 속 화초처럼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닮지 않았는가? 비난의 대상이 된 마여진 선생의 교육 방식과 현재 학부모들의 교육 방식이.

부모들 역시 아이들이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유로, 그저 너를 생각해서 그런다는 토를 달면서, 아이들을 냉험한 경쟁의 교육 체계 속으로 밀어넣는다. 그리고 마여진 선생은, 부모들이 해오던 방식, 그리고 초반에도 드러나듯이, 부모들이 가장 원하던 방식을 더 혹독하게 밀어부침으로써 아이들이 튕겨져 일어설 때까지 아이들을 밀어부친다. 

철을 제련할 때 구부러뜨리고 싶은 반대 방향으로 쳐야 철이 제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가듯이, 경쟁 교육 속에 고사 당하는 아이들이 스스로 서기 위해, 마여진 선생이 택한 방식은 '매우 혹독하게 더 세게' 아이들을 다루는 것이다. 마여진 선생님마저 동의하지 않을 정도로 마여진 선생의 교육 방식은 옳지 않지만, 14회에 이르러 달라진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국 아이들은 그 정도의 충격 요법이 필요할 정도로 심하게 왜곡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마여진 선생의 교육은 불편해 하지만, 사실은 그것만큼 불편하게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엔 무감하거나, 외면하고 싶어하거나, 사랑의 이름으로 혹은 세상을 핑계로 둘러대고 싶어한다. 


(사진; tv리포트)


교육 위원의 참관 수업 시간, 달라진 아이들은 당당하게 마여진 선생에게 질문한다. 

왜 배워야 하는 거냐고. 그러자, 교육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마여진 선생은 대답한다. 물론, 이런 그녀의 교육론에 여러가지 동물의 사례를 들어,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지만, 마여진 선생이 말하고자 한 취지가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 

생명이 있는 것들 중 가장 무능력하게 태어난 인간은 그러기에 그 어떤 생명체보다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그것은 일찌기, 공자님이 말씀하시듯이,' 배우고 때로 익히지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원론적 해석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왜, 이런 배움의 즐거움을 잃게 만들었는가? 굳이 <여왕의 교실>을 시청하지 않아도, 누구나 무엇때문이라는 걸 다 안다. 하지만, <여왕의 교실>은 그 이 시대의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생존을 향한, 경쟁 사회의 교육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마치 왜 살아야죠? 하는 것처럼, 왜 배워야 하죠? 공부는 해서 뭐해요? 라며.

그리고 그 질문의 방향은 10시에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향해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아이들을 온실 속 자기 밖에 모르는 화초로 만드는 부모님이랑, 그런 아이들을 다시 자생력을 가진 주체적 인간으로 되돌려 놓는 마여진 선생의 교육을 보며, 나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니 어떻게 키우고 있나?를 질문하게 만든다.. 이게 <여왕의 교실>이 어린이 드라마가 아닌, 10시에 방영되는 미니시리즈인 이유이다.   하지만 여간해서는 오르지 않는 시청률에서 보여지듯이,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교육에 대해 던지는 직설은 불편한 듯하다.








by meditator 2013. 7. 26. 10:10